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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irit/e—echo—bluespirit

자유인의 길 - 대행스님

by e-bluespirit 2006. 9. 17.

 

 

 

 

 

 

 

 

자유인의 길

 

대행스님 법어집

 

 

 

"한마음 넓게 써서 세세생생 자유롭게 살아라!"

 


창살 없는 감옥에서 살 것인가, 어엿한 대자유인으로 살 것인가? 아무리 끌어다 써도 다함없는 에너지의 원천이 우리 자신 안에 있음을 가리켜 보이는 대행스님의 '한마음법'이 마침내 우리에게 자유의 열쇠를 쥐어 준다!

 

이 세상 모든 생명의 마음은 하나이다. 너와 나의 구별이 없다. 우주 전체는 근본 마음, 인간의 근본 마음과 직결되어 있다. 우주 삼천대천세계는 그냥 하나로 통해서 벽도 없고 천장도 없다. 일체 제불의 법이 곧 내 한마음의 법이며 생활이다. 禪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우리가 살아 나가면서 '나'라는 상을 세우지 않고 모든 것을 주인공主人空에 맡겨놓고 마음이 흔들리지 않으면 그것이 참선이다!

 


대행大行 스님


1926년 이 땅에 몸 받아 태어난 스님은 '나는 누구이며 어디로 와서 어디로 가는가?'라는 큰 물음표 하나를 품고, 보이지 않는 내면의 이끎에 따라 구도의 길에 나섰다.


어느 날 갑자기 가슴 속에서 '죽어야 너를 보리라'는 소리를 듣고 그것을 화두 삼아 참구하던 중 '참 자기인 주인공과 내가 둘이 아니라는' 것에 눈떴다. 일체가 둘이 아니요, 나와 만물 만생이, 그리고 우주의 근본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10여 년 간의 산중 수행을 통해 궁극의 도리를 깨친 스님은 중생 교화에 뜻을 두어 1972년 한마음선원을 세웠으며, 2006년 현재 15개 국내 지원, 미국과 독일 등 7개 해외 지원을 통로로 삼아 '자기 안의 부처를 깨달아 참자유인이 되는 길'을 가리켜 보이고 있다.

 

 

 

 

자유인

                 우리가 살아간다는 것은 생각해 보면 참으로 신비합니다. 매일같이 대수롭지 않게

                 해치우는 일들도 곰곰 생각해 보면 그것이 대수롭지 않은 것만도 아니라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먹고, 잠자고, 일하고, 기뻐하고, 슬퍼하고, 두려워하고, 화내는 등등의

                 일을 매일같이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여러 가지를 각각 다른 내(我)가

                 있어서 하나씩 맡아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먹는 내가 따로 있고, 잠자는 내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먹을 때의 나도 나요, 잠잘 때의 나도 여전히 나라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여러 면모를 지닌 것이 사람입니다. 화를 벌컥 냈다가도 얼마 시간이 지나면

                 가라앉게 되는데, 그 사이에는 어떤 이음새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화를

                 낼 때의 나는 어떤 나이고, 그 화가 가라앉았을 때의 나는 어떤 나이겠습니까 ?

                 그 두 개의 내가 정녕 다른 나이겠습니까 ?


                 한 사람의 남자가 아내와 이야기할 때는 누가 뭐라 할 것도 없이 남편이 됩니다.

                 자녀들과 같이 놀 때에는 아버지가 되고, 부모님 앞에서는 아들이 되며, 직장에

                 나가면 직장인이 되고, 음식점에 가서는 손님이 되고, 버스나 지하철을 탈 때는

                 승객이 됩니다. 그런데 꼭 그렇게 하려고 의식해서가 아니라 그냥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말씨만 보더라도 아내에게는 무시로 '여보'라든가 '당신'하며 말을

                 하는데, 부모님께는 자연히 공대하게 되고, 자녀들 앞에서는 말 한마디에도

                 사랑과 권위가 깃들이게 되지요.


                 이런 것이 살아간다는 것의 신비 중의 하나가 아닐까요 ? 무정물(無情物)들에게는

                 그런 능력이 없습니다. 사람도 일단 죽게 되면 그런 능력이 없어지는데

                 (적어도 육신으로는) 그러므로 살아있다는 이 사실은 신비스럽고 소중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여러 가지 모습과 생각으로 바뀌어 가면서도 일관되게 하나의

                 인격이 유지됩니다. 세 살 때의 나와 서른 살이 된 지금의 나는 사실 아주 딴

                 사람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그러면서도 세 살 때의 김 아무개와

                 서른 살이 된 김 아무개 사이에는 근본적으로 달라지지 아니한 어떤 것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남편 일 때의 나와 아버지일 때의 나, 아들일 때의 나, 승객일 때의

                 나는 같은 나입니다. 화낼 때의 나도 나요, 기뻐할 때의 나도 나이며, 잠잘 때의

                 나도 나입니다.


                 이렇게 여러 모습이면서도 결국은 하나요, 하나이면서도 여러 모습인

                 이 신비스러움은 쪼개고 쪼개어 보아도 밝혀지지 않을 것입니다. 나무를 쪼개어

                 보아도 그 나무그루 속에서 잎이나 꽃, 열매는 발견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나무는

                 쪼개어 지면서 죽어 버립니다. 그렇지만 그 나무에 물을 주고 잘 가꾸게 되면

                 그 속에서 움이 터 나와 꽃이 피고 열매를 맺게 됩니다. 이와 같이 살아있는 인간

                 생명의 신비는 쪼개어질 수도 없고 쪼개어져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내가 분명히 있기는 있습니다. 그런데 나는 남편도 되었다가,

                 아버지도 되었다가, 아들도 되었다가, 조카도 되었다가, 회사원도 되고, 승객도

                 됩니다. 그러니 어떤 내가 진정한 '나'이겠습니까. 이것인가 싶으면 벌써 마음은

                 딴 데로 가 버리고, 한 순간을 꼭 붙들려고 해도 붙들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찰나찰나 변해가는 것이 세상이치인가 합니다. 따지고 보면 살아간다는

                 말은 변해간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변해간다는 것은 일 년 단위로 변하는 것도

                 아니고, 한 달 단위로 변하는 것도 아니며 하루, 한 시간 단위로 변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야말로 찰나찰나 변해갑니다. 엄밀하게 따지고 보면 지금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는 이 순간에도 세포들은 연방 죽어가기도 하고. 연방 다시

                 태어나기도 하니까 말입니다. 생물학적으로도 그렇거니와 우리의 마음 또한 쉴 새

                 없이 옮겨가고 변화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변화는 비단 나 한 사람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온 세상이 다 그러하기 때문에 세상 모두가 찰나찰나 변하고

                 있다고 밖에는 말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가장 쉽고 단순하게 일체 모든 안팍의 경계를 다 주인공 그에게 쓱

                 밀어놓아 버리십시오. 왜 그 수많은 경계와 싸우느라고 심신이 곤고해야 한단

                 말입니까. '나'라는 생각이 나서서 오늘 닥치는 일, 어제 지난간 일, 내일 닥쳐올 일을

                 일일이 걱정하고, 준비하느라고 하릴없이 괴로운 것이 인생입니다.


                 나는 워낙 그렇게 살아와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만, 누구에게 칭찬을 듣고

                 싶지도 않고, 비난을 받는다고 해도 별로 대수롭게 여기지 않습니다. 누가 수억만

                 금을 갖다 준다고 해도 사람에게 있는 제몫 제가 찾는 것이라고 생각할 뿐이며,

                 그것 또한 이내 다른 곳으로 흘러가 버리기 때문에 나는 하나의 일시적인

                 관리자요, 교통정리를 해 주는 사람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감사한 마음, 대견한 마음 같은 것이 일어날 때는 너무나 진하고 진합니다.

                 그냥 가볍게 지나치는 그런 마음이 아닙니다. 나는 가끔씩 나 스스로 나에게

                 감사하기도 하고. 또 나 스스로 내가 대견스러워 빙그레 웃기도 한 일이

                 있었습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그 누구보다도 내가 바로 나의 벗이요, 나의

                 스승이며, 나의 위로자요, 격려자인 것입니다.


                 여러분들께서도 모두 흔쾌하고, 여유롭게 사시기 바랍니다. 혼자서만이 아니라

                 주위의 모든 사람들과 더불어 기쁘게 사시기 바랍니다. 불법은 세상 모든 사람들이

                 함께 보람된 삶을 살수 있는 거대한 가르침이며, 우리들은 그런 가르침을

                 받들어서 어두운 이 세상을 밝힐 막중한 의무와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생활 속에 깨달음 있더라

 

[현대불교] 2006년 05월 14일(일) 오전 09:24

 

 

 

‘삶이 외롭고 괴로운 것은 팔자운명 때문이 아니다. 부처님 법, 마음 법에는 본래 팔자 운명이 없다. 없는데도 내가 짓고 만들어서 팔자니 운명이니 이름붙인 것이다. 마음이 어둡기 때문에 삶이 어둡고, 마음이 넉넉지 못하기 때문에 삶이 괴로운 것이다. 마음의 본바탕을 잃고 다만 찰나에 일어났다가 꺼지고 꺼졌다가 일어나는 내 상념의 먹구름을 내 마음인줄 알고 사니까 어둡고 편협해지는 것이다.’1972년 경기도 안양에 조계종 한마음선원을 세우고 현재 국내 15개 지원과 미국 독일 캐나다 아르헨티나등 7개 해외지원을 통해 참자유인이 되는 길을 가리켜 보이고 있는 대행 스님(한마음선원 원장).

스님은 “마음의 본바탕이 허공처럼 툭 틔어 있는데 그런 마음에 금을 긋고 벽을 쌓아 올리는 것이 중생의 모습”이라고 설한다. 그래서 스님은 “마음도리를 모르니 무명”이라고 밝힌다. 즉 “마음은 그 본성이 푸른 하늘과 같아서 맑고 깨끗하다. 그런데 사람들은 스스로 장막을 만들어 저 맑은 거울을, 저 푸른 하늘을 가려놓고 산다. 그러면서 어둡다고, 괴롭다고 한다”고. 스님은 “나를 움직이고 우주를 움직이는 한마음 주인공(주인공)에게 모든 것을 맡기라. 그것만이 마음을 비우는 작업이요, 억겁 전부터 짊어지고 온 짐을 내려놓고, 마음을 비우고, 때를 씻는 작업”이라고 가르친다.

이 것이 바로 대행 스님이 설파하는 한마음의 진리이다.

스님은 불자는 물론 자신의 삶의 주인공이 되지 못하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들에게 조용히 얘기한다. “내가 바로 화두요, 내 삶이 참선”이라며 “한마음 넓게 써서 세세생생 자유롭게 살아라”라고.

스님은 “이 세상 모든 생명의 마음은 하나이다. 너와 나의 구별이 없다. 우주 전체는 인간의 근본마음과 직결되어 있다. 우주 삼천대천세계는 그냥 하나로 통해서 벽도 천장도 없다”고 말한다. 즉 “일체 제불의 마음이 곧 한마음이고 일체제불의 법이 곧 한마음의 법이며 생활이다. 선이 따로 있는게 아니다. 우리가 살아 나가면서 ‘나’라는 상을 세우지 않고 모든 것을 주인공에 맡겨놓고 마음이 흔들리지 않으면 그것이 참선”이라고 설명한다.

따뜻하지만 천둥같은 큰 울림을 지닌 글들로 채워진 <禪, 침묵의 천둥소리>(전 2권)는 1994년 현대불교신문을 창간해 사장을 맡아온 뒤 현재 국제신문 대표이사인 김광삼 사장(필명 김시행)이 대행 스님의 말씀을 바탕으로 5년여에 걸쳐 써온 불법 이야기.

이 책은 평생 언론인으로 한길을 걸어온 저자가 스승인 대행 스님의 법문중에서 가려뽑아 인용해가면서 쓴 글이다. 그래서 책의 내용을 보면 속세의 이야기와 스님의 가르침이 혼합되어 있다. 생활속의 법문인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대행 스님의 사상을 대표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깨달음의 보고”라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아무리 끌어다 써도 다함없는 에너지의 원천이 우리 자신안에 있음을 가리켜 보이는 대행 스님의 ‘한마음법’이 마침내 우리에게 자유의 열쇠를 쥐어준다”고 강조한다.

<禪, 침묵의 천둥소리>에는 자기 삶을 자신있게 요리 할 수 있는 ‘주인공’ 사상이 기본으로 깔려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주인공은 나와 일체만유의 주인이자 근원인 영원한 생명의 실상이며, 자기의 실상이다. 목마르면 물마시듯이, 자고 먹고 싶으면 먹듯이, 그렇게 일체를 주인공이 길잡이를 하고 있다는 것. 그런만큼 죽고 사는 문제등 일체를 주인공에 맡겨야만 자기 삶의 어엿한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것이 대행 스님의 천둥같은 가르침이다.

이 책은 또 언제 어디서나 바로 우리들 주머니안에 들어있는 보물을 외면하고 모르는 척하는 뿌리깊은 노예의 모습에서 우리를 벗어나게 해준다. 이 책에 흐르고 있는 반가운 소식같은 글귀는 방황하는 사람들에게 삶의 교과서가 될 것이다.

禪, 침묵의 천둥소리 1·2 김시행지음 김영사

 

 

 

 

 

주인공, 그대는 누구인가?
지금 이 순간의 나를 깨우치는 대행스님의 큰 말씀


“놓으면 자유요, 집착함은 노예이다. 왜 노예로 살려 하는가!”
자신 안의 불성을 발현시켜 한 많은 노예 생활을 청산하라!
자기 삶의 어엿한 주인이 되는 길을 안내하는 대행스님의 천둥 같은 가르침!


 

 

 

 

 

 

 

 

 

http://www.hanmaum.org/

http://myhome.naver.com/smd1234/daehaeng2.html

http://www.gimmyoung.com/bookinfo/t_info.html?number=1575

http://kr.news.yahoo.com/service/news/shellview.htm?linkid=13&articleid=2006051409240014162&newssetid=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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