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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irit/e—cr—life

삶의 매듭과 일의 마디

by e-bluespirit 2010. 5. 9.

 

 

 

 

 

 

 

 

 

 

 

 

 

< 삶의 매듭과 일의 마디 >

한 해 동안 하늘을 뚫을 듯이 자라는
대나무에도 매듭이 있고,
백 천 길 물밑 속에서 배를 지키는
닻줄에도 고리가 있다.

삶은 구절이요 일은 마디다.

그 마디마디를 야무지게 마무르고
그 구절구절을 다부지게 매듭 맺음이
곧 그 생명을 무한히 연장하고
그 일을 영원히 발전시키는 까닭이다.

- “싸움은 이제부터” 함석헌전집 17권 218쪽 -

 

 

 

 

< 풀이 >

꿈에서는 삶이 매임 없이 이어지고 상상에서는 일이 걸림 없이 이루어진다. 현실의 삶에는 매듭이 있고 일에는 마디가 있다. 되는 대로 살 수 없고 아무렇게나 일할 수 없다. 옹글고 참되게 살려면 삶의 구절구절, 대목대목을 다부지게 매듭짓고, 일이 제대로 되게 하려면 일의 마디마디를 야무지게 마무리해야 한다. 옹골찬 삶은 쉽지 않고, 큰일은 저절로 되지 않는다.

- 박재순 -

 

 

 

 

 

 

 < 새 집을 짓자 >


새 집을 짓자.

하나님을 새로이 모실 새 집을.
새 집에는 낡은 물(物)이 남아 있어서는 안 된다.
새 시대의 종교는 순정신적이어야 한다.
그래야 참일 수 있고 평등일 수 있다.

(물질문명에 실망한 사람들의 가슴 속에서 일어나는)
이 회오리바람은

우리에게서 진공만이 남을 때까지 모든 것을 빼앗을 것이다.
그러나 새 집에는 평화와 즐거움과 거룩함이 있을 것이다.
새 시대의 종교는 무신론자를 포용하는 종교일 것이다.



-“새 시대의 하나님” 전집 3권, 248쪽 -

 

 

 

 

 

< 풀이 >

새 시대의 회오리바람이 샤머니즘, 봉건주의, 자본주의의 낡은 찌꺼기를 말끔히 날려버릴 것이다. 그리하여 생명과 정신의 씨알맹이만 남겨놓을 것이다. 씨알은 참과 평등, 사랑과 정의를 나타내는 속알맹이다. 무신론자도 씨알은 믿을 것이다. 씨알이 하나님을 모실 새로운 집이다. 씨알 속에는 평화와 거룩함과 즐거움이 있다.

- 박재순 -

 

 

< 빔을 찬송하라 >


있는 것은 더러운 것이다.

없는 것은 거룩한 것이다.


모든 유는 마침내 없어져서 빔으로 돌아간다.

거기서 나왔으니 거기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빔(空)을 찬송하는 것이다.


- 다석어록 221 -

 

 

 

 

< 풀이 >

물질 자체는 더럽지도 깨끗하지도 않다. 맘은 더러울 수도 있고 깨끗할 수도 있다. 맘이 물질에 잡히면 더럽고, 물질에 대한 탐욕과 집착에서 자유로우면 깨끗하다. 맘에서 보면 있는 것은 더럽고 없는 것은 거룩하다. 맘과 혼이 물질에 붙잡히면 물질과 함께 썩고, 없음과 빔에 이르러 자유로우면 하나님을 만나 참되고 영원한 생명에 들어간다. 그래서 빔을 찬송하라는 것이다.

- 박재순 -

 

 

 

 

< 성령은 형이상학적 바람이다 >


성령도 나는 형이상학적 바람으로 본다.

바람이란 기의 움직임이다.


저 꼭대기(절대세계)에 있는 기가

흘러내려와 나와 통하는 것이 도(道)다.


도란 달리 생각할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의 길이다.


- 다석강의  317 -

 

 

 

 

 

< 풀이 >

성령은 몸과 맘에 체험되고 느껴지는 거룩한 기운이다. 저 하늘 꼭대기, 절대세계에서 거룩한 기운이 흘러내려와 나와 통하는 것이 생명의 길(道)이다. 나의 속의 속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기운과 끊임없이 소통할 때 나의 생명과 정신은 충만하고 영원한 삶에 이른다.

- 박재순 -

 

 

 

 

 

 < 무신론자들의 가슴에 계신 하나님 >


오늘날 무신교도들의 가슴에 하나님이 들어 계시다면
어떻게 할까. 또 사실 아닐까.

불멸전능의 물(物)을 믿다가 그것이 죽으므로
가슴 속에 회오리바람이 인 그들은 현대의 세리와 창기가 아닌가.

예수가 세리, 창기의 친구가 되신 것은 그들의 가슴 속에
하나님의 새로운 전의 터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 생각에는 더러울 듯한데,
거기가 좋다고 역사의 쓰레기통으로 가신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텅 빈 옛 전당의 음음한 기운만이 남는다.


 -“새 시대의 하나님” 전집 3권, 248쪽 -


 

 

 

< 풀이 >

유신론자의 신앙 속에 편견과 탐욕, 위선과 집착이 가득하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하나님이 없다. 한국 기독교의 신앙은 샤머니즘, 봉건주의, 자본주의에 깊이 물들어 있다. 자연과학과 공산주의의 영향으로 무신론을 선택한 사람들은 샤머니즘의 미신, 봉건주의의 억압, 자본주의의 착취를 비판하고 인간의 이성과 물질적 생산력을 믿었다. 솔직히 자본주의 세속사회의 가치를 추구한 사람들은 돈을 따르고 믿었다. 물질적 생산력도 돈의 힘도 생명과 정신을 만족시키고 완성시키지 못한다. 물질과 돈을 따르다가 실망한 사람들에게는 미신과 위선이 없다. 독일 신학자 본회퍼도 말했듯이 이런 무신론자들이 하나님께 더 가까이 있다. 함석헌은 더 나아가서 무신교도들의 가슴에 하나님이 들어 계시다고 한다. 새 역사를 열어 가는 하나님은 진리와 사랑의 하나님이니까.

- 박재순 -

 

 

 

 

 

< 하나님은 잃어버릴 염려 없는 죄수 >

사람이 하나님을 버린 것이다.
하나님이 도망을 하실 리는 없다.

우주간에 하나님을 숨겨둘 만큼 넓고 깊은 장소가 없다.
저는 잃어버릴 염려 없는 죄수다.

붙잡으면 언제나 어디서나 꼭 붙잡을 수 있는 존재다.
그렇기 하나님 잃어버린 것은 사람이 버린 탓이다.


- “새 시대의 하나님” 전집 3권, 243-244 -


 

 

 

 

< 풀이 >

현대문명은 하나님을 버림으로써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은 문명이다. 그래서 일찍이 “하나님은 죽었다”는 말이 나왔다. 하나님이 죽었다는 말은 두려워 할 게 없다. 정말 하나님이 있다면 죽거나 사라질 수 없기 때문이다. 정말 두려운 것은 하나님이 있다고 고백하고 주장하는 종교인들과 종교기관들에 하나님이 없을 뿐 아니라 죽었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이 죽었거나 없어졌다는 것은 사람들의 삶과 생각과 행동 속에 하나님이 없다는 말이다.

왜 하나님이 없어졌는가? 사람이 하나님을 버림으로써, 사람이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당했다. 그래서 하나님이 없어졌다. 이 세상이 구원을 얻으려면 하나님을 다시 만나는 길밖에 없다. 하나님을 어디서 만나는가? 하나님이 숨기에 우주는 너무 작다. 하나님이 사람에게서 숨은 것이 아니라 사람이 하나님을 버린 것이므로 원하기만 한다면 얼마든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 하나님은 내 생명과 정신의 속의 속에 계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함석헌은 하나님을 “잃어버릴 수 없는 죄수”, “언제 어디서나 꼭 붙잡을 수 있는 존재”라고 했다.

- 박재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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