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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irit/e—cr—life

일로 일을 풀 수 없다

by e-bluespirit 2012. 9. 16.














< 일로 일을 풀 수 없다 >

일이 많아진 것은 
양심과 하나님은 잊어버리고 
제 손만 보기 때문에 
일어난 화단입니다.

일은 잘못된 생각에서 나왔지만 
한 번 나오면 돌이켜서 
자기를 낳은 그 마음을 
종으로 잡아버립니다. 


그러면 점점 더 
생명은 생각 아니 하고
일만을 생각해서 
일로 일을 해결하려 합니다. 

그러나 될 수 없습니다.
일이란 본래 
생각이 맺힌 것,
얽힌 것입니다. 

그러므로 
일로 일을 
풀 수 없습니다. 

현대가 점점 더 복잡해가는 것, 
더구나도 정치가 점점 더 
기술정치로 돼가는 것은 

거기서 
심정, 인간성이 
빠졌기 때문입니다. 

“생각하는 씨알이라야 산다” 함석헌 전집 8권 61쪽




< 풀이 >
현대사회는 일로 얽힌 사회요 일에 빠진 사회다. 현대인은 일중독에 빠졌고 일의 종이 되었다. 되는 일없이 하는 일만 많다. 그래서 누구나 바쁘다고 아우성이다. 일은 사람 마음에서 나온 것이지만 일이 일을 만들다 보면 일이 마음을 종으로 잡아버린다. 그럼 마음은 빠지고 일이 일을 낳고 일이 일을 만든다. 기계와 기술, 정치와 조직만 발달하고 사람과 생명, 심정과 정신은 사라진다. 
기계와 기술, 정치와 조직이 지배하는 세상에서는 일을 일로만 해결하려 한다. 본래 일은 마음의 생각이 맺히고 얽힌 것이다. 마음과 생각이 풀리지 않으면 일은 결코 풀리지 않는다. 얽히고 맺힌 마음과 생각을 그대로 두고 한 가지 일을 풀면 열 가지 일이 생기기 마련이다. 일을 풀고 일에서 해방되려면 먼저 마음과 마음의 생각을 풀어야 한다. -박재순





 < 삶은 새로운 것 > 

묵는다는 것은 죽는다는 뜻이요 
살았다는 것은 새롭다는 뜻이 된다. 

산다는 자체가 새롭게 되는 것이고 
새 것을 간직하는 것이다. 

세상이 싫다면 이 몸뚱이가 싫다는 것이지 
자연(自然)이 싫다는 것이 아니다. 

죽은 것은 새로운 법이 없다. 
묵은 것은 죽은 것이다. 

묵은 것을 버리고 
새 것을 자꾸 찾는다. 

인생이 그렇고 
우주가 그렇다. 

사는 것은 새롭다는 것이라고 
아마 단언할 수 있을 것이다. 

산다는 것이 
자꾸 새로운 생각을 영원히 낳게 한다. 

- 다석 어록 90~91쪽 -

< 풀이 >
죽은 것은 과거의 유물이 되고 산 것은 새롭게 자라나간다. 산 생명은 과거의 허물을 벗어버리고 미래의 새로운 생명으로 뻗어간다. 자꾸 새로워지기 위해서 생명은 새로운 생각을 영원히 낳는다. 생각은 늘 새로운 것이요 새로운 것을 낳는 것이다. -박재순





< 죽음을 슬퍼하고 놀라는 마음 >  

생명은 하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죽음을 보면 

그것이 
사람의 것이거나 짐승이나 버러지, 
풀의 것이거나 구별할 것 없이, 

저절로 슬퍼하고 놀라는 마음이 있습니다. 

이 마음은 제가 만든 것 아닙니다. 
신비롭게 주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성한 것입니다. 

누가 가르쳐 줄 수도 없고
필요도 없이 있는 것입니다.

천부라고 합니다. 
하늘이 주었습니다. 

하늘이 무엇입니까? 
자연입니다. 
전체입니다. 

알 수 없이 계신 이입니다. 

“생각하는 씨알이라야 산다”   함석헌 전집 8권 60쪽



< 풀이 >
생명의 속으로 깊이 들어가면 생명 전체가 하나로 느껴진다. 생명이 죽을 때는 죽어가는 생명의 아픔 속에서 생명의 깊은 본성이 드러난다. 그러면 저절로 슬퍼하고 놀라는 마음이 생긴다. 함께 슬퍼하고 놀라는 마음은 하늘이 내려준 신비하고 거룩한 것이다. 하늘은 사람이 지어낸 게 아니므로 자연이고 조각낼 수 없는 것이므로 전체이고, 한없이 크고 깊은 것이므로 알 수 없이 계신 이다.
- 박재순 -



씨알시조 : 씨알의 뿌리 하늘에 닿았구나


오천년 한민족이 망하려 하는 때에
안창호 이승훈이 맘 잡고 일어섰네   
몸과 맘 태우고 태워 이 나라를 살리자

민중을 깨우려면 나부터 깨워야지
몸에서 깨어나서 맘 심지 불을 켜라
이 맘을 태우고 태워 어둔 세상 밝히자

씨알의 뿌리 깊어 하늘에 닿았구나
그 뿌리 내 맘 속에 속 깊이 박혔으니
하늘 꽃 몸과 마음에 길이길이 피리라

씨알이 나라근본 나라는 껍데기라
나라가 올바르면 씨알 맘 편안하니
나라를 바로 세워서 마음 편히 살리라

(박재순)






친구의 협박


박근혜 선거대책 본부 공보위원 정준길이 안철수 측의 금태섭 변호사에게 안철수의 비리를 거론하면서 안철수 교수가 대통령 후보에 출마하지 말도록 종용하고 협박했다고 해서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정준길은 친구 사이의 사담이었다 하고 금태섭은 협박이었다고 하니 말이 너무 다르다. 친구 사이의 사담이었다고 보면 대수롭지 않게 넘어갈 일이지만 대통령 후보 물망에 오르는 유력한 사람에게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지 말라는 협박이라면 선거법을 위반한 큰 범죄일 뿐 아니라 도덕적으로도 결코 용납할 수 없는 만행이다.

정준길이 했다는 말은 친구 사이에 사담으로 하기에는 너무 무겁고 엄청난 내용이다. 박근혜 후보를 위해 일하는 정준길이 안철수를 위해 일하는 금태섭에게 안철수 후보의 비리를 거론하며 출마하면 죽게 된다고 말했고 이 말을 들은 사람이 협박으로 여겼다면 정황상 협박이 분명하다. 정준길은 어떨지 모르나 박근혜도 안철수도 금태섭도 지금 하는 일이 인생을 걸고 하는 진지한 일이지 가벼운 농담이나 장난으로 하는 일이 아니다. 만일 정준길이 가벼운 사담의 형태로 말을 했다고 해도 그것은 협박을 사담으로 포장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설사 정준길이 금태섭의 친구로서 친구를 위해서 그런 말을 했다고 해도 그가 말하는 방식과 자세는 근본적으로 잘못 되었다. 정준길의 행태에서 친구에 대한 존중과 배려를 조금도 느낄 수 없다. 친구 사이에는 의리가 있어야 하고 의리까지는 못 되어도 최소한 친구에 대한 애정과 배려가 있어야 한다. 그런 게 없으면 이미 친구가 아니다. 친구에 대한 의리가 없고 기본적인 예의가 없는 사람이 친구를 들먹거리는 것은 친구라는 말을 모독하고 더럽히는 것이다. 

함석헌 선생은 나이 70이 넘어서도 오랜 친구인 송두용 선생을 만나면 서로 큰 절을 하고 안부를 물은 다음 할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친구를 만나고 사귀는데도 깊이와 무게가 있어야 한다. 만일 정준길이 금태섭을 친구로 알아서 금태섭을 걱정하는 맘으로 안철수의 비리를 말하고 출마포기를 종용했다면 말하는 방식과 자세가 그렇게 가볍고 경솔해서는 안 된다. 금태섭을 조용히 찾아가 겸허하고 정성을 다해서 속 마음과 생각을 털어놓고 금태섭을 걱정하는 말을 했어야 한다. 차를 타고 가다가 우연히 생각이 나서 친구를 걱정하는 마음으로 그런 말을 전화로 했다는 것은 정준길의 마음과 자세가 얼마나 가볍고 경솔한 지 말해준다. 

새누리당과 박근혜 후보측의 말대로 정준길은 안철수에게 출마포기를 종용하거나 협박할 위치에 있지 않은데 독단으로 그런 말을 금태섭에게 했다면 정준길의 오만과 건방짐은 하늘을 찌른다. 비록 협박하지 않았다고 해도 확실한 근거없이 상대후보의 비리를 말하고 출마여부를 거론하는 것은 오만하고 건방진 것이다. 정준길의 오만과 건방짐은 어디서 왔을까? 그가 검사생활을 오래 했고 여당 대통령 후보의 측근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검찰과 여당은 권력의 중심에 가깝다. 권력의 중심에 가까이 있다 보면 저도 모르게 우쭐해져서 권력에서 떨어져 있는 사람들에게 오만하고 건방지기 쉽다. 권력의 주인이 국민이고 권력은 국민을 섬기는 것임을 잊으면 권력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그렇게 잘못 되기 쉽다. 
-박재순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도덕성


기업은 좋은 제품을 만들고 높은 이윤을 창출하면 된다는 논리가 아직도 세력을 떨치고 있다. 이런 논리는 자본주의 시장경제 속에서 기업이 높은 경쟁력을 가지고 성공하면 된다는 것이고, 기업과 기업인에게 사회적 책임과 도덕성을 따질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이런 논리는 시장만능을 내세우는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가 위세를 떨치던 시대에는 통했을는지 모르지만 세계경제 위기를 겪고 자본주의 시장경제 자체에 대한 반성과 문제제기가 잇따르고 있는 오늘날에는 더 이상 통할 수 없는 낡은 이론이다. 이것은 시장과 기업의 본질과 목적에 대한 성찰 없이 시장과 기업의 기능과 기능적 논리에만 집착하는 천박한 주장이다.

기업이 좋은 제품을 만들고 높은 이윤을 얻는 것 자체는 잘못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높이 평가되고 격려할 일이다. 그러나 기업이 성공을 거둔 배경과 바탕이 되는 자본주의시장경제가 사회적 책임과 도덕성을 면제 받는 것은 아니다. 돈과 경쟁력을 추구하는 기업과 시장경제가 인간과 사회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좋은 제품을 만들고 높은 이윤을 얻으려면 생산의 효율성을 추구하고 다른 기업들과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한다. 한 기업이 경쟁에서 승리하여 높은 이윤을 얻으면 경쟁에서 패배한 기업들은 도산하거나 낙오 된다. 또 기업이 생산의 효율성을 위해 일자리를 줄이면 사회의 실업자는 늘어난다. 경쟁을 강요하는 시장경제 체제 속에서 소수의 기업은 성공하고 다수의 기업은 실패하거나 어려움에 처하고 사회는 끝없는 경쟁과 갈등에 빠진다. 

높은 이윤을 얻기 위해 한 기업이 생산과 유통을 독점하거나 생산과 유통에서 지배적 지위를 차지하면 사회의 부가 그 기업에 집중된다. 나라와 사회와 국민은 가난한데 기업만 부유해진다. 기업이 사회의 부를 독점하고 세계 1류가 되는데 반해서 다수의 국민은 일자리를 잃고 공동체의 뿌리가 뽑히고 가난으로 내몰린다면 기업과 시장경제는 부도덕하고 무책임한 것이다. 생산과 유통의 효율성과 경쟁력만을 추구하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와 기업논리에 인간과 사회의 삶을 맡겨 놓으면 부와 권력의 양극화가 심화되고 일자리는 줄어들고 다수의 사람들이 공동체적 삶의 뿌리를 뽑히고 정신적 공황에 빠진다. 사랑과 배려가 없는 시장경제와 기업의 논리가 그대로 인간과 사회의 삶에 적용되면 인간과 사회는 반드시 파괴되고 만다. 따라서 시장경제와 기업의 경쟁과 효율성 논리는 엄격히 제한되어야 한다. 가정과 학교교육과 종교 신앙에서는 이윤추구와 경쟁의 논리를 배척해야 한다. 

시장과 기업은 사적 이익 추구의 공간만이 아니다. 시장과 기업은 국가와 인류사회를 위한 공익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시장과 기업도 도덕과 품격을 지녀야 하며 사회적으로 공적 책임을 져야 한다. 기업이 나라와 인류사회와 민중의 삶에서 중심적이고 주도적인 지위에 있다면 나라와 국민, 인류사회와 세계시민에 대한 무한한 책임과 도덕성을 가져야 한다. 기업이 이룩한 부는 자연자원과 민중의 노동과 인간정신의 창의적 노력에 근거한 것이다. 따라서 기업이 이룩한 부를 기업이 독점하고 사유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 그 부의 상당한 부분을 자연과 민중과 정신의 보전과 향상을 위해 써야 한다. 세상에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 많고 돈보다 소중한 것이 있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 돈보다 소중한 것을 돈벌이를 위해 희생시키면 인간 공동체와 정신은 파괴된다. 인간 공동체를 살리고 인간 정신을 높이기 위해서, 돈으로 살 수 없는 것, 돈보다 소중한 것을 지키고 높이기 위해 돈이 쓰여야 한다.  
 -  박재순 -







구경각길(9.1 토) 보고

2012.09.07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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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번 창의문에서 출발하여 북악마루에 오를 때는 2월의 추운 날씨였습니다. 그 때는 추위도 이길 겸 등산하듯 빠르게 걸어 예정된 정확한 시각에 종착지 종로YMCA에 도착했습니다. 이 번에는 안국역에서 출발하여 북촌마을을 지나 반대 편 삼청공원에서 올랐는데 적선동까지 예정된 순례길을 다 걷지 못하고 창의문에서 발걸음을 멈췄습니다. 

이 번에 안국역에서부터 걸었으니 YMCA에서 안국역까지의 인사동길을 생략한 셈입니다. 그 대신 인왕산길을 걸어 다석이 구기동으로 이사하기 전 사시던 적선동까지 걷는다면 시간적으로 충분할 것으로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너무 진행이 지체되어 창의문에 도착했을 때에는 벌써 계획보다 1시간30분 넘는 시간이 지났습니다. 점심시간도 훌쩍 지나 서서히 허기와 갈증과 피로감이 느껴지기 시작합니다. 오늘은 여기 창의문에서 행진을 마무리하기로 했습니다.

씨순길 길잡이의 잘못입니다. 순례란 등산하듯 산길을 달리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며 묵상하며 그리하여 얻은 깨달음을 道伴과 나누며 소통하며 천천히 걸어야 하는 것인데 지난 번 2월의 기록에 너무 의존하여 무리한 시간표를 짰습니다. 앞으로는 '맘' 으로 걷는 느림과 여유의 순례길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전통가옥의 옛 모습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는 북촌마을을 지나 삼청공원과 북악산성곽길을 걷다 보니 12시 넘어 북악마루에 다달았습니다. 예가 다석이 천지인 합일체험을 한 곳입니다. 북악마루에는 다석의 구경각 체험의 증언자라도 되는 듯 바위 하나 서 있습니다. 순례자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어린이가 되어 증언자 이 바위에 올라 두팔을 벌리며 환호하였습니다.

지금까지 열 번의 순례길, 우리 씨순길 순례자의 씨알화두(話頭)가 서서히 들어 나고 있습니다. 우리는 생각하는 씨알이 되어야 합니다. 생각은 깨달음을 생성합니다. 우리는 생각으로 얻은 깨달음에 의지하여 정진하며 믿음의 삶을 삽니다. 지금까지 이야기 되었던 우리의 화두는 '국사광복(國史光復)'과 '헌신의 생활'이 있었으며, 오늘은 '독도지킴'에 대하여 대화하였습니다. 씨순길의 줄기가 튼실하여 이제 풍성한 가지를 뻗기 시작합니다. 씨알정신이 씨순길의 줄기이며 씨알화두, 다양한 씨알 '아젠다'는 씨순길의 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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