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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e—live—Library

시집 - 소설을 쓰자 - 김언

by e-bluespirit 2011. 10. 16.

 

 

 

 

시집

김언


작곡하듯이 쓸 것.
3차원의 문제도 4차원의 문제도 아닐 것.
처음과 끝이 반드시 맞아떨어지는 지점이 존재하지 않을 것.
끝까지 듣게 할 것.
시간이 아닐 것.
어떻게 잡아챌 것인가. 그 종이의 다른 차원을.
그 노래를 처음 들어본 사람처럼 음악을 대할 것.
소리나는 대로 작곡하는 버릇을 버릴 것.
어느 좌표에도 찍히지 않는 점이 불가능할 것.
반드시 찍힌다는 신념의 문제에서 비롯될 것.
그 새벽의 전혀 다른 도시를 보여줄 것.
어느 공간에서도 외롭지 않을 문장일 것.
어느 시간대를 횡단하더라도 비명은 아닐 것.
고함도 아닐 것. 그것은 확실히 음악일 것.
작곡하듯이 되풀이할 것.
음표를 지울 것.
그리고 쓸 것.
그것의 일부를 묶어 모조리 실패할 것.
한 푼의 세금도 생각하지 말 것.
오로지 쓸 것.
한 명의 과학자를 움직일 것.
백 명의 민중을 포기할 것.
그 이상도 가능할 것.
다른 문장일 것.

 

 

 

 

 

 

 

 

 

 

 

소설을 쓰자

 

 

김언

 

 

너무 긴 소설을 쓰지 말 것. 너무 짧은 소설도 쓰지 말 것. 적당하게 지루해질 때 끝나는 소설일 것. 원고지의 분량이 아니라 심리적인 분량일 것. 어느 공간에서 읽어도 적당히 심심하고 적당히 어리둥절한 반전일 것. 어떤 질문을 하더라도 충실하지 않는 이야기일 것. 어떤 대답도 흘려 들을 수 있는 내면일 것. 그런 주인공을 찾을 것. 캐스팅은 길거리에서 오디션은 실내에서 시상식은 레드카펫을 밟는 장면에서 중단할 것. 더 많은 말이 필요하면 다른 영화를 찍을 것. 더 많은 상이 필요하면 영화를 찍지 말 것. 돌아와서 시를 쓸 것. 전혀 시적이지 않는 소설을 쓸 것. 있어도 상관없고 없어도 상관없는 중요한 문장이 들어갈 것. 단어는 조금 더 동원되거나 외로워질 것. 저 혼자 있어도 눈물을 뚝뚝 흘리는 마침표일 것. 다른 부호는 적당히 경멸하고 적당히 술을 마신 후 같이 잘 것. 좋았니? 좋았어! 이런 대화에 식상해하는 커플이 데이트하기 좋은 장소를 섭외할 것. 침대가 아니면 어디가 좋을까? 화장실이 아니면 어디서 바지를 내리고 치마를 들추고 속옷을 다시 껴입는지 고민하지 말 것. 사람이 장소를 만들어 간다. 장소가 사람을 대신한다. 공간은 사람 안에 들어왔다가 서서히 말라 갈 것. 물기가 다 빠진 고향에 대한 향수를 간직한 로맨스 가이를 이해하고 두둔하고 적당히 멀리할 것. 감정의 폭이 자주 변하는 남자의 내면을 한 단어로 붙잡아 둘 것. 병원이거나 요양원이거나 아니면 수용소에서 만난 사람들의 일상적인 머리 모양일 것. 그들은 많은 충고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이런 충고를 적절히 섞어서 거절할 것. 외판원에게는 외판원에게 어울리는 약점을 만들어서 반창고에 붙여 줄 것. 쉴 새 없이 나온다면 항문에 붙여 줄 것. 기침이 심하다면 기침을 섞어 가며 장면을 바꿀 것. 더 건조한 날씨로. 더 지저분한 얼굴로 손을 씻고 나오는 결말에 가서야 나의 결벽증이 드러나는 캐릭터를 완성하고 조금 더 방치할 것. 미완성된 소설의 다음 소설을 구상할 것. 초심으로 돌아가서 길을 잃을 것. 아니면 골목길. 아니면 빙판길에서 씽씽 달리는 자전거를 기차처럼 묘사하고 정거장처럼 그리워하고 이별처럼 뻔한 동기 유발을 의심할 것. 그 전에 먼저 발표할 것. 책을 내고 출판 기념회에 온 하객들에게 왜 왔는지 모를 초청장을 발송할 것. 발송과 동시에 소설을 시작할 것. 영화의 결말도 거기서 시작하고 거기서 끝날 것. 엉성한 짜임새의 스토리를 누구보다 경멸하고 오해하는 친구의 아버지가 될 것. 그 친구의 친구와 적당히 말을 트고 화해할 것. 자연스럽게 오해하는 장면을 곁들일 것. 주먹다짐은 불필요하겠지만 오래 끌지 말 것. 너무 극적이니까 분량을 다시 생각할 것. 다음 소설에서.

 

 

 

 

 

 

김언 KIM Un

KIM Un (b. 1973) was born in Busan and made his literary debut in 1998. His poetry books include The Breathing Tomb (2003), The Giant (2005), and Let’s Write a Novel (2009). His poetry features the extreme exploration of language, making his poetic journey symbolized as a giant radically questioning the form of poetry. In his experiments, poetry has become the arrangement of words that wait for a certain happening, incidental encountering. In a sense, the poet strives to weave most secret relations with the world as well as the readers, rather than denying the communic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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