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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irit/e—cr—life

얼로 거듭나는 것이 인생의 목적입니다 - 박영호 선생님

by e-bluespirit 2004. 8. 14.

 

 

 

 

 

 

 

 

박영호 선생은 1959년부터 1981년까지 20여 년 동안 다석 유영모 선생을 모시고 가르침을 받은 제자로, 성천아카데미에서 다석사상을 강의하고 있다.「문화일보」에 (다석의 생각과 믿음)에 관한 글을 325회에 걸쳐 연재했으며, 두레출판사에서 「진리의 사람 다석 유영모」,「다석 유영모 어록」.「노자 - 빛으로 쓴 얼의 노래」등 (다석사상전집) 10여권을 출간했다. 최근에는 다석 선생의 시조 49수를 해설한 「다석 유영모의 얼의 노래」를 펴냈다. 인터뷰는 박선생의 의왕시 자택에서 이루어졌다.

 

 

안녕하십니까?

 

 초야에 묻혀 사는 사람으로서 인터뷰하기가 쑥스럽지만 기왕 인터뷰 하는 마당이니 인터뷰의 뜻을 먼저 풀어

보고 시작합시다. '인터(inter)'는 '사이' 혹은 '안'을 뜻하고,'뷰(view)'는 '보다'이니까 말 그대로 오늘은 겉 사

람을 보지 말고 속사람을 보고 가면 좋겠습니다. 다석 유영모 선생님도 말씀하시길 대화할 때는 속을 내보이는

게 상대방에 대한 예의고,상대방도 내 속에 있는 속나를 봐주는 게 고맙다고 하셨습니다.그러니 오늘 기왕 오셨

으니까 'outview' 하지 말고 'interview' 하고가세요.

 

선생님은 다석 선생의 사상을 연구하는데 일생을 바치셨는데,먼저 다석 선생의 전기를 쓰게된 경위를 설명해 주십시오.

 

   1970년 늦가을 선생님은 저의 책 『새 시대의 신앙』을읽으시고 이 정도면 당신 사상을 왜곡하지는 않겠다 싶으

셨는지, 봉함엽서에다 (마침보람)이란 졸업증을 써서 보내주셨습니다. 그해에 당신의 전기를 써도 좋다는 승낙을

받았습니다. "나의 일생 동안에 하느님에 대한 원근정반 遠近正反을, 즉 하느님께 멀었나 가까웠나 그리고 발랐나

그르쳤나를 김흥호 교수와 의논하여 처리하시오." 하고 당부하셨습니다.

 

그 과정을 즘 더 자세히 말씀해 주십시오.

 

   저는 선생님의 만년에 선생님에 관한 자료가 망실될 것을  염려하여,둘째 아드님인 자상씨에게 자료를 좀 모아

두어야 나중에 누구라도 선생님 전기를 쓸 수 있을거 아니냐며 편지를 했습니다. 함석헌 선생님은 평소 강연 중

 에도 당신 이야기를 많이 하셨지만,다석 선생님은  YMCA연경반 강의 때도 당신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는

잘 안하셨습니다. 다석 선생의 큰 제자인 함석헌 선생이나 김흥호 교수나 모두 점잖은 분이라서 감히 선생님 전

기에 대해선 어려워서 말을 꺼내지 못했지요. 저는 어리고 시간도 여유가 있고 해서 그런 용기를 낸 것입니다. 그

런데 그 편지를 자상 씨가 아버님에게 보여드리고,또 다석 선생님은 그것을 김흥호 교수에게 보여주었습니다. 그

래서 김교수님이 저에게 찾아와서, 자료가 필요하면 다 도와줄 테니까 열심히 해보라고 격려해주었습니다. 그리

고 이듬해 3월 13일 선생님 생신이 되자 우리 둘이서 함께 선생님을 찾아갔습니다. 마침 오산학교 출신으로 의사

인 최태사선생이 사모님을 돌봐드리러 와서 셋이서 함께 선생님 방에 앉았습니다. 그때 선생님은 당신이 살아오신

회고담을 죽 이야기 해주었습니다. 하지만 90년 인생을 몇 시간동안 들은 것으로 성이 차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 후 틈틈이 시간 날 때마다 쫓아가 묻고 또 묻고 했지요. 어떤 때는 신나게 말씀하시다가, 또 어떤 때는 당신도

쑥스러워 그만 하자고도 말씀하셨지요. 당시는 녹음기가 없어 말씀을 받아 적거나 다석 선생님 일기를 빌려 필사

하면서 자료를 모아나갔죠. 그리고 최소한 선생님이 읽은 책을 나도 독파해야겠다고 생각해서 , 논어에서 맹자 주역

등의 책을 읽어나갔습니다.

 

 1971년도부터 본격적으로 전기를 준비하기 시작하셨군요. 그러면 언제 완성해서 출판하셨습니까?

 

   1984년에 선생님 전기가 나왔으니 13년 걸린 것이지요.원고는 선생님이 돌아가신 1981년 이후에 쓰기 시작

했습니다.쓰는 데만 한 3년 걸렸지요.

 선생님의 신앙고백서인 「새 시대의 신앙」을 쓰신 동기는 무엇이었습니까?

 

   1965년경, 구기동으로 다석 선생님을 찾아뵈었을 때,단사斷辭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날 찾아올 생각이 안나야

되구 편지할 생각도 안 나야 된다 "고 하시는 거예요. 씨앗이 뭉쳐있는 것보다 땅에 흩뿌려져야 하는 것처럼, 이

젠 혼자 독립해서 살아보라는 거지요. 저는 그 말을 처음 듣고는 굉장히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래 저는 눈을 지그

시 감고 이를 악다물고 5년간 혼자서 생활했지요. 처음에는 막막해서 선생님 말씀이 그립기 그지없었으나, 혼자뿐

이니 내면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고,그래서 제 생각을 기록하게된 것이 『새 시대의 신앙』입니다. 함석헌 선

생님 말씀인 "내가 지어내는 것이 내가 먹는 거다."처럼 정신도 마찬가지인 것이지요.다석 선생님이 찾아오지 말

라고 하니, 자급자족할 수밖에 없었던 거지요. 내가 1955년에 서울 YMCA에서 처음으로 선생님을 뵙고, 이듬해

댁으로 찾아갔을 때 대뜸 하시는 말씀이 "생각이 나느냐?" 하고 묻는 거예요. "선생님 강의를 들으면 생각이 난

다"고 대답했더니 , "그러면 됐다."고 하시더라구요. 선생님은 누구를 만나든지 , "어느 학교를 나왔는지 , 가족이 어

떻게 되는지, 재산이 얼마인지" 이런 건 절대로 물어보시는 법이 없어요. 대신 하느님하고 영통靈通하는 인스피레

이션인 생각이 나느냐에 가치를 두신 거지요.

 

새 시대의 신앙」의 책 내용은 어떻습니까?

 

   하느님께 나아가는 과정을 먼저 그리고, 이어 신에서 지로,지에서 믿음으로 나아가는 길을그렸습니다. 2권

에서는 미에서 선으로 선에서 진으로 그리고 아버지에서 스숭으로,스승에서 하느님께로 올라가는 길을 그렸

습니다. 나중에 보니까 미 , 선, 진으로 나가는 과정은 키에르케고르나 파스칼이 비슷한 이야기를 했지만, 아버지

에서 스승으로 그리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과정은 제가 독창적으로 그려낸 것 같습니다. 저는 그것을 씨알, 큰알,

한알로 표현했습니다. 물론 그전에 선생님 강의를 여러해 듣고 나름대로 정리한 것이지만, 혼자의 생각도 많이

가미했습니다. 이 책은 나로서는 졸업논문인 셈인데, 선생님은 이것을 보시고 인정해 주신 것이지요.

 

 그럼 유영모 선생님을 찾아가게 된 동기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함석헌 선생님을 통해서였지요. 17-8세에 6 · 25전쟁이 터져서 다니던 공업학교에도 못가고 학도의용군에 나

갔는데 경북 대구 영천의 낙동강 전투에서 한 달간을치열하게 싸우니 적군이나 아군이나 그 시체가 들판을 가득

메웠지요. 수송에 이용하던 노새들도 수도 없이 나자빠졌지요. 저는 눈앞에서 즉결처분하는 것을 수시로 목격하고

충격을 받아 신경쇠약과 불면증에 걸렸습니다. 그러니 제눈이 무슨 투시경처럼 사람이 걸어다니면 그게 해골처럼

보이고, 버스를 타면 그 안에도 해골이 죽 늘어앉아 있더라구요.잠이 오지 않으니 책만 읽어 제끼는데 당시 유행

하던 칼 힐티의 『잠 못 이루는 밤을 위하여』도 소용이 없더라구요. 그러다 틀스토이의 『참회록』을 읽고 하나님이

계시다는 걸 알게 되니까,비로소 삶의 의미를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톨스토이를 읽으면 비로소 마음이 편안해지

기 때문에 그의 책이라면 무조건 다 구해 읽었지요.나도 모르게 톨스토이안이 된 거지요. 일본에서는 톨스토이안

들이 모여 (새마을)이란 공동체를 운영하며 살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 장준하씨와 안병욱 교수가

하던 사상계사가 부산에 와있었는데, 그 잡지에서 함석헌선생의 글 (한국 기독교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읽고

톨스토이 냄새를 맡았지요. 그래서 함선생님 주소를 알아 편지를 냈습니다. 답장이 왔는데, 함선생도 톨스토이

좋아한다고 그러고, 이따금씩 대구 YMCA에 강연을 나가니 , 그때 한 번 만나자고 하세요. 그리고 <말씀>이 란개

인잡지를 보내주셨어요. 그래 대구 역전에서 함선생님을 처음 만났습니다. 그때 다석 선생님이 톨스토이를 좋아한

다는 말을들었지만,내가다석 선생님이 누군지 몰라 그냥 흘려들었지요. 아무튼 우리도 일본의 <새마을>처럼 신·

앙 공동체를 이루고 살면 좋겠다는 말씀을 강조하셨습니다. 그러다 중앙대학의 구내이발관을 하는 정만수씨라는

분이 천안에 과수원 만평가량이 있는데 함선생님 필요하다면 쓰시라고 했다는 거예요. 저는 몸이 약해 참여하기

를 망설이고 있으려니까, 어느 날 함선생님으로부터 오라는 명령이 떨어졌어요. 저는 선생님이 부르시는데 편안히

기차 타고 갈 수 있겠냐는 심정에서 안동을 거쳐 문경새재를 넘어 천안까지 걸어갔습니다. 천안에 가보니 몇사

람이 먼저 와있었습니다. 천안에서는 낮에는 일하고,저녁에는 함선생님이 구약성경, 소학,고문진보,간디 자서

전 둥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런데 함선생님이 금요일되면 어디로 가시는 거예요. 그러면서 ( '유선생'이라면

그건 유달영 선생을 일컫는데) "일주일에 선생님만큼 정신 생산하는 사람 드물지"하며 그냥 "선생님"께로 간다는

거예요. 그때 함선생님만 해도 하늘처럼 높아 보였는데,그 분이 또 "우리 선생님" 하니까 도대체 어떤 분일까 호

기심이 부쩍 났지요. 그러다가 함선생님 스캔들 사건이 터졌어요. 그 소리를 듣고 나니까, 함선생님 말씀이 은혜

가 은혜로 되지 않는 거예요.그래서 나는 함선생님께 그만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말씀드렸지요. 그랬더니 함선생

님은 탕자의 이야기를 하면서 은근히 저를 붙잡았어요. 그래도 저는 천안을 떠나왔습니다. 그러나 아직 정신적으

로 자립을 못한 상태에서 그곳을 나오니 그만 딱 기가 차는 거예요. 스물 예닐곱 때지요. 그래 김재준 목사에게 편

지를 냈습니다. 그러니 한 번 오라고 하더라구요. 우이동 한신대 학장실로 찾아갔더니 , 신학교로 들어오라는 거예

요. 그러나 함선생님에게 듣던 게 있어서 , 요즘 식으로 말하면 그야말로 코드가 맞지 않아요.

 

그래서 결국 다석 선생님을 찾아간 것이로군요.

 

예, 그래서 다석 선생님이 생각나 YMCA로 찾아갔습니다. 가보니 두루마기를 입고 수염을 기른,키가 조그마

한 분이 말씀을 하시더라구요. 보통 사람들은 다석 선생님 말씀이 어려워 처음에는 잘 알아듣지 못한다고 하는

데, 저는 함선생님으로부터 오리엔테이션을 다 받은 상태라서 그만 말씀이 귀에 쏙쏙 들어오더라구요. 함선생님

말씀엔 늘 정치평론이 곁들이는데, 젊은 혈기엔 그게 그렇게 가슴을 쳤지요. 정신적 혁명 이야기는 감동적이었지

요. 기개가 있는 분이었습니다. 만주에 대한 향수도 강했구요. 그런데 다석 선생님은 철저히 종교적 정신세계만

말씀하시는데, 저는 이것이야말로 내가 바라던 바라고 확신했습니다. 당시 저는 시흥에 살면서 금요일만 기다렸습

니다. 그러다가 이럴 게 아니라 댁으로 한 번 찾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구기동으로 갔지요.선생님 방은 보통

방의 두 배 정도로 넓었습니다. 가운데에 집에서 만든 책장 두개를 나란히 세워 놓고 선생님은 웃방에 책꽃이가

놓인 책상 앞에 널로 된 판대기를 갖다 놓고 그 위에 꿇어앉아 계셨습니다. 선생님은 잠도 그 널판 위에서 주

무셨지요. 사모님은 제가 가니까 내외 하시느라고 바느질 그릇을 들고 자리를 비켜 주시더라구요. 선생님이 늘상

무릎을 꿇고 계시니까, 나도 퍼져 앉을 수 없어서 무릎을 굴하고 앉았지요. 그러다 한 삼십분이 지나니까 다리가

저려서 쩔쩔 맸습니다. 선생님은 점심도 잡수시지 않으니까 저를 앞에 앉혀놓고 한 시간도 좋고 두 시간도 좋고 마

냥 말씀 하시는 거예요. 선생님은 말씀하실 때 제일 신나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다석 유영모 선생님을 모르는 사람이 아직 많으니 그분의   마음을 간략히 소개해 주십시오.

 

   외대 철학과의 이기상 교수를 만나보니까 하는 말이, 우리나라에서 우리철학을 하신 분을 찾아 박종홍 교수,

김지하 시인, 함석헌 선생 등을 연구했는데 , 그 중에서 다석 선생님이 월등하다 이거요. 왜냐면 인간 정신의 경지

는 무엇보다 신관神觀이 뚜렷해야 하는데, 그 점에선 다석선생이 독보적이라는 거예요. 그 다음엔 인성人性에 대한

관이 뚜렷해야 하는데 다석선생의 생각은 세계적인 사상가로 내놓아도 전혀 손색이 없는 분으로 평가하게 되었다

는 겁니다. 핵심을 찔렀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럼 먼저 다석선생의 신관神觀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제가 생각하는 다석 선생의 신관은 이렇습니다. 기존 기독교에선 신의 존재를 의심하지는 않았습니다. 하나님

이 계시다는 건 당연한 전제지요. 그 존재를 증명하려고는하지 않았지요.그런데 불교는 사람들에게 절대를 일

깨우고 납득시키려고 상당한 노력을 하고 있거든요. 기독교의 부족한 점을 앞으로 불교가 상당 부분 메꿔주게 될

겁니다. 만일 보통 사람들이 예수님처럼 확고한 신관을 가지고 있다면야 예수님의 말씀만으로 족하지만, 이 세상

에선 우선 하나님의 존재와 종교에 대한 의심이 많으니까 무조건 믿으라는 기독교 가지고는 만족시켜줄 수가 없습

니다. 불교는 절대 존재를 가르쳐 주려고 얼마나 애쓰는지 몰라요.그래서 불교를 통해 하늘에 계시는 분에 대해

눈을뜨도록 인도하고, 그 다음에 기독교를 통해 믿음을 다지는 게 합리적인 순서입니다. 21세기에는 불교와 기

독교가 서로 보완적인 역할을 하게 될 겁니다. 기독교의 좋은 점과 불교의 좋은 점을 제대로 가려내어 매치시킨

분이 다석 선생님입니다. 요즘 유행하는 다원주의나 혼합주의가 아니라 보다 높은 차원에서 그 일을 하신 겁니다.

   불교에서 따온 것이 허공사상입니다. 기존 기독교에서 미켈란젤로가 그린 허연 수염이 있는 노인네를 하나님으

로 주입하는 것은 미숙한 일이지요. 무형無形한 하나님인데,그건 인태신人態神밖에 안되잖아요. 그리고 사도신경

에 예수님이 올라가서 하나님 오른편에 앉아 있다고 하는데, 그건 무슨 임금님을 중심으로 옆에 선 좌의정 우의정

처럼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건 유치한 신관이지요. 노장老莊에선 무無로 표현하는데 불교의 허공虛空이 훨씬 더 실

감이 나지요. 이 우주조차도 생겼다 없어졌다 한다면, 그리고 처음 아무 것도 없는데 우주가 생겼다면, 그 우주는

허공이 만들어내었다고 생각할 수 있지요. 허공이 존재의 본모습이지요. 그리고 허공의 변태變態된 모습이 우리 같

은 존재들이지요. 스피노자의 말을 빌면, 허공 즉 하나님은 능산能産의 자연이고 우리는 피산彼産의 자연이지요. 변

태는 원상복귀를 해야 되니 없어지는 거죠. 허공은 없는데서 유를 만들어내기도 하고, 도로 무로 돌리기도 하

는 거지요. 생사란 그런 거지요. 허공은 그런 상대를 넘어서는 것입니다. 그것을 증명하려고 애쓰는 것이 부처님의

법문들이지요. 다석 선생님 말씀이 종교를 알려면, 먼저상대와 절대를 잘 알아야 된다고 강조하셨거든요. 그건

다분히 불교적인 이야기지요. 그렇게 새로운 신관을 제시한 겁니다. 허공이 하나님이다. 그리고 만물을 창조하고

거두어들이는 허공의 생명이 성령이다. 성령이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아느냐? 땅속에는 용암이 있어 가끔씩 터져 나

오니까 우리는 땅속에 불덩어리가 있는 것을 알게 되는 거지요. 마찬가지로 예수님처럼 우리 마음 가운데도 영적

인 샘이 있어 성령이 터져 나오니까, 하나님이 영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우리도 알게 되는 거지요. 다석 선생님

은 "이천년 전에 예수나 석가의 마음 가운데 영원한 생명이 샘솟듯이 내 마음 가운데도 성령이 샘솟았다. "고 했지

요. 그러니까 무시무종無始無終의 허공이면서 불생불멸不生不滅의 영적인 존재가 하나님인 거지요. 이건 부정할 수

없어요. 이걸 단적으로 표현한 명구가 <없이 계시는 하느 님>이란 말 아닙니까? 정양모 교수나 김경재 교수 같은

신학자들이 이 말에 무릎을 탁 쳤다는 것 아닙니까? 유신론과 무신론 가지고 싸우는 건 참 유치한 수준이지요.그

에 비하면, 이 말은 기가 막힌 표현 아닙니까? 귀가 제대 로 뚫린 사람은 이런 말 들으면, 가슴이 시원해지지요.

 

 이제 다석 선생님의 인성관人性觀에 대해 들려주십시오.

 

   예전 해방 후에 공산주의의 유물론이 들어오면서 "인간에겐 영혼이 있는 게 아니라, 정보의 다발밖에 없다"고 했

지요. 인간은 태어났을 때부터 영혼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라는점에선,일견 그 말이 일리 있는 것으로들리지요.

다석 선생님은 강의 중에 '엄마가 낳은 나는 참나가 아니야."고 하셨어요. 저는 그 말을 듣고, 엄마가 낳아준 이 나

를 박영호라 하면서 이제껏 살아왔는데 참 기가 막히더라구요. 그럼 나는 어디 있는가 하고 참으로 어리둥절했지

요. 나중에 알고 보니 , 부처님이 35살에 부다가야에서 득도한 것처럼,하나님으로부터 영적 생명을얻어 거듭나는

것이 '참나'고, 진정한 의미에서 영혼을 가진다고 말할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예수님이 4복음서에서 말

하는 '생명'은 이렇게 해서 얻어진 영원한 생명을가리키는 말입니다. 마하트마 간디는 바디(Body)와 마인드

(Mind)는 에고에 속한 거고, 소울(Soul)은 하나님으로 부터 받아야 한다고 표현했습니다. 이 셋이 하모니를 이루

어야 사람 노룻을 한다는 것입니다. 멋진 말이죠. 보통 우리는 '나'라면 엄마 뱃속에서 나온 이것(얼굴을 꼬집으

며)밖에 모르잖아요?그런데 '얼의 나' 라는 것이 있는지 모른다구요. 이것(얼굴을 꼬집으며)은 멸망의 생명이고,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것이 영원한 생명입니다. 이것을 뚜렷이 가르쳐주신 분이 다석 선생님이죠. 그 영적인 나로

거듭 나는 것이 인생의 목적인 것이죠.부처님이 성도 후고향으로 돌아갔을 때 제자들과 함께 걸식을 하니까,아

버지인 정반왕이 뛰어나와 어쩌다 이렇게 되었느냐고 탄식하니까 하는 말이, "나는 샤카족이 아니다"고 했어요.

 샤카족이 아니라 연둥불 이래의 붓다족이라는 것이지요. 자기 아버지 앞에서 자기의 생명은 영적인 생명이라는 것

 을선언한 거지요.돌아가시기 전에 "나는 생노병사生老病死를 여의었다. "고 하신 뜻도 다 여기에 있는 것이지요.

 영원한 생명을 자기는 붙들었다는 것이지요. 바로 ,얼나'가 자기라는 거지요. "내 말을 들으면 멸망의 생명에

 서 영원한 생명으로 옮긴다"는 예수님의 말도 에고에서 영적인 참나로 거듭난다는 말이지요. 다석 선생님은 그것

 을 분명히 알고 일깨워주려고 애쓰셨습니다. 영원한 생명이란 것은 엄마 뱃속에서 나올 때부터 가지고 나오는 게

아니라, 박영호니 유영모니 하는 개체의식을 버렸을 때 비로소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강의하실 때, 엎

어지는 시늉을 하며 "넘어지면 뇌진탕으로 죽어버리는 이 개체 속에 어떻게 영원한 생명이 가두어져 있겠느냐."며

넓은 우주에 넘치게 무소부재無所不在 하는, 호연지기浩然之氣의 나가 영원한 참나라고 강조하셨습니다. 쉽게 얘기하

면 하나님이 내 본 모습이라는 거지요. 비록 우리가 개체로 나누어져 있지만, 우리의 본 모습은 어디까지나 전체

로서의 하나님이라는 겁니다. 우리가 죽으면 유영모니 박영호의 모습으로 하늘나라에 가는 게 아니라, 하나님으로

영생한다는 거지요. 지옥이나 천당에 가거나 혹은 요단강 건너서 다시 만나자고 하는 개체적인 영혼이란 없는 것입

니다. 불교도 높은 차원에 가면 윤회가 무의미해지지요.전생이 있다면,글쎄 어머니 뱃속에서 지낸 열 달 정도라

할 수 있을지 모르지요. DNA가 아들에게로 전해지는 정도인데 그걸 윤회라 하진 않지요. 탐진치는 유전이 되지

만, 진리정신은 유전이 안되요. 스스로 깨닫는 수밖엔 없지요. 단학이나 기운동하는 사람들 중에도 다석사상에 관

심을 가지는 이가 있는데, 그들은 결국 몸 건강하게 하는데로 다 돌아가더라구요. 기독교나 불교도 기복신앙으로

흐르는 경향이 날이 갈수록 더 심해지는 것 같구요.몸을 위하는 종교냐 영을 위하는 종교냐 하는 게 판단의 기준

이 됩니다. 엄격히 말해서 예수님이나 부처님은 몸을 위해 살지 않았기 때문에 그분들의 이름으로 몸을 위해 복

을 준다는 종교는 사교邪敎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요약하면, 엄마 아버지가 낳아준 몸과 마음은 나서 죽는 멸망의 생명이고, 하나님으로부터 다시 영을 받고 거

듭나는 것이 영원한 생명입니다. 신앙생활이란 몸의 나에서 영적인 나로 옮겨가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광야에서

헤매면서 고통을 받고, 부처님도 6년 고행 끝에 비로소 깨달음에 이르면서 그 생명을 부여받은 것이죠. 그분들이

그렇게 괴로워하고 방황하며 진리를 찾아 나선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영적인 생명을 깨닫고 거듭 나지 않으면 살

아도 살은 게 아니라는 그분들의 말씀을 귀담아 들어야합니다. 절대자에 대한 예수와 석가의 직관력은 놀라운

겁니다. 2000여년이 지났지만 까딱도 않는 굳건한 패러다임을 세운 분들 아닙니까? 인간이 짐승과 다른 점이 바

로 이것이지요. 인간이라는 짐승이 짐승이기를 거부하는 생각을 한 게 기적 아닙니까? 그 생각은 정말 하늘에서부

터 왔다고 밖에 말할 수 없는 것 같아요. 삶의 목적은 자식낳아 기르는 게 아니라, 진리를 깨달아 영적으로 거듭나

는 데 있습니다. 자식보다 제자를 기르는 게 참된 인생이지요. 사성제, 즉 고집멸도란 "괴로운 몸, 모인 마음도,에

고도 없애는 게 니르바나에 가는 길이다. "는 뜻으로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입니다. 이 말은 간디의 'When Ego

dies, the Soul awakens. (에고가 죽었을 때 영적인 나를 깨닫는다.)"와 같은 내용이지요. 이 점이 모든 성인의 가

르침의 핵심이며 공통점입니다. 우리가 몸으로는 동물로 태어났지만, 성인들은 동물로 살기를 거부한 사람들이죠.

 

 얼나가 어떻게 해서 영원한 생명인지 좀 더 설명해 주십시오.

 

   왜냐하면 하나님의 생명이니까요. 얼은 나에게서 오는게 아니라 무시무종하고 불생불멸인 하나님으로부터 오

는 것이니까요. 하나님의 생명이니까 영원한 것이지요.우리는 상대세계로 변형이 되어 생사에 걸려 있지만,그

것은 원형 그대로 하나님 생명이 오는 것이니까 영원한 생명인거죠.

 

 그러면 참나는 곧 하나님입니까?

 

   그렇지요. 우리가 하나님으로 영생하는 거지 , 박영호 유영모나 예수나 석가로 영생하는 것은 아니지요. 죽어서

또 예수님이나 부처님 만나면, 저승에도 기독교가 있고 불교가 있어야지 않겠어요?저 세계에도 성경이 있고, 불

경이 있겠어요? 다석 선생님도 "우리가 몸뚱이를 기준으로 생각할 땐 나고 죽고 하지만, 무소부재無所不在한 영

은 나고 죽고가 없다."고 하셨어요.

 그러면 다석 선생의 신관과 인간관을 알았으니, 이제 자연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셨는지 궁금합니다.

 

  대자연은,스피노자의 예를다시 들어 말하면,모든 것을 만들어 내는 능산能産의 자연은 허공이며 생멸하는 피

산의 자연은 이 물질세계가 되죠. 우주에는 빅뱅이 몇 번이나 이루어졌는지 알 수 없지만, 내 생각에는 하나님이

아마불꽃놀이 하시나보다 하고 웃지요. '화엄사상華嚴思想'이란 것도 이 우주를 꽃으로 장엄된 세계라고 보는 것

인데, 하나님이 꽃놀이 하시는 거라고 볼 수도 있지요. 이대자연이란 어떤 의미에서는 하나님의 몸이라고 할 수도

있겠죠. 하나님은 영으로는 불변하고, 자연으로는 자꾸 변하지만, 이 둘이 따로따로가 아니잖아요. 하나님은 변

하면서도() 변하지 않는(不易) 양 모습을 가지고 계신 거지요. 우리는 자꾸 변하는 역의 세계에 있으니까 불역

不易 세계를 찾게 되는 것 아니겠어요. 우리도 하나님속에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실제로 존

재하는 것은 하나님 한 분 뿐이지요. 손오공이 아무리 애써야 부처님 손바닥 안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처럼, 자연

이란 것도 하나님 품속을 벗어날 수 없는 거지요.

 

그렇다면 하나님의 영이 인간한테만 오는 겁니까, 아니면 자연 속에도 깃드나요?

 

   원래는 허공인 영만 있었는데, 영의 변태로 물체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궁극적으로 보면 모든 물체는 영의 변태니

까 다시 원래의 허공으로 돌아가지요. 그런데 인간에게 온 영이란 것은 변해진 영이 아닙니다. 몸은 태어나면서 절대

성을 잃어버리고 상대성을 띠게 된 것이지만, 우리를 자각하게 만드는 그 영은 원형 그대로의 영이죠.사람도 거듭

나지 않으면 영원한 생명인 그 영하고는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깨달은 사람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원형 그대로의 영

을 느낍니다. 영적으로 거듭난 사람이라는 표현은 바로 이것을 가리키지요. 순수이성으로는 하나님을 못 찾으니까,

하나님이 있다고 전제하고 실천이성으로 넘어간 칸트는 오류를 저지른 것입니다. 엄청난 비약이지요. 그러니까 하

나님은 우리를 위해 필요한 하나님으로 전락했지요. 그 때문에 무신론이 엄청 쏟아졌습니다. 유물론도 나오고요. 결

국 칸트는 구경각을 이루지 못한 거지요. 영적인 체험을 못했다는 말입니다. 성령을 체험한 사람은 겉으로는 보통

사람들과 아무런 차이가 없지만, 동물의 본능이라는 탐진치貪瞋痴 수성獸性을 지배하는 힘을 얻게 됩니다. 예수 석

가도 시간만 나면 조용한 곳에 가서 기도하며 재충전하였지요.그만큼 탐진치의 독이 무서운 겁니다. 요한복음 17

장 1절에 하나님의 아들이 와서 온몸을다스릴 능력을 준다고 했지요. 성령은 우리에게 그 힘을 주시죠. 동물의 냄

새를 벗은 사람이 성인 아닙니까? 내가 다석 선생님을 보고 놀라서 매력을 느낀 것은 그 분에겐 그런 속기가 쏙 빠

지고 없더라구요.

 

 욕심내고, 질투하고, 이성에 혹하는 탐진치에 휘둘리지 않는  사람들이란 찾아보기 어려운데, 그 사람들이 이런 좋은 말씀

    을 들으면 처음에는 기쁘겠지만 얼마 가지 않아 좌절을 느낄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좋은 것이란 사실을 알지만,

    막상 현실에 부닥치면 또 다시 탐진치와의 싸움에서 백전백패할 것이기 때문이죠. 영적으로 거듭난다는 것은 보통사람

    으로서는 참으로 어려운 일 아닙니까? 결국 약한 존재인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면 다석 선생의 생각을 전할 수 있을지

    참 어려운 문제입니다.

   예수님이나 부처님이나 참으로 천재적인 신앙인들 아닙니까?하늘이 내린 분들이지요. 하지만 예수님도 겨우

여남은 제자밖에 못 건졌고, 부처님 밑에서도 진정으로 깨달은 사람은 드물지요. 다석 선생님도 서울 YMCA에

서 30여년을 강의했지만,일반인들은 그런 분이 있었다는 것조차 몰랐고,또 그나마 그 동안 거쳐 간 수천 명 중

에서도 끝까지 남은 이는 아쉽게도 한 줌도 안 되잖아요.

 

성천 류달영 선생님도 "다석의 남은 제자는 김흥호, 박영호  둘뿐이다. "고 자주 말씀하셨지요.

 

   부처님이나 예수님이 뭐 말을 잘못해서 그렇습니까? 뭐 깨달음이 낮아서 그렇습니까? 전등傳燈이란 참 어렵고

귀한 것이지요. 어쩌면 다석 선생 밑에서 둘이라도 나온것이 다행일지도 모르지요.

 

 끝으로 바른 믿음이란 것은 어떤 것입니까?

 

   부처님이나 예수님을 신앙의 대상으로 삼지 말고 그분들의 신앙을 본받아야지요. 그분들은 절대를 깨닫고 절대

를 믿은 분인데,우리도 그분들의 가르침에 따라 절대를 바로 알고 절대를 믿어야지 절대는 잊어먹고 오히려 그분

들을 절대시하면 옳지 않습니다. 그야말로 그분들은 달 (절대)을 가리키는 손가락인데 , 우리는 달을 보아야지 손

가락에만 매달리면 안 됩니다.

 

 긴 시간 귀한 말씀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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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World Holds Its Breath

 

 

 

 

 


Vincent Laforet/The New York Times

Niki Bakogianni, a Greek high jumper, carried the Olympic flame to the Acropolis on the eve of the Athens Games. About the same time, two Greek athletes were hurt in a crash hours after missing drug tests.

 

 

 

파르테논 신전의 성화

 

 

‘인류의 화합과 평화를 기원하며.’ 2004 아테네 올림픽이 14일 오전 2시45분(한국시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202개 전 회원국이 참가한 가운데 성대한 개회식을 갖고 17일간의 열전에 돌입했다. 6월 호주 시드니를 출발해 세계 26개국 34개 도시와 그리스 9개 도시를 순회한 성화가 개회식을 앞두고 13일 아크로폴리스언덕의 파르테논 신전에 안치되고 있다.

아테네=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The Swan - Saint Saen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