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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e—live—Library

Walden - Henry David Thoreau

by e-bluespirit 2001. 6. 20.

 

 

 


숲속에는 영원한 젊음이 있고,

이 신의 농장 안에서는 예의와 신성이 지배하고 영원한 축제가 마련되어 있다.

숲속에서 우리는 진실과 믿음으로 돌아간다.

땅에 맨발로 서서 머리를 상쾌한 공기로 적시고 무한한 공간으로 치켜들면,

모든 옹졸한 이기심은 사라진다.

나는 투명한 눈망울이 된다.

나는 무다. 나는 모든 것을 본다.

그러면 우주적 존재의 영기가 내 몸을 순환한다.

나는 신의 부분, 아니 신의 꾸러미가 된다.

<자연(1836)>

Henry D. Thoreau


 
 
 
10/05 칼럼 "로남의 문화예술비평" Henry Daivd Thoreau 'Walden'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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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nry David Thoreau, 1817 ¡­ 1862

미국의 시인·비평가·수필가

헨리 데이빗 소로우
(1817~1862)

'세계 문학 사상 그 유레를 찾아볼 수 없는 특이한 책'이라 불리는 <월든>을 쓴 헨리 데이빗 소로우는 1817년에 매사추세츠 주 콩코드에서 태어나 1862년에 죽은 미국의 저술가이다. 하버드 대학을 졸업했으나 안정된 직업을 갖지 않고 측량일이나 목수일등의 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하면서 글을 썼다. 1845년 그는 월든 호숫가(pond)의 숲속에 들어가 통나무집을 짓고 밭을 일구면서 모든 점에서 소박하고 자급자족하는 생활을 2년간에 걸쳐 시도한다. 저서로는 <월든> , <야생사과> 등이 있으며 1862년에 45세의 나이로 콩코드에서 임종했다. <월든>

 

 

무정부주의적 경향을 띠는 급진적 이상주의자?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낚으려는 고기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평생 낚시를 한다.

주도적인 노력에 의해 스스로의 인생을 고결하게 하는 인간의 불가사의한 능력 보다 더욱 고무적인 것은 없다.

일상에서 진정으로 얻는 게 있다면 그것은 햇살이나 저녁노을처럼, 혹은 별이나 무지개처럼 만질 수도 없고 설명할 수도 없는 그 무엇이다.

È환경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변하는 것이다

 

 

소로우. 상당히 유명한 사람이다. 그리고 나의 스승이라 불리우기에도 너무 부담스러운 그런 존재이다. 반드시 읽어보아야 할 필독서로 꼽히는 월든이란 작품. 최근 어느 대학 논술지문으로도 나왔는데 대학생들에게도 상당히 어려운 주제이다. 세금을 내지 않고 차라리 감옥을 들어간다는 것. 무정부주의. 진정한 나의 신조. High Thinking, Simple Life~!의 주인공 에머슨의 친구이자 그의 신조를 정확히 따랐던 인물...그의 삶과 문학에 대해선 다음 사이트를 참조.

이화여자대학교 영문과 문학학회

 

 

1800년대 미국의 사상가로 「월든(Walden)」(「숲속의 생활」로 번역 출간)의 저자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1817∼1862; Henry David Thoreau)는 명문 하버드 대학을 나왔지만, 도시에서의 번잡한 삶과 재산을 버리고 진짜 무소유가 되어서 월든 호숫가 숲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손수 통나무집을 지어서 살았고, 숲속의 땅에 밀을 심고 스스로 반죽해서 만든 빵을 먹고 살았습니다. 옷은 주위의 농부들한테 헌옷을 얻어서 입었고, 월든 호숫가에 집을 짓고 평생을 도시로 나오지 않고 살았습니다. 소로는 오늘날 생각하면 너무 아름다운 환경에서 살았지요. 그렇지만 산 속에서 고독을 벗하면서 혼자 사는데, 아침 숲을 산책하는 것이 그 사람의 하루 일과 중의 하나라고 「저널」에 씌어 있어요. 「저널」은 그 사람의 시적 일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소로는 비록 시인은 아니었지만 굉장히 시적인 삶을 살았다고 생각됩니다. 그 월든 호숫가에서 숲속에 살면서 아침마다 한 일이 뭐냐 하면 해 떠오르는 것을 보는 것, 저녁에 하는 일은 해 지는 것을 보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그걸 일지에 써놨지요. 특히 일출(日出)은 그냥 보는 게 아니라 전율을 얼마나 느끼면서 보는가, 또 '일출에 즈음하여 아침 산책을 나갈 때 새가 지저귈 것이다 하는 기대가 당신을 깨우지 않는다면 당신의 인생에서의 봄, 인생에서의 아침은 이미 지나간 것이다.', '일출과 일몰(日沒)을 보면서 전율하지 않는다면 이미 인생의 아침과 봄은 지나간 것이다.'라는 대목이 인상적입니다. 그의 일지에 따르면 이성과 연애를 한 경험도 없이, 자연과 연애를 하며 살았습니다. 평생을 옷 한 벌로 산 게 그렇게 아름다울 수 없습니다.

 

인간은 상황을 그대로 놔둘수록 그것과 비례해서 정신적으로 풍부해진다

 

소로우 하면 <월든>을 떠올리게 되지만, 1837년부터 1861년 사이에 소로우가 쓴 일기의 일부를 오셸 셰퍼드가 엮은 Thoreau's Jornals를 옮긴 바로 이 책이 더욱 강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사실 출간된 그의 저작 대부분은 소로우 자신이 일기에서 일정 부분을 뽑아 혼합, 재구성한 것들이라고 한다. 간결하고 소박하고 솔직하며, 때로는 날카롭고, 때로는 감상에 빠지기도 하고.....자연스런 생동감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단연 <소로우의 일기>가 <월든>을 능가한다. 1852년에 소로우는 다음과 같이 적기도 했다.

"나는 일기에 적힌 생각들을 토막내어 에세이 형식의 책으로 묶어내기보다는 일기 그 자체를 출간하는 편이 훨씬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일기의 글들은 지금도 여전히 인생과 생생히 맞닿아 있다. 따라서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 부자연스럽다는 느낌은 주지 않을 것이다. 내 생각을 담기에 일기만큼 좋은 그릇은 없는 것 같다." 분명히 일기인 것만은 틀림없는데, 그 한 문장 한 문장이 모두 아포리즘이나 다름없다. <월든>이 소로우의 마음 속에 들어 온 월든 호수라면, <소로우의 일기>는 소로우의 마음 속에 들어 온 세상, 아니 소로우의 마음 바로 그것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의 마음 풍경 몇 장면을 보면 다음과 같다.

가난하게 사는 것이 나의 계획은 아니다. 단지 생계를 유지하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바치면서 살고 싶지 않을 뿐이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돈을 버는 방법에 대해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돈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전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만일 쓰는 방법을 아는 사람이라면 절대 돈을 벌지 않았을 것이다. (1842년, 25세. 날짜 미상)

기쁜 마음으로 글을 써야 진실하고 완성된 잘된 글이 나온다. 몸과 감각과 정신이 협력하지 않고서는 좋은 글을 쓸 수 없다. 인격으로 표현된 글만이 생동감을 가질 수 있다. (1851년, 34세. 9월 2일)

손을 움직여서 열심히 그리고 꾸준히 해야 하는 노동, 특히 그것이 야외에서 하는 노동이라면 문필에 종사하는 자에게 매우 귀한 가치가 있다. 그런 일은 문필가에게 직접적인 도움을 준다. 나는 6일 동안 숲에 가서 측량하는 일을 했다. 저녁에 집에 돌아오면 다소 지치고 힘들지만, 음악이나 시에 평소보다 훨씬 더 민감해진 나 자신을 발견한다. 방안의 공기와 사소한 것들의 모습이나 소리가 나를 황홀하게 만든다. 마치 단식에 의해 왕성한 식욕을 얻은 것과 같다. (1851년, 34세, 11월 20일)

과학이 전해주는 말만 들었을 때, 나는 나무에 대해 거의 아무 것도 알고 있지 못했다. 과학이 말하는 나무는 단지 말이었다. 그 말은 생명의 나무가 아니었다. 그러나 인디언이 나무와 나무의 각 부분에 붙인, 우리의 식물학에는 없는 명칭이 스무 개나 있다. 그 명칭은 보다 실제적이고 생생한 과학을 함축하고 있다. 인디언은 나무와 나무 껍질과 잎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우리의 과학은 대상에 대해 우리가 갖고 있는 지식을 배열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1858년, 41세. 3월 5일)


 

헨리 데이빗 소로우

 

헨리 솔트 지음

에머슨, 휘트먼과 함께 미국 초절주의(超絶主義) 문학의 대표적 작가로 평가받는 '월든'의 작가 헨리 데이빗 소로우(1817~1862)의 전기다. 저자 헨리 솔트(1851~1939)는 단순한 전기작가가 아니라 소로우의 사상적 영향을 받았던 평화주의자, 채식주의자, 사회주의자로서 19세기의 대표적 사회운동가 중 한 명이다. 이런 까닭에 이 책은 소로우의 작품과 사상에 대한 가장 명료하고 통찰력 있는 안내서로 인정받고 있다. 소로우는 솔트를 만나면서 그 진가가 확인되고 명성이 더욱 높아진 셈이다. 양문 발행. 윤규상 옮김 8,800원.

 

                               

 

고독 孤獨 - 월든 中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나의 경험에 의할 것 같으면, 가장 감미롭고 다정한 교제, 가장 순수하고 힘을 북돋아주는 교제는 자연물 가운데서 찾을 수 있는 것 같다 이것은 가련하게도 사람을 싫어하는 사람이나 극도의 우울증이 있는 사람의 경우도 마찬가지일 것으로 생각한다. 자연 가운데 살면서 자신의 감각 기능을 온전하게 유지하는 사람에게는 암담한 우울이란 존재할 여지가 없다. 건강하고 순수한 사람의 귀에는 어떤 폭풍우도 '바람의 신'의 음악으로만 들린다. 소박하고 용기있는 사람을 속된 슬픔으로 몰아넣을 권리를 가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나는 외로움을 느낀 적이 한 번도 없었으며 고독감에 의해 조금이라도 억눌린 적이 없었다. 그러나 꼭 한 번, 그것도 내가 숲에 온지 몇 주일 되지 않아서의 일이었는데, 그 때 나는 주변에 사람들이 있는 것이 명랑하고 건전한 사람의 필수 조건이 아닌가 하는 생각 속에 약 한 시간쯤 빠져 있었다. 혼자 있는 것이 언짢은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나는 내 기분이 정상적이 아니라는 것을 의식했으며 이 기분에서 곧 벗어나게 되리라는 것을 예감으로 느꼈다. 조용히 비가 내리는 가운데 이런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 나는 갑자기 대자연 속에, 후두둑후두둑 떨어지는 비 속에, 또 내 집 주위의 모든 소리와 경치 속에 너무나도 감미롭고 자애로운 우정이 존재하고 있음을 느꼈다. 그것은 나를 지탱해주는 공기 그 자체처럼 무한하고도 설명할 수 없는 우호의 감정이었다. 이웃에 사람이 있음으로써 얻을 수 있다고 생각되던 모든 이점이 대단치 않은 것임을 느꼈고 그 후로는 그런 것을 생각해 본 일이 없다. 솔잎 하나하나가 친화감으로 부풀어올라 나를 친구처럼 대해 주었다. 나는 사람들이 흔히 황량하고 쓸쓸하다고 하는 장소에서도 나와 친근한 어떤 것이 존재함을 분명히 느꼈다. 나는 나에게 혈연적으로 가장 가깝거나 가장 인간적인 것이 반드시 어떤 인간이거나 어떤 마을이지는 않다는 것을, 그리고 이제부터는 어떤 장소도 나에게는 낯선 곳이 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분명히 느꼈다.

 

  사람들은 늘 나에게 이런 말을 하곤 한다. "그곳에선 꽤 외롭겠군요. 특히 눈이나 비가 오거나 밤 같은 때는 이웃이 그립지 않습니까? 그런 사람들에게 나는 이렇게 대답해 주고 싶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 자체가 우주 안의 한 점에 불과합니다. 저 별의 폭의 길이는 인간이 만든 기계로는 측정할 수 없는데, 저 별에 살고 있는 가장 멀리 떨어진 두 사람의 거리가 얼마쯤 된다고 생각하시오? 어째서 내가 외롭게 느끼리라고 생각하지요? 우리의 지구는 은하수 안에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댁이 나에게 한 질문은 핵심을 찌른 질문이 아닙니다. 사람을 그의 동료들로부터 분리시켜 그를 고독하게 만드는 공간은 어떤 종류의 공간이라고 생각합니까? 아무리 발을 부지런히 놀려도 두 사람의 마음이 가까워지지 않는다는 것을 이제 나는 압니다. 사람들은 그 무엇에 가장 가깝게 살기를 원한다고 생각하시오? 많은 사람들 가운데는 분명 아닐 겁니다. 기차역이나 우체국, 공회당, 학교, 잡화점, 술집 같이 사람들이 많이 몰려드는 곳은 아닐 것이요. 물가에 서 있는 버드나무가 물 쪽으로 뿌리를 뻗듯 우리의 온갖 경험에 비추어 보아 생명이 분출되어 나오는 곳, 즉 영원한 생명의 원천이라고 우리가 생각하는 곳에 가까이 살기를 원할 것이요. 사람마다 본성에 따라 각기 다르겠지만 현명한 사람이라면 반드시 그곳에 지하 저장실을 팔 것이요---"

 

  공자孔子는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덕德은 결코 외롭지 않으며 반드시 이웃이 있다."고. 사색을 함으로써 우리는 건전한 의미의 열광 속에 빠질 수 있다. 마음의 의식적인 노력으로 우리는 행위들과 그 결과들로부터 초연하게 서 있을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만사는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격류처럼 우리의 옆을 지나치게 된다. 우리는 자연 속에 전적으로 몰입되어 있지는 않다. 나는 시냇물에 흘러가는 나무토막일 수도 있고, 또는 하늘에서 그 나무토막을 내려다보고 있는 인드라 신(흰두교의 신중 하나로 공기, 눈, 비, 바람과 천둥을 다스린다)일 수도 있다. 나는 어떤 연극 공연에 감동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반면에 나에게 휠씬 더 이해 관계가 있을지 모르는 실제의 사건에 감동을 느끼지 않을 수도 있다. 나는 내 자신을 인간적 실재로서만, 다시 말하면 여러 가지 사고와 감정의 장소로서만 알고 있다. 그리고 나는 다른 사람으로부터는 물론 나 자신으로부터도 멀리 떨어져 있을 수 있는 어떤 이중성을 느끼고 있다.   나의 경험이 아무리 강렬하더라도 나는 나의 일부분이면서 나의 일부분이 아닌 것처럼 나의 경험에 참여하지 않으면서 단지 방관자로서 메모를 하고 있는 어떤 부분이 존재하고 있는 것을 느끼고 있다. 그 부분은 '나'라기보다는 차라리 제삼자라고 할 수 있으리라. 인생의 연극 -그것은 비극일수도 있겠는데- 이 끝나면 그 관객은 제 갈 길을 가버린다. 그 관객에 관한 한 그 인생극은 일종의 허구이며 상상의 작품일 따름인 것이다. 이러한 이중성은 일종의 허구이며 상상의 작품일 따름인 것이다. 이러한 이중성은 종종 우리를 변변치 않은 이웃이나 친구로 만들기에 충분한 것이다.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지내는 것이 심신에 좋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좋은 사람이라도 같이 있으면 곧 싫증이 나고 주의가 산만해진다. 나는 고독만큼이나 친해지기 쉬운 벗을 아직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방안에 홀로 있을 때보다 밖에 나가 사람들 사이를 돌아다닐 때 대개는 더 고독하다. 사색하는 사람이나 일하는 사람은 그가 어디에 있든지 항상 혼자이다. 고독은 한 사람과 그의 동료들 사이에 가로놓인 거리의 길이로 재어지는 것은 아니다. 하버드 대학의 혼잡한 교실에서도 정말 공부에 몰두해 있는 학생은 사막의 수도승만큼이나 홀로인 것이다. 사람들의 교제는 대체로 값이 너무 싸다. 우리는 너무 자주 만나기 때문에 각자 새로운 가치를 획득할 시간적 여유가 없다. 우리는 하루 세끼 식사때마다 만나서는 우리 자신이라는 저 곰팡내 나는 치즈를 새로이 서로에게 맛보인다. 이렇게 자주 만나는 것이 견딜 수 없게 되어 서로 치고 받는 싸움판이 벌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우리는 예의 범절이라는 일정한 규칙들을 협의해 놓아야만 한다.

 

다른 북소리
왜 우리는 그렇게 성공하기 위해 조급히 굴며
또한 그렇게 사업적일까.
만일 어떤 이가 
그의 동료들과 발을 맞추지 않는다면
아마도 그는
다른 북소리를 듣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 박자가 고르거나
또는 늦거나
그로 하여금 그가 듣는 북소리에
발 맞추게 하라.
- 헨리 데이빗 소로우
 
 불교와 영문학의 관�에서의 소로우 

불교와 영문학의 관계를 정확하고 구체적으로 밝히기는 매우 어렵다. 양자가 언제 어떻게 접촉을 시작했는지 그리고 그 관계와 상호 영향이 어떤 양상을 띠고 있었는지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양자의 관계를 모호하고 막연하게 만드는 것은 영문학(나아가서는 서양 문화) 쪽에서 불교와의 접촉은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고 간혹 마지못해 인정하는 경우에도 대부분 인도 철학이라는 막연한 말로 얼버무리거나 제법 전문적인 용어를 쓴다고 해도 힌두 사상 운운하면서 정작 불교라는 말은 빼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양(서양 문학)에 대한 불교의 접촉과 관계는 매우 오랜 역사를 갖고 있고 그 영향력은 직접, 간접으로 상당히 크다고 볼 수 있는데도 서양 사람들이 이를 되도록 외면하거나 부인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불교가 근대 서양 학문과 구체적 관계를 맺은 것은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의 일로서 독일의 관념 철학이 그 좋은 예이다.

 

이 독일 관념 철학을 유럽에 가서 직접 보고 듣고서 큰 감명을 받고 미국에 소개한 사람이 유명한 에머슨(R. W. Emerson, 1803∼82)이다. 당대의 저명한 사상가이자 시인인 에머슨은 독일 관념 철학(불교 사상)에 고취되어 초절주의(Transcendentalism)를 주창하였는데, 이는 이후 미국 문학에 까지 큰 영향을 미쳤다. 에머슨은 인간 영혼(the Over-Soul)이 갖는 절대적 가치를 믿었고 그 영혼에 대한 절대적 신뢰(Self-Reliance)를 강조해서 기독교와 목사직을 모두 버렸다. 그의 이와 같은 사상은 불교적으로 말하면 “自燈明”으로 표현되며 “一切唯心造”로 통한다 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사상의 강력한 교화로 해서 그와 가까웠던 문인들의 집단(Concord Group)에서 그 사상을 실천 수행한 사람이 하나 나타났다. 소로우(H. D. Thoreau, 1817∼62)가 바로 그 사람인데 그는 일생 동안 에머슨을 스승이요, 아버지요, 친구처럼 모시고 따랐다. 에머슨은 소로우를 평하여 “그는 어떤 직업에도 어울리지 않았고 결혼도 하지 않았다. 항상 혼자 살았고 교회에도 나가지 않았다. 투표를 한 일도 없고 나라에 세금 내기를 거부했다. 그는 고기를 입에 대지 않았고 술도 마시지 않았으며 담배를 피운 일도 없다. 그는 자연을 잘 알고 사랑한 사람으로서 사냥을 해 본 일도 없다.”라고 말했는데 어쩌면 타고난 스님 같은 체질과 생활 태도를 지닌 이 젊은이가 하루는 아예 발심을 하고 숲속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1845년 봄에 그는 자기가 살고 있던 콘코드 근처의 월든(Walden)이라는 작은 연못 넓이(약 64에이커)의 북쪽 기슭에 터를 잡고 직접 나무를 베어 너댓 평 되는 작은 오두막을 짓고는 혼자서 생활하기 시작했다. 자기가 기른 채소와 콩으로 끼니를 때우면서 하루의 대부분을 명상으로 보내는 문자 그대로 고독한 수행자의 생활이었다. 그 곳에 파묻혀 독립 독행, 자급 자족의 생활을 즐기던 그의 은둔 생활은 2년 뒤에 에머슨의 요청으로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옴으로서 끝났으나 그의 이 특이한(미국 또는 서양적 사고로 본다면 그저 아연할 따름인) 생활 기록은 1854년 『월든, 숲속의 생활』이란 이름으로 출판되었다. 만약 그의 은둔(수행) 생활이 좀더 오래 계속되었더라면 그의 사상은 어떤 모습으로 결실을 맺었을는지 자못 궁금한 데 아무튼 그의 사상과 생활은 매우 불교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소로우와 월든은 그의 당대에는 크게 알려지지 않았으나 20세기 특히 후반에 와서 빛을 보기 시작하였고, 오늘날에는 미국 문학(나아가 영문학) 사상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 후 불교와 영문학은 그 관계가 밖으로는 크게 들어나지 않다가 20세기에 들어와서 표면화되기 시작했다. 엘리엇(T. S Eliot, 1888∼1965)은 미국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활동한 유명한 시인, 평론가, 극작가로서 20세기 전반기를 주도한 사람이다. 그는 특히 “4월은 잔인한 달…”로서 시작되는 유명한 “황무지”(The Waste Land)로 널리 알려져 있고 20세기의 문학과 사상에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인데 그의 사상적 기반은 동양 사상(특히 불교 사상)에 근거를 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실제로 그는 인도 철학과 산스크리트 어를 깊이 연구한 바 있고 그의 이 연구의 성과는 그대로 그의 작품에 반영되어 있다. 1950년대 미국의 소설가 케로우악(Jack Kerouac, 1922∼1969)과 시인 긴스버그(Allen Ginsberg, 1926∼)는 비트 문학(Beat movement)을 주도해서 “메마르고 무의미한 현대 사회”에 저항했다. 케로우악의 소설 “길 위에서”(On the Road, 1957)와 긴그버그의 시 “절규”(Howl, 1956)는 당시의 젊은이들에게 폭넓은 호응을 받았고 비트 문학은 그 나름대로 문단의 한 흐름을 형성하기도 했으나 오래지 않아 명맥이 끊어지고 말았다. 이들 비트 문학인들은 선 불교(Zen Buddhism)의 영향을 받았음을 공공연히 밝힌 바 있었는데 어쩌면 이것이 불교와 영문학의 관계를 공식적으로 인정한 첫 사례가 아닌가 싶다.

왜? 우리는 성공하려고 그처럼 필사적으로 서두르며, 그처럼 무모하게 일을 추진하는 것일까? 어떤 사람이 자기의 또래들과 보조를 맞추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마 그가 그들과는 다른 고수(鼓手)의 북소리를 듣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로 하여금 자신이 듣는 음악에 맞추어 걸어가도륵 내버려 두라 ‥‥ 그가 꼭 사과나무나 떡갈나무와 같은 속도로 성숙해야한다는 법칙은 없다. 그가 남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 자신의 봄을 여름으로 바꾸어야 한단 말인가.

 

만약 우리의 대학들이 현명하다면 졸업하는 학생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졸업장과 더불어, 아니 졸업장 대신 [월든]을 한 권씩 주어 내 보낼 것이다

- 미국의 작가 E.B 화이트


-" -"죽음이 아닌 마치 아름다운 일이 일어난 것처럼 느껴졌다." 소로우의 친구 해프 왈도 에머슨은 새로 만든 소로우의 무덤을 돌아서며 중얼거렸다."그는 아름다운 영혼을 가졌다. 그는 아름다운 영혼을 가졌어."'진정한 자연의 아들이다. 그가 한 시대를 풍미한 훌륭한 친구들에게 오랫동안 보여준,거의 숭배에 가까운 깊은 배려보다 그의 위대성을 증명해주는 것은 없다.' 라고 썼다. 용감하고 진실된 당신의 생활은 당신을 만난 행복을 누려온 사람들에게 소중한 보물이 될 것입니다.' '그렇게 만족스러운 시간을 보낸 적이 없다오. 그렇게 기쁘고 평화롭게 사는 사람을 본 적이 없소.' 자신과 세상 사이에 평화로움을 유지했다. "그것은 종부성사처럼 보였고 보였고 친구는 최고의 신부였다." 「마인 숲」에 대한 아이디어가 가득했다.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은 "큰사슴"과 "인디언"이었다. '마치 자연은 충실하고 사랑스러운 아들을 환영하여 그 팔에 긴 잠을 재우는 가장 인자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우리가 교회로 들어서자 새들이 노래를 했고 풀밭에는 바이올렛이 일찍 피었으며 소나무들은 부드럽게 자장가를 불렀다…….'

 

소로우 말마따나 "국가에 대한 불복종의 처벌을 받는 편이 복종하는 것보다 어느 모로 보나 내게 손해가 덜 된다. 복종할 경우, 나는 마치 내 가치가 떨어지는 것같이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는 '자연의 부분 부분은 지나간 인생이 다른 생을 만들어 주는 여유를 가르쳐 준다'라고 했다. 그는 또 숲 속에서의 생활을 묻는 사람들에게 '나는 진지한 삶을 살기 위해 숲으로 간다'라고 표현하였다. 나는 천성이 강제를 당하게 되어있지 않다. 나는 나대로 숨을 쉴 것이 다..... 저들은 나를 자기들과 같이 되라고 강요한다. 나는 이렇게 살아라 저렇게 살아라 하는 사람들의 무리에 강요당해서 사람들의 말을 듣지는 않는다. 어떤 종류의 삶이 살아야 할 삶이었던가'

 

숲 속의 생활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는 자라서 직업도 갖지 않고 결혼도 않고 교회도 가지 않도 국가에 세금도 바치지 않았다. 이 책은 경제적 속박이 없는 단순한 자연생활 속에서 인간은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는가 하는 데대한 인생관의 실험보고이며 그의 심오한 사상을 체험을 통해 피력한 것이다.)

 

종종 인간사회와 잡담에 싫증이 나기도 하고, 마을의 모든 친구들에게도 싫증이 났을 때 나는 늘 살고 있는 곳보다 더 멀리 서쪽으로,마을에서도 사람들이 자주 드나들지 않는 곳으로,'신선한 숲,새 목장'으로 헤매었다. 혹은 해가 질 무렵,페어헤이븐 언덕에서 산딸기와 청딸기로 저녁을 하고 며칠 분을 저장해두기도 했다. 과일이란 그것을 사는 사람에게나, 그것을 시장에 내놓기 위해 재배하는 사람에게는 참다운 향기를 내지 않는다. 그향기를 얻는 방법은 한 가지밖에 없는데, 그런 방법으로 향기를 취하는 사람은 별로없다.

산딸기의 향기를 알고 싶다면, 목동이나 꿩한테 물어보라. 산딸기를 따보지 않은 사람이 산딸기 맛을 보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속된 잘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