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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irit/e—cr—life

사자를 이기는 아메바

by e-bluespirit 2010. 6. 19.

 

 

 

 

 

 

 

 

 

 

 

 

 

< 사자를 이기는 아메바 >

민중이 지배자에게 결러 대는 것이 아메바가 사자에 대드는 것 같고,
정의감이 권력에 반대하는 것이 빗방울이 바위를 때리는 것 같으나,

바위는 다 할 날이 있어도 빗방울에는 다할 날이 없으며
사자는 죽는 때가 있어도 아메바는 끝이 없다.

절대로 그 기운 죽을 수 없고 그 뿌리 뽑히지 않는다.

꺾으려면 꺾는 제가 꺾이고 마는 법이요,
뽑으려다가 뽑는 제가 도리어 뽑혀버리는 법이다.


-“싸움은 이제부터” 함석헌전집 17권 221쪽 -


 

 

 

< 풀이 >

권력을 가진 지배자와 힘없는 민중의 싸움은 민중에게 승산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불의한 지배자가 가진 무기는 돈과 폭력이고 가난한 민중이 가진 무기는 정의와 생명이다. 돈과 폭력은 강하고 정의와 생명은 연약해 보인다. 그러나 생명은 무궁한 것이고 정의는 진실한 것이다. 무궁한 생명과 진실한 정의를 이기는 것은 세상 천지에 없다. 생명과 정의는 하나님에게서 나오기 때문이다.

- 박재순 -

 

 

< 데모의 뿌리 >

데모의 뿌리는 의분에 있고,
의분의 뿌리는 젊음에 있으며,
젊음의 뿌리는 생명에 있고,
생명의 뿌리는 전능하고 거룩한 하나님에 있다.

삶은 폭발하는 것이요,
일어서는 것이요,
대드는 것이요,
삼키는 것이다.

-“싸움은 이제부터” 함석헌전집 17권 221쪽 -

 

 

< 풀이 >

억압과 불의에 맞선 학생들의 데모, 씨들의 시위는 왜 일어나는가? 의분을 느끼기 때문이다. 생명을 짓밟는 불의한 세력이 있고 생명이 살아있는 한, 의분은 일어날 수밖에 없다. 생명 속에는 전능하고 거룩한 하나님이 살아 계시기 때문에 불의한 억압에 굴복할 수 없다. 절대 자유이신 하나님이 삶의 뿌리이므로 삶은 줄기차게 일어나는 것이다.

- 박재순 -

 

 

< 예수의 실패 >

예수의 실패는 정의(正義)쪽의 실패다.

나도 정의쪽의 실패자인 크리스천이 되려고 하는 것은,
사실은 마지막의 정의를 믿고
정의가 불가능한 세상에 정의가 있도록 하려는데 있다.

예수가 이 세상에 정의를 실현하려고 한지 이천년이 되었다.

아직도 정의는 실현되지 못했지만,
그러나 낙심하지 않고
그 길을 가는 것이 우리들의 일이다.

이것이 이른바 신앙이라는 것이 아닌가.


- 박영호편 씨알의 메아리 122쪽 -


 

 

 

< 풀이 >

불의한 세상의 잣대로 보면 예수의 인생은 실패로 끝났다.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를 이루려고 힘을 다했지만 불의한 권력자들에게 비참한 죽음을 당했다. 정의가 불의에게 짓밟혔다. 예수를 믿고 따르는 사람은 불의한 세상에서 실패와 좌절을 마다하지 않고, 고독과 굴욕당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믿음은 불의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정의가 승리할 것을 확신하고 정의의 길을 가는 것이다. 그러면 언젠가는 반드시 정의가 이기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 박재순 -

 

< 예수의 말씀은 생명과 정신이 붙잡고 나아갈 한 얼 줄 >


이 사람은 예수의 말씀을
‘누리의 빛’으로 알고

나라와 민족을 초월하여
우리의 정신이 나아가는
한 얼 줄이라고 생각한다.

하느님의 아들 예수를 통해
우리가 하늘나라를 밝히고
따져 더 커지도록 힘써야겠다.

이러한 뜻의
영원한‘주일’(主一)을 다하여
그리스도를 완성해 나가야 한다.


- 다석강의 311∼2 -


 

 

 

< 풀이 >

예수의 말씀은 나라와 민족을 초월하여 생명의 나라로 이끄는 줄이다. 캄캄한 밤중 같은 세상에서 우리가 붙잡고 나갈 생명과 얼의 줄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그 말씀 줄을 붙잡고 가면 반드시 하늘나라에 이를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의 말씀에 비추어 하늘나라를 밝히 드러내고 그 말씀을 따라 가면 우리의 생명과 정신이 자라난다. 예수의 말씀이 무엇인가? 오직 하나님 한 분을 모시고 그 뜻을 이루자는 것이다. 그 말씀을 따라 사는 정신과 생명이 그리스도다. 예수의 말씀을 붙잡고 하나님을 향해 나가는 사람들 속에서 그리스도는 완성되고 있다.

- 박재순 -

 

 

< 역사의 수직과 수평 >


사람은 우주 속에 나를 보고 내 속에 우주를 보며,
찰나 속에 영원을 영원 속에 찰나를 본다.
내 안에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 안에 나를 믿는다.

이리하여 죽을 것이 죽지 않는 것을 향하여,
끝 있는 것이 끝없는 데 향하여,
악한 것이 선한 것에 향하여 무한한 발전을 이루어 간다.

그러한 가운데서 현실의 인간이 다 같이 서는 마당을 역사라 부르고,
그 역사의 자라는 매듭을 시대라 한다.
시대는 곧 역사의 말씀 찍음, 생각 찍음, 곧 숨 쉼이다.


-“싸움은 이제부터” 함석헌전집 17권 219쪽 -  

 

 

< 풀이 >

역사의 씨알맹이인 사람 속에서 실존과 우주, 찰나와 영원, 나와 하나님이 만난다. 만나면 하나님을 향한 생명운동이 일어난다. 인간들이 함께 일으키는 생명운동이 역사다. 역사의 생명운동은 하나님의 말씀, 인간의 생각, 생명의 숨으로 매듭이 지어지고, 새롭게 추진되고 향상된다. 숨과 생각과 말씀이 하나로 통하며, 생명의 역사를 창조하고 형성하는 힘이다.

- 박재순 -

 

 

< 생각이 스스로를 찍을 때 >


생각이 스스로를 찍을 때 말씀이 나온다.
말씀은 세계를 없애버리고 또 세계를 짓는다.

이러한 말씀의 시간, 혹은 시간의 찍음,
또는 삶의 매듭을 사람은 여러 겹으로 가진다.

생각하는 찰나의 찍음에서부터 우주적 시대에 이르기까지
가지가지의 세계가 겹겹이 들어 있다.

한 숨의 들어가고 나옴, 하루의 자고 깸,
한 해의 자라고 쉼, 일생의 나고 죽음이 다 그것이다.


-“싸움은 이제부터” 함석헌전집 17권 219쪽 -


 

 

 

< 풀이 >

생각은 단순히 지능의 산물이 아니다. 지능은 생존을 위한 본능의 심부름꾼에 지나지 않는다. 지능은 생존을 위한 꾀를 낼 뿐 스스로를 찍지 않는다. 생각은 자기와 남을 반성하고 비판하는 지성의 행위면서 지성을 넘어선 얼 생명의 행위다. 생각은 스스로를 찍고 얼 생명의 세계로 솟아오른다. 그러면 한없이 깊고 새로운 삶의 세계가 열린다. 덧없는 시간의 삶에서 새롭고 다양한 세계들이 펼쳐진다.

- 박재순 -

 

 

< 머무름 없이 줄곧 가는 것 >


산다는 것은
자꾸 늘려나가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것은
머무름 없이 줄곧 가는 것이다.


- 다석강의 294∼5 -

 

 

< 풀이 >

삶은 자꾸 늘려나가는 것이고 머무름 없이 줄곧 나아가는 것이다. 이런 인생관을 가지면 영원한 젊은이로 살 수 있다. 또 하나님을 믿는 것이 세상의 삶을 버리고 떠나는 것이 아니라, 늘어나고 올라가고 나아가는 삶을 사는 것이다. 시간이 살같이 지나가고 땅이 어지럽게 돌아가고 우주가 허공을 향해 달려 나가니, 이 우주 속에는 머무를 곳이 없다. 머무를 곳은 오직 우주의 맨 꼭대기, 빈탕한데의 절대하나인 하나님의 품뿐이다. 빈탕한데의 하나님께 줄곧 나아가면 삶은 늘어나고 깊어진다.

- 박재순 -

 

 

< 이 찰나에 영생을 느끼지 못하면 >


한 찰나에도
영원히 살림을 살 수 있다.

이 찰나에
영생을 느끼지 못하면

그 사람은
영생이 없다.

- 다석강의  336 -

 

 

< 풀이 >

강물처럼 흘러가는 시간을 막을 수 없지만, 찰나 찰나  주어지는 생명의 순간에는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길이 뚫려 있다. 시간 속에서 시간을 뚫고 시간을 넘어 시간의 강물에 휩쓸리지 않는 생명을 살 수 있다. 시간의 처음과 끝이, 우주의 태초와 종말이 지금 이 순간의 생명 속에 만난다.

하나님은 시간의 가운데이며, 시간의 처음과 끝이다. 지금 여기의 순간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사람은 시간의 처음과 끝을 잡은 사람이다. 시간의 한 가운데서 시간의 처음과 끝을 붙잡은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산다. 시간에 떠밀려 가는 사람은 영생을 느끼지 못하고 그런 사람에게는 영생이 없다.

- 박재순 -

 

 

<7강과 8강>

 "유영모와 예수"

강사: 정 양 모 신부(다석학회 회장)

 

 "다석 유영모의 예수 시편 풀이2"  

 

 

* * * * * * * * * * * * * * * * * * * *



다석은 한글과 한문의 많은 예수 시편을 남겼다.

다석은 1974년 10월 18일 일기를 마지막으로 절필했는데
같은 해 5월31일 쓴 딱 한줄의 글이 그의 마지막 시이다.

“예수여, 그리스도의 길을 걸어 가운데로 가십니다.(윤문)”  

다석은 “그리스도”를 여러 가지로 풀이했다.
예수는 하느님을 몹시 그리워해서 그리스도가 되셨다고 했다.
예수는 하느님을 향해서 똑바로 (그리)서셨다 (直立)고도 풀이했다.

하느님의 말씀은 참 말씀이므로
글이 선다(文立)”라고도 풀이 했다.

또한 예수는 말씀과 행적으로 하느님을 체현하셨으니
하느님을 그리신 셈이라고도 풀이했다.

일반인이 다석의 시를 읽기란 쉽지 않다.

그의 시를 구하기도 힘들뿐더러
우리말 철자법에 구애받지 않았고

한글 창제 당시의 스물여덟자로도 모자라
새로운 글자를 만들어 시를 썼다.

그의 사상은 고매하지만 이해 불가능할 정도로 난삽하다.

이번 강의에서는 정양모 신부의 안내에 따라
다석의 현현한 시의 세계를 여행하도록 한다.

 

 

 

 

 

 

 

 

 

 

 

 

http://www.crlif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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