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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irit/e—cr—life

생명은 영원한 모험

by e-bluespirit 2013. 4. 27.













< 생명은 영원한 모험 >


생명이란 영원한 모험입니다. 

죽을 각오가 아니라 
아주 죽어서만 살아날 수가 있습니다. 

이대로 어물어물 제 발등의 불만 끄려다가는 
전체가 죽음의 골짜기로 몰려들고 말 것입니다. 

우리는 이 앞에 가로막힌 이 강을 건너뛰어야 합니다. 

거기만 자유가 있습니다.
건너뛰는 것은 죽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그 죽음은 
보다 높은 삶을 약속하는 죽음입니다. 

“비약의 새해” 함석헌 전집 8권 35~6쪽.



< 풀이 >
생은 한 순간도 머물 수 없는 것이다. 크게 보면 생은 죽음을 향해 화살처럼 날아가는 것이다. 몸 생명은 죽음에로 예정된 존재다. 몸 생명이 죽기 전에 죽어도 죽지 않는 얼 생명으로 고양되어야 한다. 얼 생명으로 고양되려면 물질적 본능적 욕망을 죽임으로써 몸 생명의 껍질을 벗기고 알 생명을 붙잡아야 한다. 생명은 자기를 죽음에 내던지는 모험을 통해서만 참되고 영원한 삶에 이른다. 

함석헌은 죽어서 사는 생명의 원리를 역사와 사회에 적용한다. 사람은 역사와 사회 속에서 죽고 거듭 나야 한다. 사람이 죽어서 거듭난다는 것은 개체로는 죽고 전체로 산다는 말이다. 인류역사는 마땅히 전체가 사는 길로 가야 한다. 전체가 사는 길로 가기 위해서 사람은 개체로는 죽고 전체로 다시 나야 한다. 개체로 죽고 전체로 사는 것이 죽음의 강을 건너뛰어 함께 영원한 생명에로 들어가는 것이다. 이것이 역사적 생의 모험이고 부활이다. 

개인을 넘고 당파를 넘고 집단을 넘어서 전체의 자리에서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해야 한다. 개체가 전체의 자리에서 전체의 삶을 살 때 비로소 개체의 개성과 자유가 뚜렷해진다. 개체가 개인의 삶에만 매달리면 개체의 개성과 자유도 말라버리고, 전체가 죽음의 골짜기로 빠져든다. 그러나 개체가 전체의 삶을 살면 개체가 영원한 생명과 자유를 얻고 서로 주체가 되는 영원한 생명의 길로 전체를 이끈다. -박재순






고등종교의 변질과 왜곡

기축시대에 탄생한 고등종교의 교주와 경전 자체가 시대적 제약과 한계를 가지고 있다. 고등종교의 이러한 시대적 제약과 한계를 지적할 수 있지만 기축시대의 종교와 철학은 이제까지 인류 정신사에서 인간의 이성과 영성을 가장 순수하고 높이 꽃 피우고 가장 순수하고 높은 진리의 봉우리에 이르렀다. 기축시대의 성현들이 깨달은 깊은 진리가 그 시대와 사회의 제약 때문에 그리고 제자들과 추종자들의 한계 때문에 변질되고 왜곡되었다. 따라서 오늘 고등종교의 가르침과 형태는 기축시대의 영성과 철학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오늘날 고등종교들이 가지고 있는 교리, 성직자제도, 교단조직과 형태, 가르침의 내용과 실천적 관행은 기축시대 성현들의 본래적 가르침과 실천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 기축시대의 성현들은 자신의 이성과 영성 속에서 영원한 생명과 가치를 발견하고 실천했다. 성현들은 자신들이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들도 각자의 이성과 영성에서 영원한 생명과 가치를 스스로 깨달아 실천함으로써 정의롭고 평화로운 세계를 이루기를 바랐다. 그러나 대부분의 고등종교 신봉자들은 스스로 깨닫고 실천하는 길로 가지 않고 성현들을 믿고 숭배하며 그들의 가르침과 행동을 모방하려 했다. 성현들처럼 스스로 깨닫고 실천하는 종교가 아니라 성현들을 믿고 따르는 종교로 전락한 것이다. 믿고 따르는 종교가 되었기 때문에 진리를 깨닫고 실천하는 것보다는 성현들이 깨달은 진리를 논하는 교리와 신학, 성직자와 교단조직이 발달하게 되었다. 

또한 고등종교들이 성현들의 진리를 충실히 계승하고 실천하지 못했기 때문에 자연종교의 기복신앙에 물들고 국가권력에 밀착된 국가종교가 되고 말았다. 기축시대의 성현들은 자연종교와 국가종교의 한계를 극복하고 새 종교의 지평을 열었으나 오늘의 고등종교들은 다시 자연종교와 국가종교의 낡고 낮은 정신단계로 후퇴하고 있다. -박재순







< 나아지려고 애쓰는 나가 있을 뿐  >

나는 무엇인가. 
나라는 것을 찾으려면 나 속에 들어와야 한다. 

가까운 이웃, 친구, 친척 거기서 나를 찾을 수 없다. 
오직 내 안에서 생각해서 나를 찾을 도리밖에 없다. 

나라는 것은 마침내 있다고 하고 싶다. 
나는 있다는 버릇이 되었는데 확답은 못한다. 

오직 한 분밖에 안 계시는 한아님 절대를 향하여 
형이상·하로 나아지려고 애쓰는 나(我)가 있는 것이다. 


(씨알의 메아리 다석 어록. 85쪽)



< 풀이 >
서양철학에서는 바깥세계의 과학적 인식과 탐구에 힘썼고 인식하고 탐구하는 이성이 어떻게 옳고 바르게 인식하고 탐구할 수 있는지를 파고들었을 뿐 이성의 주체인 나 자신을 문제 삼지는 않았다. 따라서 서양에서는 나의 존재를 당연히 전제한다. 인식과 사유의 주체로서 또는 행동과 실천의 주체로서 나는 당연히 있어야 한다. 서양의 철학자들은 내가 없는 것을 생각하기 어렵다. 

다석은 내 속에서 나를 찾는다. 껍데기 나, 거짓 나를 깨트리고 참 나에 이르려 한다. 빔과 없음의 세계에서 나를 찾기 때문에 몸과 물질에 붙잡힌 거짓 나를 깨트리고 부정하지 않으면 몸과 물질에서 자유로운 참 나, 빔과 없음에 사는 나를 찾을 수 없다. 다석의 철학은 내 속에서 나를 찾는 보물찾기다. 껍데기 거짓 나를 깨트려버리고 생명과 정신의 씨알맹이인 참 나를 찾는 과정이 인생이고 종교이고 철학이다. 끊임없이 나를 부정하고 비움으로써 참 나에 이르려 한다. 따라서 나는 있다고도 없다고도 할 수 없다. 다만 절대자 한아님을 향해 몸과 맘으로 나아가려고 애쓰는 나가 있을 뿐이다. -박재순





새 정치의 내용과 방향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새 정치가 화두가 되었고 많은 국민의 호응을 받았다. 오랜 전통 을 가진 민주당은 지난 총선과 대선에서 패배했고 여전히 국민의 신뢰와 지지를 얻지 못하는 것 같다. 새 정치가 요구되는 상황인데 새 정치의 내용과 방향이 뚜렷이 제시되는 것 같지 않다. 새 정치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지기를 바라면서 씨알의 관점에서 새 정치의 내용과 방향에 대해서 생각을 나누어 보려고 한다. 


첫째 새 정치는 직접 민주정치의 필요에서 나온 주장이다. 민주화가 진전되면서 국민이 정치의 주체로 참여하려는 열망이 커졌는데, 대의 민주정치는 이러한 열망을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 대의정치가 국민의 뜻과 열망을 담아내려면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과 시의원들이 사심과 당파심, 권력욕과 계파 이기주의를 극복하고 국민을 위해 헌신할 수 있어야 한다. 국민의 대표들이 공심을 가지고 국민을 위해 국민과 더불어 정치를 하려면 도덕적으로나 철학적으로 고결한 인생관과 역사관이 확립되어 있어야 한다. 국회의원과 시의원이 다 성현들이 되기를 바랄 수 없으므로 그들에게만 맡겨 둘 수 없다. 국민의 뜻과 열망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국민이 스스로 정치의 주인과 주체로 나서야 한다. 새 정치는 국민이 정치의 주인과 주체로 직접 참여하는 정치다.

둘째 국민이 정치의 주인과 주체로 나서기 위해서는 정당의 중앙집권적인 구조와 체제가 지역자치를 중심으로 상향식으로 바뀌어야 한다. 아래로부터 민의에 토대를 둔 정당이 형성되려면 지역현장에 작은 단위의 마을공동체와 협동조합이 든든히 형성되어 있어서 민의가 바르게 형성되고 민의를 대표하는 사람들이 지역현장에서 많이 나와야 한다. 민의를 대표하는 지역현장의 사람들 가운데서 국회의원과 시의원이 나와야 한다. 그래야 민의와 대의정치가 어긋나지 않는다. 마을공동체와 협동조합과 같은 지역자치의 구조와 토대가 든든하게 마련되어야 직접민주주의가 강화되고 직접 민주주의가 강화되어야 대의정치가 건강하게 펼쳐질 수 있다. 새 정치는 지역현장의 정치, 지역자치의 정치다.

셋째 산업과 경제는 발전하고 성장하는데 사회의 양극화는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국가의 부와 경제력은 증대하는데 많은 국민은 일자리를 잃고 가난하고 불안정한 삶의 나락으로 떠밀리고 있다. 정치인들이 국민에게 충성과 헌신을 다짐하고 약속했지만 국민의 삶은 갈수록 궁핍하고 불안정하며 황폐해지고 있다. 따라서 국민은 정치인들에게 심한 배신감을 느끼고 있다. 새 정치는 국가의 주인과 주체인 국민이 경제와 사회의 주인과 주체임을 느끼게 하는 정치여야 한다. 국민의 삶의 질이 높아지고 국민이 떳떳하고 당당하게 살 수 있도록 하는 정치가 나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재의 사회경제체제와 원리를 그대로 두고 이러저런 정책들만을 제시하는 것은 임시방편이고 부분적인 땜질에 지나지 않는다. 정책만으로는 새 정치 새 시대를 열 수 없다. 사회경제의 체제와 원리에 대한 혁신적인 성찰과 꿈, 새로운 발상과 상상력이 요구된다. 오늘날 세계경제와 생태학적 위기는 근본적인 위기이기 때문에 새로운 정신과 철학을 요구한다. 사람과 생명체들뿐 아니라 일과 물건, 돈과 자리, 제도와 체제까지도 생태학적 영성을 가지고 주체의 자리에서 그리고 유기체적 전체의 자리에서 보아야 한다. 나와 다른 사람, 일과 물건까지 존재의 깊이를 가진 주체로 보고 전체 하나와 공동체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생태학적 영성을 가질 때 비로소 사회적 양극화와 생태학적 위기를 극복하고 서로 떳떳하고 자유롭게 사는 상생평화의 생활자치 공동체를 이룰 수 있다. 새 정치는 인간과 사물을 주체와 전체로 보는 생태학적 영성을 지닌 정치다. 

넷째 오늘의 시대는 국가주의를 넘어서 세계화 시대, 지구촌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국가주의와 애국주의를 넘어서 세계평화공동체를 열어가는 새로운 국가철학과 정치를 확립해야 한다. 낡은 국가주의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정치가 갈등과 대결의 낡은 행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남북분단과 적대관계의 늪에 빠져 있다. 국가주의를 넘어서 한반도와 동아시아와 세계의 평화를 열어갈 새로운 철학과 정신을 가진 사람이 나와야 새 정치를 할 수 있다. 새 정치는 국가주의를 넘어서 동아시아와 세계평화의 꿈과 지혜를 지닌 사람들의 정치다. -박재순







<5월의 씨순길을 준비하며...>

 

 

1.  5월 씨순길 다산유적지

 

1)  답사 다녀와 다음과 같이 진행합니다.

2)  팔당역(중앙선)에서 10:10 집합하여 출발합니다.

3)  참고로 팔당역까지

       용산역에서 70분,     옥수역에서 50분 ,

       왕십리역에서 45분,  상봉역에서 40분 소요됩니다.

       충분한 여유를 갖고 출발하시기 바랍니다.

4)  팔당역에서  능내역(폐역)을 지나 다산유적지까지 약 7Km를 걷습니다.

     다산유적지의 해설예약시간은 오후 2시입니다.

     다산유적지에서 공식 행사는 끝내고 56번 마을버스로 운길산역으로 갑니다.

5)  희망자는 운길산역까지 아름다운 두물머리 물길을 5Km 더 걸을 수 있습니다.

6)  음식나눔은 능내역(폐역) 능내1리 마을사람들의 마을기업식당에서 합니다 (사진).

 

 

2. 명찰

 

명찰제작에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이메일이나 문자로 이름과 별명을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이메일: esjeykim@hanamail.net (얼줄)

              crlife@hanmail.net (사무국)      

 

문자 : 010-4869-8794 (얼줄)               

 

 





팔당역에서 다산유적지까지 답사

 






도보와 자전거 전용도로

봉안터널

팔당호

능내역(폐역) 마을식당

다산유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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