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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irit/e—cr—life

진리란?

by e-bluespirit 2010. 4. 18.

 

 

 

 

 

 

 

 

 

 

 < 진리란?  >


맘이 무한히 자라는 것이

곧 길이며
이치이며
진리이다.


- 다석강의 308 -

 

< 풀이 >

마음이 물질보다 앞선다. 물질세계는 늘 있는 것 같고 마음은 있는 듯 없는 듯 가물가물 하다.

그러나 물질세계는 있다가 없고 없다가 있는 것이며, 결국 닳아 없어질 것이지만, 마음은 한없이 깊고 끝없이 새롭다.

인생과 역사와 우주의 목적은 마음이 무한히 자라고 새롭게 되는 것이다.

하나 됨을 향하여 마음이 솟아올라 앞으로 나가는 것이 생명진화의 길이고 이치이며 진리이다.

- 박재순 -

 

 

 

< 시인이 제 작품 속에 해골을 눕힐 수는 없다 >


예술가는
득의작(得意作) 속에
거주하거나 자족하지 않으며

시인이
자성품(自成品) 속에
해골을 눕힐 수는 없다.

종교가가
자설법 속에
열반할 수는 없을 것이다.


- “빛” 다석일지(영인본) 상. 853-6쪽 -

 

 

< 풀이 >

이 짧은 글에서 다석의 치열한 자유정신을 볼 수 있다.

스스로 잘 됐다 싶은 작품을 만들고 많은 사람들에게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고 해도

예술가는 그 작품에 머무르거나 만족하지 않는다.

참된 예술가는 영원하고 궁극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무한한 자유를 찾는 시인이 자기의 작품 속에 뼈를 묻을 수는 없다.

절대하나인 초월자 하나님을 말하는 종교가가 자신의 설법 속에서 구원받을 수는 없다.

그의 설법은 하나님을 가리키는 작은 손가락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나 자신에게 매여서도 안 되고 내가 한 일에 머물러서도 안 된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이고 영원한 생명의 긋(끝머리)이기 때문이다.

- 박재순 -

 

 

< 서로 다른 것을 하나로 만드는 즐거움 >


서로 다른 것이 나타나는 것은 불행하지만 또 행이다.
자라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로 다른 것을 하나로 만드는 것은
보다 높은 생명이 아니고는 아니 된다.

예수로 인해 나타나신 것은
만물을 하나로 만드는 보다 높은 원리다.

거기 큰 즐거움이 있다.


- “한국기독교의 오늘날 설 자리” 함석헌전집3 19쪽 -

 

 

< 풀이 >

서로 다른 것을 싫어하거나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

만물은 스스로 존재하는 자성(自性)을 가졌고 모든 생명체는 스스로 하는 자발성을 지녔고

사람은 스스로 생각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서로 달라지고 갈라질 수밖에 없다.

서로 다름과 갈라짐은 단절과 소외를 가져오므로 슬프고 안타까운 일이지만,

모두 똑 같다면 세상이 얼마나 삭막하고 재미가 없을까?

서로 다르기 때문에 다양하고 풍성한 세상이 된 것이다.

또한 서로 다름과 갈라짐은 더 큰 하나로 되기 위한 기회이고 도전이다.

서로 다른 것이 보다 큰 하나로 되는 길이 예수를 통해서 나타났다.

서로 다른 만물이 하나로 되는 길을 갈 때 큰 보람과 즐거움이 있다.

- 박재순 -

 

 

< 화(和)의 원리 >


보수파는 보수파의 할 말이 있고,
해방파는 해방파의 할 말이 있다.

그러나 그것이 제 승리를 고집하고
보다 높은 데 이르는 화(和)를 이루지 못한다면 의미가 없다.

이 분별에 분별, 싸움에 싸움, 고난에 고난으로 시련을 당하는 이 나라,
이 기독교의 역사의 의미는 장차 오는 세계의 구원을 위해 화의 원리를 닦는데
있지 않을까?

보수하지만 고집으로는 말라!  
싸우지만 미워함으로는 말라!  

인생의 종교지만 역사의 구원 없이는 개인 구원 없다.
역사의 종교지만 덕 없이는 진보 없다.


- “한국기독교의 오늘날 설 자리” 함석헌전집3 19쪽 -

 

 

< 풀이 >

생명의 역사에는 언제나 현실을 유지하려는 보수파와 현실의 억압을 깨고 진보와 자유를 추구하는 해방파가 있다.

보수파만 있다면 생명의 역사는 주어진 현실 속에서 말라죽을 것이요, 해방파만 있다면 혼란과 파괴 속에서 파멸할 것이다.

상식과 양심이 있다면 보수파와 해방파가 좀 더 성숙하고 깊은 자리에서 조화와 협력을 이룰 것이다.

함석헌의 말대로 기독교의 참된 사명은 서로 대립하는 세력을 사랑과 정의로써 화해와 해방으로 이끄는데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기독교가 한국사회에 들어와서 분열과 갈등을 조장하고 촉진시키는 구실을 했다.

교회가 있는 곳에 화해와 협력이 이루어지기보다 갈등과 다툼이 일어난다.

교회와 기독교기관보다 더 시끄럽게 싸우는 곳을 찾아보기 어렵다.

- 박재순 -

 

 
<  영원한 생명의 끄트머리 ‘나’ >


이 세상에서 나처럼 값비싼 것이 없다.
영원한 생명이 폭발하여 나타나는 나뿐이다.

영원한 생명의 긋(끄트머리)으로서의
‘나’는 나의 이름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이름은 감옥에서 죄수에게 붙인 번호 같은 것이다.
영원한 생명에 이름 없다.

긋을 알면 된다.


- “긋 끝 나 말씀” 다석일지(영인본) 상, 736쪽 -

 

 

< 풀이 >

이 세상에서 ‘나’보다 존귀한 게 없다. ‘나’는 영원한 생명의 값진 끝머리이기 때문이다.

‘긋’은 값과 끝을 함께 나타낸다. 이것은 몸과 맘으로 체험하고 느낄 뿐 이름으로는 나타낼 수 없다.

인생은 나와 남의 긋을 알자는 것이고 참 생명의 긋을 알면 인생은 보람을 얻은 것이다.

- 박재순 -

 

  < 승자도 패자도 없다 >


역사에서는
승자도 없고 패자도 없다.

그것은
사람의 사사 마음에서 나오는 그릇된 생각이다.

승자도 패자도 없는 데 이르자는 것이
싸움의 이유요 목적이다.

하나님의 눈에는

야곱만이 있는 것도 아니요
에서만이 있는 것도 아니다.

올라가는 생명의 운동이 있을 뿐이다.


 - 함석헌전집 3. “한국기독교의 오늘날 설 자리” 17쪽-

 

 

 

< 풀이 >

개체와 집단의 자리에서 보면 역사의 승자와 패자가 뚜렷이 구별된다.

그러나 하나님의 전체 마음에서 보면 승자와 패자가 따로 없다.

오히려 상처받고 신음하는 패자가 먼저 하나님의 품에 안긴다.

인류 역사의 목적은 승자와 패자를 화해와 해방에로 이끄는 사랑과 정의의 하나님께 이르는 것이다.

전체 생명의 자리에서 보면 이기고 짐을 떠나서 하나님께로 올라가는 생명의 운동이 있을 뿐이다.

- 박재순 -

 

 

 

 <  몸성히, 맘 놓여, 뜻 태워 사는 삶  >


몸짓을 잘 가져야 마음 놓임을 얻고,
마음 놓임을 얻어야

뜻을 얻을 수 있어
할 바를 단단히 가질 수 있다.


- 다석강의  309  -

 

 

 

< 풀이 >

다석은 금욕적이고 영적인 삶을 살았지만 삶의 기본 원칙과 수행방법을 ‘몸성히’, ‘맘 놓여’, ‘뜻 태워’로 제시했다.

다석의 사상과 철학을 이해할 때 ‘몸성히’가 앞에 나오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또한 이 세 원리가 다 적극적이고 자유로운 것을 알아야 한다.

삶은 ‘몸성히’에서 시작하여 ‘뜻 태움’으로 완성된다.

언제나 몸이 먼저다. 몸이 성하면 맘이 놓인다.

그리고 뜻과 생각, 마음의 중심을 불태워 살아야 한다.

몸가짐과 행실이 바르게 되어야 맘이 놓이고 맘이 놓여야 뜻이 서고 뜻이 서야 일을 힘 있게 살 수 있다.  

- 박재순 -

 

 

 

 

 

 

 

http://www.crlif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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