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나는 우연히 그곳을 지나게 되었다 눈은 퍼부었고 거리는 캄캄했다 움직이지 못하는 건물들은 눈을 뒤집어쓰고 희고 거대한 서류뭉치로 변해갔다 무슨 관공서였는데 희미한 불빛이 새어나왔다 유리창 너머 한 사내가 보였다 그 춥고 큰 방에서 書記는 혼자 울고 있었다! 눈은 퍼부었고 내 뒤에는 아무도 없었다 침묵을 달아나지 못하게 하느라 나는 거의 고통스러웠다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중지시킬 수 없었다 나는 그가 울음을 그칠 때까지 창밖에서 떠나지 못했다 그리고 나는 우연히 지금 그를 떠올리게 되었다 밤은 깊고 텅빈 사무실 창밖으로 눈이 퍼붓는다 나는 그 사내를 어리석은 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기형도 - 기억할 만한 지나침 기형도 60년 2월 16일(음력):양력으로는 3월13일, 경기도 연평리 392번지 에서 출생. 3남 4녀 중 막내. 73년 3월:---신림중학교 입학. 3년 내내 최상위권의 성적을 유지. 75년 5월 16일: 바로 위 누이인 순도가 죽음. 어린 날의 친구이자 보호자였던 누이의 죽음에 의한 충격으로 교회를 나가지 않다. 가해자가 같은 교인이었던 까닭이다. 형제들은 교회를 나가지 않거나 무채색 옷을 입음으로써, 방황으로 각각 그 슬픔을 삭였다.(기애도) 기형도는 내게 몇 가지 쉬운 노래를 무슨 비파트를, 내게는 멜로디 나 테너 파트를 맡겼다 . 그것이 2인의 척탄병이며 트윈 폴리오의 곡들이다. 우린 그 노래들을 불러댔다. 지나 가는 사람들이 우리를 미친놈인 양 바라보는 것이 즐거웠다. 이 노래들은 물론 술자리에서도 제창되었다. 이런 순례는 그의 귀가 길, 버스 정류장에서 들길을 지나 집까지 걷는 길과 무관할수 없을 것이다..(성석제) 79년 2월: --- 중앙고등학교 졸업. 79년 3월: --- 연세대 정법대 정법계열 입학 10월 26일:--10.26 사태로 박정희 대통령 죽음. 계엄군 진주. 80년 5월:--15일을 전후하여 시내 시위에 가담. 휴교령 내림. 제주도를 제외 한 전국에 계엄령 선포. 광주사태. 80년 9월:--개교. 중이염으로 통원 치료. 한쪽 귀가 잘 안 들리게 됨. 이때의 경험을 토대로 소설 [미로]를 씀. 81년 3월:-- 병역 관계로 휴학. 대구, 부산 등지로 여행. 7월:-- 방위 소집되어 안양 인근 부대에서 근무. 안양의 문학 동인인 '수리'에 참여, 동인지에 [사강리]등 발표. 시작에 몰두, 초기작의 대부분을 이때에 쓰고 습작을 정리하다. 82년 6월:-- 전역. 83년 3월:-- 3학년 1학기로 복학. 전자오락, 속칭 '뿅뿅'인 갤러그 게임에 빠졌다. 학교에서 우리 집(영등포구 신길동)까지 걸어오면서 문이 열린 전자오락실 은 대부분 들어가보았다.(이성겸) 83년 12월:--교내 신문인 [연세춘추]에서 제정, 시상하는 '윤동주 문학상'에 시 [식목제]로 당선. 신춘문예에 관심을 돌려 최종심에 오르내리다 84년 10월:-- [중앙일보] 입사. 85년 1월:--[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안개]로 당선. 2월: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졸업. 신문사서는 수습 후 정치부로 배속. 86년:--문화부로 자리 옮김. 지속적으로 작품 발표 88년:-여름 대구, 전남 등지로 홀로 여행([짧은 여행의 기록]), 문화부에서 편집부로 옮기다. 나는 그 당시 [중앙일보]가 새로 창간한 [중앙경제신문]에 가 있었고, 그는 나 대신 방송평을 쓰다가 편집부로 가 있었다. 그가 세상을 뜨기 전날인 3월 6일, 나는 그와 앉아서 늘 하던 버릇대로 잡담을 늘어놓지 못했다. 그를 보기는 보았으나, 블라인드가 쳐진 창 문 앞에선 내 눈에는 책상에 앉아 무엇인가를 끄적거리던 그의 뒷보습만 포착됐다. 가까이 다가가서 어깨를 툭 치며 농담이라도 걸까 하다가 그냥 지나쳤다. 그것이 나와 그의 이승에서의 마지막 만남 이었다. (박해현) 죽기 바로 전 미국에 사는 향도 누이에게 보낸 편지에는 시집 제목을 '정거장에서의 충고' 혹은 '길 위에서 중얼거리다' 중에서 택일하겠다고 했다. 나와는 의논중이었는데 전자를 선택하기를 희망했다.(기애도) 죽기 일주일 전쯤, 어느 날이었다. 함께 당구를 치던 중 한동안 기형도가 멍하니 당구대 위에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머리 가 아프다고 했다. 집으로 가서 함께 자는데 자기 전에 "나는 뇌졸중으로 죽을지도 몰라" 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리고 두통약 같을 것을 먹었다.(이영준) 1989년 3월 7일 새벽:--서울 종로의 파고다 극장에서 숨진 채 발견되다 알콜을 포함 약물 복용의 흔적이나 외상은 없고 사인은 뇌졸중으로 추정됨 3월 9일:-- 경기도 안성 소재 천주교 수원교구 공원묘지에 묻힘. 유작 [입 속의 검은 잎], [그날], [홀린 사람] 발표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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