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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e—live—Library

보시니 참 좋았다 - 박완서 김점선

by e-bluespirit 2010. 4. 18.

 

 

 

 

 

 

 

 

 

 

 

 

할머니는 오래오래 사는 동안에 터득한 지혜로, 이 세상의 모든 사물은 아무리 보잘것없는 사물이라도 비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비밀은 비밀답게 각기 자기 나름의 방법으로 사물 속에 감춰져 있습니다. 어떤 비밀은 겹겹의 두꺼운 껍질 속에 숨어 있기도 하고, 어떤 비밀은 마치 허드레 물건처럼 밖에 나와 있기도 합니다. 사물의 비밀과 만나는 일이야말로 세상을 사는 참맛이라고 할머니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본문 중에서


 

사나이는 탄식하며 다시 한 번 사람이 산다는 것의 허망함에 몸을 떨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사나이의 헛수고를 비웃어서는 안 됩니다. 사나이를 어리석다고 경멸해선 안됩니다.

사람이 고생하고 살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다이아몬드도 아름다운 소녀도 아닙니다. 열심히 고생해야 기껏 아주 작은 이치를 얻어내는 데 불과합니다.
사나이는 다이아몬드에 저항할 수 있는 것은 다이아몬드뿐이란 이치를 얻어냈습니다. 그만하면 아무도 사나이의 삶이 아주 허망하다고는 말 못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다이아몬드가 아니라, 다이아몬드에 저항할 수 있는 건 다이아몬드뿐이라는 사실입니다.
--- 본문 중에서


 

그러던 어느 날, 엄청나게 큰 화판을 내주시며 뭐든지 그려 보라고 하셨지. 아무리 뭐든지 그리고 싶어도 소년은 그때까지 보고 자란 것밖에 못 그렸지. 그 큰 화판이 지금까지 보존된 성당의 벽이란다.

그러나 그 그림을 어떻게 내가 그렸다고 할 수가 있겠니?

내가 그린 건 아주 미숙한 습작에 불과했는데 와 보니 평론가의 말대로 정말 좋은 그림이더라. 내 평범한 그림을 예술로 만든 건 오랜 세월과 사람들의 변함없는 사랑이었다.

명품으로 치는 골동품도 태어날 때부터 명품이었던 게 아니라, 세월의 풍상과 사람들의 애정이 꾸준히 더께가 되어 앉아야 비로소 명품이 되듯이 말이다.
--- 본문 중에서


 

한편 색시는 똥 싼 바지를 담은 옻칠한 궤짝을 비단 보자기로 쌌습니다. 그리고 계집종을 불렀습니다.

“너 이것을 우리 시댁에 여다 드리고 오너라.”

“이게 뭔데요?”

“넌 알 거 없다.”

“그래도 사돈댁 어른이 뭐냐고 물으시면 대답을 할 수 있어야죠.”

“뭐냐고 묻거든 ‘찌랍디다’로 아뢰어라.”

계집종은 비단 보자기에 싼 것을 이고 한달음에 사돈댁까지 갔습니다. 새아씨가 보낸 물건을 가지고 왔다고 하자 웃어른들이 대접도 융숭하게 안으로 맞아들였습니다.

비단 보자기를 끄르자 옻칠도 아름다운 궤짝이 나왔습니다.

“이 속에 무엇을 넣어 보내셨는지 아느냐?”

누군가가 계집종에게 물었습니다.

“찌랍디다.”

계집종은 간단히 아뢰었습니다. 아랫목에서 듣고만 있던 노마님이 얼굴에 만족한 웃음을 띄고 말했습니다.

“찔 것 없다. 사돈댁에서 보내신 귀한 건데 좀 굳었으면 어떻겠느냐?”

아랫사람들이 궤짝을 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노마님은 엄한 얼굴로 타일렀습니다.

“사돈댁에서 보내신 걸 사당에 고하여 조상님이 먼저 운감하신 후에 먹도록 함이 옳으니라.
--- 본문 중에서

 

 

 

 

 

 

 

 

 

 

차례

 

찌랍디다
보시니 참 좋았다
쟁이들만 사는 동네
굴비 한 번 쳐다보고
다이아몬드
산과 나무를 위한 사랑법
아빠의 선생님이 오시는 날
참으로 놀랍고 아름다운 일

 

 

 

 

 

 

 

 

 

 

 

책소개

 

작가는 여덟 편의 이야기를 통해 살아가면서 사람에게 중요한 것들은 사물의 숨어 있는 비밀을 깨닫는 것. 그리고 그 비밀을 깨닫기 위해서는 절대로 잃어버리지 말아야 할 것이 인간의 꿈이며, 꿈이 사람과 사물의 비밀을 하나하나 열어갈 수 있다는 인생의 이치를 조심스럽게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세월의 더께가 두터워져도, 사람의 진실과 만나는 것, 생의 참다운 가치와 만나는 것의 소중함을 이야기한다. 이처럼 이야기들은 한편한편 묵직한 주제와 교훈, 삶의 철학을 담고 있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재미있게 읽힌다는 점이다.


이 짧은 이야기들은『보시니 참 좋았다』,『아빠의 선생님이 오시는 날』등 잔잔하고 따뜻한 감동을 주는 작가의 최근작을 포함해 70년대 말 청소년들과 젊은 엄마들을 주 독자층으로 겨냥하고 쓴 글들 중의 일부도 포함되어 있다. 출구라고는 보이지 않는 답답하고 어둡던 유신시절 작가는 자신 스스로도 제어할 수 없는 이상한 열정으로 보문동 오래된 한옥 안방에 밥상을 들여놓고 책 한권 분량의 원고지를 메꿨다고 한다. 작가의 최초 동화집 중 가장 아끼던「다이아몬드」를 포함해 짧은 이야기들은 곳곳에서 보석처럼 아름답게 빛난다.

 

 

 

 

 

얼굴 가득 미소를 번지게 하는 행복한 이야기 8편

「찌랍디다」는 여자를 박대한 시대 속에서 어린 신랑을 맞이한 신부의 현명하고도 재치 있는 혼인날의 대처를 통해 우리 선조들의 익살과 지혜를 유쾌하게 담아내고 있다.

「보시니 참 좋았다」는 할아버지가 어릴 적에 그렸던 성당벽화가 하나의 훌륭한 작품으로 인정되기까지 그 능력을 알아봐주고 키워준 시선이 있었고, 그 그림의 가치는 오랜 세월 동안 사람들의 변함없는 사랑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는 소중한 이치를 알게 해준다.

「쟁이들만 사는 동네」는 환쟁이인 남편의 대작을 위해 목숨을 다한 아내와 대작을 위해 생명을 모조리 바친 남편이 그 아내의 죽음을 보고 숨을 거둔 이야기를 통해 천생연분이란 어떤 것인지를 들려준 아름다운 부부이야기다.「굴비 한 번 쳐다보고」는 모두들 알고 있는 자린고비 이야기를 단순히 절약정신을 강조한 이야기가 아닌, 부를 이루는 것도 중요하지만 평범한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경험을 쌓고 느끼고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느끼게 해준다.

「다이아몬드」는 한 소녀를 사랑한 한 금속공이 다이아몬드를 다듬는 과정을 통해 인생은 열심히 고생해야 기껏 아주 작은 이치를 얻어내는 데 불과하며, 고통스런 삶일지라도 사랑보다 보석보다 더 중요한 의미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려준다.

자연과 인간이 어떻게 공유하고 대화해야 하는지 수채화처럼 보여준 「산과 나무를 위한 사랑법」,어려웠던 시절 제자들을 사랑한 선생님의 따뜻한 이야기「아빠의 선생님이 오시는 날」, 곧 태어날 아기를 맞으며 엄마, 아빠, 할머니까지 새생명의 탄생을 위해 준비하는 마음을 애잔하게 담아낸「참으로 놀랍고 아름다운 일」 등은 그야말로 빛나는 보석처럼 인생의 아름다운 편린들을 보여준다.

 

 

 

 

 

 

저: 박완서 朴婉緖

 



한국 전쟁과 분단의 아픔을 다룬 데뷔작 『나목』과 『목마른 계절』『세상에서 제일 무거운 틀니』『아저씨의 훈장』『겨울 나들이』『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등을 비롯하여 70년대 당시의 사회적 풍경을 그린 『도둑맞은 가난』『도시의 흉년』『휘청거리는 오후』까지 저자는 사회적 아픔에 주목하여 글을 썼다. 『살아있는 날의 시작』부터 여성문제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작가는 행복한 결혼은 어떤 형태인가를 되묻게 하는 소설인 『서 있는 여자』『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 등 점점 독특한 시각으로 여성문제를 조명하기 시작한다. 또 장편 『미망』『그 많던 싱아를 누가 다 먹었을까』『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등에서는 개인사와 가족사를 치밀하게 조명하여 사회를 재조명하기도 한다.


『배반의 여름』은 1975년 9월에서 1978년 9월까지 발표했던 작품들을 수록하고 있다. 「조그만 체험기」「흑과부黑寡婦」「그 살벌했던 날의 할미꽃」등에서 볼 수 있듯이 박완서가 그리는 모성의 힘은 실로 놀랍다. 성균관대에서 열린 ‘2006 호암상 수상자(예술상) 초청 강연회’에서 박완서는 이렇게 말했다. “내 문학의 뿌리는 어머니”라고. 박완서 특유의 수다스러움으로 풀어내는 모성의 힘은 힘센 것들만이 권력을 쥐고 판을 치는 현대산업사회에서 뒤로 처진 자들의 아픔을 진정으로 위무해준다.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에는 1987년 1월에서 1994년 4월까지 발표되었던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다. 여기에서는 가족의 죽음을 다루고 있는 작품이 네 개나 있는데 그중「여덟 개의 모자로 남은 당신」은 남편의 죽음을,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은 아들의 죽음을 담고 있다.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은 특이하게도 처음부터 끝까지 대화체로 되어 있는데 담담하게 이어가는 주인공의 목소리에서 가슴이 메어지는 슬픔을 느낄 수 있다.


『저녁의 해후』에는 1984년 1월부터 1986년 8월까지 발표했던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다. 「지 알고 내 알고 하늘이 알건만」「해산바가지」「애 보기가 쉽다고?」 등에서 볼 수 있듯이 여기에서 나타나는 하층민들의 인간애는 가진 자들의 야만성과 대비되어 더욱 빛을 발한다.


『그의 외롭고 쓸쓸한 밤』은 1979년 3월에서부터 1983년 8월까지 발표한 작품들을 수록했다. 이 책에서는 특히 속물성과 위선이 난무하는 현실에 대한 비판이 두드러진다. 젊은 것들의 무관심과 조롱 속에서 외롭게 늙어가는 노인들의 모습을 담아낸 「황혼」「천변풍경泉邊風景」과, 출세한 자들의 허위를 그린 「내가 놓친 화합(和合)」「그의 외롭고 쓸쓸한 밤」 등이 그것이다.


『미망』은 조선조 말기에서 6ㆍ25 전쟁 직후까지 그 파란만장했던 시대를 한 개성 상인의 가족사를 통하여 재창조한 대하소설이다. 민족의 수난사와 더불어 고난과 격동의 시대를 험준한 산을 넘듯 숨가쁘게 살아온 우리 모두의 이야기로, 박완서 소설 문체가 도달한 궁극적인 경지를 보여 주고 있다.


1993년부터 국제연합아동기금 친선대사로 활동하며, 1994년부터 공연윤리위원회 위원, 1988년부터 제2건국 범국민추진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 가을의 사흘 동안』으로 한국문학작가상, 『엄마의 말뚝』으로 제5회 이상문학상 『미망』으로 대한민국문학과 제3회 이상문학상 『꿈꾸는 인큐베이터』로 제38회 현대문학상 등을 받았다. 2006년, 문화예술인으로서 처음이자 여성으로서도 처음으로 서울대학교 명예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림: 김점선

 

1946년생. 화가로 활동한 김점선은 이화여자대학교 시청각교육과를 졸업하고 1972년 홍익대학교 대학원에서 서양화를 전공, 졸업하였다. 그 해 여름 제1회 앙데팡당 전에서 백남준, 이우환의 심사로 파리 비엔날레 출품 후보에 선정되면서 화려하게 데뷔하였다. 다수의 개인전을 열면서 시간과 공간, 기존 관념을 초월한 자유롭고 파격적인 화풍으로 엄청난 화제를 몰고 왔다. 1987년, 1988년 2년 연속 평론가협회가 선정한 미술부문 올해의 최우수예술가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그녀는 KBS-TV ‘문화지대’의 진행자로 활동영역을 넓히며 대중적인 인기를 모았으나, 이후 작품 활동에 전념하였다. 2001년 오십견으로 붓을 놓은 뒤에는 컴퓨터로 그림을 그리고, 2007년 난소암이 발병한 뒤에도 창작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개인전만 60차례를 열 만큼 작품에 대한 강한 열정을 가진 화가였으며 작품이 곽 휴지 상자에 인쇄되는 것도 마다하지 않을 만큼 소탈한 사람이었다. 작가 최인호와 박완서의 책에 삽화도 그리는 등 문화예술인과도 우정을 나눴다.


구도, 원근법은 물론 채색도 마음가는 대로 표현하는 그녀의 그림은 단순하면서도 솔직한 것이 특징이다. 간결한 선과 색으로 말과 오리, 맨드라미, 들풀 등 자연을 그린 독특한 작품세계를 구축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작가로, 암으로 투병하다가 2009년 3월 22일 작고하였다.


저서로는 『나, 김점선』『10cm 예술』『나는 성인용이야』『바보들은 이렇게 묻는다』『기쁨』 『김점선 스타일』, 그림동화 시리즈 『큰엄마』, 『우주의 말』, 『게사니』 『점선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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