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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e—live—Library

길 - 조창인

by e-bluespirit 2010. 4. 4.

 

 

 

 

 

 

 

아득한 길 끝에서 만나는 절망과 슬픔,

그리고 희망의 이야기

 

 

"살아가면서 슬픔을 아주 안 만날 재간은 없겠지.

중요한 건 슬픔 속에서 기쁨을 찾아내려는 마음가짐이란다."

 

 

 

 

 

 

‘사람은 혼자서도 살 수 있나요?’

 


너에게 그리워할 사람이 남아 있다면,
그리고 누군가 나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결코 혼자가 아니라고.

 

 

누군가를 좋아하는 것은
그 사람의 장점 때문에 좋아하는게 아니라,
나쁜 점 까지도 좋아하게 되는거라고..

 

작년 이맘때다. 할아버지는 승우의 손에 동전을 쥐어주었다.

앞면과 뒷면에 똑같은 5페소라고 쓰인, 마술사를 위해 특별히 만들어진 동전이었다.

그날 승우는 동전을 바라보며 울고 또 울었다.

아빠가 아주 떠났고, 더는 아빠를 만날 수 없기 때문은 아니었다.

세상에서 할아버지만이 자신의 마음을 알고 있다는 생각에 눈물이 쏟아졌다.
한참을 울고 났을 때, 할아버지가 말했다.
앞으로 울고 싶어지면 동전을 보거라.

동전의 앞과 뒤가 같듯이, 슬픔도 기쁨도 사실은 별다를 게 없단다.

이쪽을 슬픔이라고 정하면 슬픔이 되고, 저쪽을 기쁨이라고 생각하면 곧 기쁨이다.

살아가면서 슬픔을 아주 안 만날 재간은 없겠지.

중요한 건 슬픔 속에서 기쁨을 찾아내려는 마음가짐이란다.


날치는 쓴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여기서 헤어지자.”
당연했다. 경찰이 네 명을 한몫에 확인한 이상 떼지어 다닐 수는 없었다.
승우가 곧 울음보라도 터뜨릴 듯한 얼굴로 변했다.

연희는 사태를 아는지 모르는지, 제 오빠의 손을 잡은 채 두 눈만 깜박거렸다.

애처로울 지경으로 어깨를 떨며 승우가 물었다.
“우리도 따로 가야 되나요?”
“지금부터는 각자 알아서 가는 거다.”
“삼촌이랑 같이 가고 싶어요, 끝까지.”
끝까지. 끝까지, 누군가 내 손을 놓지 않은 채 동행해 준다면...

날치는 한순간 가슴이 얼얼해지는 느낌이었다.
조직에 쫓기고 경찰에 수배된 처지 때문일까. 손 내밀 벗 하나 남기도 못한 주변머리다.

몸뚱이조차 온전히 누울 곳이 없다. 외롭다.

그러나 외로움도 쫒기는 자에겐 사치고, 제아무리 외로워한들 열세 살짜리 꼬마한테 무엇을 기대한단 말인가.


“엄마 고향에는 가봤냐?”
“아뇨.”
“참 딱도 하구나. 고향이 어딘지는 알고 있냐?”
승우는 고개를 끄덕인다. 엄마의 고향도 모른다고 하면, 또 무슨 말이 아줌마의 입에서 흘러나올지 걱정이다.
“어쩌겠느냐, 일단 거기로 찾아 가보는 수밖에.”
세 마리의 새끼를 품은 어미캥거루 같은 배를 좌우로 흔들며 아줌마는 대문 안으로 사라진다.
바람이 불고, 빠르게 어둠이 밀려온다.
승우와 연희는 오랫동안 서 있다. 연희는 이제 울지 않는다. 울음이 진작 바닥이 나 더는 울 수조차 없을까.

앞으로 울어야 할 일이 얼마든지 있어 미리 남겨두려는 속셈인지도 모르겠다.
돌아서기 전, 승우는 까치발을 하고 대문을 넘겨다본다. 엄마가 살았다는 지하방이 어디쯤일지 궁금하다.

그 지하방 어디쯤에는 아직도 엄마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을 것만 같다.


중국집을 빠져나왔을 때 승우는 말했었다.
“삼촌이 올 줄 알았어요. 삼촌을 믿거든요??.”
자신을 믿어준 유일한 사람이 승우였다.

열세살짜리가 믿어줬다고, 뭐가 달라질까. 날치는 숱하게 도리질을 쳤다. 냉큼 외면하고 싶었다.
어차피 남이다. 인사도 없이 헤어질 아이라고 생각해 오지 않았던가.

그 누구의 입장을 생각하고, 그 누구를 위해 나를 포기하는 일.

이 날치에게는 도대체 어울리지 않아. 난 원래 그런 고상한 부류가 아니라고. 삼류건달일 뿐이야.

지금껏 살아오면서 판단하고 결정한 대로, 꼭 그렇게만 하자.

마음의 방향을 정한 듯하면 어느 새 승우의 목소리가 다시 귓전에 울려왔다.
“믿음은요, 앞으로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를 알게 해줘요.”


승우는 생각한다.
수리3동 판잣집을 떠나던 날부터 지나쳐 온 많은 길들..

모든 길은 바람처럼 승우의 어깨를 스쳐 지난다.

길은 길로서 이어지고, 어느 순간 뚝 끊어진다.

길이 끝나면, 어디를 향해 가야할까.

오던 길 돌이켜 다시 걷는 수밖에 없을까.

걷고 걸어서 처음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엄마는 그 옛날 기억속의 엄마처럼 진짜가 되는 것일까.
누가 나에게 분명히 말해 줬으면 좋겠어.

이 길이 옳고, 저 길은 틀렸다고.

이것이 거짓말이고, 저것이 진실이라고.

말짱 가짜가 진짜가 된다. 진짜가 말짱 가짜가 되는 일은 지긋지긋하다.

나는 이런 엉터리 뒤죽박죽 세상에서 살고 싶지 않아.

연희야, 너도 그러니? 그래서 열 살도 못돼 서둘러 하늘나라로 가고 싶은 거니?


“이따금씩 배도 바다를 버리고 뭍으로 올라와야 한다.

한 생애를 마칠 때까지 줄곧 바다에 떠 있을 수는 없지.

뭍에 올라앉아 배 밑창을 햇볕에 말리고 흠집도 수리해야 할 시기가 필요한 법이란다.”
승우는 알고 있다.
자신이 그 시기를 막 통과했고, 다시 먼 바다를 향해 떠나는 배와 같다는 것을.

 

 

승우는 알고 있다. 가고 또 가야 할 길이다.

산다는 것은 머나먼 길을 떠나는 거라던, 할아버지의 말이 떠오른다.
지름길은 믿지 말거라. 비탈길은 비탈진 대로, 고른 길은 고른대로
한발 한발 걸어가는 게 바로 인생이란다.
"그렇지만 할아버지. 둘이 함께 걸어갈 수 있다면, 그게 바로 지름길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승우는 지금 혼자예요. 문제는 앞으로도 계속 혼자일까봐, 무서워요."

 

 

어느 책에선가 읽었다.

과거을 생각할 때에는 오른쪽, 미래를 상상할 때는 왼쪽을 본다고.

그리니까 삼촌은 죽도 이야기를 들으며 앞날을 떠올려보고 싶은 모양이다.

 

 

"연희야! 사람은 혼자서도 살 수 있냐고, 더 이상 묻지 않을래.....

눈에 보이지 않는 것까지 볼 줄 알아야 진짜 마술사가 될 수 있거든.

인생은 마술과 같아서 비밀로 가득하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려고 노력하는 사람만이 그 비밀을 풀 수 있어.
하나 둘 비밀을 풀어가다 보면,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도 저절로 알게 될 거야.”

승우는 다시 걸음을 떼어놓는다.

다리도, 허리도, 어깨도, 분홍색 모자도 왼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함박눈은 10시와 11시 방향에서 비스듬히 내린다.

누군가 고개를 10시와 11시 방향으로 비스듬히 기울인다면,

아, 그는 볼 수 있을 것이다.

수직으로 내리는 함박눈.

그리고 함박눈을 뚫고 똑바로, 똑바로 나아가고 있는 승우의 모습을.

 

 

- 본문 중에서

 

 

 

 

출판사 리뷰

“인생은 마술과도 같아서 비밀로 가득하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려고 노력하는 사람만이 그 비밀을 풀 수 있어.
그 비밀을 풀어가다 보면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도 저절로 알게 될 거야.”

 

『길』은 밀리언셀러를 기록한『가시고기』의 작가 조창인이『등대지기』에 이어 2년 만에 발표하는 소설이다. 그 동안 두 편의 소설이 각기 부성애와 모성애를 다룬 것이었다면, 이 소설은 인간의 삶, 인생 전체를 따뜻하게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이 무엇보다 빛을 발한다. 가난과 외로움, 장애마저 가진 어린 소년이 마침내 희망의 씨앗을 찾아내기까지 먼 여정을 그리는 이 작품은 동화처럼 아름다운 동시에 철학적인 깊이마저 담고 있다.

 

흔히 산다는 것은 머나먼 길을 떠나는 것이며, 여행은 인생의 축소판이라고 말한다. 어린 여동생의 손을 잡고 엄마를 찾아 떠난 소년의 여행 길은 멀고 험난하기만 하다. 그 길 위에서 만나는 많은 사람은 오누이에게 힘이 되기도 하고 뜻밖의 고통 속으로 끌어들이기도 한다. 아이들은 때때로 길을 잃기도 하고, 낯선 길에는 온갖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두 아이를 위협한다. 게다가 인생이 그러하듯 먼 길을 멀어 마침내 목표에 도달했을 때 두 오누이를 기다리는 것은 따뜻한 사랑과 희망보다는 오히려 슬픔과 절망에 가깝다.

 

그러나 그 속에서 희망을 발견해내는 것은 결국 자신의 몫이라고 작가는 이야기한다.

‘사람은 혼자서도 살 수 있나요?’ 라는 소년의 화두는 이 책의 주제를 집약하고 있다. 긴 여행 끝에 소년이 내뱉는 한마디 독백을 통해 독자는 소년의 깨달음, 즉 작가의 메시지를 알 수 있게 된다. 과연 삶이란 무엇이고 희망은, 믿음은 무엇인지를 다시금 생각하게 해주는 소설이다.

 

 

 

 

조창인

 

서울에서 태어나 중앙대학교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였다. 잡지사와 신문사 기자로 여러 해 동안 일했으며, 출판 기획팀을 이끌며 생명력 있는 많은 책들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전업작가의 길로 들어선 뒤 아름답고 따뜻한 사랑 이야기를 그린 <그녀가 눈뜰 때>, <먼 훗날 느티나무>, <따뜻한 포옹>을 발표했다. 이어 2000년 아버지의 헌신적인 사랑을 그린 소설 <가시고기>와, 2001년 외딴섬 등대지기의 삶을 그린 <등대지기>로 많은 독자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았다.
신작 <길>에서 그는 아득한 길 위에 선 소년의 고달픈 여정을 그려낸다. 열세 살 소년과 스물아홉 사내의 이 어울리지 않는 동행은 우리에게 세상에서 진정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준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깃든 따뜻함을 그려내고 싶다는 작가는 오늘도 외딴 집필실에서 글쓰기에 열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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