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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e—cultivate—culture

영감을 일깨우는 에너지, 술

by e-bluespirit 2002. 11. 17.
하긴 술을 아예 안마시는 예술가도 많다. 특히 요즘은 더 그렇다. 계간 ‘시평’ 창간호에 게재된 ‘시의 벗들에게’란 글에서 고은 시인은 요즘 세태를 이렇게 말한다. ‘이제 시인들 가운데 술꾼이 현저하게 줄었다. 막말로 최근의 시가 가슴에서 터져나오지 않고 머리에서 짜여져 나오는 일과도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시인이 말하는 ‘가슴’과 ‘술’은 무슨 관련이 있는가. 라크루아의 ‘알코올과 예술가’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현대 시인에게는 영감이 일종의 생리적 차원의 현상이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유기체의 기계장치를 고장내야 하고, 자아를 살짝 흔들어놓아 교란을 불러일으켜야 하며, 균열을 키우고 그 흔적을 좇아야 한다. 현대 작가는 내면 깊은 곳으로부터 매몰된 기억들과 문장들이 솟아오르게 해야 한다. 그가 연료 부족에 의해 기관이 정지된 상태에 처해 있다면 신을 향해 돌아서서 기도를 올릴 희망이라곤 없다. 그보다는 새 술병을 딸 일이다’

영감이란 자아가 혼란을 겪거나 고장난 가운데서 생겨난다. 그 혼란은 곧 내가 나를 떠나게 하고, 매몰돼 있던 나를 솟아오르게 한다. 19세기 후반, 열여섯살 먹은 프랑스 시인 랭보(1854~1891)는 그런 상태를 ‘나는 타인이다’라고 표현했다. 이전의 문인들이 귀족으로부터 연금을 받으며 생활을 했던 데 반해 부르주아 계급이 돈으로 사회의 주도권을 쥔 20세기, 문인들은 가난하다. 궁핍과 지위 실추. 문인들은 술을 찾는다.

술은 시간을 잊고 현실에서 떠나게 한다. ‘나는 타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시집 ‘악의 꽃’을 낸 보들레르(1821~1867)의 ‘내게는 유용한 인간이 된다는 사실이 언제나 더없이 흉측한 것으로 보였다…끊임없이 취해야 한다’는 말은 현대문학을 이끌어온 문인들이 술 중독에 빠질 수밖에 없었던 저간의 사정을 뭉뚱그려 보여준다.

술로 인한 문인들의 기행은 그들이 내놓는 작품으로 인해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졌을 뿐 아니라 심지어 부추겨지기도 했다. 수주 변영로(1897~1961)가 쓴 수필집 ‘명정(酩酊) 40년’에는 술에 취해 옷을 모두 벗어버린 채 소를 타고 비 오는 거리를 활보하는 문인들의 모습도 보인다. 프랑스 소설가 마르그리트 뒤라스(1914~1996)는 하루 6ℓ의 포도주를 마시며 그의 명작 ‘죽음의 병’을 쓴다.

종이를 갈아끼울 때 글쓰기의 흐름이 끊길 것을 염려해 타자용지를 30여m씩 붙여 썼던 미국의 소설가 잭 케루악(1922~1969)은 술에 취해 5년 동안 무려 열두권의 소설을 쓰기도 했다. 그의 소설은 즉흥적으로 쓰여지기 때문에 판본에 따라 내용이 다른 것으로 유명하다.

시인 고은이 지적한 것처럼 요즘의 문인들은 왜 술을 덜 마시는 걸까. 라크루아는 환각제의 유행과 과학의 발달을 든다. 환각제의 등장은 알코올 중독자를 추하고 가난한 부류로 치부하게 했다. 또 과학이 알코올 중독의 신비를 밝혀냄으로써, 사회 가치와 제도를 전복하려는 기도로 여겨졌던 음주벽이 이제는 중독 이외의 어떤 의미도 띠지 못하게 된 것이다. 이 책은 술에 얽힌 예술가들의 기행보다는 작품 속의 술과 중독을 추적하는 데 많은 지면을 할애했다. 백선희 옮김. - 경향신문 윤성노 기자(2002-11-09)


알코올과 예술가
알렉상드르 라크루아 지음 / 백선희 옮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술은 작가와 예술가들과 동고동락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예술가들의 삶과 작품 속에 빈번하게 등장하는 것 가운데 하나도 바로 술. 프랑스의 젊은 소설가 알렉상드르 라크루아는 이렇게 술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작가를 통해 문학작품의 새로운 해석을 시도했다. 보들레르, 마르그리트 뒤라스, 랭보 등 세계적인 작가들의 취중백태(?)를 엿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

저자는 보들레르가 「인공낙원」을 출간하고, ‘알코올 중독’이라는 말이 처음으로 사전에 실린 1858년을 기점으로 현대문학과 이전 세대의 문학을 나누었다. 생명을 재촉할 정도로 지독하게 술에 탐닉했던 작가들, 취기의 경험을 빌려 창작했던 작가들, 알코올 중독에 빠졌다가 금주로 가는 힘겨운 여정을 걸었던 작가들의 작품이 등장한다. 그 외에도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오면서 변화된 술꾼의 위상과 취기의 양태, 술과 성, 술과 죽음의 관계를 기민하게 포착하고 있다.

취기의 경험은 예술가에게 어떤 영향을 마치는가
알렉상드르 라크루아는 예술이 절망이라는 현실 앞에서 아무런 힘이 되지 못한다는 걸 잘 알면서 침착하게 예술의 무게를 가늠해본다. 취기는, 그 신비스런 힘을 일기 전까지는, 60년대에 다른 마약들에 자리를 빼앗기기 전까지는 작가들의 삶의 양태와 문체에 영향을 끼쳤다. 의식의 모험처럼 경험되는 그것(취기)은 폭력과 성의 개념을 바꿔놓았고, 소설가와 시인들에게 수많은 테마들을 제공했다. 졸라에서 조이스, 트라클에서 케루악 또는 드보르에 이르기까지, 이 매혹적인 책은 상습성 음주와 금주, 간헐성 음주, 그리고 상습성 음주가 불러오는 자기파괴를 다루고 있다.
술의 도움을 받아 재즈연주자들처럼 즉흥적 글쓰기를 추구했던 잭 케루악은 글을 쓰고 싶어하는 사람에게 술에 취해 책상에 앉을 것을 권고했다. 만취한 다음날 아침 그림을 그리는 습관을 가졌던 프랜시스 베이컨은 보름 동안 만취와 숙취를 거듭하는 가운데 걸작을 완성했다. 마르그리트 뒤라스는 하루에 6리터의 포도주를 마셔가며 글을 쓰기도 했다. 항시 취해 살다가 잠시 짬을 내어 글을 쓴 앙투안 블롱댕은 술이 좋아 마지막 20년간을 절필했다. 이들에게 술은 인공적이고 거추장스러운 모든 것을 벗어 던지게 하고, 진부한 일상을 떠나 낙원으로 인도하는 것이었다고 하겠다. 비록 인공낙원일지언정 말이다. 그런가 하면 술에 절어 절망의 밑바닥에서 허덕이며 자기파괴의 길을 걸었던 수많은 예술가들에게 술은 또한 그들을 지옥의 나락으로 추락시킨 독이기도 했다. - '옮긴이의 말' 중에서

부어라! 마셔라! 취해라! 깨지 말고 써라!
서양의 문학사를 뒤적여보면 종이냄새 말고도 뭔가 쿱쿱한 향기가 배어 나올 때가 많다. 오랜 시간의 누룩으로 곰삭은 그 향기는 다름 아닌 알코올 찌든 냄새다. 동양의 문학도 마찬가지다. 취선이자 시선이었던 이태백은 말할 것도 없고, 깐깐해 보이는 조선의 선비들도 곧잘 술잔을 기울이며 농염한 시구를 읊곤 했다. 그렇듯 문학과 알코올은 서로의 특유한 속성을 가일층 농밀하게 숙성시키는 친족관계라 할 수 있다. 프랑스의 젊은 작가 알렉상드르 라크루아의 「알코올과 예술가」는 바로 문학 속에 배어든 알코올의 향기를 속속들이 들춰낸 책이다.
이 책은 크게 세 개의 장으로 구성돼 있다. 알렉상드르 라크루아는 작가마다 각양각색이었던 음주습관과 술을 대하는 태도, 그리고 술이 창작에 미치는 영향의 다양한 사례들을 기준으로 각각 〈알코올에 빠지다〉, 〈위반을 부르다〉, 〈인공낙원의 예술가들〉로 장을 나눴다. 첫 번째 장은 작가의 사회적 지위와 예술가라는 직업적인 특성 때문에 술과 가까이 할 수밖에 없었던 예술가들을 다루고 있다. 그들은 상습적인 음주습관으로부터 빠져 나오려고 금주를 시도하기도 하는 부류들이다. 하지만 그들은 결국 알코올의 마력으로부터 빠져 나오지 못한다. 비트소설의 선구였다는 「길 위에서」의 작가 잭 케루악이 대표적인 경우다.

케루악은 재즈의 즉흥연주에서 영향받은 자기만의 글쓰기법을 개발했는데, 그건 술에 취해 책상에 앉아 생각나는 대로 마구 타자기를 두드려대는 방식이었다. 그러기 위해선 의식을 평상적인 상태로부터 부양시켜 신체의 분방한 리듬을 오래도록 유지해야만 하는데, 그 촉매제가 바로 알코올이다. 케루악은 「길 위에서」를 쓸 때, 12피트 짜리 종이의 끝과 끝을 120피트까지 늘여 중간에 종이를 갈아 끼우는 동안 그 즉흥적인 리듬이 깨지지 않게 했다. 이쯤 되면 알코올은 단순히 기호식품을 넘어 글쓰기의 도구 자체라 해도 과장이 아닐 정도다.

시인 랭보의 경우는 취중 환각을 현실의 표층 위에 강렬하게 투사해 세계의 다른 차원을 발견해낸 경우라 할 수 있다. 이때 알코올은 숫제 작품 속의 주인공이 되어 자신의 독자적인 시점을 확보한다. ‘달이 온통 잔혹하고 해는 온통 가혹하고:/ 쓰디쓴 사랑은 취기 어린 마비상태로 날 부풀렸네./ 오 나의 용골을 터뜨리라!/ 오 날 바다로 가도록 하라!’고 거칠게 울부짖은 〈취한 배〉가 대표적인 경우라 하겠다. 그 뒤를 이은 기 드보르는 아예 “훌륭한 작품을 얻어내려면 오랜 시간 술을 마셔야만 합니다.”라고 노골적으로 말한다.

우리나라에선 다소 생소하지만, 68혁명 이후 프랑스를 중심으로 암약했던 상황주의 그룹의 리더였던 드보르는 많은 작품을 남기지는 않았지만, 특유의 단장형식의 에세이를 통해 자본주의의 허구적 시스템을 붕괴시키려했던 극렬 지식인이었다. 글쓰기에 있어 그의 정신적 스승은 17세기 프랑스 예수회 주교였던 보쉬에와 파스칼, 그리고 광기의 시인 로트레아몽(역시, 알코올과 뗄레야 뗄 수 없는 작가다)이었다. 다소 기묘하고 매치가 안 되는 이런 이상한 영향관계는 알코올중독자가 썼다고 보기엔 정통적인 엄격함과 정교함이 빛나는 드보르의 글을 읽어보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될지도 모른다. 그는 파스칼에게서 문체의 엄밀함을, 로트레아몽에게서 글쓰기의 태도를 배운 것이라 할 수 있다. 그건 그의 대표작인 「스펙타클의 사회」에 잘 나타나 있다. 그 책은 정밀한 광기가 비틀린 논리의 형태로 나타난, 과격한 자본주의 비판서다.

이들 외에도 이 책에서 다루는 예술가들의 특유한 알코올 습관은 그들의 작품 깊숙이 배어있다. 글쓴이는 19세기 이전엔 인간과 자연을 매개해주는 데 그쳤던 알코올의 영향이 현대에 들어서서는 인간 내면의 불안한 정체성과 자아와 관련된 수수께끼를 풀어줄 열쇠로 작용한다고 분석한다. 신이 없는 공허함을 달래기 위해 매일 6리터씩의 포도주를 마셨던 마르그리트 뒤라스나 술 마신 다음날 아침이면 그림을 그렸던 화가 프란시스 베이컨, 하버드에서 의학을 공부한 경험으로 알코올을 비롯, 온갖 환각제의 성분을 연구하고 그것을 작품에 그대로 사용했던 윌리엄 버로우즈 등도 빠질 수 없는 예술계의 주당이라고 할 수 있다. 창작의욕을 불지르는 알코올의 연대기. 이 책을 다 읽고 어디 조용한 술집에 홀로 앉아 묵상에 잠겨 보라. 그대는 그 순간 초유의 시를 한 편 쓰거나, 적어도 그와 유사한 상상의 지평으로 자신이 옮아간다고 느낄 지도 모른다. 물론, 술 깬 다음날은 여전히 지리멸렬한 일상 속의 어떤 사무실 의자 위에서 부대끼게 될 테지만. 수시로 화장실을 들락거리면서. (강정 igguas@libro.co.kr/리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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