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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e/e—art—exhibit

반전의 풍경 Reversed Landscapes - 임현숙 Lim Hyun Sook

by e-bluespirit 2008. 9. 23.

 

 

 

임현숙개인전

'Reversed Landscapes'

 

 

 

 

임현숙_Cosmos_oil on canvas_53×45.5_2008

 

 

2008년 9월 30일(화) ~ 10월 7일(화)

다미갤러리

대구광역시 수성구 수성1가 272변지 우방한가람타운 상가2F 223-225호 T.053-952-3232

opening 9월30일(화) 오후 6:00

 

 

 

임현숙_Cosmos_oil on canvas_53×33.4_2008

 

 

마음의 눈에 비친 세상의 진실

‘세상에 진실은 없다. 그 진실은 늘 변하기 때문이다.’ 20세기 초엽 프랑스의 시인이자 미술비평가인 아폴리네르(G. Apollinaire)의 말이다. 예술적 진실은 결과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사상과 시대의 조류에 따라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 변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세상을 인식하고 해석하는 작가의 세계관인 만큼, 예술의 진실은 고착된 것이 아니라 ‘다름’을 찾는 작가의 부단하고 고단한 노력을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작품은 작가의 자화상이자 시대의 거울이라고 하는 것이다.

 

 

 

 

임현숙_Cosmos_oil on canvas_53×40.9_2008

 

 

오늘 우리는 또 다른 진실을 찾아 새로운 항해를 행한 임현숙의 세계를 만난다. 그녀의 일곱 번째 개인전 <반전의 풍경>이 그것이다. 이번 전시는 한국 고유의 원시성을 탐구하고 그 형상을 다채로운 색을 통해 해석하면서 생명과 삶의 근원을 탐구해 오던 임현숙의 이전작업과는 달리, 현세라는 삶의 이면에 존재하는 본질, 생(生)의 본령을 드러내고 있다.

 

 

 

임현숙_Reed2_oil on panel_200×42_2008

 

 

‘반대 방향으로 구르거나 돎’을 의미하며 세상을 뒤집어 본다는 개연성을 가진 반전(反轉)이라는 말은 오늘의 문화적 코드와 지식과 경험의 시각으로는 예견하지 못했던 결과의 출현을 뜻한다. 세상에 뿌리박은 것의 새로운 의미, 사물에 대해 길들여진 선입견으로는 불가해한 ‘다른’ 의미를 추적하는 작가의 고뇌가 반전이라는 이름으로 완성되어 현시되고 있다. 풍경이라는 ‘진부한’ 소재를 통해 빠르게 진화하는 현대 문명속에서 점차 물질에 길들여지는 우리 자신이 원래 가졌던, 그래서 잃지 말아야 할 원형으로서의 정신적 가치의 위상을 화필의 힘을 빌려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작가 임현숙의 정언적 명령이다.

 

 

임현숙_Reed_oil on panel_200×42_2008

 

 

우선 작가가 선택한 소재로서의 풍경은 그리 대단한 풍경이 아니다. 일말의 관심도 없이 무시하고 지나쳐 버릴 수 있는 풍경이다. 그런 하찮은 풍경이 우리 눈앞에 의젓하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이것이 이 전시의 작품이 보이는 일차적 반전이다. 우리 주변에는 나와 다르기 때문에 소통의 의지를 보이지 않고, 금전적 가치가 없다는 이유로 무시하는 존재와 대상이 천지에 널렸다. 언제부터인지 물질성이 정신에 앞서 가치 판단의 기준이 된 것이다. 임현숙은 이런 부질없는 일상의 풍경을 전시실로 옮겨놓음으로써, 그 경물에 대한 우리의 예상과 기대를 뛰어넘는다. 작가에 의해 선택된 이런 형상은 눈에 보이는 현상만이 아닌, 그 이면의 존재론적 가치에 주의를 기울일 것을 바라고 있는 것이다. 특히 시시각각 변하는 현상성과는 달리, 변치 않는 그 본질적 가치의 지고함은 단조로운 모노톤의 색을 통해 표현되고 있다. 다채로운 색을 통해 표출되는, 순간적이며 변심이 가능한 인간의 마음과 감정은 도저히 개입될 여지가 없는 대상의 숭고한 내적 가치만을 고스란히 드러내고자 한 것이다.

 

 

 

임현숙_Reversed Landscapes_Lenticular_72.7×38_2008

 

 

그리고 그녀의 작품에는 반드시 식물들의 얽히고 설킨 가지의 다발 군(群)이 나타나는데, 이런 별 가치 없는 대상들의 그 내적 구조가 복잡한 타래로 얽혀있으니, 하물며 현대라는 인간세상의 존재적 실타래가 얼마나 복잡하고, 그 세상을 사는 현대인들의 삶이 얼마나 고단한 것인지를 간접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호관계성 속에서 살아야 하는 운명의 현대인들이 추구할 것은 형식 이면의 본질이며, 물질 뒤에 도사린 정신적 가치라는 사실을 임현숙은 절제 된 담백한 색채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일상에서 크게 주목받지 못하는 풍경들의 존재가 우리의 삶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우치는 느닷없는 순간이 바로 이 전시가 노린 이차적 반전의 순간이다.

 

 

 

 

임현숙_Reversed Landscapes_oil & acrylic_65×38_2008

 

 

또한 그 풍경의 주를 이루는 것이 갈대와 코스모스이다. 예술적 도상으로는 이른바 연약함의 상징들이며, 바로 복잡한 구조 속에서 살아야하는 인간의 운명과 다름이 아니다. 그러나 실상 이들의 나약함은 겉모습일 뿐, 그 본령은 강하고 억세기 그지없다. 그래서 시인 김수영은 <풀>에서 그 속성을 ‘풀이 눕는다 (…)/ 발밑까지 눕는다 /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라고 했던 것이다. 이것이 나약함의 이면에 존재하는 강함이다. 이것이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자연의 위대함이자 연약해 보이는 인간의 본질인 것이다. 그래서 연약해 보이는 것과 보잘 것 없어 보이는 것의 고귀한 가치, 평범한 것의 숭엄한 가치가 드러나는 것이다. 이것이 이 전시에서 느낄 수 있는 삼차적인 반전이다.

 

 

 

 

임현숙_Reversed Landscapes_oil & acrylic_72.7×38_2008

 

 

이쯤 되니 연약한 것의 강함이 인간 생의 본질이라면, 이런 운명을 감내하는 전형적인 존재가 바로 한국의 여인상 아니겠는가? 작가 임현숙은 바로 이런 풍경과 그 존재론적 가치에 빗대어 한국 여인들이 위상을 암시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현실의 유혹과 물질의 욕망을 뒤로한 채, 묵묵히 삶의 본질과 그 정신적 가치만을 추구한 우리의 여인들 말이다. 코스모스와 갈대의 나약함이 이들의 여성성이며, 이들이 겪고 감내해야 했던 고단한 삶의 유형이 그 복잡한 타래의 줄기들이고, 이들이 행한 무욕의 삶이 담백한 흑백의 대비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연약한 갈대이지만, 생각하는 갈대’라는 말이 실감나지 않는가? 이것이 내면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자 한 작가 임현숙의 페르소나이자 그녀의 존재적 원형일지도 모른다.

 

 

 

 

임현숙_Reversed Landscapes_oil on panel_72.7×38_2008

 

 

이 전시를 통해 세상에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기에 순수한 내면의 시선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준 ‘어린왕자’, ‘유연하고 약한 것이 단단하고 강한 것을 이긴다(柔弱勝剛强)’는 노자의 말을 새삼 실감하며, 임현숙 개인의 반전, 차후에 발생할 또 다른 예술적 반전을 기대해본다.

권용준 (미술비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