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과 존경으로 가득찬 집회였습니다.
30일 저녁 7시 시청앞 광장에사 시작된 천주교 정의구현 사제단의 합동 시국미사.
신부님들이 십자가를 앞세우고 광장으로 들어설 때 시민들은 뜨거운 박수로 환영하였습니다.
몇 분의 '대표신부'들만 나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두 줄로 선 신부님들의 행렬이 광장의 끝에서 끝에
닿을만큼 길게 이어지고(사제복 입은 신부님들의 숫자만 백명가까이 되어보였습니다)...
손을 맞잡은 장삼 가사의 스님들도 함께 한 것을 보았을 때.. 얼마나 가슴이 뜨거워지던지요.
지난 50일동안 군중의 함성과 울부짖음으로 채워지던 서울광장에.. 모처럼 뜨거운 환영과 감사의
박수소리가 진동하였습니다. 아주 오랫동안 우리는 박수를 보냈습니다.
광장의 시민들은 마치 牧者 없이 방황하던 양들이 목자를 만나 즐거워하듯 위안을 얻었고,
으르렁거리는 유령의 소리에 잠 못이루던 아기들이 엄마를 발견하고 힘을 얻듯 용기를 얻었습니다.
연합뉴스 사진 (이하 사진 모두 같음)
- '20년전 우리 시민의 손으로 민주주의를 되찾던 그 자리'...
사회자가 시청앞 공간의 역사를 상기시켜주었을 때.. 그제야, 우리는 '위협받는 민주주의'를 지켜내기
위해 이 자리에 모인 것이 결코 우연은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하였습니다.
오랜 흑암의 군부독재로부터 민주주의를 되찾기 위하여 1987년 6월에도 우리는 이 곳에 모였었지요.
피를 흘리고 목숨과 바꾸면서 일궈낸 민주주의였습니다.
본래 6시로 예정돼있던 미사가 7시 30분이나 돼서 겨우 시작된 것은 방송장비 차량이 그제야
도착했기 때문인데.. 그 이유는 지난 토요일 저녁때처럼 경찰이 다시 음향장비 차량의 진입을
방해했기 때문이었답니다.
경찰은 이 밖에도, 태평로 대로를 전경 버스로 꽁꽁 틀어막아 미사 참석자들이 광장에 접근하기도
어렵게 만들어놓았고.. 전철역의 시청앞쪽 출구를 봉쇄하기도 하는 등 유치의 극치를 보였습니다.
국민을 불안하게 만든 원인을 제거하는 대신.. 그 불안을 말하는 국민의 입을 틀어막으려는 정부.
그들의 치졸한 대응도 그러나 더는 두렵지 않았습니다.
6월 30일 시청앞 광장의 신부님들은 하느님의 대리인으로서의 도리를 다한 성직자들이었습니다.
필요한 말은 다 하고 불필요한 군소리는 하나도 남기지 않은, 사제단의 성명서가 낭독되었습니다.
"대통령은 우선 쇠고기 협상의 실패를 인정하고, 국민 앞에 겸손하게 사죄를 청하는 뜻으로
장관고시를 폐하고 쇠고기 전면재협상을 선언하길 바랍니다."
"과잉 폭력진압을 지시한 어청수 경찰청장을 해임하고 시위 중 연행된 사람들과 대책회의
구속자들을 전원 석방하십시오."
한 문장 한 문장이 끝날 때마다 시민들은 손뼉을 치며 환호했고..
촛불들은 그 함성 속에서 넘실넘실 춤을 추었습니다.
- 오늘부터 시민들의 승리는 시작되었습니다.
사회자의 선언에 시민들은 다시 한번 환호했습니다.
평화롭고도 아름다운 저녁 미사.. 시민들은 각자 가진 종교를 떠나서 신부님들의 강론과 기도에
함께 고개를 끄덕이고 함께 손을 모았습니다.
기도하는 동안 뜨거운 기운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전류처럼 흘러내려가는 것을 느꼈습니다.
정녕 성령이 함께 하심을 느낄 수 있는 자리였습니다.
(저의 눈시울에도 차마 흘리지 않은 눈물이 고이더랍니다.)
사회자의 선창에 따라 우리는 '대한민국 헌법 제 1조'라는 제목의 성가를 불렀고..
사회자의 제안에 따라 우리는 '이명박 대통령 사랑합니다'라고 외쳤습니다.
(정말 그를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질 수 있게 되기를... )
미사후 6만을 헤아리는 참례자들이 신부님들의 당부에 따라.. 평화롭고도 여유있는 걸음으로..
시청앞 - 남대문 - 명동 입구 - 을지로 입구 - 시청앞 코스를 따라 천천히.. 걸었습니다.
음향장비의 한계 때문에.. 진행된 모든 소리들을 우리가 잘 듣지 못한 것이 아쉬웠는데..
다행히도.. 발표된 성명서 전문이 프레시안에 떴기에 빌려옵니다. 이 뉴스를 보니
신부님들은 오늘부터 단식을 시작하시고.. 또 매일 저녁 시국미사를 계속할 예정이랍니다.
coolwise 2008
<프레시안에서 관련뉴스 -미사 중계보도-보기>
1.
사제단 "서울광장에서 매일 저녁 7시에 미사 올리겠다…단식 기도 시작" |
- [현장] "시커멓게 타버린 남대문은 한국 민주주의의 상징" |
2.
사제단 "어둠이 빛을 이긴 적은 없다" |
- [현장] 시국미사, 경찰 방해로 1시간 30분 늦게 시작돼 |
차분하고도 당당한 목소리로 신부님 한 분이 읽어내려간.. 사제단의 성명서 전문을 아래에서
함께 음미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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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힘과 교만을 탄식함
"거짓 예언자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은 양의 탈을 쓰고 너희에게 나타나지마는 속에는 사나운 이리가 들어 있다. 너희는 행위를 보고 그들을 알게 될 것이다. 가시나무에서 어떻게 포도를 딸 수 있으며 엉겅퀴에서 어떻게 무화과를 딸 수 있겠느냐?"(마태 7,15)
▶대한민국 민주주의 심각한 위기 맞고 있어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참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국민을 상대로 마구 저지르는 오늘의 폭력상과 거짓들을 지켜보며 우리는 분노합니다. 주권재민을 힘껏 외치는 시민들의 고뇌를 마음에 품고 오로지 기도에 집중하기 위하여 사제들이 오늘까지 이렇다 할 의견표명과 행동 없이 침묵 중에 지냈으나 이제 그런 절제도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되었습니다. 국민이 그토록 간절하게 호소했건만 정부가 미국의 압박에 자진 굴복하여 문제의 쇠고기와 위험한 부속물 수입을 전면 허용해버렸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들끓는 국민여론을 제압하기 위하여 몽둥이와 방패로 시민들을 패고 내려찍으며 무참히 폭력을 행사했습니다. 이로써 촛불에 담겼던 간곡한 뜻은 짓밟혔고 우리는 대통령과 정부의 존립근거에 대하여 묻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은 이명박 대통령과 정부 각료들 그리고 한나라당의 교만과 무지를 탄식하면서 그들의 병든 양심을 교회의 이름으로 엄중하게 꾸짖고자 합니다. 아울러 이 땅에 하느님 나라를 선포해야 하는 사제의 양심에 따라 오늘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는 점을 경고합니다.
▶조중동의 표변과 후안무치는 가히 경악할 일
먼저 보수언론의 폐해를 지적한다. 참여정부 시절 광우병의 위험성을 무섭게 따지고 들다가 현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미국산 쇠고기의 절대 안전을 강변하는 조선, 중앙, 동아일보의 표변과 후안무치는 가히 경악할 일입니다. 정론직필의 본분을 버리고 이해득실에 따라 말을 뒤집는 언론의 실상이 널리 알려진 것은 만시지탄이나마 다행이 아닐 수 없습니다.
대통령이 국가정책의 많은 부분에 대하여 국민을 속이고 있는 현실은 더욱 큰 불행입니다. 대통령은 국민이 순진하다고 착각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대다수 국민은 그의 궤적을 잘 알면서도 혹시 경제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까 싶어 지난 대선의 결과를 빚어낸 것뿐입니다. 대통령은 국민의 기대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습니다. 금번 쇠고기 협상에서 드러난 정부의 무능도 울분을 터뜨릴 일이지만, 높이 받들고 깊이 새겨야 할 천심을 폭력으로 억누르는 정부의 교만한 태도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입니다.
▶대통령이 국가정책 많은 부분 속이고 있는 현실 더 큰 불행
그저 미국에 충성하려드는 맹목적 사대주의도 딱한 일이거니와 오늘 우리 사회에 불어 닥친 재앙은 무엇보다도 돈을 위해 정신의 가치를 값싸게 여기는 정부의 경박한 물신숭배에서 비롯했음을 지적합니다. 국민이 바라는 것은 값싸고 질 좋은 외국산 쇠고기가 아니라 모두가 공생 공락하는 드높은 자존감입니다. 국제적 망신을 일으킨 졸속협상이나마 정부의 주장대로 이에 복종하는 것이 한미 FTA 체결 조건에 유리하고, 그래서 자유무역이 혹시 경제지수를 끌어올릴 것이라는 억측이 설령 옳다고 가정해도 그 결과는 이미 굳어질 대로 굳어진 양극화 현상을 더욱 극단으로 몰고 갈 것이라는 게 교회의 판단입니다. 결국 정부는 불행한 미래를 강요하는 수단으로 공권력을 악용하여 국민의 통곡과 신음을 억지로 틀어막고 있는 것입니다.
▶경찰의 폭력에 숭고한 촛불의 뜻 꺼지지 않도록 지키겠다
우리는 "어둠이 빛을 이겨 본 적이 없다"(요한 1,5)는 성경말씀을 묵상하면서 오늘까지 촛불을 지켰던 민심을 지지하고 격려합니다. 우리 사제들은 청정한 수도자들과 전국의 모든 교우들과 함께 무장경찰들의 폭력에 숭고한 촛불의 뜻이 꺼지지 않도록 지켜드리고자 합니다. 정부는 원천봉쇄와 강경진압 그리고 오늘 아침에 벌어진 광우병 국민대책회의 압수수색과 체포 따위로 진실을 어둠에 가두려고 하겠지만 이런 모진 마음 때문에 국민이 받은 상처와 모욕은 더욱 깊어만 갈 것입니다. 이에 우리는 대통령에게 호소합니다.
1. 국민은 너그럽습니다. 대통령은 우선 쇠고기 협상의 실패를 인정하고, 국민 앞에 겸손하게 사죄를 청하는 뜻으로 장관고시를 폐하고 쇠고기 전면재협상을 선언하길 바랍니다.
2. 먼저 들으셔야 합니다. 소통을 강조하는 대통령은 먼저 국민의 소리를 들으시고 그 진실을 깊이 헤아린 다음 국민과의 대화에 나서길 바랍니다.
3. 국민은 현명합니다. 문제의 핵심은 국민 건강의 안전성과 이를 보증할 검역주권입니다. 일부 언론이 쇠고기 문제를 친미와 반미, 진보와 보수의 이념갈등으로 몰아감으로써 핵심을 왜곡하지 말아야합니다.
4. 과잉 폭력진압을 지시한 어청수 경찰청장을 해임하고 시위 중 연행된 사람들과 대책회의 구속자들을 전원 석방하십시오. 그리하여 존엄을 바라는 국민의 상처를 씻어주길 바랍니다.
5. 국민 여러분에게도 호소합니다. 촛불은 평화의 상징이며 기도의 무기이며 비폭력의 꽃입니다. 우리가 비폭력의 정신에 철저해야만 폭력의 악순환을 끊어 버릴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모든 신앙인에게 호소합니다. 촛불은 안으로는 내면의 욕심을 불태우고, 밖으로는 어둠을 밝히는 평화의 수단입니다. 저마다 마음을 비우고 맑게 하여 지친 세상을 위로하고 서로에게 빛이 됩시다.
2008년 6월 30일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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