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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irit/e—cr—life

생각은 삶의 행위다

by e-bluespirit 2012. 12. 25.











  < 생각은 삶의 행위다 >

삶을 잘 태우고 불사르는 것은 
생각하는 것이다. 

생각하는 것이 
사는 것이다.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있다.’
라고 데카르트가 말을 했는데 

그 말은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살았다.’는
말과 같다. 

 - 다석 어록 92쪽 -


< 풀이 >
예전에는 생각을 生覺이라고 썼다. 이것은 잘못된 표기이지만 다석이 이해한 생각의 뜻을 잘 나타낸다. 다석은 생각을 생명의 자각(生-覺), 생명의 행위로 보았다. 다석이 데카르트의 명제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를 중요하게 받아들였지만 생각에 대한 두 사람의 견해는 매우 달랐다. 데카르트에게 생각은 현실(존재)과 분리된 관념이었으나 다석에게 생각은 인간의 존재를 불사르고 형성하는 생명행위였다. 생각하는 것은 삶을 불사르는 것이다. 생각하는 것이 사는 것이다. 데카르트의 명제가 다석에게는 “나는 살았다.”는 말로 압축된다. 다석의 철학은 생명철학이고 씨알철학이다. 관념과 논리의 사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서구철학에게 다석의 생명철학은 새로운 출구가 되고 한 줄기 빛이 된다. -박재순




  < 있는 것을 가지고 >

많고 적음, 
잘나고 못났음을 걱정 말고, 

있는 것을 가지고 
같이 살도록 힘씁시다. 

깨어진 박쪽 같은 우리 마음에 
하늘이 준 선(善)의 씨를 담아 

지쳐진 마음 앞에다 내밉시다. 

“같이 살기 운동의 알파 오메가”, 함석헌전집 8권  53쪽 


< 풀이 >

많이 가진 잘난 사람들은 같이 살기 운동을 할 수 없다. 많이 가지면 더 가지고 싶고 잘난 사람은 저 잘난 줄만 알기 때문이다. 못난 사람은 못났기 때문에 남과 더불어 살아야 하고 없는 사람은 없기 때문에 서로 도우며 살아야 한다. 그러므로 못나면 못난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가난하고 못난 사람들이 있는 것을 가지고 같이 살기 운동에 나설 수 있다.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먼저다. 서로 받으려고만 하면 갈수록 오그라들지만 서로 내놓고 주려고 하면 갈수록 풍성해진다. 깨진 쪽박 같은 우리 마음에 하늘이 준 착함의 씨를 담아 밥 한 그릇, 물 한 그릇이라도 지친 사람의 마음에 내놓자. 그러면 나눌수록 더 풍성해지는 같이 살기 운동이 일어난다. 한 가난한 소년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2마리를 내놓아서 5천명이 먹고 열두 광주리가 남았던 것처럼! 

-박재순


대통령 선거의 반성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텔레비전을 통해 개표 방송을 들으며 당혹스러웠다. 문재인 후보의 선거 유세장 열기가 뜨겁고 투표율도 높았기 때문에 문후보가 당선 될 것으로 기대했는데 기대는 어긋나고 말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박근혜 후보가 앞서 나갔다. 선거 결과를 나타내는 상황판은 서울과 호남을 빼놓고는 박 후보의 우세를 나타내는 빨강색으로 빨갛게 물들었다. 선거는 너무 싱겁게 박 후보의 승리로 끝나고 말았다. 문 후보를 열렬히 지지했던 48% 1460만 명의 국민은 패배의 쓴 맛을 보았고 그 가운데 마음속에 깊은 상처를 받고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들도 많았을 것이다. 나도 당황스럽고 가슴이 쓰리면서 갑자기 마음속에 찬 바람이 불었다.  

텔레비전에서 내 감정 상태와 너무 다른 광경을 보며 나는 다시 한 번 놀랐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자의 집 앞에 수많은 지지자들이 몰려들어 기뻐하고, 환호하며 승리의 축제를 벌이고 있었다. 새누리당 당사 앞에도 수많은 군중이 모여 승리의 기쁨을 나누고 있었다. 텔레비전 화면에서지만 그들의 기쁨과 즐거움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저렇게 기뻐하고 좋아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생각과 감정을 현실로 받아들이고 존중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근혜 후보를 지지한 51.6% 국민의 선택과 결정을 현실로 받아들이고 존중하지 않으면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길도 찾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박근혜 후보를 지지한 사람들의 마음과 생각을 헤아리지 못하면 국민 전체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면 앞으로의 대통령 선거에서도 이길 수 있는 길이 열리지 않을 것이다.

민주당은 지난 총선과 대선에서 왜 패배했나? 다수의 국민이 정권교체를 열망했는데 어째서 민주당은 두 차례나 패배했을까? 두 가지 이유가 떠오른다. 첫째 국민 전체의 마음을 읽고 국민 전체의 마음과 소통하고 공감하는데 실패했다. 국민 전체의 마음을 읽으려면 국민 전체의 자리서 국민 전체의 심정으로 생각하고 느껴야 한다. 국민 전체의 자리서 국민 전체의 심정으로 생각하고 느낀다는 것은 국민 전체를 나라의 주인과 주체로 존중하는 것이다. 국민 전체를 나라의 주인과 주체로 존중한다는 것은 국민 전체가 국가권력의 주인과 주체임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이다. 그것은 아무도 어떤 집단이나 당파도 국민 전체에게 속한 국가권력을 사유하거나 독점하지 않는 것이다. 대통령 후보와 국회의원 후보를 결정하고 선택하는 과정에서 국민 전체의 마음과 생각으로 결정하고 사심과 당파심이 개입되지 않아야 한다. 개인이나 특정 집단이 권력을 독점하려고 한다는 느낌을 주었기 때문에 국민의 공감을 얻지 못했던 게 아닐까. 

둘째 정당의 구조와 관행이 국민과 소통하고 공감하기에는 너무 낡고 경직된 것 같다. 오늘 민주시대는 국민이 정치의 주체로서 정치에 직접 참여하고 싶어 한다. 현재의 정당구조에서는 국민이 정치의 주체로 참여할 수 있는 길이 차단되거나 배제된다. 정당구조를 개혁하여 대의민주정치와 직접민주정치가 조화를 이루며 상생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중앙집권적인 정당구조와 기득권을 내려놓고 국민 생활 자치를 지향하는 가볍고 열린 정당 구조가 모색되어야 한다. 

가난한 다수의 국민이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를 지지했다. 텔레비전의 왜곡된 이미지와 선전에 영향을 받아서 가난한 사람들이 부자 정당인 새누리당을 선택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만 보는 것은 국민을 너무 얕잡아 보는 것이다. 가난한 국민일수록 오랜 역사의 시련 속에서 몸으로 체득한 감정과 판단이 있다. 가난한 다수의 국민은 말이나 관념보다는 실력을 존중한다. 기득권 보수세력은 돈과 기관과 제도를 현실 속에서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도덕적으로는 비난을 받더라도 현실적으로는 미더운 존재로 여겨질 수 있다. 민주와 정의를 내세우는 진보세력은 현실적으로 가진 것이 적지만 도덕적 정당성과 민주정신과 철학을 가지고 있다. 민주정신과 철학이 사무쳐서 민주정신과 철학을 삶과 행동으로 실천하지 못하면 진보세력이 국민들 사이에 설 자리는 없다. 말과 주장만으로는 국민을 움직일 수 없다. 몸과 마음, 삶과 행동에 사무친 민주정신과 철학을 갖지 않으면 진보세력은 결코 보수 세력을 이길 수 없다. -박재순







모임시간 : 2013년 1월5일 토요일 10시50분 
모임장소 : 3호선 독립문역 4번출구 지하 태극기쉼터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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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호선 독립문역 4번 출구 지하 태극기쉼터(09:50) - 순국선열추념탑 향례(10:10) - 서대문형무소문화관(10:20) - 서대문구의회(11:00) - 자락길(11:10) - 너와집 쉼터(11:30) - 제1만남의광장(12:00) - 용천(12:20) -  연세대 뒷산(12:30) - 연세대 정문(12:40) - 음식나눔(13:00 장소 미정) - 신촌역(14:00)

서대문독립문공원

서재필이 조직한 독립협회의 발의로1896년 중국사신을 맞이하던 영은문 자리에 세워진 독립문은 1979년 금화터널공사로 지금의 위치로 70미터 옮겨졌고 그 일대는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을 아울러 '서대문독립공원'으로 조성되었다. 대한제국의 마지막 유물인 독립문과 서재필동상이 서 있는 이곳은 정확히 말하여 독립협회의 공원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곳이 의미있는 씨알의 성지가 될 수 있는 것은 일제 강점기 독립애국열사들과 민주인사들이 겪은 옥고와 순국의 현장인 서대문형무소문화역사관이 있기 때문이다. 역사관 안에는 고문도구 족쇄 용수 등 형구와 수형기록표 그리고 이곳에서 순국한 독립운동가의 초상 등이 전시되어 있다. 올해 계사년의 첫 순례길은 이 곳에서 옷깃을 여미며 삼가는 마음가짐으로 이 곳에서 고통을 받은 독립애국지사와 민주인사의 자취를 묵상하며 출발한다. 이번 순례길에서 독립문과 서재필동상은 그냥 지나친다. 독립혐회에 관한 아래 글로 탐방을 대신한다.


독립협회


서재필은 윤치호와 함께 양반계급이 주축이었던 개화파의 막내이다. 물론 그들도 양반 명문가문 출신이다. 개화파가 주동한 갑신졍변이 실패로 돌아가자 서재필은 미국으로 망명하였고 나중에 개하정부가 들어서고 갑신정변의 주모자가 사면되자 서재필은 미국 시민의 자격으로 돌아와 독립협회를 조직하였다. 충군애국(忠君愛國)과 자주독립을 강령으로 1896년 7월부터 1898년 12월에 걸쳐 지속된 독립협회에서 서재필 윤치호 이상재 이완용 남궁억 오세창 등이  활동하였다.


서재필과 윤치호

조국에 돌아온 서재필은 철저하게 미국인 행세를 하였다. 이름은 서재필이 아닌 필립 제이슨이라 하였고 한자로 표기할 때도 피제선(皮堤仙)이라 하였다. 피제선을 거꾸로 읽은 때는 서재필과 비슷한 발음이 된다. 그는 1922~1927년 경에는 국내신문이나 잡지등에 일본의 식민지배에 순응할 것을 주장하기도 했으나 태평양전쟁이 일어나자 미국시민으로서 다시 반일로 돌아섰다. 

윤치호는 대한제국이 일본의 보호국이 되자 처음에는 관직에서 물러나 계몽운동에 나섰다. 한때 그에게 거는 조선 씨알의 기대는 매우 컸었다. 그는 안창호를 누구보다 아끼고 후원했던 사람이다.  1912년 105인 사건으로 3년간 옥고를 치르기 전까지는 그랬다. 그러던 그가 조선 씨알은 독립할 능력과 자격이 없다고 보았다. 오히려 그는 일본군의 승전을 백인에 대한 아시아인의 승리로 간주하고 환호하였다. 그는 일본의 대륙침략과 내선일체 정책에 적극 호응하며 친일행각에 나섰다. 1945년 조국광복 얼마 전에는 일본 귀족원 칙선의원 까지 되었다. 칙선의원이란 일왕이 친히 칙명으로 뽑아 주는 의원을 말한다. 


광복 후


1945년 광복이 되자 서재필은 점령국 미국의 시민으로 다시 한국에 돌아온다. 미군정 고문으로서 극진한 대우를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정에서 그를 대통령으로 추대하는 세력도 있었다. 그는 이승만의 남한 단독정부를 주장을 반대하고 통일국가를 주장하였다. 그러나 그는 한국에 머물기를 원치 않았다. 결국 그는 미국으로 돌아갔다. 그는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한 최초의 한국계 미국인이었다. 

윤치호는 광복 후 4개월 뒤 1945년 12월에 사망하였다. 그는 죽기 전 미군정과 이승만에게 '한 노인의 명상록'이라는 편지를 보냈다. 내용인 즉 1) 공산주의 반대 2) 조국의 광복은 독립운동의 결과가 아닌 연합국의 승리 때문 3) 친일파를 사면하여 민족단결을 호소하는 것이었다. 참으로 한심하고 뻔뻔하고 화나는 내용이다. 민족의 자존과 나라의 독립에 대한 신성모독이다.



왜 그랬을까?


왜 양반 명문가문의 서재필과 윤치호가 조국의 씨알이 되지 못하고 한 사람은 망명하여 미국인이 되었고 다른 한 사람은 침략자 일본에게 스스로 무릎을 꿇었을까?  

명문가문 출신인 그들은 양반으로서 우월의식이 대단했으나 또한 조선인으로서 민족적 열등의식도 깊었다. 윤치호의 친일은 일본의 회유나 강압이 아닌 자발적인 친일이었다. 그에게 조선민족은 절망이었고 부끄럼이었고 독립할 자격도 능력도 없는 우매한 백성이었다. 윤치호와 다른 행적으로 동작동 국립묘지에 묻힌 미국인 서재필도, 그리고 일제말 새벽이 밝아 오기 전 짧은 어둠을 이겨내지 못하고 실족한 일제 말기의 많은 지도자 지식인들도 아마 같은 생각을 가졌었을 것이다.



2013년 첫 순례는(1월5일 토요일)...

서대문독립문공원과 우리나라 독립애국지사와 민주화열사들의 형고(刑苦)의 현장인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 출발하여 안산을 일주하는 자락길을 걷습니다. 아래 일차 답사한 사진이나 다시 상세한 안내를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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