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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irit/e—cr—life

나는 모른다

by e-bluespirit 2013. 5. 19.












< 나는 모른다 >

“모르니까 신비다. 알아버리면 신비니 뭐니 하는 것은 없다.”면서 
과학적으로 찾아내면 알게 되어 신비가 없다는 놈은 미친 놈이다. 

우리가 알려고 하는 원인 결과는 신비에 귀결된다. 
원인과 결과는 아무리 찾아들어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 

원인도 끝이 없고 결과도 끝이 없다. 그래서 또한 신비이다. 
모르는 것이 많다는 것을 알고 모르는 것을 아는 것이 참 아는 것이다. 

나는 모른다. 이것이 원칙이다. 

(씨알의 메아리 다석 어록. 105~106쪽)


< 풀이 >
사람이 아는 것은 작고 모르는 것은 한없이 크다. 아무리 탐구해서 알아내도 모름의 세계는 무한대다. 빔과 없음의 세계, 하나의 세계는 이성과 물질의 빛으로는 닿을 수 없다. 과학은 물질과 운동의 인과관계를 탐구하는 것인데 물질의 원인과 결과는 끝이 없다. 물질세계에서 맨 처음의 원인을 찾아내도 그 원인의 원인을 묻지 않을 수 없다. 물질의 끝은 물질 아닌 데 가 닿고 만다. 

물질 아닌 것을 빔과 없음이라 하고 상대를 넘어선 것을 ‘하나’라 한다. 빔과 없음은 물질세계가 닿지 못하는 세계이고 빔과 없음을 넘어 하나의 세계가 열린다. 다석은 하나의 세계를 캄캄한 모름의 세계라고 했다. 하나의 세계는 감각과 이성의 빛으로 헤아릴 수 없는 어둠의 세계요 모름의 세계다. 모름을 지키는 것이 인생과 철학과 종교의 근본이다. 모름을 지킬 때 비로소 하나에 가까이 다가 설 수 있다. 옳고 그름, 선과 악, 잘나고 못 남을 따지지 않고 모름지기 모름을 지킬 때 너와 내가 하나에 가까이 다가 갈 수 있다. - 박재순





너와 님

"네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여라."(마태 22:39)

이상하다. 점을 밖에 찍어야 '나'가 되고 점을 안에 찍어야 '너'가 된다.
나는 '내' 밖에 서야 하고 너는 '내' 안에 품어야 하는 걸까?

내가 내 안에 머물면 나는 말라죽고
네가 내 밖에 있으면 남이다.

남은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은 이, 있으나 마나 한 이,
내게는 없는 이다.

'남'에서 바깥 점을 빼면 님이다.
나에서 점을 빼고 너에서 점을 빼고 
높여 부르면 님이다.

나도 아니고 너도 아닌 '님'
네게서 피어난 님이요
내 속에서 떠오른 님이다.

님은 내 속의 속이며
참된 너다.

나도 없고 너도 없고 님만 있다.
내가 녹아지면 님
너를 내 몸과 맘에 품으면 님이다. 

- 박재순, ‘삶의 씨앗’ 19~20쪽.








< 새 시대의 기회를 붙잡는 눈과 손 >

새 시대의 어느 기회를 재빠르게 붙잡고 낡은 것을 날쌔게 놓아버리는 눈과 손이 있어야 합니다. 거기는 지도자가 필요합니다. 혁명행렬의 앞과 뒤에는 지도자가 서야 합니다. 방향을 잘못 잡아서는 아니 됩니다. 방향이 옳으면 어떤 모험을 하면서라도 가기만 하면 사는 길이 있습니다. 정말 아는 것은 지식이 아니라 직감입니다. 직감은 생명의 주인인 ‘그’를 믿어서만 얻을 수 있습니다. 역사는 ‘자유’에로 향한 행진입니다. 

“비약의 새해” 함석헌 전집 8권 35~36쪽.


< 풀이 >
새 시대의 운동이 일어나려면 낡은 것을 버리고 새 것을 붙잡는 눈과 손이 있어야 한다. 눈은 통찰력을 손은 실천력을 나타낸다. 날카로운 통찰력을 가진 지도자와 굳센 실천력을 가진 지도자가 있어야 한다. 통찰력과 실천력이 있을 때 새 시대를 여는 운동이 힘차게 일어날 수 있다. 새 시대를 여는 혁명운동의 앞에는 낡은 시대와 새 시대를 뚫어보는 눈을 가진 사람이 있어야 하고 새 시대를 열고 앞으로 나아가는 혁명운동의 뒤에는 사람들을 섬김으로써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실천력을 가진 사람이 있어야 한다. 

역사를 꿰뚫어보는 눈은 생명과 역사의 중심과 주인인‘그’를 믿음으로써만 얻을 수 있다. 생명과 역사의 중심과 주인인‘그’는 참 나이며 전체인 이다. 참 나와 전체가 하나인 자리에‘그’가 있다.‘그’를 믿으면 역사를 꿰뚫어볼 수 있고 ‘그’를 믿고 역사를 꿰뚫어보면 역사가 ‘그’를 향한 자유의 행진임을 알게 된다. -박재순 





물고기와 꽃나무

물고기 한 마리가 
유연한 몸놀림을 하기까지 
수 억 년의 
서툰 몸짓이 있었고

꽃나무가 
푸른 잎과 
아름다운 꽃 봉우리를 
피우기까지 
수십 억 년의 
외로운 몸짓이 있었다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이 일어서야 할까?
몸과 맘속에서 
하늘과 땅이 함께 울리도록
하늘과 땅 사이에 꼿꼿이 서야
사람이다.

-박재순, ‘삶의 씨앗’ 39쪽.






< 하나같이 되려면 >

(하나)같이 되는 데는 

생명의 밑[근원]이 터지는 
생명문제가 여기에 들어간다. 

정말 하나같이 되려면 
‘나’같이 되어야 한다. 

너가 아니라 
‘나’와같이 되어야 한다. 

무엇을 부르면 대답하고 
이견(異見)이 거기서 나오면 안 된다. 

하나가 되면 말이 없다. 
부르지도 않고 대답하지도 않는다. 

‘하나’일 뿐이다. 

(씨알의 메아리 다석 어록. 87쪽)


< 풀이 >
서로 다른 생명의 주체인 ‘나’가 하나로 되려면 생명의 밑바탕이 터져서 하나로 되어야 한다. 나의 나와 너의 나와 그의 나가 하나가 되려면 저마다의 속에서 저 자신을 깨트리고 뛰어 넘어 전체 하나의 나에 이르러야 한다. 너의 나, 그의 나를 나의 나로 여겨야 한다. 예수가 십자가에 달려 자신의 살과 피를 내어준 것은 전체 하나의 나에로 들어간 것이다. 그래서 예수는 너의 나, 그의 나, 나의 나가 될 수 있다. 석가가 탐진치를 멸하고 열반에 든 것은 모든 사람의 참 나인 불성에 이른 것이다. 

동학을 창시한 최제우가 한아님을 만났을 때 한아님은 “내 맘이 네 맘”이라고 하였다. 최제우는 한아님과 한 나가 됨으로써 모든 사람과 통하는 나에 이를 수 있었다. 몸과 맘을 다 바쳐 민족을 깨워 일으켜 나라를 바로 세우려 했던 안창호와 이승훈은 전체 민족의 맘을 제 맘으로 삼아 평생 한 마음으로 살았다. 굶주린 여공들을 위해 몸과 맘을 바쳤던 전태일(全泰一)은 이름 그대로 온전히 큰 하나의 맘으로 살았다. 그에게는 굶주린 여공들이 남이 아니라 바로 그 자신의 나였다. 이들은 모두 속이 터져서 한 나, 큰 나가 되어 남을 나같이 여기고 산 사람들이다. 모두 영원한 생명에 이른 사람들이다. -박재순





형태공명(形態共鳴)

오래 산 부부는 흔히 몸과 마음이 닮는다. 몸과 마음의 형태가 서로 울림으로써 결이 같아지기 때문이다. 몸과 마음이 통하기만 한다면 놀라운 기적이 일어날 것이다. 물리적으로도 파동이 같으면 소리만으로 유리창도 그릇들도 깨지고 심지어 거대한 다리도 엿가락처럼 출렁거리다 끊어진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몸과 마음의 공명이 일어난다. 성령강림사건도 치병사건도 하나님 안에서 일어나는 몸과 마음의 형태공명이 아닌가?

생명은 서로 울림(共鳴)이다. 대자연의 생명과 서로 울리고, 함께 사는 이들의 삶과 서로 울릴 때 아름다운 영혼과 생명의 음악이 울려 퍼진다. 내 몸과 마음이 하나님의 거문고가 되고 피리가 되어 생명의 음악과 노래가 울려 퍼졌으면!

내 몸과 맘 속에서 하늘과 땅이 울리게 하자. 흙으로 빚어진 몸과 하늘 숨으로 사는 영혼이 서로 울리게 하자. 너의 몸이 내 마음 속에서 울리고 너의 마음이 내 몸에서 울리게 하자. 
-박재순 ‘삶의 씨앗’ 57쪽






<5월의 씨순길 남양주 다산유적지>

 

우리가 걸은 길은 팔당역에서 다산유적지에 이르는 폐절도를 이용하여 조성한 걷기와 자전거 전용길로 아름다운 한강변과 나란히 하고 있습니다팔당역에서 출발하여 그늘막 쉼터에서 다산의 시와 글을 읽으며 한 시간여 걷다보면 지금은 역사(驛舍)를 자그만 추억의 박물관으로 쓰고 있는 능내역(폐역)이 나옵니다그곳에서 나지막한 마재고개를 넘으면 다산유적지입니다우리는 1020분 팔당역을 출발, 천천히 걸어 12시경 능내역에 도착, 그 곳에서 점심을 나눈 후 130분경 다산유적지에 도착하였습니다.

 

다산 정약용(1762-1836)의 생애는 일반적으로 3기로 나뉩니다.

 

관료시절 - 1783년 22세 경의진사가 되다

유배시절 - 1801년 40세 천주교 신유박해에 연루되다

귀향시절 – 1820년 59세 유배에서 풀려 귀향하다

 

다산은 관료시절 정조의 총애를 한 몸에 받았습니다다산의 후원자였던 정조임금은 신권(臣權)과 맞서 왕권(王權강화를 위하여다산은 생산을 담당하면서도 헐벗고 굶주리는 백성들의 씨알살이(民生)를 위하여 서로 코드(해설사 진진순 님 표현)’가 맞았던 것입니다.

 

다산은 출사한 후 경기도암행어사 참의 좌우부승지 병조참의 등을 지냈습니다. 1795년 주문모 신부가 조선에 변복 잠입한 사건으로 다산이 어려운 처지에 몰리자 정조는 그를 보호할 목적으로 변방인 금정찰방으로 좌천시킵니다다산이 그곳 금정에서 천주교인들을 회유한 사실 때문에 천주교는 그를 배교자로 낙인찍히기도 하였습니다수원성 설계와 배다리(舟橋)와 거중기 등을 제작한 것도 이 시절입니다.

 

1800년 6월 정조가 붕어하고 다음해 2월 신유박해 때 다산은 포항 장기로 유배되었고 11월에 강진으로 이배됩니다신유박해는 정조가 애지중지하며 미래의 권력으로 점지하였던 다산을 정조준하여 신권(臣權)세력이 일으킨 사건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다산은 강진에서 다산초당을 짓고 제자를 가르치고 학문을 연구하였습니다. 그 곳에서 다산이라는 호를 얻게 됩니다.

 

다산은 1820년 59세 때 유배에서 풀렸습니다그리고 그의 희망대로 고향으로 돌아와 자신의 묘지명(墓誌銘)을 스스로 짓고 고향집 당호를 여유당(與猶堂)이라 하고 소원대로  여유당 뒷산에 묻혔습니다.

 

고향집의 당호 여유당은 노자(老子도덕경(道德經) 15장 與兮若冬涉川 猶兮若畏四隣” 에서 두 글자 여유(與猶)를 따온 말입니다. ‘망설이기를(與兮겨울에 살얼음판 건너듯 하고겁내기를(猶兮사방 이웃을 두려워하듯 하라‘ 는 뜻입니다(=)는 코끼리()는 원숭이를 뜻합니다살얼음판을 건너는 코끼리처럼 새끼를 품고 있는 원숭이처럼 조심조심 세상을 살라는 뜻입니다.

 

실학은 실사구시(實事求是)의 학문입니다실사구시란 원래 사실에 기초하여 학문을 탐구하는 청나라 때 고증학의 방법론을 말합니다조선 후기 주자학 중심의 관념적인 경전(經典해석에서 벗어나 실사구시로 당시 사회 모순을 극복하고자 하였던 시대 흐름이 곧 실학입니다.

 

또한 실학은 중국 중심의 세계관(華夷論)을 부정하고 국력을 소진시켰던 존명북벌(尊明北伐)의 허구성을 폭로하고 조선의 독립과 독자성을 찾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실학은 봉건적 신분제도와 소작제도를 비판하였습니다실학은 한걸음 더 나가 나라의 근본은 백성이라는 민본(民本)사상으로 통치개념을 치민(治民)에서 목민(牧民)으로 진전시켰습니다씨알을 어버이처럼 모시는 다석의 씨알어뵘으로 나가는 주춧돌이 되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실학은 사농공상(士農工商)의 계급 서열적인 직업관을 부정하고 특히 상공업의 가치적인 동등성을 강조했습니다무역에 의한 은()의 축적전국의 단일시장화상품규격화와 대량생산수레에 의한 물류 효율화대상인(大商人)육성 등 많은 현대 경제학의 개념을 포함하고 있습니다그 방대함으로 인하여 다산의 저서를 실학과 분리하여 다산학으로 연구하자는 주장도 있으나 실학의 중심이며 완성자로서의 다산의 위상은 변함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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