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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irit/e—cr—life

맘 놓고 죽을 수 있는 이여

by e-bluespirit 2013. 1. 27.











< 맘 놓고 죽을 수 있는 이여 >     

맘 놓고 죽을 수 있는 이오.
몸 벗고 살 수 있는 이여, 
말숨을 세우라, 생각을 하니.
생각을 이루라, 말슴을 하니.

(56년 9월 22일)


< 풀이 >
몸은 생명의 껍데기요 얼은 생명의 알맹이다. 몸 생명은 한번 나서 죽는 것이고 얼 생명은 죽음을 넘어서 영원히 사는 것이다. 몸이 죽기 전에 죽음을 체험하고 거듭 난 사람은 맘 놓고 죽을 수 있는 이다. 이미 몸의 죽음을 이겼기 때문이다. 몸을 벗고도 살 수 있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맘 놓고 죽을 수 있는 것이다. 맘 놓고 죽을 수 있고 몸 벗고 죽을 수 있는 이는 말이 통하고 숨이 통하고 생각이 통하는 이다. 

‘말 숨’은 말의 숨이다. 말도 숨도 통하는 것이다. 말과 숨이 깊어지고 높아져야 깊이 높이 통하게 된다. 사람은 생각하고, 말하는 존재다. 생각에서 말이 나온다. 생각을 하면 하늘과 통하고 하늘과 통하면 사람과 통하고 만물과 통한다. 생각하면 이치에 통하고 생명에 통하고 영에 통한다. 생각은 생명의 목숨을 깊고 높게 세우고 말을 깊고 높게 세우는 것이다. 생각함으로써 말과 숨을 세우고 말과 숨이 세워지면 잘 통하게 된다. 

‘말슴’은 말(言)이 서는 것(立)이다. 말이 논리와 개념의 평면을 넘어서 하늘과 땅 사이에서 생기와 얼 숨을 품고 입체로 서는 것이다. 말이 단순한 개념과 논리가 아니라 생명과 얼을 지닌 입체임을 아는 사람은 말을 세우기 위해 생각해야 한다. 생각하면 논리와 개념의 평면, 땅과 물질의 평면에 누운 말과 숨을 세울 수 있다. -박재순




1대 99의 문제를 푸는 마음

세계적으로 사회의 양극화가 심화되어 1대 99의 사회가 되었다. 돈과 권력, 지식과 정보를 독점한 1이 사회의 중심에서 사회를 이끌어가고 99는 생활터전을 잃고 변두리로 밀려났다. 1대 99의 문제는 오늘 우리에게 가장 중요하고 근본적인 문제다.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 크고 어려운 문제이기 때문에 깊이 생각하고 크고 넓은 마음으로 접근해야 한다. 

1대 99로 쪼개진 사회는 특권적인 1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99를 소외시킨다. 그러므로 1대 99로 쪼개진 사회를 전체 하나로 통합하려면 먼저 소외된 99를 헤아리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특권적인 1의 마음만을 헤아려서는 결코 통합적인 사회를 만들 수 없다. 50이나 70의 마음만을 헤아려서도 안 된다. 소외된 모든 사람 99의 마음을 헤아리고 아끼고 배려하는 마음이 있을 때 전체 사회가 통합하는 길로 갈 수 있다. 

그러나 소외된 99의 마음만을 헤아리는 마음으로는 진정한 전체 통합의 길로 갈 수 없다. 99를 소외시키고 배제하는 1의 마음을 헤아리고 배려하고 끌어안는 마음을 가지지 않으면 전체 통합의 길은 열리지 않는다. 특권적인 1을 미워하고 타도하고 제거하는 마음으로는 전체 하나 됨의 길로 갈 수 없다. 

1을 버리는 마음이 있는 한, 1을 버리고 나서 또 다른 1을 버리게 될 것이다. 미워하고 버리는 마음이 있는 한 미운 1은 언제나 있을 것이고 미운 1을 버리고 나면 언제나 다시 미운 1이 나올 것이다. 그렇게 미운 1을 버리다 보면 ‘나’ 하나만 남고 99를 모두 버리게 될 것이다. 또 99를 다 버리고 ‘나’ 하나만 남게 되면 ‘나’ 하나를 미워해서 ‘나’ 하나마저 버리게 될 것이다.

예수가 잃은 양의 비유에서 가르친 것은 전체를 사랑하는 마음이다. 우리에 남겨진 99마리 양을 버려두고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아 헤매는 목자의 심정은 잃은 양 한 마리에게서 양 100마리 전체를 보는 마음이다. 하나에서 ‘전체 하나’를 보는 마음은 전체의 님이신 하나님의 마음이고 자신보다 자녀를 더 사랑하는 어머니의 마음이다. 

민주화, 산업화, 세계화가 동시에 진행되는 오늘의 세계는 한 사람이 인류 전체와 연결되어 있고 인류 전체가 한 사람에게 닿아 있다. 한 사람을 버리는 마음으로는 민주화 산업화 세계화를 이해할 수도 없고 실현하고 완성할 수도 없다. 한 사람에게서 전체를 보는 어머니의 마음을 갖지 않으면 1대 99의 문제를 풀 수 없고 민주화 산업화 세계화를 이룰 수 없다. -박재순







 < 몸에서 캐내는 생각 >   

몸에서 깨, 캐내는 생각으로
산 사람의 나라는
맘이 고맙.

(다석일지 56년 9월 22일)


< 풀이 >

씨알은 스스로 싹트고 스스로 자라고 스스로 꽃 피고 스스로 열매 맺는다. 스스로 피어낸 꽃과 스스로 맺은 열매는 자기를 실현하고 완성하는 것이면서 남을 살리고 이롭게 한다. 생명은 내가 나답게 되면서 전체가 하나로 되어 서로 살리자는 것이다. 생명의 본성과 목적에 맞게 살려면 몸의 잠에서 깨어나야 한다. 물질의 집착과 허영에서 깨어야 한다. 몸은 맘을 품고 맘은 하늘을 품고 있다. 몸 속 깊이 맘이 있고 맘 속 깊이 하늘이 있다. 몸은 하늘과 맘을 잊고 물질의 잠에 빠져 있다. 몸의 잠에서 깨어나고 몸의 욕심과 집착에서 벗어나면 몸과 맘에 하늘이 열린다. 하늘은 몸과 맘 속에 있다. 다석은 맘을 아래아 ㆍ를 써서 표기했다. 아래아 ㆍ로 쓴 맘은 하늘을 품은 맘이다.‘고맙’은 고마움을 뜻하기도 하고 ‘고만 맙시다’의 뜻으로 그치고 자족하는 것을 나타낸다. 

몸에서 깨어나 몸을 떠나는 게 아니라 몸에서 캐내는 생각으로 살아야 한다. 씨알의 생각은 공허한 관념이나 난삽한 이론이 아니라 몸에서 캐내고 삶에서 길어내는 것이다. 몸에서 캐내는 생각이라야 산 생각이고 나와 남을 살리는 생각이다. 몸의 욕심과 집착과 허영에 빠져 살면 맘이 몸의 종노릇을 하게 된다. 맘이 몸의 종이 되면 맘이 맘 노릇을 제대로 못하고 거칠고 사납게 되고 분열에 빠져 미치고 만다. 맘이 거칠고 분열에 빠진 사람들의 나라는 자족할 줄 모르고 고마운 줄 모른다. 아무리 경제성장을 하고 복지제도를 잘 갖추어도 이런 나라는 행복할 수 없는 나라다. 몸에서 깨어 몸에서 캐내는 생각으로 산 사람의 나라에서는 사람들이 욕심과 사나운 주장을 그치고 서로 고마운 맘으로 살게 된다. -박재순





정치인의 반성은 불가능한가?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한 야권의 정치인들에게 뼈를 깎는 반성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반성하는 분위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남이 반성하라고 해서 반성하는 것도 이상한 일이다. 반성은 스스로 하는 것인데 반성해야 한다는 소리만 무성하고 실제로 반성하는 사람이나 집단이 있는 것 같지 않다. 오늘의 실패를 정치적으로 철저히 반성하지 않으면 5년 후 10년 후에 똑같은 실패를 되풀이 할 수 있다. 

19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 아래로부터 국민의 힘이 분출했고 오랜 군사정권을 끝내고 민주정부를 세울 좋은 기회를 맞았다. 그러나 민주화운동 세력이 분열하여 야권 대통령 후보가 두 사람이 나왔고 노태우는 36.6%의 지지를 얻고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이 때 김영삼, 김대중 두 사람이 얻은 표를 합하면 55%나 되었다. 그 때는 군사정권을 끝내고 민주정부를 열어야 했기 때문에 그리고 군사독재의 억압을 뚫고 국민이 하나로 일어섰기 때문에 지금보다 야당 정치권의 책임이 더 무겁고 절실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너무나 허망하게 야권의 분열로 군사정부에게 승리를 안겨주고 말았다. 

만일 1987년에 민주정부를 세울 수 있었다면 한국사회는 전혀 다른 모습을 지니게 되었을 것이다. 당시는 아직 보수기득권 세력이 지금처럼 사회 전반을 장악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 때 민주정부가 섰다면 우리 사회의 기풍과 성격이 지금과는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1987년의 정치적 실패는 참으로 뼈아픈 실패였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그 당시 야권의 분열에 직접 간접으로 책임이 있는 사람들과 집단들 가운데 진지하게 반성하는 사람들과 집단들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그 때부터 지금까지 25년 동안 참으로 기이할 정도로 반성하는 사람이 없었다. 

2012년 대통령 선거의 패배를 놓고도 야권의 정치인들에게서 뼈를 깎는 반성을 찾아보기 어려운 것 같다. 그 때 철저한 반성이 없었기 때문에 다시 어이없는 정치적 실패와 패배가 되풀이 된 것으로 생각된다. 25년 전에도 4자필승론을 내세우며 주관적 신념과 주장에 파묻혀 대통령 선거를 치르다 역사의 죄인들이 되고 말았다.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도 야당 후보가 되기만 하면 승리한다는 주관적 신념과 주장에 빠져 선거를 치르다 패하고 말았다. 야당 정치권은 25년 전 패배의 교훈에서 배운 게 없었기 때문에 똑 같은 실패를 되풀이 하고 말았다. 뼈아픈 반성을 통해 역사의 교훈에서 배우지 못하면 5년 후 10년 후 똑 같은 실패를 되풀이 하게 될 것이다. 역사는 용서가 없다. -박재순










누가 대한민국 지금의 독립을 우리의 힘이 아닌 2차 세계대전 연합국 승리의 결과라고, 외세의 은공이라고 말합니까?  누가 뭐라해도 일본제국주의 식민통치로 부터 대한의 독립은 애국선열의 피의 투쟁과 우리 씨알의 끈질긴 저항으로 당당하게 쟁취한 것입니다. 

언제나 비정한 것이 국제사회의 약육강식 질서입니다. 2차 대전 후 압제자 일본이 패망하였다하여 나라의 독립이 그냥 주어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우리의 선열들이 투쟁하며 저항하며 피 흘린 숭고한 희생을 대가로 얻은 소중한 독립이었습니다.  

근현대사 초기 우리의 힘이 부족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래서 나라를 빼앗겼었고 전후 처리과정에서도 우리는 협상의 주체가 되지 못하고 협상테이블 위에 놓여 진 승전국들간 담판의 대상물이었을 뿐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의사와 상관 없이 나라가 남과 북으로 허리가 끊어진 채로 그 고통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21세기 지금은 다릅니다. 우리의 경제력과 국제적인 위상이 그때와 다릅니다. 우리 스스로 힘으로 나라의 독립을 지켜내고 국토를 통일하고 미래를 개척해 나갈 충분한 역량을 갖췄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독립과 통일에의 의지입니다. 우리는 현재 미완의 독립을 완성하고 국토통일을 이룩해야 합니다. 꼭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씨순길을 매달 걷는 것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또한 서대문형무소는 민주화 투쟁의 성지이도 합니다. 우리 대한민국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한 신생국 가운데 유일하게 민주화와 산업화에 성공한 나라입니다. 우리는 광복 애국선열 뿐 아니라 민주열사들에게도 큰 빚을 졌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걸음에 앞서 순국선열추모탑에서 헌향과 묵념을 하였고 조국광복과 민주화의 성지인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을 예관하고 순례길을 떠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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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선열과 민주화 투사들의 고초의 현장이었던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을 예를 갖춰 관람(禮觀)하며 북받치는 감정과 젖어드는 눈시울을 이기지 못하여 그 곳에서 예정보다 오랜 시간을, 그러나 기꺼이 오랜 시간을 지체했습니다.

진행

3호선 독립문역 4번 출구 지하 태극기쉼터(10:00) 출발 - 순국선열추념탑 향례(10:20) - 서대문형무소문화관(10:30) - 서대문구의회(12:00) - - 자락길(12:10) - 너와집 쉼터(12:30) - 제1만남의광장(13:00) - 용천(13:10) -  연세대 뒷산(13:15) - 연세대 정문(13:30) - 음식나눔(13:50 신촌 "시골농장") - 신촌역(15:00)



다음 순례는(2월2일 토요일)...

70년전 1943년 2월5일 음력설날 아침 다석은 북악마루에서 천지인 합일체험을 합니다. 
2월의 순례는 다석의 구경각을 추(追)체험하기 위한 걸음을 걷습니다.
안국역에서 만나 삼청공원을 들머리로 하여 북악마루에 오릅니다. 
음식나눔은 전통시장인 통인시장 부근에서 갖습니다. 
답사 후 상세한 안내를 다시 알리겠습니다. 
올 설날은 2월9일(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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