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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irit/e—Bible—study

2 Chronicles 역대하 33 - 36 장

by e-bluespirit 2010. 1. 10.

 

 

 

 

 

 

 

 

 

 

역대하  33 장 1-25 절‏ 입니다.

 

집을 새로 지으려면 적지 않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지은 집을 허무는 것은 순식간에도 할 수 있습니다.

히스기야가 평생을 걸쳐 이루어 놓은 영적인 부흥운동은 의 아들 므낫세 때 순식간에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므낫세가 행한 죄악이 어떠했고, 그 결과는 어떠했는지 살펴 봅시다.

 


1. 안타까운 아들

히스가야 왕이 죽을 병에 들었다가 기도하여 15년 생명을 연장 받았을 때 낳은 아들이 므낫세 입니다.

그런데 그 아들은 아버지를 본받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히스기야 왕이 죽을 병에서 고침을 받은 것은 분명 큰 은혜였으나,

므낫세로 말미암아 유다가 큰 어려움에 처한 것을 보면 우리고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므낫세는 안타까운 아들이었습니다. 그는 성전 뜰에까지 우상을 세웠습니다.

 


2. 하나님을 아프게 한 사람들

므낫세는 심히 우상을 섬겼습니다. 자기 아들들을 인신제물로 드렸던 그런 사람입니다.

그리고 온 백성으로 우상을 섬기도록 했습니다. 본래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백성이었습니다.

그들이 잘나고 강해서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을 긍휼히 여기셔서 그들을 택해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성전을 더럽히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하는 백성은 강성해 가지만,

하나님의 분노를 쌓는 백성은 패망의 날을 앞당길 수 밖에 없습니다.

 


3. 돌아온 므낫세

하나님께서 전쟁을 일으키시어 므낫세는 쇠사슬에 묶여 바벨론을 끌려 갑니다.

그곳에서 그는 하나님 앞에 겸손히 엎드립니다.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다시 한번 기회를 주십니다.

아무리 무서운 죄를 지었어도 회개하고 돌아오면 하나님은 용서하십니다. 그리고 받아 주십니다.

새 출발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십니다. 그래서 은혜입니다.

 


하나님만 섬기는 복된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역대하  34 장 1-13 절‏ 입니다.

 

나이가 어려도 훌륭한 신앙의 사람이 있습니다.

8세의 어린 나이에 왕이 되서 훌륭한 신앙인으로 자란 왕이 있었습니다. 바로 아몬의 아들 요시아 였습니다.

 


1. 요시야는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했습니다. 사람의 눈은 속일 수 있어도 하나님은 속일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는 것은 말처럼 간단한 것이 아닙니다.

또 그는 다윗의 길로 행하여 치우치지 아니했다고 했습니다. 다윗의 길이란 하나님 중심의 길을 의미합니다.

그의 이런 믿음은 아마도 그의 어머니 '여디다'(왕하22:1)에게서 온듯 합니다.

'여디다'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2. 요시야의 개혁운동

요시야는 증조 할아버지 히스기야 왕 처럼 우상을 타파했습니다.

그의 나이 16세에 하나님을 찾았고, 20세에 나라 안의 우상을 제거하기 시작했습니다.

예루살렘과 유다 땅은 물론 이스라엘 땅의 성읍들에서도 그렇게 했습니다.

그런데 역대기 기자는 우상을 섬기던 성읍들이 황폐하게 되었다고 전합니다.

그렇습니다. 우상을 섬기면 결국 황폐하게 됩니다.

개인의 심령도, 가정도, 산업도, 나라도, 민족도, 우상을 섬기면 망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면 강성해 집니다.

 


3. 제거할 것과 세울 것

신앙의 개혁은 결국 두가지 입니다. 버릴 것은 버리고, 세울 것은 세우는 것입니다.

우상을 버린 요시아 왕은 성전을 세웠습니다. 성전 예배를 회복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시급한 것은 예배의 회복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살 길이기 때문입니다. 예배에 열심을 내시길 바랍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역대하  35 장 1-9 절‏ 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에게 당신을 예배하는 방법을 자세히 알려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백성은 그 알려주신대로 예배하도록 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은 유다의 요시야 왕이 유월절 절기를 지켰다는 내용입니다.

언뜻보면 매년 유월절을 지킨것이 뭐가 그리 대단한가 싶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역대기 기자는 이 사건을 아주 주요하게 다루었습니다. 그 이유를 살펴 봅시다.


1. 중단되었던 유월절

이스라엘이 남과 북으로 분단된 뒤, 유월절 절기를 지키는 것도 제대로 지켜지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이미 살피고 온 대로 히스기야 왕때 유월절 절기가 회복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도 온전치 못했습니다.

정월 14일에 지켜야 할 절기가 이런 저런 사정과 준비 미비로 말미암아 2월 14일 즉 한달이나 연기 되어 지켜졌습니다.

그러던 것이 요시야 왕때 이르러 정월 14일 즉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날짜에 지켜졌던 것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는 준비되어야 합니다. 그 준비부터 하나님을 받으십니다.

새벽기도회도 기도하는 시간만 받으시는 것이 아니라

새벽기도회를 위해 자명종을 켜 놓는 그 시간 부터 하나님은 받으십니다.


2. 요시야의 격려

왕은 잃어버렸던 제사장의 직무를 회복시키고, 레위 사람들에게 해야할 일들을 맡겨 줍니다.

사실 레위사람들이 가장 중요하게 했던 일은 언약궤를 나르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성전이 완성되고 지성소에 언약궤가 안치된 후에는 할 일이 없어졌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레위 사람들로 찬양대를 조직하였으며, 제사장들을 수종들게 하였고, 성전 문을 지키도록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일이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을 섬기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레위 사람들을 격려 했습니다.

3. 자원하는 마음으로

요시야는 유월절 절기를 위해서 양과 염소 그리고 소를 33,000마리를 내 놓았습니다.

왕의 솔선 수범에 방백들과 백성들이 "즐거이" 내놓았다고 했습니다(8절).

여기서 "즐거이"는 "자원하는" 또 "아낌없이" 그런 뜻이 있습니다.

즉 누구의 강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즐거운 마음으로 아낌없이 드렸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즐거이 드리는 것을 기뻐 받으십니다.

억지로 봉사하거나 억지로 보다 자원하는 마음, 자원하는 헌신을 기뻐 받으십니다.

복된 하루 되시길 빕니다.

 

 

 

 

 

 

 

 

역대하  35 장 10-27 절‏ 입니다.

 

요즘 새삼 강조되는 삶의 태도가 남을 향한 '배려'입니다. '배려'를 하려면 상대의 입장에 서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어렵지 않게 '배려'를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아름다운 '배려'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1. 아름다운 배려

유월절 절기를 요시야 왕의 명령에 따라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바쁘게 움직여야 했던 사람들은 제사장들과 레위인들 이었을 것입니다.

하루 종일 제사를 준비하고 드리느라 제사장들은 자기들이 먹을 유월절 음식을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그것을 보던 레위인들이 제사장들의 음식을 준비합니다. '배려'입니다.

이렇게 서로를 배려하며 유월절 절기가 무사히 마쳐졌습니다.

역대기 기자는 요시야왕의 시대에 있었던 유월절을 사무엘 시대 이후 가장 아름답게 지켜진 절기로 평가했습니다.

오늘 교회 안에서도 꼭 있어야 할 것이 바로 '배려'입니다.

누군가를 위한 '배려' 이것이 곧 예수님께서 강조하신 섬김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2. 원치 않은 전쟁과 안타까운 죽음

바벨론이 앗수르를 침공하자 바벨론을 견제하던 애굽은 바벨론을 치러 올라 옵니다.

그 길을 유다가 가로 막습니다.

전쟁에 나간 요시야는 적군의 화살에 중상을 입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오지만 결국 죽고 말았습니다.

그가 죽은 다음 예레미야는 애가를 지었고, 많은 백성들이 그의 죽음을 애도합니다.

훌륭한 신앙인이요, 왕이었던 요시야가 죽었을 때 백성들은 진심으로 애도했습니다.

사람은 죽은 다음에 내려지는 평가가 진정한 평가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죽었을 때 어떤 평가를 받을 수 있을까요?


좋은 하루 되세요.

 

 

 

 

 

 

 

 

역대하  36 장 1-9 절‏ 입니다.

 

누구에게나 절망의 순간은 찾아옵니다. 그 순간을 어떻게 이기느냐는 평소의 신앙에 달려 있습니다.

모든 희망이 다 사라졌을때를 우리는 '하늘이 무너진다'고 표현합니다.

그래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우리 조상들은 생각했습니다.

셀 수 없이 많은 전쟁을 치르며 막다른 골목에 몰리고 또 몰리는 경험을 하면서 살아남은 조상들이 남긴 말일 것입니다.

그렇게 몰려 죽은 분들은 그런 말을 남길 수 없었을 터이니 말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절망의 순간, 하나님을 바라 봅니다.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고통을 주신분도, 징계를 하신분도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유다왕국은 종말로 치닫고 있었습니다. 그 시대를 통치했던 왕들을 살펴 봅시다.


1. 여호아하스 왕

부왕 요시야의 죽음 이후 왕위를 계승한 사람입니다.

역대기 기자는 사람들이 그를 왕으로 세웠다고 기록했습니다.

그가 왕이 되는데 하나님의 뜻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는 23세에 왕이 되어 3개월을 다스리고 애굽의 느고에 의해 폐위 됩니다.

그리고 애굽으로 끌려가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거기서 죽습니다.

열왕기 기자는 그가 하나님 앞에서 악을 행했다고 했습니다(왕하 23:32).

그가 부왕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치 않을 수 없습니다.

최악의 상황으로 보여도 낙심치 말고 끝까지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2. 여호야김 왕

애굽의 느고는 여호아하스의 형제 엘리아김을 왕으로 세우고 이름을 여호야김으로 바꿉니다.

완전 허수아비라는 말입니다.

자기 이름도 제대로 간직할 수 없었던 허수아비였던 것입니다.

당연히 친 애굽정책을 폈고, 당시 일어나던 바벨론과 등을 지고 말았습니다.

돌아가는 국제정세를 제대로 읽지 못했습니다.

예레미야를 통해 바벨론을 청종하라 말씀해 주셨는데도

그는 듣지 않다가 바벨론으로 잡혀가 거기서 죽습니다 (왕하 24:6). 


3. 불행한 왕들

여호야김의 아들 여호야긴이 8세에 왕이 되지만 백일을 다스리고 바벨론으로 끌려갑니다.

사무엘 후기시대 왕을 요구했던 이스라엘을 하나님은 기뻐하지 않으셨습니다.

이스라엘의 왕은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보다 눈에 보이는 왕을 원했습니다.

그리고 세워진 왕들 가운데 하나님 앞에 신실했던 왕들은 정말 몇 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죄악만을 쌓았던 것입니다. 결국 나라는 망하게 됩니다. 

하나님 만이 우리의 왕이십니다. 저들이 진심으로 하나님 만을 의지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날마다 왕이신 하나님을 의지하는 모두가 되시길 바랍니다.

 

 

 

 

 

 

 

 

 


 

 

 

 

 

 

 

http://sahnsem.com by Pastor Joseph Y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