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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e—dialect—dialog

금강산, 지상에서 바라본 천상

by e-bluespirit 2007. 2. 24.

 

 

 

 

 

 

 

금강산, 지상에서 바라본 천상

 

강 승 태 (대학/일반부)

 

 

 

 

백 척 붉은 바위 계수나무 아래 암자가 있어

사립문을 오랫동안 사람에게 열지 않았소.

오늘 아침 우연히 시선께서 지나는 것을 보고

학 불러 암자를 보이게 하고 시 한 수를 청하오.<스님>

우뚝우뚝 뾰족뾰족 기기괴괴한 가운데

인선(人仙)과 신불(神佛)이 함께 엉겼소.

평생 금강산 위해 시를 아껴 왔지만

금강산에 이르고 보니 감히 시를 지을 수가 없소. <김삿갓>

 

 

 

 

금강산 만물상,망양대

 

 

 

노자(老子)는 도(道)를 인간의 언어로서 정의내리면, 그것은 이미 도(道)가 아니라고 하였다. 세상에 존재하는 많은 사물들은 사람의 말로 정의내리는 순간 그 본연의 가치를 상실하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태고부터 작은 몸짓조차 조심스러워하며 그 곳 그 자리에 묵묵히 존재해왔던 금강산 역시 ‘웅장하다’, ‘장엄하다’, ‘화려하다’라는 말로 정의를 내리는 순간 인간의 사고와 상상력의 틀 안에 갇혀지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본다. 김삿갓이 금강산을 보고 난 느낌을 시로 표현해달라는 스님의 요청에 ‘금강산에 이르고 보니 감히 시를 지을 수가 없다’라는 시구로 표현을 대신한 것은 금강산에 대해 인간의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최상의 것이었으리라.

 

 

 

 

 

2006년 1월 3일부터 5일까지 2박3일간 금강산 여행을 가게 되었다. 신년 벽두부터 기대하는 마음으로 등산화와 방한복을 준비하고 필요한 소지품을 챙겨두었다. 남쪽의 많은 사람들이 다녀온 곳이라 새로울 것도 없다 하지만, 태어나서 처음으로 밟게 되는 북한 땅인지라 조금은 긴장도 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 가운데 새해 첫날 우연한 기회로 시청하게 된 KBS 스페셜 「금강산」은 여행을 앞둔 나에게 가장 필요하고 유익한 사전 정보 제공자의 역할을 해주었다. 참으로 ‘시의(時宜)가 적절하다’라는 말은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KBS 스페셜「금강산」은 시간과 공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무쌍한 금강산의 모습을 잔잔한 나레이터의 음성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금강산 곳곳의 절경을 조금은 진부하다 싶은 표현으로 설명하는 나레이터는 이미 이 프로그램과 분리될 수 없는 일체감마저 느끼게 한다. 나레이터의 음성과 함께 시청자는 마치 자신이 그 시간 바로 그 곳에 존재하는 듯한 느낌을 가지고 금강산의 곳곳을 구경하게 된다. 시청자는 화자, 즉 나레이터를 TV라는 시각적 매체에서 울려나오는 음성으로 인식하지 않고 여행에 있어서의 친절한 안내자이자 친구로 여기게 된다. 화자와 시청자의 이분법은 KBS 스페셜 「금강산」에서는 더 이상 성립하지 않는 공식이 된다. KBS 스페셜 「금강산」을 일 년 만에 다시 시청하며 일정 부분을 눈을 감고 나레이터의 음성만을 들었다. 그것은 나에게 영상만으로 전달해 줄 수 없는 또 다른 금강산의 묘미를 전해주고 있었다. 나는 눈으로 직접 보는 금강산보다 더 아름답고 신비한 금강산의 절경을 마음속에 새기고 있었다.

 

 

 

 

 

 

KBS 스페셜 「금강산」의 묘미는 바로 정지된 화면 속에 움직이는 영상을 담은 촬영기법의 묘미라 생각된다. 카메라에 담겨진 화상은 답답하리만치 정지되어 있다. 안정적인 구도 속에 담겨있는 금강산의 이름 모를 잡초, 야생화, 폭포수, 다람쥐는 그 모습 그대로 박제가 된 듯하다. 하지만 그 영상들에 담겨 있는 각각의 사물들은 그 자체로 각자의 독립적인 생활 영역을 가진 독자적 생명체이다. 정지된 화면 속에 흔들리는 꽃잎들과 흘러가는 구름, 바람에 나부끼는 나뭇가지 들은 시청자들을 정지된 화면 속에 가두지 않고, 새로운 생명에 대한 경외감과 신비로움을 느끼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고정된 화면 속에서 엷은 몸짓으로 흔들리는 이름 모를 꽃잎 따라 나의 마음도 잔잔한 여운을 남기며 흔들린다. 금강산 정상부근을 유유자적하며 지나는 구름을 따라 나의 마음도 한결 여유로워진다. 금강산 자락의 메마른 나뭇가지를 보며 앞으로 돋아날 새 순을 기대하며 희망에 부풀게 된다. 정지된 영상 속의 생명체들은 삶에 대한 열정과 몸부림을 그대로 나에게 전해주고 있었다.

또한 KBS 스페셜 「금강산」에서는 지금까지 일반적으로 생각해오던 금강산의 아름다움과는 다른 독특한 미의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선과 면과 부피로 이루어진 3차원의 세계에 ‘시간’이라는 새로운 차원의 미적 요소를 영상에 담아내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나레이션을 통해 더욱 극명하게 표현된다.

 

“산은 바라보는 시점과 위치에 따라 각각 다른 느낌과 깊이를 준다. 이것이 산의 매력이고 우리가 산을 오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해가 온정역으로 사라지면 금강산은 본래의 색이 없어지고 또 다른 아름다움을 연출한다. 그것은 하늘과 산의 어두움의 차이로 더욱 선명해진다.”

어느 선승의 이야기처럼 산은 단지 산일뿐이다. 단지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과 관점의 차이에 따라 느낌이 달라질 뿐이다. 해가 질 어슴푸레한 저녁 무렵 금강산을 바라보게 되면 그것을 질량과 부피를 가진 입체적인 존재로 느끼기 보다는 도화지에 그려진 아름다운 그림처럼 평면적인 아름다움을 깨닫게 된다. 어릴 적 초등학생 때 음악시간에 배운 노래가 생각난다.

 

“금강산 찾아가자 일 만 이 천봉, 볼수록 아름답고 신비하구나.”

나는 금강산 사진조차 보지 못한 채 선생님의 반주에 맞추어 그 노래를 따라 불렀다. 성인이 되고 남북 분단의 현실과 통일의 당위성을 깨달은 현 시점에 바라본 금강산은 초등학생때 느꼈던 금강산의 이미지와 무엇이 달라졌는가? 금강산은 여전하지만 시간의 흐름에 따라 금강산을 향한 내 마음은 통일을 향한 소망과 어우러져 더욱 복잡한 심경을 가져오게 되었다.

 

KBS 스페셜 「금강산」을 보며 금강산의 아름다운 영상에 빠져들 무렵, 화면은 동해선 남북출입사무소 건물을 보여준다. 나에게는 한창 단꿈에 젖어들 무렵 출근 준비를 재촉하는 아내의 목소리처럼 꿈과 이상을 현실로 바꾸는 순간처럼 느껴졌다. 그 화면과 함께 나래이션은 “그러나 금강산을 가기 위해 관광객들이 거쳐야 하는 절차는 여느 국제공항 출국장의 것과 별로 다를 것이 없었다.”라는 말로 시청자의 마음을 더욱 냉혹한 현실 속으로 눈을 뜨게 만든다. 그렇다. 현실에서 우리가 금강산을 갈 수 있는 길은 외국 여행의 그것과 같은 절차였던 것이다. 이상 속에서 바라본 금강산, 백두대간의 중심이며 한반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명산 금강산은 우리 마음대로 자유롭게 여행할 수 없는 이념의 벽이 가로막힌 공간임을 새삼 깨닫게 된 것이다. 김정일과 함께 이미 고인이 된 정주영, 정몽헌 회장이 함께 손을 맞잡고 찍은 사진을 보며 감히 세월의 무상함과 덧없음을 느껴보았다. 정치와 이념을 초월한 민족애로 남북경협사업을 주도하였던 두 경제인의 노력과 수고가 부디 헛되지 않기를 두 손 모아 기원하였다. 그리고 앞으로 금강산을 생각할 때마다 이념과 이데올로기에 파묻힌 허상속의 금강산이 아닌, 산 자체의 아름다움만으로도 우리 민족의 가슴을 뿌듯하게 만들 그 날이 속히 오기를 진심으로 희망한다.

 

또한 KBS 스페셜 「금강산」은 촬영에 있어서의 노고와 수고로움을 시청자에게 그대로 전해주기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것은 ‘나 이만큼 고생하며 찍었소.’라고 하는 자기 과시가 아니다. 앞에서 언급한 이념과 분단의 장벽, 그리고 작은 것 하나까지 북한의 허가에 의해 촬영할 수 없다는 현실 자체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북한 당국의 허가가 없어 더 이상 촬영하기 어려운 현실을 담담한 어조로 말해주는 나레이션은 남북분단의 장벽에 가로막힌 금강산의 현실을 그대로 시청자에게 전해주고 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직시해야 할 금강산의 현실이며, 바로 우리가 해결해야 할 숙제이기도 한 것이다.

 

KBS 스페셜 「금강산」은 종반부로 접어들면서 외금강 가을의 극치인 만물상 경치를 보여주고 있다. 만물상은 말 그대로 형형색색으로 조화를 이룬 바위들을 통해 세상 만물들의 모습을 자유롭게 상상하며 감상할 수 있는 웅장한 바위덩어리들을 일컫는 말이다. 참으로 만물상을 보지 않고서는 금강산을 보았다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그 아름다움이 천하제일이다. 이 만물상을 소개하면서 역시나 빠질 수 없는 부분이 금강산 안내원의 만물상 소개와 아름다움을 찬양하는 인터뷰이다. 남한 사람이나 북한 사람이나 ‘아름다움’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 차이는 크게 다르지 않음을 느끼게 해 주는 부분이다. 깨끗한 백지와 같이 순수한 모습으로 태어난 사람들이, 이념과 사상의 굴레를 통해 전혀 다른 가치관과 삶의 방식을 가지게 된다는 사실이 참으로 안타깝게 느껴졌다. 금강산을 칭송하는 북한 안내원의 인터뷰를 들으면서도 내내 그들의 순수함을 의심하고, 기계화된 인간의 모습을 보게 되는 나는 이미 순수함을 잃어버린 성인의 모습과 전혀 다를 바 없었다.

 

 

KBS 스페셜 「금강산」을 시청하면서 나는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람의 일생은 길어야 백 년을 살기 어렵다. 그러나 금강산은 태고부터 그 곳 그 자리에 엄청난 생명력을 간직한 채 백두대간을 지키고 있다. 백 년을 채 살지 못하는 짧은 인생들이 이제는 금강산에 이념의 굴레마저 덧씌우려 하는 것이다. KBS 스페셜 「금강산」이 우리에게 주고자 하는 메시지도 바로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이 세상에는 사람의 생각을 초월하는 아름다움, 영원성, 그리고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숭고한 생명에 대한 가치가 있다고 말이다.

 

 

 

 

 

 

 

KBS 스페셜 「금강산」을 보면서 56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너무나 많은 내용을 담으려는 제작자의 욕심이 있지 않았는지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 좀 더 여유가 있었다면 간단하게 언급하고 넘어갈 수밖에 없었던 금강산의 4계를 연속기획으로 나누어 좀 더 자세히 시청자들에게 전달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여러 행정적인 절차의 어려움과, 촬영의 난고를 극복하고 새해 첫 날 가장 좋은 프로그램을 시청자에게 선물하고자 한 관계자분들의 노고에 감사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신라의 승려 의상은 화엄사상을 설명한 법성게(法性偈)에서 이렇게 말하였다.

 

하나 속에 모든 것이 있고

많은 것 속에 하나가 있으니

하나가 곧 모든 것이고

많은 그것이 곧 하나를 이룬다.

(一中一切多中一 一卽一切多卽一)

 

금강산을 이루는 수많은 생명체들, 비록 말을 할 수 없고 움직임이 둔한 듯 보일지라도 작은 풀 한포기와 돌멩이 하나마저 생명을 향한 자신만의 몸짓으로 삶의 에너지를 발산하고 있다. 그것들은 서로 조화와 공존하는 모습을 통해 남북과 이념으로 갈라진 우리 민족이 나아가야 할 길을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조화와 공존’을 도덕교과서 속에만 존재하는 단어로 가두지 말고 남북한이 실질적으로 하나 되려는 노력을 더욱 성실히 기울인다면 남북통일도 그리 먼 훗날의 이야기만은 아닐 것이다. 1400km 백두대간의 중심에 서 있는 금강산, 그 금강산을 자유롭게 왕래하며 이념의 굴레를 벗게 되는 순간, 한반도 호랑이는 커다란 용틀임과 함께 비상의 날개를 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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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od sent me an Angel

by Ernesto Cortaza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