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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irit/e—cr—life

뜻을 태워 지혜의 광명이 타오르게

by e-bluespirit 2013. 9. 29.












<  뜻을 태워 지혜의 광명이 타오르게  >  

정신의 광명으로 만물을 비춰보는 세계가 지혜의 세계다.

마치 등잔불을 계속 태워 만물을 비추듯이 
뜻을 태워 지혜의 광명으로 만물을 비추게 된다. 

이 지혜의 빛으로 만물을 비추는 것이 설법이다. 
성현의 지혜는 일체를 살려내는 생명의 불이다. 

뜻을 태워 만인을 살리는데 성을 낸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탐욕을 버리고 치정(癡情)을 버리고 진에를 버려야 한다. 

심지(心志)의 곧이(貞)를 지키고 진리의 빛을 비추면 
몸성히 맘 놓여 뜻 태우게 된다.  

(씨알의 메아리 다석 어록. 130쪽)


< 풀이 >
생명은 속의 속에 뜻을 지닌 존재다. 본능과 이성과 영성 속에 등잔불의 심지처럼 뜻이 들어 있다. 생명의 가장 깊은 속 알맹이가 영성이다. 영성의 뜻이 무엇인가? 순수한 사랑과 자비와 어짊(仁)이다. 사랑이 불타올라야 이성이 밝아지고 이성이 밝아져야 본능의 생명(욕구)이 환해져서 제 구실을 힘껏 할 수 있다. 

얼 생명의 깊은 뜻을 태우려면 탐욕, 치정, 노여움을 버려야 한다. 질척거리는 탐욕과 치정과 노여움이 있으면 사랑과 자비의 뜻을 활활 타오르게 할 수 없다. 탐욕과 치정과 노여움은 몸과 맘을 얼크러지게 하여 이해관계와 인간관계에 매이게 한다. 물질적 관계에 매이면 몸과 맘을 곧게 할 수 없고 어리석음에 빠진다. 몸과 맘이 곧아야 마음의 심지가 잘 타오를 수 있다. 마음의 심지가 한번 타오르면 탐욕과 치정과 노여움의 어리석음을 환히 비추어주고 가라앉게 한다. 탐욕과 치정과 노여움이 가라앉으면 마음의 심지는 더욱 힘차게 타오른다. -박재순







고맙다

한가위 밝은 달이 하늘과 땅을 두루 비추고, 오곡이 무르익어 풍성한 들녘에 서면 마음이 넉넉해지고 고맙다는 말이 절로 나올 것이다.  고맙다는 말은 "당신은 신입니다"는 뜻을 지녔다고 한다. 고맙다는 말은 '곰(검)-앞이다'에서 왔고 곰이나 검은 신(神)을 뜻하는 우리말이니까 '곰앞다'는 '신 앞입니다', '나는 신 앞에 있습니다'를 뜻하는 게 아닐까. 

신 앞에 서면 더 나아갈 데 없는 지극한 자리에 선 것이니 원한도 아쉬움도 사라지고, 그저 고맙고 감사한 마음만 들 것이 아닌가? 고마운 마음을 지닌 사람은 인생살이에서 이긴 사람, 보람을 찾은 사람, 넉넉한 사람이다. 고마운 마음이 함께 사는 삶의 바탕이다. -박재순







< 진리의 중심 >
                      .
내가 성경만 먹고 사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 
유교 경전도 불교 경전도 먹는다. 

그래서 희랍의 것이나 인도의 것이나 
다 먹고 다니는데 

그렇게 했다고 해서 
내 뱃감량으로는 소화가 안되는 것도 아니어서 
내 건강이 상한 적은 거의 없다. 

그리스도교의 성경을 보나 희랍의 철학을 보나 
내가 하는 말이 거기에 벗어나는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다. 

이 말의 옳고 그름의 판단은 한아님이 하여주실 것이다. 

(씨알의 메아리 다석 어록. 129쪽)


< 풀이 >
다석은 삶과 정신의 진리를 꿰뚫은 이다. 삶과 정신은 저마다 서로 다른 주체를 가진 것이며 스스로 하는 것이므로 자유롭고 복합적이고 다양하면서 늘 새롭게 변하는 것이다. 그렇게 다양하고 새롭게 변하는 것이면서 주체의 깊이에서 전체 하나와 통하는 것이다. 주체의 주체성과 전체의 전체성에서 하나로 통하는 것이 진리의 중심이다. 다석은 진리의 중심을 사무치게 몸과 맘으로 깨달았다. 

유교, 불교, 기독교, 희랍철학, 인도 종교와 철학의 경전들과 고전들을 먹고 소화하여 동서고금의 사상에 회통했다. 동서고금의 사상들은 서로 다르면서도 하나로 통하는 데가 있다. 그것이 내가 나가 되고 전체가 하나로 되는 진리의 중심이다. 다석은 그 진리의 중심을 몸과 맘으로 깨달아 체득한 이다. 진리의 중심을 지키며 경전을 보면 성경을 보나 희랍 철학을 보나 유교와 불교의 경전을 보나 막힘이 없고 진리의 중심을 지키며 말하면 어느 경전에도 어긋나는 것이 없었다. 진리의 중심에 서서 진리의 중심을 보고 진리의 중심을 말하기 때문이다. -박재순




 
동방의 빛

2천년 전에도 세계화의 바람이 서쪽으로부터 지중해 지역을 거세게 몰아쳤고, 그리이스와 로마의 헬레니즘문화가 화려하게 꽃피었다. 동방의 민족들은 로마군에 짓밟히고 정치적으로 억눌리고 경제적으로 착취당하고 문화적으로 소외되었다. 고향을 떠나 큰 도시에서 뿌리 없이 사는 이들이 많았다. 이들의 열등감과 절망감은 깊었다.  

서쪽에서 몰아닥친 세계화의 물결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동방의 억눌린 민중들에게서 종교적이고 영성적인 운동이 일어났다. 소아시아와 시리아와 팔레스타인과 이집트에서 수 많은 밀의종교들이 생겨났다. 이들은 집단적으로 신비체험을 나누며 정신적 위로와 힘을 얻었고 개인의 구원과 완성을 추구했다. 그리이스.로마가 주도한 헬레니즘 문화는 물질주의, 향락주의, 회의주의가 지배했다. 삶에 대한 확신이없었고 성적으로 문란했고 자살이 유행했고 폭력과 살인을 즐겼다. 서방문화의 생명력과 영적 힘이 소진되었을 때 동방의 민중들에게서 생명력과 영적 힘이 솟아났다. 이것은 서방 주도의 세계화에 대한 동방의 응답이었다. 

동방에서 생겨난 종교운동들 가운데 기독교가 있었다. 유대교의 품에서 자라난 새 종교였다. 온갖 박해와 고난과 죽음을 뚫고 나온 기독교는 생명에 대한 깊은 사랑과 긍정과 확신을 지녔고 가난한 이웃을 사랑으로 섬겼고, 깨끗한 양심과 높은 도덕을 지켰다. 2천년 전 세계화를 완성하고 유럽을 통일한 것은 기독교였다. 

오늘 미국과 유럽이 주도한 세계화의 물결이 거세게 몰아닥치고 있다. 이 세계화 속에서 인류는 생명과 영성의 고갈을 느낀다. 찬란하고 화려한 물질문화를 자랑하지만 삶에 대한확신과 사랑은 부족하다. 인간과 지구 생명세계를 끌어안을 수 있는 생명력과 영성을 뭇 생명세계가 고대하고 있다. 활짝 열리고 자유로우면서 깊고 높은 삶의 빛이 동방에서 동북아시아에서 나와야 하지 않을까? 종교적 영성의 전통이 깊고 오랜 고난의 역사를 겪은 민족에게서 생명운동, 영성운동이 일어나야 한다. -박재순







< 생각의 바다 >

생각하는 내 가슴은 동네 쓰레기를 다 받아가지고 있는 집 앞 개통같이 
좁고 더럽지만 그것은 허허바다에 통한 개통입니다. 

한번 썰물이 크게 날 때 그 모든 더러움이 어디론지 깨끗이 가셔버리고, 
한번 들물이 크게 들 때 자유자재의 고기떼가 씨글거립니다. 

「새로 지음」 함석헌전집 8권 66쪽.


< 풀이 >
생각하는 내 가슴은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으로 가득 차 있고 생각하는 내 몸은 땅의 티끌로 얼룩져 있다. 생각하는 내 마음은 역사와 사회의 온갖 쓰레기 같은 지식·정보·주장·감정으로 가득 차 있다. 생각하는 내 가슴은 동네 쓰레기를 다 받아 가지고 있는 집 앞 개울물 같이 좁고 더럽다. 

생각하는 것은 나와 세상을 무한 허공의 하늘에 비추어 보는 것이다. 생각하는 내 마음은 하늘과 통해 있다. 무한 허공의 하늘이 내 마음에 와 있다. 생각할 때 내 마음 속에 쓰레기 같은 온갖 잡념이 넘쳐나지만 한번 무한 허공의 하늘 바람이 불어오면 쓰레기 같은 잡념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다. 

함석헌은 생각하는 것을 개울과 바다로 비유했다. 생각하는 내 가슴은 개울처럼 좁고 더럽지만 생각하는 내 가슴 속에는 무한히 깊은 생각의 바다가 있다. 생각하는 내 가슴은 집 앞 개울처럼 온갖 쓰레기가 넘쳐나고 좁고 더럽지만 한번 내 가슴이 생각의 바다를 향해 활짝 열리면 생각의 썰물이 크게 나서 온갖 잡념들이 씻겨나간다. 또 생각하는 내 가슴이 한번 크게 뚫려 생각의 바다와 하나로 통하면 생각의 바다 고기떼들이 가득하게 된다. 생각의 바다에는 살아서 펄떡거리는 물고기 같은 말과 생각과 진리가 가득하다. 나의 생각이 생각의 바다 깊이 내려가면 바다 밑에서 살아 움직이는 물고기처럼 싱싱한 생각들을 낚아 올릴 수 있다. -박재순






< 철면피(鐵面皮) >  
 
속에 하늘이 있고 아버지가 있다. 
그 속에 들어가서 용납이 되어야 하는데, 

그 속에 용납이 안 되면 부득이 껍데기만 
비빌 수밖에 길이 없다. 

껍데기만 문지르고 거죽이나 문지르니 
점점 가죽이 두꺼워져서 철면피가 된다. 

수박 껍질에 붙어 다니는 파리와 같이 
새빨간 속은 보지도 못하고 수박 껍데기만
헛돌았으니 이런 인생이야말로 허망한 인생이다. 

(씨알의 메아리 다석 어록. 131쪽)


< 풀이 >
물질은 밖이고 정신은 속이다. 하늘도 하늘에 계시는 하나님 아버지도 사람의 속에 있다. 하늘과 하나님 아버지는 물질세계에 속하지 않고 물질세계를 넘어선 정신과 얼의 세계에 있기 때문이다. 정신과 얼의 세계는 바깥에 있지 않고 내 속의 속에 있다. 하늘 아버지가 계신 내 속의 속에 들어가서 하늘 아버지께 용납이 되어야 내가 나대로 나답게 참된 삶을 살 수 있다. 

속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으니까 내가 나로 되지 못하고 씨알맹이 속 알맹이 없는 껍데기 삶을 살게 된다. 속에서 생명과 정신의 씨알맹이가 싹이 트고 자라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으면 내가 나다운 나의 삶을 살고 제소리를 내면서 살 수 있다. 정신과 얼의 속 생명을 모르니까 저 자신을 살지 못하고 바깥 물질의 껍데기에 매달린다. 껍데기에 매달리니까 서로 껍데기 거죽만 문지르며 거짓된 삶을 살게 된다. 서로 아첨하고 비비대며 거죽만 문지르니까 점점 낯가죽이 두꺼워져 철면피가 된다. 일생을 그렇게 철면피로 살면 끝내 생의 속 알맹이를 모르고 거죽만 핥다가 생을 마치고 만다. 
-박재순






< 10월 순례길 안내 >

선과 선은 점으로 만나고 면과 면은 선으로 만나고 공간과 공간은 면으로 만납니다. 이번 씨순길은 분열의 두 공간, 남과 북이 만나는 경계면을 걷습니다. 통일을 생각하며 걷습니다. 임진강 화석정에서 시작하여 임진강역까지 10킬로 정도 걷습니다. 

우리는 분열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남북(南北)이 갈려있고 남남(南南)이 갈려있습니다. 상하(上下)로 갈려있고 좌우(左右)로 갈려있습니다. 분열이 아닌 통합, 이것이 씨알의 지향(志向)입니다. 씨알의 천명(天命)입니다. 

타도나 군림이 아닌 수평의 통합을 위하여 씨알은 경계(境界)를 품는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왼쪽이나 오른쪽, 위나 아래, 어느 한편으로 치우치지 않아야 합니다. 어느 한편에 서서 어느 한편의 지지를 받아 용맹스런 장수나 순교자가 되기는 오히려 쉬운 일입니다.  그러나 경계역(境界域)에 서서 통합의 통찰력을 갖는다는 것이야 말로 큰 용기와 희생을 필요로 하는 외롭고 힘든 일입니다.

이번 씨순길은 임진강 화석정에서 시작합니다. 지금의 화석정은 이율곡의 5대조 이명신이 세종25년 1443년 지었으나 임진란과 6.25 때 불 타 없어진 것을 다시 복원한 것입니다. 

야화(野話)에는 이명신이 화석정을 지을 때 관솔나무를 많이 썼는데 이는 훗날 조선이 왜적의 침략을 받아 임금이 몽진(蒙塵)에 올라 이곳 임진나루에서 임진강을 건널 것을 예견하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과연 150년 후 1594년 임진란에 한양성은 왜군에게 함락되었고 선조임금은 급하게 피난길에 나섰는데 임진강을 건너려고 이곳 임진나루에 도착했을 때는 칠흑 같은 야밤이었습니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배를 띄울 수 없자 율곡이 관솔나무로 지은 화석정을 태워 강을 건너는 임금의 뱃길을 밤새 밝혀 왜군의 추격에서 벗어나게 하였다고 합니다.

화석정에서 4~50분 오르락내리락 걸어가면 장산전망대에 도착합니다. 이곳이 오늘 걷는 순례길의 중간지점입니다. 화석정이나 장산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초평도와 임진강의 풍경은 매우 아름답습니다. 장산전망대에서는 맑은 날 개성의 송악산도 가까이 볼 수 있습니다. 여기를 지나면 내리막길과 평지길이 이번 순례의 종착지인 임진강역까지 이어집니다. 

임진강역과 인접하여 임진각과 625 관련 기념비들이 서있는 통일공원, 잔디언덕 위에 세워진 복합문화공간인 평화누리공원 등이 있습니다. 또 멀지 않은 곳에 지금까지 발견된 땅굴 중 최대인 제3땅굴이 있습니다. 임진강역에 도착함으로 오늘의 씨순길 행사는 끝납니다. 이후 선택적으로 임진각에서 자유롭게 주변을 둘러보거나 <파주 생각의 집> 씨알공동체집회에 참석하면 됩니다. 서울가는 경의선 전철은 문산역이 시발점입니다. 버스나 열차로 문산역으로 가 서울가는 경의선 전철을 타면 됩니다. 버스정거장은 임진각휴게소와 임진각역에 있습니다. 마지막 임진강역 열차시간은 저녁 6시36분입니다.

이번 순례에서 DMZ까지 진입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임진강 제방길 위의 철조망과 군 초소는 여기가 분단의 현장이라는 것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조용하고 평화로운 장산리, 마정리의 논둑길은 황금빛 벼이삭이 일렁이며 우리로 하여금 풍요와 충만의 느낌을 갖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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