黎 明 羽 調
청산 푸른 자락엔
이내 서걱이는 소리,
하늘 밖에 젓대소리 흘리며
훨 훨 훨 날아가는
학두루미를 보았으리.
흐린마음 지친 자릴
조촐히 닦아낸 다음
부신 햇살 조용히 불러
깃 다듬는 저 어린 비둘길
길러도 보았으리.
꽃사태 흐드러진 날을
어둠이 도사리고 있는
그 어느 외로운 구석에서도
아예 흔들릴 수 없는
우리들의 마음을 보았으리.
흙구렁에 몸을 담아도
항상 하늘로 치솟는 마음
굽힐 수 없는 오롯한 방향으로
갈고 닦아 세운 뜻을
그대들은 잊지 않으리
떨어져가는 꽃이파리에
묻혀버리는 여윈 시간에도
갈가리 찢긴 역사가 가르치는
아프고도 성스러운 生長을
한번도 잊은 적은 없으리
다시 높이 나는 학두루밀
바라보는 마음으로
학두루미의 피리젓대 소릴
듣는 마음으로 귀를 세워
밝아오는 발자욱 소릴 들으리.
-― 시문학 1974.4.
작고 33년 만에 간행된 시인 신석정의 유고시집. 2007년은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이며, 이 시집은 시인이 작고 한달여 전에 제목부터 차례와 발표지면까지 정리한 육필원고를 최대한 살린 것이다. 그간 전원시인, 목가시인으로만 알려져왔지만 일제부터 군사정권하까지 시대고를 고스란히 견뎌온 생활인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주는 이채로운 시편들도 함께 실렸다. 흐트러짐 없이 꼿꼿한 시정신을 바탕으로 평화와 자연스러움의 회복을 염원하는 시들, 이땅의 나무와 화초, 산과 강을 맑은 서정과 물흐르듯 유려한 리듬으로 살려낸 시들이 한데 어우러져 시인이 한국시에 남긴 발자국을 뚜렷하게 보여주고 있다.
일러두기
입춘(立春)
자책저음(自責低吟)
송뢰(松쿂)와 더불어
잔설(殘雪)
우수만 지나면
지금 내 등 뒤에서는
「218호」 소식 (1)
「218호」 소식 (2)
「218호」 소식 (3)
거북선
봄의 일부
이팝나물 옮기던 나는
봄을 닮은 얼굴
저 햇볕의 계단에서
등불
원정(園丁)의 설화(說話)
유월
유월 찬가
비둘기 울면
바람을 따라
저 하늘을 우러러 보는 뜻은
산은 숨어버리고
풍란(風蘭)
관음소심(觀音素心)이랑
입추(立秋)
신추(新秋)
난삼제(蘭三題)
마음에 지니고
난(蘭)
신화(神話)
솔바람 속에서
산길에서
추일서정(秋日抒情)
산에나 가볼거나
저녁 노을
임종
조종(弔鍾)
한 톨의 해바라기 씨알도
조카 편질 읽다가
그 정상(頂上)에서
영산홍
서글픈 이야기
외출한 마음
춘설(春雪)
동박새 오던 날
태산목 꽃 옆에서
바다의 서정
학두루미와 더불어
꽃치자
오한(惡寒)
가까이 오고 있는 날
가슴은 항상 햇빛을 동반하고
여수(旅愁)
한음(閑吟)
등고(登高)
거문고 소리 들으며
그 눈망울 찾아
난(蘭)이랑 살다 보면
기원(祈願)
내 노래하고 싶은 것은
종소리
수선화가 피더니
신서정가(新抒情歌)
전라도 찬가
우리 꿈과 생시는
춘수(春愁)
청매(靑梅) 옆에 서서
꽃사태
서향 내음이사
나비처럼
여명우조(黎明羽調)
오월이었느니라
모란
유월의 노래
서귀포에서
제주도 철쭉
제주도 바다
천지에 메아리 칠 내일을
저 푸른 언덕에 앉아서
송가 송수사(頌壽詞)
우리 이야기는
어느날
백련과 단 둘이서
석류
산자락 타고
지상의 천사
외로운 그림자
마음은 연꽃으로 밝히고
이끼 앉은 역사 속에
고향에 가서
개암사(開岩寺)에서
고향엘 갔더니
뜨락에서
산엘 가서
분향(焚香)
해설
자연과 역사를 아우른 투명한 서정의 세계 - 허소라 許素羅ㅣ 시인 · 군산대 명예교수
이 시집의 원제는 '園丁의 說話' 였으나 시대의 흐름에 시정신을 반영하고자 출판사와 유족측이 합의하여 '내 노래하고 싶은 것은'을 표제로 세웠다.
이 시집에 보이는 석정의 시세계는 그가 섭렵했던 노장 철학과 당시唐詩 등을 배경으로 하지만 그의 자연은 결코 역사와 생활을 외면한 자연이 아니다. 상황에 따라 변형되는 자연이다. 시인에게 있어 아름다움과 기쁨, 크고작은 행복들은 결코 그것 혼자만으로 이뤄지지 않을뿐더러 의미도 없다. 그의 시편은 언지나 이웃과 더불어서 엮어진다. 석정은 인간이 자연을 통해 보편적으로 소유하려는 낙원 지향의 자아를 현실 속에서 보여주는 드문 발자국을 한국시에 남긴 것이다.
신 석 정 辛 夕 汀
黎明 여명 - 백성기 작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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