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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의 씨순길 남양주 다산유적지>
우리가 걸은 길은 팔당역에서 다산유적지에 이르는 폐절도를 이용하여 조성한 걷기와 자전거 전용길로 아름다운 한강변과 나란히 하고 있습니다. 팔당역에서 출발하여 그늘막 쉼터에서 다산의 시와 글을 읽으며 한 시간여 걷다보면 지금은 역사(驛舍)를 자그만 추억의 박물관으로 쓰고 있는 능내역(폐역)이 나옵니다. 그곳에서 나지막한 마재고개를 넘으면 다산유적지입니다. 우리는 10시20분 팔당역을 출발, 천천히 걸어 12시경 능내역에 도착, 그 곳에서 점심을 나눈 후 1시30분경 다산유적지에 도착하였습니다.
다산 정약용(1762-1836)의 생애는 일반적으로 3기로 나뉩니다.
관료시절 - 1783년 22세 경의진사가 되다
유배시절 - 1801년 40세 천주교 신유박해에 연루되다
귀향시절 – 1820년 59세 유배에서 풀려 귀향하다
다산은 관료시절 정조의 총애를 한 몸에 받았습니다. 다산의 후원자였던 정조임금은 신권(臣權)과 맞서 왕권(王權) 강화를 위하여, 다산은 생산을 담당하면서도 헐벗고 굶주리는 백성들의 씨알살이(民生)를 위하여 서로 ‘코드(해설사 진진순 님 표현)’가 맞았던 것입니다.
다산은 출사한 후 경기도암행어사 참의 좌우부승지 병조참의 등을 지냈습니다. 1795년 주문모 신부가 조선에 변복 잠입한 사건으로 다산이 어려운 처지에 몰리자 정조는 그를 보호할 목적으로 변방인 금정찰방으로 좌천시킵니다. 다산이 그곳 금정에서 천주교인들을 회유한 사실 때문에 천주교는 그를 배교자로 낙인찍히기도 하였습니다. 수원성 설계와 배다리(舟橋)와 거중기 등을 제작한 것도 이 시절입니다.
1800년 6월 정조가 붕어하고 다음해 2월 신유박해 때 다산은 포항 장기로 유배되었고 11월에 강진으로 이배됩니다. 신유박해는 정조가 애지중지하며 ‘미래의 권력’으로 점지하였던 다산을 정조준하여 신권(臣權)세력이 일으킨 사건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다산은 강진에서 ‘다산초당’을 짓고 제자를 가르치고 학문을 연구하였습니다. 그 곳에서 다산이라는 호를 얻게 됩니다.
다산은 1820년 59세 때 유배에서 풀렸습니다. 그리고 그의 희망대로 고향으로 돌아와 자신의 묘지명(墓誌銘)을 스스로 짓고 고향집 당호를 여유당(與猶堂)이라 하고 소원대로 여유당 뒷산에 묻혔습니다.
고향집의 당호 여유당은 노자(老子) 도덕경(道德經) 15장 “與兮若冬涉川 猶兮若畏四隣” 에서 두 글자 여유(與猶)를 따온 말입니다. ‘망설이기를(與兮) 겨울에 살얼음판 건너듯 하고, 겁내기를(猶兮) 사방 이웃을 두려워하듯 하라‘ 는 뜻입니다. 여(與=豫)는 코끼리, 유(猶)는 원숭이를 뜻합니다. 살얼음판을 건너는 코끼리처럼 새끼를 품고 있는 원숭이처럼 조심조심 세상을 살라는 뜻입니다.
실학은 실사구시(實事求是)의 학문입니다. 실사구시란 원래 사실에 기초하여 학문을 탐구하는 청나라 때 고증학의 방법론을 말합니다. 조선 후기 주자학 중심의 관념적인 경전(經典) 해석에서 벗어나 실사구시로 당시 사회 모순을 극복하고자 하였던 시대 흐름이 곧 실학입니다.
또한 실학은 중국 중심의 세계관(華夷論)을 부정하고 국력을 소진시켰던 존명북벌(尊明北伐)의 허구성을 폭로하고 조선의 독립과 독자성을 찾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실학은 봉건적 신분제도와 소작제도를 비판하였습니다. 실학은 한걸음 더 나가 나라의 근본은 백성이라는 민본(民本)사상으로 통치개념을 치민(治民)에서 목민(牧民)으로 진전시켰습니다. 씨알을 어버이처럼 모시는 다석의 “씨알어뵘”으로 나가는 주춧돌이 되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실학은 사농공상(士農工商)의 계급 서열적인 직업관을 부정하고 특히 상공업의 가치적인 동등성을 강조했습니다. 무역에 의한 은(銀)의 축적, 전국의 단일시장화, 상품규격화와 대량생산, 수레에 의한 물류 효율화, 대상인(大商人)육성 등 많은 현대 경제학의 개념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 방대함으로 인하여 다산의 저서를 실학과 분리하여 ‘다산학’으로 연구하자는 주장도 있으나 실학의 중심이며 완성자로서의 다산의 위상은 변함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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