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에서 바라보는 경치가 유별나서 관동팔경인가. 아니면 이곳을 품에 안은 풍경이 아름다워 관동팔경이런가. 아무려나. 자연 속에서 진리를 궁구하고 그곳에서 노닐고 숨쉰 선인의 정취가 있으니, 시절이 달라진 지금도 관동팔경은 엄연한 아름다움을 자랑하며 세속의 범인을 손짓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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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산요수(樂山樂水). 어진 이는 산을 좋아하고, 지혜로운 이는 물을 좋아한다 했던가. 이것은 달리 말해 산처럼 크고 변하지 않아야 인자(仁者)라 할 수 있고, 물처럼 유유하고 막힘이 없어야 지자(智者)라 할 수 있음이렷다. 산과 물은 자연에 다름 아니고, 자연은 스스로 그러한 것이니, 오랜 옛날부터 사람은 그런 자연의 이치를 지고한 가치로 여겨왔다. 하여 자연 속에서 자연을 읊고, 그것과의 어울림을 이루는 일이 단지 신세 편한 음풍농월이나 안빈낙도에 머무는 것은 아니었다. 자연에 들어 자연을 닮고자 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옛 선인들의 도(道)였던 셈이다. 흔히 옛 사람들은 그 고장의 대표적인 자연경관을 꼽을 때 ‘8경’이란 말을 즐겨 썼다. 과거 조선에 팔도가 있었고, 사람의 평생 운수를 팔자라 하였으며, 재주 높은 이를 일러 팔방미인이라 했으니, 8이라는 숫자는 단지 ‘여덟 개’를 이르는 말이라기보다는 ‘전체’ 또는 어떤 것의 ‘으뜸’, ‘정수’를 일컫는 말이었다. 그리하여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관동팔경’은 관동 풍경의 진수이며, 우리네 풍경미학과 전통정신이 면면이 스민 유서 깊은 자연유산이라 할 수 있다. 보통 관동팔경은 통천의 총석정(叢石亭), 고성의 삼일포(三日浦), 간성의 청간정(淸澗亭), 양양의 낙산사(洛山寺), 강릉의 경포대(鏡浦臺), 삼척의 죽서루(竹西樓), 울진의 망양정(望洋亭), 평해(平海)의 월송정(越松亭)을 꼽는데, 이 중 고성 삼일포와 통천 총석정은 북한에 들어 있고, 월송정은 경북 땅으로 편입된 상태다. 남한 땅에 있는 관동팔경 중 가장 북쪽에 위치한 곳은 청간정이다. 고성군 토성면 청간리에 있는 청간정은 1520년에 고쳐 지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그 이전부터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지금의 것은 1981년에 복원한 것이다. 예부터 청간정에서 바라보는 해돋이와 달 뜬 풍경은 너무나 아름다워 낙산사 의상대와 더불어 관동팔경 중 으뜸으로 쳤다. 양양 낙산사의 의상대는 송강 선생이 <관동별곡>에서 “여러 마리 용이 해를 떠받친 듯, 온 세상이 흔들리는 듯”이란 표현으로 강렬하게 해돋이를 노래했다. 본래 낙산사 의상대는 낙산사를 창건한 의상대사를 기리기 위해 대사가 좌선을 하던 곳에 지은 것이다. 해안에 자리하고 있는 탓에 1936년 태풍으로 무너져 다시 세웠으며, 지금은 해돋이 전망대 노릇을 하고 있다. 강릉의 경포대는 송강 선생이 <관동별곡>에서 “이보다 아름다운 경치가 또 어디 있겠는가?”며 명승지로서 관동팔경 중에 으뜸으로 꼽은 곳이다. 경포호를 낀 산자락에 자리해 있으며, 본래 고려 때 다른 곳에 있던 것을 조선 중종 때 지금의 위치로 옮겨왔다. 이곳은 율곡 이이가 오죽헌에서 보낸 어린 시절에 자주 들러 경치를 즐기고 시를 지었다고 하며, 달이 뜨면 하늘과 바다, 경포호와 술잔에 모두 네 개의 달이 뜬다는 오랜 풍경미학과 시정이 서린 곳이다. 삼척의 죽서루는 관동제일루(關東第一樓)라 불리는 곳이다. 죽서루 현판 기록에는 관동팔경을 유람함에 죽서루가 제일이라 표현하고 있다. 죽서루에는 두타거사 이승휴가 지은 시도 현판에 새겨져 전해오고 있으며, 숙종과 정조, 율곡 이이가 읊은 시도 전해오고 있다. 죽서루는 경치가 좋은 절벽에 바위를 기초로 삼아 세워졌는데 모두 17개의 기둥 가운데 9개의 기둥이 바위 위에 세워져 있으며, 17개의 기둥이 모두 길이가 다른 점이 특이하다. “바다 밖은 하늘인데, 하늘 밖은 무엇인가?” 이는 송강 선생이 망양정에 올라 읊은 구절이다. 송강이 찾았던 망양정은 본래 평해해수욕장이 있는 망양리에 있었으나, 1858년 좀더 북쪽인 울진 근남면 산포리로 자리를 옮겨 지금에 이르고 있다. 월송정은 관동팔경 가운데 가장 남쪽에 자리한 경승지로, 조선시대 성종은 화공이 그려 올린 평해 월송정과 주변 경치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지금의 정자는 1980년 새롭게 복원한 것으로, 가까이 구산해수욕장을 굽어보고 있다. 북쪽에 자리한 총석정과 삼일포는 각각 해금강과 외금강에 드는 명승지로서 <관동별곡> 이외에도 여러 시가(詩歌)에 등장할 정도로 그 경치를 자랑하는 곳이지만, 아쉽게도 지금은 우리 곁에 있지 않다. 이미 고려 때부터 널리 전해진 관동팔경은 이제 우리에게는 절경지로서의 무대이기보다는 정서적인 시정의 무대로 친숙하다. 신성한 자연의 숲, 자연의 바다에서 옛 사람들은 자연의 신성성을 노래하고 경외감을 표현함으로써 자연에 고개를 숙였다. 요즘 사람들처럼 자연을 지배와 개발의 대상으로 여겼다면 애당초 관동팔경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여 우리네 관동팔경 속에는 자연을 흠모하는 정신과 자연으로부터 배워야 할 세상의 이치가 구구절절 배어있는 것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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