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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irit/e—cr—life

우주의 숨 쉼

by e-bluespirit 2012. 7. 22.

 

 

 

 

 

 

 

 

 

 


< 우주의 숨 쉼 >

몸은 때(垢)이며 유한(有限)한 시간이다.
얼은 깨끗(淨)이며 영원한 생명이다.

몸이 죽음이란 한 줄(線)을 넘어가야 사상(思想)에 이른다.

쌀(米)을 먹고 살(肉)이 되듯이
몸은 발전적으로 해소되어 정신이 된다.

몸 부정(否定)이 정신이다.

우리의 몸이 숨을 쉬듯이
이 우주도 숨을 쉰다.

이 우주의 숨 쉼이
성령인 말씀이다.

영원한 생명(하나님)의 활동이 말씀이다.

- 다석 어록 85~6


 

 

< 풀이 >
우주 안에 몸과 정신(맘)과 얼이 있다. 우주의 몸, 정신, 얼이 사람 속에 압축되어 있다. 도가(道家)에서는 정기신(精氣神)이라고도 한다. 정(精)은 몸의 호르몬, 에너지고 기(氣)는 몸과 맘을 움직이는 기운이며, 신(神)은 맘과 정신을 움직이는 얼이다. 몸과 얼이 만나는 자리인 맘은 기에도 감응하고 얼로도 움직인다. 몸과 맘과 얼은 서로 감응하고 생명은 몸에서 맘을 거쳐 얼로 가려는 것이다.
생성소멸하는 물질로 이루어진 몸은 때가 끼고 시간의 제한 속에 산다. 물질이 아닌 얼은 깨끗하고 죽지 않는다. 유한한 ‘몸 생명’을 살면서 영원한 ‘얼 생명’에 이르자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다. 몸을 부정하고 넘어서야 영원한 얼 생명에 이른다. 몸을 부정하고 넘어선다는 것은 죽음을 극복하고 넘어간다는 것을 뜻한다.
사람이 숨을 쉬고 우주가 숨을 쉬는 것은 몸 생명이 얼 생명으로 넘어가는 것이다. 목숨으로 이루어지는 생명 속에서 생각과 말씀의 숨으로 이루어지는 영원한 생명의 활동이 있다. 사람이 애타게 무엇인가를 그리워하고 자꾸 무엇을 생각하는 것은 몸 생명을 넘어 얼 생명에 이르려는 노력이다. -박재순

 

 

 

정신질환의 치유와 씨알정신

 

보건복지부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 10명 중 3명은 평생 한번 이상 정신질환을 경험했고 6명 중 1명은 자살을 심각하게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최근 1년간 자살시도자만 10만 8천 명에 이른다. 대한민국은 정신질환공화국이라고 할 만 하다.

왜 그럴까? 일자리는 없고 먹기 살기는 팍팍한데 우리 사회에는 욕심과 허영, 사치와 향락이 넘쳐난다. 먹고 살기 팍팍한 사람의 마음을 욕심과 허영으로 채우면 정신분열에 빠지기 쉽다. 안정된 일자리를 가지고 돈벌이를 하는 사람들도 일에 밀리고, 삶에 쫓기면서 힘 있고 높은 사람에게 치이고 눌리다 보면 마음이 곤고하게 피폐해지기 마련이다. 남에게 치이고 눌리기 싫어서 먼저 남을 누르고 밟고 차며 사는 사람들의 마음은 더욱 각박하고 삭막하고 여유 없다.

사람들의 삶 속에서 인정이 졸아 들어, 너그러운 맘씨를 만나기 어렵다. 우리 가슴이 아스팔트, 시멘트로 채워져 흙냄새를 맡지 못한지 오래다. 아스팔트길과 시멘트 벽 속에서 컴퓨터와 인터넷 속에서 자연생명세계와 단절된 삶을 산다. 자연생명세계는 인간 삶의 바탕이고 고향이다. 뿌리를 잃은 삶은 불안하고 거칠고 메마르다. 흙을 떠난 삶이 온전할 수 없다. 뿌리를 잃은 삶이 정신질환에 걸리는 것은 당연하다.

오늘 우리 사회에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도 많고 정신질환에 걸릴 사람도 많다. 정신질환에 걸리면 자존감을 잃고 남의 생명에 대한 감수성을 잃는다. 자신 안에서 기쁨의 샘이 마르고 남의 기쁨을 함께 기뻐할 수 없고 남의 고통을 함께 느끼고 함께 아파할 수 없다. 정신질환을 치유하려면 먼저 자존감을 회복해야 한다. 자존감을 지닌 사람만이 남의 기쁨과 아픔을 함께 느낄 수 있다.

정신질환을 치유하는 길은 우리의 몸과 맘에 자연생명세계를 회복하는 것이다. 우리의 몸과 맘에 자연생명세계를 회복하는 길은 우리의 몸과 맘 속에서 생명의 씨알이 싹트고 꽃 피고 열매 맺게 하는 것이다. 씨알정신은 몸과 맘과 얼이 씨알임을 깨닫고 몸과 맘과 얼에 씨알을 두고 씨알을 싹트게 하며 살자는 것이다. 몸과 맘 속에 씨알을 심어놓고 그 씨알이 싹트고 자라게 하는 사람은 결코 정신질환에 걸리는 일이 없을 것이다.

속에 씨알을 품고 사는 사람은 마지막에 후회 없이 죽을 수 있다. 자기 속에 씨알이 싹트고 있음을 느끼는 사람은 어리석고 충동적인 말과 행동을 하려다가도 자제하고 멈출 줄 아는 사람이 될 것이다. 더 나아가서 남의 몸과 맘에서 생명의 씨알, 이성과 영성의 씨알이 싹트고 있음을 믿고 사는 사람은 남을 사랑하고 섬기며 남과 더불어 사는 지혜와 힘을 익히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씨알로 사는 사람은 저도 모르게 저와 남을 씨알누리로 이끌고 새 세상, 새 문명을 지어갈 것이다.
-박재순

 

 

 

 

 

< 생명을 끊을 권리 >

생명은 절대입니다.

사람이 살기 위해 부득이 하는 이외에는
생명 하나를 끊을 권리가 없습니다.


살기 위해서 할 때도 내 권리로가 아니라
전체 대생명(大生命)에 구하고
그 허락을 얻는 심정으로 해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현대는 확실히 타락했습니다.

기술이 발달한 나머지
잘못된 생각에서 나온 죄악입니다.

“생각하는 씨알이라야 산다” 함석헌 전집 8권

 

< 풀이 >
생명은 선택이 아니다. 살까 말까 망설이는 것은 생명의 본성에 어긋난 것이다. 생명(生命)은 말 그대로 살라는 명령(生-命)을 타고난 것이다. 풀은 자살을 모르고 나무는 살까 말까 망설이는 법이 없다. ‘살라!’는 하늘의 명령대로 힘껏 살뿐이다. 사람이 목숨을 타고난 이상 삶과 죽음은 정해진 것이다. 이미 부모를 통해 목숨을 받았고 또 언젠가는 죽도록 예정된 존재다. 사람의 일은 생사를 잊고 오직 사는 일뿐이다. 주어진 삶 속에서 참되고 영원한 삶을 붙잡고 살아야 한다.
몸을 가진 생명의 역설과 모순은 다른 생명을 먹어야 산다는 것이다. 생명은 존귀한 것인데 다른 생명을 먹어야 산다는 것은 잔인한 모순이다. 생명세계에는 한 생명을 살리기 위해 다른 생명의 희생이 따른다. 이 진실을 자각한 인간은 한없이 겸허하고 한없이 고마운 마음으로 다른 생명의 목숨을 먹고 살아야 한다.
옛날에는 먹기 위해 다른 짐승을 잡을 경우에 하늘에 제사지내서 허락받고 고마운 마음으로 잡아먹었다. 인디언들은 작은 나뭇가지를 꺾고 열매를 딸 때도 나무에게 허락과 동의를 구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먹었다. 생명에 대해 고맙고 존중하는 마음을 겸허히 가질 때 인간의 삶은 건전하게 지탱될 수 있었다. 오늘날 상업적 이익을 위해 공장식으로 사육하는 닭과 돼지와 소들에 대해서 경의를 표하는 사람이 누가 있는가? 생명에 대한 존경심과 고마움을 잃은 문명은 존재의 기반과 가치를 잃은 것이다. -박재순

 

 

 

 

한일군사정보협정, 왜 문제인가?

 

이명박 정부가 한일군사정보협정을 은밀하게 추진하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고 물러섰다. 이명박 정부의 사람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일본과의 이런 위험한 군사협정을 추진한 것일까? 그들은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나거나 군사적인 위기가 발생했을 때 미국과 일본의 든든한 지원과 협력을 확보해 놓는 것이 국가의 안보를 위해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들은 어쩌면 일본과의 해묵은 감정을 벗어나서 국가안보를 위해 필요한 결정을 내렸다고 자부할지도 모른다. 이른바 원로라는 이들이 청와대로 가서 한일군사협정을 추진해야 한다고 역설했다니까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 적지 않을 것이다. 국가안보를 앞세우는 낡은 냉전적 사고에 익숙한 사람들이 여전히 많을 것이다. 이런 냉전적 사고는 20세기의 낡은 유물이며 21세기에는 용납해서는 안 될 어리석고 불행한 생각이다.

한일군사협정은 왜 문제인가? 한일군사협정은 한미일 군사협정과 한미일 군사동맹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일본은 2차 대전 이후 평화헌법을 지켜왔으며 평화헌법에 따라 자위대를 두고 있다. 자위대는 말 그대로 나라의 평화와 안전을 지키는 부대일 뿐 전쟁을 일으키거나 전쟁에 참여할 수 없는 부대다. 한일군사협정과 한미일 군사동맹이 맺어지면 일본은 평화협정을 폐기하고 자위대를 국방군으로 바꿀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일본의 우익세력은 기회만 있으면 평화헌법을 폐기하고 자위대를 호전적인 군대로 바꾸려한다. 이명박 정부가 한일군사협정을 맺는다면 일본의 우익세력에게 평화헌법을 폐기하고 호전적 군대를 만들 기회를 제공하는 셈이다.

일본이 호전적인 군사국가로 바뀌고 한미일 군사동맹이 강화되면 한반도와 동아시아는 군사적 긴장과 충돌의 가능성이 매우 높아질 것이다. 한미일 군사동맹은 당연히 북조선과 중국과 러시아의 군사동맹을 촉진하게 된다. 한미일 군사동맹과 조중러 군사동맹이 맞서면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평화와 경제적 번영을 이룰 수 없고 한반도의 통일도 갈수록 어려워질 것이다. 이것은 역사를 거꾸로 가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한반도와 동아시아를 군사적 대결과 충돌로 몰아가는 것이다. 이것은 한민족의 분단을 영구화하고 한민족을 이념적 군사적 갈등과 대결로 몰아가는 것이다.

21세기는 평화와 번영의 시대가 되어야 한다. 군사적 대결의 시대를 넘어서 경제적 번영과 높은 정신문화와 상생평화를 이룩하는 시대가 되어야 한다. 21세기의 군대는 전쟁을 위한 군대가 아니라 평화를 위한 군대가 되어야 한다. 21세기 군대의 목적은 전쟁을 방지하고 평화를 지키고 평화를 확장하는데 있다. 21세기에서 전쟁은 자해와 자살, 상호파괴와 공멸로 이끄는 어리석은 미친 짓이다. 평화를 지키고 확장하는데 군대의 명예와 영광이 있다.

군사적인 위협이 있을 경우에 국방을 튼실하게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필요한 일이다. 국방을 허술하게 하라는 말이 아니다. 다만 21세기는 국가문제와 세계문제를 군사적으로 풀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오늘의 한반도 문제와 세계문제는 세계화 속에서 정치·사회·문화적으로 얽혀 있기 때문에 군사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대화와 협력을 통해서 소통과 사귐을 통해서 세계가 하나로 되는 과정을 통해서 세계문제를 풀어가야 한다. 군사협정과 동맹을 맺는 것은 군사력을 강화하고 군사적 긴장을 높임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지만, 군사협정과 군사동맹은 문제를 풀기보다는 문제를 만드는 것이고 평화로운 세상을 군사적 대결과 전쟁으로 몰아가는 것이다.

21세기에 군사동맹을 맺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21세기는 전쟁을 해서는 안 되는 시대요, 전쟁을 할 수 없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21세기의 인류에게 길은 외줄기 평화의 길밖에 없다. 전쟁은 돌이킬 수 없는 파괴와 공멸을 가져올 뿐이다. 21세기 평화시대를 위해서 맺었던 군사동맹과 협정도 해체해가는 것이 옳다.
-박재순

 

 

 



비봉문수계곡길은 유영모의 50대 초반 신앙적 전기(轉機)와 관련 있습니다. 동생 영묵의 죽음 그리고 호암 문일평의 죽음은 유영모로 하여금 기독교에 입신한 1905년 봄 이래 “38년 만에 믿음”으로 들어가게 합니다. 유영모의 생후 18,925일 되는 날 즉 1942년 1월4일은 거듭난 그의 중생일(重生日)입니다. 유영모는 그날 새벽 이앓이(齒痛)으로 괴로워하는 아내를 위하여 기도하던 중에 파사일진(破私一進)의 신앙적인 큰 희열을 경험합니다.

이번 씨순길인 비봉문수계곡길은 다석일지 제4권 633페이지의 글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 유영모선생님은 52세에 마태복음 7장52절을 읽고 북한산 비봉 밑으로 들여가셨다. 문수계곡에서 나오는 물과 비봉에서 흘러 내리는 물이 마주친 곳에 자리 잡고 계시다...>

한글번역 마태복음 7장은 29장까지 뿐입니다. 마태복음 7장52절은 아마 요한복음 7장53절의 잘못인 듯싶습니다. 박재순 저 “다석 유영모” 50쪽의 다음의 글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다석은 1942년 1월 4일에 “아버지 품에 들어갔다.”면서 이 날을 자신이 거듭난 날(重生日)로 선언하였다. 요한복음 1장 4절(“생명이 말씀에 있으니, 생명은 사람의 빛이라.”)을 자신이 거듭난 날인 1월 4일과 결부시켰다. 그리고는 요한복음 7장 53절과 8장 1절의 말씀을 깊이 새긴다. “(예수를 비난하던 못된 무리들은 날이 저물매) 다 각각 집으로 돌아가고(7,53), 예수는 감람산으로 가셨다.(8,1)” >

8월의 첫 토요일 우리 씨순길 순례자는 유영모의 감람산으로 향합니다. 우리가 유영모 함석헌의 족적을 찾아 걷는 것은 두 선생님의 영성을 흠모하기 때문입니다. 그 두 분이 걸었던 길 위에서 나를 찾고 그 두 분이 걸었던 길 위에서 님을 만나기 위함입니다. 우리의 영적인 성장이 없다면, 커지고 터지고 피어나는 자람이 없다면 우리의 순례길은 허망한 짓일 뿐입니다. 우리는 허망한 짓을 위하여 우리의 생명 한 조각이라도 낭비할 이유가 없습니다.

순례길 개요

유영모 자택지 출발 - 건덕빌라 - 승가통제소 - 승가사 약수터 - 문수계곡 - 구기 갈림길 - 구기통제소 -
유영모 자택지 회귀 (거리 약 5Km)

음식나눔 - 나중에 알림 ( 식당 또는 계곡에서 도시락)

 

미리 가본 순례길(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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