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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e—fellow—friendship

소리를 알아듣는 사람이 친구다

by e-bluespirit 2006. 3. 29.

 

 

 

 

 

 

 

소리를 알아듣는 사람이 친구다.
 
 
 
춘추전국시대에 백아라는 거문고의 명인이 있었다.
 
백아가 거문고를 들고 높은 산에 오르고 싶은 마음으로 이것을 타면
 
옆에 있던 친구 종자기가 "참으로 근사하다.  하늘을 찌를 듯한 산이
 
눈앞에 나타나 있구나!"하고 말하였다.
 
또 백아가 흐르는 강물을 생각하며 거문고를 타면 종자기는
 
"기가 막히다.  유유히 흐르는 강물이 눈앞을 지나가는 것 같구나!"하고
 
감탄하였다.  그런 종자기가 죽자 백아는 거문고를 부수고 줄을 끊은 다음
 
다시는 거문고를 타지 않았다고 한다.
 
이 세상에 다시는 자기 거문고 소리를 들려줄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열자>의 '탕문편'에 나오는 이야기다.
 
이렇게 자기의 소리를 알아듣는 사람을 '지기지우(知己之友)'라고 한다.  
 
종자기는 얼마나 오랫 동안 백아의 거문고 소리를 옆에서 들었겠는가.
 
얼마나 많은 시간을 함께하고, 얼마나 많이 백아의 거문고 소리를 들었으면
 
연주하는 소리만 듣고도 지금 친구가 무슨 생각을 하며 악기를 타고 있는지
 
상상할 수 있었겠는가.
 
거문고 소리를 듣거나, 거문고를 타는 친구의 표정을 보기만 해도
 
친구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알게 되기까지 둘은 얼마나 깊은 교감을
 
나누었겠는가.
 
백아가 명인이 되기까지 늘 옆에서 격려하고 칭찬하고
 
힘을 북돋워 주었을 것이다.
 
게으르면 꾸짖고 나태해지면 질책하고 오만해지면 서슴없이
 
비판하였을 것이다.  그러지 않고 어떻게 지기지우가 될 수 있겠는가.
 
훌륭한 예술가가 되도록 도와주고 바른 예술가의 삶을 살도록
 
경계하였을 것이다.
 
 
지금 내가 울리는 악기의 소리를 가장 잘 알아듣는 사람은 누구일까.
 
아니, 내 목소리를 가장 잘 알아듣는 사람은 누구일까.
 
내가 연주하는 피아노 소리를 들으며 고요한 물 위에 차고 맑은 물이
 
떨어지는 소리를 떠올리는 사람은 누구일까.
 
내가 켜는 바이올린 소리를 들으며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고
 
흐느끼며 울고 있다는 것을 알아듣는 사람은 누구일까.
 
아니, 내 목소리를 듣기만 하고도 내 가슴속에 비가 내리고 있는지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는지 금방 알아채는 사람은 누구인가.
 
내 노랫소리를 듣고도 내가 아파하고 있는지 흥겨워하고 있는지
 
금방 아는 사람은 누구인가.
 
 
그 사람이 나를 가장 사랑하고 있는 사람이다.
 
내 마음의 음색과 빛깔과 상태를 가장 잘 아는 사람,
 
그 사람이 나를 가장 아끼고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다.
 
그 사람이 어디 있는지 찾아보라.
 
내가 만나는 사람 중에, 내 가족 중에, 내 주위에 있는 사람 중에,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던 사람 중에 그 사람이 누구인지 생각해 보라.
 
그가 진정한 나의 벗이요, 반려자요, 애인이요, 사랑하는 사람이다.
 
 
 
 
 
도종환님의 산문집 <사람은 누구나 꽃이다.> 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