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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irit/e—cr—life

다석강의

by e-bluespirit 2015. 9. 3.








조히 산다는 것은 세상을 쉽게 산다든지, 평생 빚지지 않고 산다든지 하는 것으로 되지 않습니다. 우주 안에서 참혹한 것이나 보기 싫은 것을 보지 않고 사는 것을 조히 산다고 하지 않습니다.


기왕에 어머니 뱃속에서 열 달을 조히 살았으면 잘 나와야 하고, 또 세상에 나왔으면 조히 살아가야 합니다. 그렇다고 나 혼자만 여기서 조히 살면 안 됩니다. 한 어머니 뱃속에 쌍둥이가 있었다면 나 혼자만 조히 나와서는 안 됩니다. 다른 쌍둥이마저 함께 나와서 조히조히 살아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 세상에 수십 억의 쌍둥이(인류)가 있는데, 이들이 모두 조히 조히 살아가는 게 우리의 소원입니다. 이승의 배를 버리고 다른 배를 갈아탈 때에 나 혼자만 탈 것이 아니라 다 같이 타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조히 살겠다는 것이 하늘의 큰 뜻입니다. 절대의 큰 정신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절대자를 섬깁니다. '조히 한 얼 줄' 한가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우리 마음에는 모순도 있고 반대도 있습니다. 우리는 모순과 반대가 있는 지구상에서 살아왔습니다. 모순과 반대를 무릅쓰고 살아왔습니다. 태양계와 우주에도 모순이 있고 하늘에도 적지 않은 모순이 있는 줄 압니다. 그렇지만 모순이 있기에 하늘의 원리를 좇아 조히조히 살고, 절대자의 뜻때로 깨끗하게 살겠다는 정신을 아울러 가집니다. <다석강의> 19쪽  



조히'라는 말은 욕심이 그렇게 많지 않음을 나타냅니다. 조급하게 굴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아무리 급해도 '조히조히'하는 것입니다. 그저 그만큼 감사하는 것입니다. 좋게 한다는 말과는 구별이 됩니다. 수선을 떨지 않고, 달갑다든지 싫다든지 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바로 살 줄 알고 말씀을 아는 사람은, 자기가 사는 것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기쁜 것인지 슬픈 것인지 모르고 삽니다. 이를 부지지생(不知之生)이라고 합니다. 죽는 것이 추악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언제 죽어봤어야지 알 것 아닙니까? 

참(原, 元)말과 참삶을 아는 사람은 말씀을 알려고 할 뿐 사는 것이 좋은지 기쁜지 모릅니다. 똥만 싸면서 사는 몸뚱이 삶을 좋은 걸로 알면 '너 좋으면 좋다'하게 됩니다. 참삶을 사는 사람은 죽이겠다고 해서 흔들릴 것 없고 살려준다고 해서 좋아할 것도 없습니다. 그저 죽어야 할 때 죽고, 살게 되면 사는 것입니다. <다석강의> 17쪽 



이 사람이 이 세상에서 몇 십 년 동안 인생에 참여하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하느님의 말씀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6.25 동란을 겪으면서 거듭 알게 된 중요한 가르침이기도 합니다. 사람이 사람을 알아주어야 하는데, 사람을 알아주려면 그 사람의 말을 알아야 합니다. 그 사람의 말을 알면 그 사람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맹자는 "선생님께서 남보다 나은 것이 무엇입니까?" 묻는 제자의 말에, 자신은 말을 알고 하느님씨를 잘 기른다 (我知言我善養吾浩然之氣, 

<맹자 > 공손추, 상편)고 대답했습니다.


공자는 아침에 (하느님의) 말씀을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朝聞道 夕死可矣) (<논어> 里仁 편)고 했습니다. 칠십 평생을 산 공자가 들을 말, 들을 수 있는 말을 들으면 그 날 저녁에 죽어도 좋다고 한 것입니다. 말씀을 알자는 것이 인생이고, 말씀을 듣고 끝내자는 것이 인생입니다. 

<다석강의> 14쪽



부모를 사랑하는 사람은 사람을 미워하지 않고 부모를 존경하는 사람은 사람을 업신여기지 않는다. 부모님에게 애경을 다 한 뒤에야 천명(天命)을 알게 된다. <다석 유영모 어록> 273쪽  



머리를 하늘에 두고 사는 사람이 하늘을 머리에 이고[崇天] 있는 것이다. 하늘을 머리에 이고 어깨에 지는 것이 옳다. 하늘을 머리에 이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하고 무슨 일을 받들어 나가는 일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남을 짓이기는 일은 살 일 난 듯 잘 한다. 남을 짓이기려는 사람은 개인이나 나라나 다 망한다. 일제(日帝)도 망했고 조선(朝鮮)도 망했다. <씨알의 메아리> 19쪽



거룩한 이름은 그 자체가 거룩합니다. 성(誠)이 도(道)라는 것은, 곧 성(誠)은 자성(自誠)이요, 도(道)는 자도(自道)라는 말입니다. 누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윤리는 이렇게 된 것입니다. '나'밖에 없고, '하나'밖에 없습니다. 둘, 셋, 이것은 다 헛된 것입니다. 우리가 이 못된 것에 걸린 것입니다. 하나, 그것은 말씀입니다. 말씀에 딴 것이 있을 수 없습니다. 영원한 '나'밖의 참이나 도는 다 헛된 것입니다. 영원한 '나'가 참입니다. 사람은 제가 사는 것입니다. '나'는 나의 나(참나)입니다. <다석강의> 384~385쪽  


유영모






나는 다른 어느 책보다도 <요한복음>을 좋아합니다. 그것이 가장 내 속을 잘 풀어주는 듯합니다. 퀘이커들은 일반으로 <요한복음>을 좋아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의 교리는 대부분 거기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요한복음>을 좋아하게 된 것은 퀘이커에게서 배운 것이 아닙니다. 내 속에서 말씀해주시는 이에게 배워서 된 것입니다. <요한복음>을 좋아했기 때문에 퀘이커가 됐다고 해야 옳을 것입니다. 

<함석헌 전집 15 : 펜들힐의 명상> 15쪽



오늘은 스스로 하는 민의 종합행동이 정치다. 지금은 생각하는 것도 민중 자신이요, 이론을 세우는 것도 방안을 꾸미는 것도 행동하는 것도 감독하는 것도 비판하는 것도 민중 곧 전체의 대중 그 자체이다. <함석헌 전집 2 : 인간혁명의 철학> 73쪽



지(志)는 사심(士心) 곧 선비의 맘이라 했는데, 사(士) 곧 선비는 또 풀어서 열에서 하나를 보고 하나에서 열을 보는 맘이라 했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그것은 하나함(統一)입니다. 그러므로 뜻이 있으면 모든 하나로 살아나는 것이고 뜻이 없으면 죽습니다. 

<함석헌 전집 1 : 뜻으로 본 한국역사> 354쪽



이제부터 말은 세속에서 영적인 세계로 들어갑니다. 여자가 "주여, 내가 보니 예언자이십니다"했을 때 그것은 투구를 벗고 무조건 항복을 한 것입니다. 자기 내부를 부끄럼 없이 내놓은 것입니다. 이제부터 대화는 시작됩니다.


여자가 "우리 조상은 이 산에서 예배하는데 당신들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합니다."하며 참 종교는 어떤 것인가를 물었습니다. 이것은 윤락여성이 할 수 있는 질문이 아닙니다. 참 사람의 혼에서 나오는 물음입니다. 그래서 예수도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영과 참으로 예배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나는 이것을  <신약>의 최고봉이라고 합니다. 


<신약> 안에 진리가 많습니다마는 이보다 더 높은 것은 없습니다. 그 높은 진리를 누구에게 주셨습니까? 베드로도 요한도 아니요 남편이 다섯이던 윤락여인에게 주었습니다. 참 대화는 얼마나 어렵습니까. 또 얼마나 쉬운 것입니까. 

<함석헌 전집 15 : 펜들힐의 명상> 18쪽



나는 메시아가 오실 줄 압니다.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일러주실 줄 믿습니다."

이것은 벌써 어렴풋이 깨달아지는 기쁨이 있어서 나온 말입니다. 그러나 아직 그를 분명히 알아보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듣자 예수는 "당신과 말하는 내가 그입니다" 했습니다. 그는 일찍이 누구에게도 이렇게 분명히 잘라 말한 적이 없습니다. 여자가 알아볼 수 있을 리가 없습니다. 30세 청년이 한나절 길에 피곤해서 이마에 땀을 철철 흘리며 티끌을 뒤집어쓰고 우물가에 주저앉아 나 물 좀 주시오 하는 것을 당하고 있는 그의 속에는 메시아라면 반드시 웅장한 체격에 얼굴에 광채가 나고 구름을 타고 오실 것으로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것을, 그는 메시아란 밖으로는 아무 특별한 것이 아니오, 저같이 남편이 다섯 되는 타락 여성의 존재의 밑바닥에 졸고 있는 영혼을 불러낼 수 있는 이라는 것을 알려주어야 했습니다. 그는 "너의 영혼과 그 고뇌를 참으로 알아준 이만이 정말 메시아다. 그리고 내가 곧 그다" 하는 뜻을 말하신 것입니다. 여자는 마침내 알아들었습니다. 나와 너가 대면을 했고, 그 가운데서 한 여인이 새로 났습니다.   

<함석헌 전집 15 : 펜들힐의 명상> 18~19쪽


함석헌






씨알재단/씨순길 특별(번개)행사

다큐멘타리 "관재 조선인학살"  


일시:2015년 8월31일 오후 1시 

장소:계동 재단 사무실 


순서 

1. 징울림 7번 (6,000명 넘는 희생자의 영령 위로) 

2. 영상물 "관재 조선인학살" 상영 

3. 생각나눔(막걸리 곁들여..회비없음) 


1923년 9월1일 11시58분 관동대지진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날의 기록은 관동조선인학살로 기억되어야하고 기록되어야 합니다. 그만한 자연재해야  관동대지진 전에도 후에도 있어온 불가항력의 자연재해입니다. 자연재해의 민심의 혼란을 조선인학살로 수습했던 일본 관민의 의도적이며 조직적인 만행은 있어서는 않될 있을 수도 없는 인재입니다. 전쟁이 아닌 시기에 불가항력의 자연재해를 이런 만행으로 몰고간 사례는 관동조선인학살 말고는 역사에 없습니다.  (자연재해도 재난이요 인재도 재난이니 편의상 관재라 하겠습니다.) 


그동안 일본정부는 은폐로 한국정부는 무관심과 회피로 잊혀져가던 비극이 한국과 일본의 양심있는 시민의 노력으로 실상의 윤곽은 어느정도 들어났으나 아직도 많은 부분 땅 속에 묻혀 있습니다. 올해 92주년으로 이제 8년 뒤면 한 세기 역사의 페이지가 넘겨집니다. 재단에서는 작년 관재 조선인학살 현장에 순례하여 추모의 행사를 가졌습니다.. 그리고 이 사건이 역사의 백년한이 되지않도록 마무리하자는 의논을 하였습니다. 


그 후 일년이 지났습니다. 이제 관재 92주년 되는 날이 돌아 옵니다. 일 년전 우리의 의논을 이어가야겠습니다. 그래서 재일 독립 다큐 작가인 오충공 감독의 관재영상물을 국회의사당 시설을 빌려 상영하려고 했었습니다. 그러나 여러가지 사유로 진행하지 못했습니다.  올해 다른 날을 정해 관재에 대한 시민의 관심을 일으킬 수 있는 행사를 가지려고 합니다만 그 전에 먼저 재단 회원 여러분과 함께 국회 상영예정이었던 영상물을 함께 관람하고 의견을 듣는 자리를 마련하고져 합니다. 번개처럼 부디 많은 씨알께서 참석하시기 바랍니다.





9월 씨순길 안내

일시 :  9월 5일(토) 아침 10시 
장소 : 구파발역 1번 출구 분수대 
구파발역에서 버스 환승 : 704번 34번 하차 정거장 : 사기막골 삼거리 
구파발역1번출구(10:00) - 버스 승차 - 사기막삼거리( 10:30) - 북한산성입구(11:40) - 백화사(12:00) - 삼천사 입구(12:40) - 진관 생태다리(13:10) - 은평신도시(점심 13:20) 
점심장소 : 누들하우스 (전화 02-385-3354) 진관동 155번지 재각말 푸르지오 514동 107호




<9월의 씨순길은...>

씨순길 출발시간 10시전부터 주룩주룩 내리는 제법 굵은 빗줄기가 멈출 줄 모릅니다. 오래 내릴 비는 아닙니다. 비가 멈출 때 까지 구파발역 "롯데리아"에서 따뜻한 커피를 나누며 그간의 소식과  불경 '친지팔양신주경" 해설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최관 씨알께서 엊그제 9월3일 함석헌기념관 참석 후일담을 말씀해 주셨고, 매번 씨순길 때마다 법문(法文)을 준비하신 조영행 씨알께서 씨알사상으로 불경 '천지팔양신주경'을 해설하셨습니다.  

오행에 따르면 물과 불은 상극(相剋)입니다. 그러나 이날 커피집 법문에서는 '천지팔양신주경'의 수화상승(水火相承)을 이야기했습니다. 비와 햇빛을 고루 받아야 함께 작용하여야 작물이 무르익고 아름다운 열매를 맺습니다. 천지의 기운이 서로 합하고(天地氣合) , 해와 달이 질서 있게 운행하고(日月交運), 남녀는 올바르게 화합하여야(男女允諧) 살만한 세상이 됩니다. 

<아들> 아버지의 말씀을 알아 들어야 아버지의 <아들>이 됩니다. <딸> 아버지의 말씀을 따라야  아버지의 <딸>이 됩니다. <꼭대기> 꼭 대고 있어야 할 것이 <꼭대기>이며,  <꽁무니> 꼭 물어야 있어야 할 것이 <꽁무니>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과 <딸>을 씨알이라고 합니다. 씨알은 언제나  아버지의 나라 <꼭대기>에 꼭 대고 살아야 합니다.아버지의  말씀 <꽁무니>를 꼭 물어야 합니다. 걸으며 나눈 최관 씨알의 우리말 풀이가 유쾌했습니다. 

이번 9월의 씨순길은 우천으로 한시간 늦게 출발하여 예정된 종점에 이르지 못하였습니다. 다음 달 10월 씨순길은 북한산성탐방안내소에서 부터 이어 걷도록 하겠습니다.

씨순길 천지팔양신주경 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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天地氣合 一切草木 生焉
日月交運 四時八節 明焉
水火相承 一切萬物 熟焉
男女允諧 子孫       興焉


<함석헌기념관>

9월3일 개관했습니다. 개관식에 재단에서 최관, 박성극 씨알과 안창도 국장이 참석했습니다. 외 도봉구청장, 문대골 전 함석헌기념사업회 이사장 등 250여명 참석한 가운데 성대히 치뤘습니다. 



< 다석일지 >

서기년도에 열을 더하면 다석의 나이가 됩니다. 1942년은 다석이 52세되는 해입니다. 다석이 일식좌(一食座)의 금욕을 실천한지 1년이 되는 이 해 1월4일, 그는 믿음으로 들어가는 중생(重生)체험을 하고, 3월30일  소위 일제 하 '성서조선사건'으로 57일간의 옥고를 치룹니다. 그 후 광복을 맞고 6.25전쟁을 치루면서 십여년 지난 1955년  65세 되는 해, 1년 뒤 4월26일을 사망가정일로 선포하고 일지를 쓰기 시작합니다. 이십년동안 계속된 이 일지는 1975년 1월1일 끝납니다. 마지막 날 일지에는 "1975 해 乙卯 1975.1.1 水 甲寅 11.9"라고만 적혀 있습니다. 바로 전 기록은 1974년 7월14일 일요일로 한시와 함께 "열나흔 날, 열닷새, 스므날, 아까운, 서른 날, 할 ŸY, 있다 감 (할 ŸY 담 을 한 그 릇)" 라고 적혀 있습니다.

한시는 아래와 같습니다. 이승에서의 삶이란 결국 사이(間)입니다. 아버지의 나라, 하늘나라만 영구한 곳입니다. 우리는 그곳으로 갑니다. 

人間世間天地間
瞬間息間生死間
思間慮間去來間
志間情間興입間 (담을 입)

하늘 땅 사이의 일은 사람들의 일
태어 나고 죽는 일은 순식간의 일
생각 사이 걱정 사이 오고가는 일
뜻을 세워 정을 좇아 세워담는 일


< 다석이란 뜻 >

다석과 교우하던 애산(愛山) 김진호 목사가 남긴 글 '다석소전(1949)'에 있는 귀절입니다.

『 나는 선생(先生)의 호 다석(多夕)이란 뜻이 무엇인가고 물으니 다석요식(多夕要息)하대 영구불식(永久不息)이라 한다. 식(息)은 쉬는 것이다. 저녁마다 쉬기를 요구하되 저녁마다 쉬여지지 않는다. 식(息)은 또 숨 쉬는 것이니 숨은 쉬지 않고 산다는 것이다. 그는 장자(莊子) 철학(哲學)을 좋아하여 남화경(南華經)을 애독(愛讀)하는데 장자(莊子)철학(哲學)은 숨 쉬는 철학이다. 고로 영구불식(永久不息)하는 다석(多夕) 호(號) 취(取)하여 자호(自號) 하였다.』

다석의 1941년 비망록 "息觀"에도 『.... 日終夕宿 命終夕休 世終夕信 誰子遲疑 多夕要息 永久不息』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하루가 끝나는 저녁에는 잠을 자는 쉼이 있고, 일생이 끝나는 저녁에는 멈춤의 쉼이 있고, 세상이 끝나는 저녁에는 믿음의 쉼이 있습니다. 많은 저녁에는 쉼이 필요하나 영구한 숨에는 쉼이 없습니다. 우리말이나 한자나 숨(호흡)은 곧 쉼(휴식)입니다. 어떤 일이나 끝에는 쉼이 있습니다. 그러나 생명의 숨은 영구히 쉼(멈춤)이 없어야 합니다. 

註 : 남화경(南華經)은 ≪장자≫의 다른 이름,  남화는 장주 곧 장자의 존호

< 9월의 씨순길 3, 서진 유함길(내시묘역구간)> 

답사를 다녀왔습니다. 거리 등 도보여건을 감안하여 지난번 "순영농장" 출발을 "사기막삼거리" 출발로 정정합니다.  이번 걷는 길은 북한산둘레길 11구간 2.7km /10구간 3.6Km / 9구간 1.4Km / 합 7.7Km 되는 거리입니다. 

시점은  '사기막골',  종점은 '진관생태다리'입니다. 길번호의 역순으로 서쪽은 향해 걷습니다.  진관생태다리 아래를 지나면  은평신도시 푸르지오 아파트 단지가 나옵니다. 514동 상가 조그만 식당에서 점심을 나누게 됩니다. 오르내리막이 적은 평탄한 길입니다. 

가을은 한해의 저녁(夕)입니다. 날마다 맞이하는 저녁, 해마다 맞이하는 저녁, 누구나 한번 맞이하는 일생의 저녁, 북한산의 수많은 저녁(多夕)은 이곳 북쪽 기슭으로 찾아옵니다. 구간별 길이름은 아래와 같습니다.

11구간 - 효자길 
10구간 -  내시묘역길
9구간 -  마실길 
8구간 - 구름정원길(10월예정)

< 9월의 씨순길 2, 서진 유함길(내시묘역구간)> 

지난 달 함석헌기념관에서 시작하여 우이령을 넘은 씨순길은 다시 서진(西進)을 시작합니다. 애초 출발했던 구기동 다석의 옛 집터를 향하여 걸음을 계속합니다. 그러나 지난 달 마무리 지점인 교현리부터의 사기막골 길은 교통량이 많은 포장차도로서 적합한 순례길이라 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이번 9월의 씨순길은 효자동 "순영산장"에서 부터 걷기 시작합니다. 버스정거장 이름으로는 "권세농원앞" 입니다. 

여기부터 의상봉 기슭 북한산성초등학교를 지나 방패부대까지의 길을 내시묘역길이라고 합니다. 은평구 의상봉 기슭 일대 내시묘역이 있던 곳이기 때문입니다. 현재 이 곳 외에 내시묘역이 남아있는 곳은 도봉구 초안산과 쌍문동, 은평구 신사동,경기도 고양과 남양주, 양주, 용인, 경북 청도 등 입니다. 내시묘역길 일대는 종1품 승록대부의 묘 2기, 종2품 상선의 묘가 5기 등  조선 왕실경영의 전문가 집단인 내시부 고위 관직에 올랐던 이들의 묘소가 있었으나  양자로 이어진 내시의 후손들은 선조가 내시라는 점을 부끄럽게 여겨 의도적으로 없애기도 하고 조경업자들에게 땅을 팔아 넘겨 일대 많은 조경수들이 심겨져 있습니다.

< 9월의 씨순길 1, 서진 유함길(내시묘역구간)> 

지난 8월, 폭염주의보가 발령된 가운데 우이령을 넘었습니다.  늦은 오후 예보되었던 소나기를 우이령(소귀고개) 마루에서 만났습니다. 모두들 고생하셨습니다. 함석헌기념관 개관이 9월로 미뤄진 것이 무척 아쉬었습니다. 

북한산에는 동쪽 쌍문동 함석헌기념관과 서쪽 유영모의 구기동 자택지가 있어 가히 씨알사상의 성산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석 유영모는 맑은 물이 흐르는 깊은 산 게곡에서, 함석헌은 마지막 자택이 있던 쌍문동 골목길 가로등으로 인해 드리우는 자신의 그림자와 대화하며 씨알생각을 일구셨습니다.

4월 다석자택지에서 동진(東進)길을 출발한 씨순길은 지난 달 함석헌기념관에서 다시 서진(西進)을 시작하여 소귀고개를 넘어 교현리에 도착했습니다. 우리가 처음 출발했던 연신내로 향합니다. 

사실 교현리에서 효자리까지 산기슭 숲길은 군사지역이어서 교통량이 많은 포장도로(북한산로)를 걸어야 합니다. 효자리부터는 다시 숲길로 북한산둘레길10구간  내시묘역길이라고도  합니다. 

9월 씨순길의 시종점은 효자리-구파발역 또는 구파발역-효자리로 하겠습니다. 답사 후 점심장소 교통편 등을 고려하여 정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나 만나는 시간과 장소는 9월5일 10시 구파발역1번출구 분수대입니다.


< 8월의 씨순길을 마치고...>

함석헌기념관 개관일을 맞추기 위해 우리 씨순길은 4월 구기동 유영모 자택지를 걸을 때 부터 노심초사했습니다.  7월과 이번 8월, 연이어 쌍문동 기념관을 찾았으나 개관은 9월3일로 미뤄졌습니다. 다음 번에는 개관 소식을 듣고 나서 쌍문동으로 발길을 정해야겠습니다. 그래도벌서  버스정거장과 거리 표시판에는 힘기념관이라고 또렷히 적혀있어. 뿌듯한 감회를 가졌습니다.

폭염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오늘 한낮도 폭염주의보가 내려질것이라는 예보였습니다. 기념관 뒤로는 쌍문공원의 숲길로 우이령까지 이어집니다. 한 여름의 짙푸른 녹음을 헤치며 우이령을 넘었습니다. 우이령 계곡에는 피서객들이 물놀이를 즐기고 있습니다. 소귀고개는 우이령길의 분수령입니다(소의 귀 = 우이). 1시경 소귀고개를 넘자 장대같은 소나기가 퍼 붓기 시작합니다. 3시경 예보 되었던 소나기입니다. 두시간이나 일찍 쏟아 부은 것입니다. 모두들 흠뻑 젖었습니다. 계속되는 무더위에 쌓였던 신체의 찌뿌듯함이 일시에 해소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쌍문역에서 우이령 입구가지 3.5Km 우이령길 6.5Km 합 10Km의 장정이었습니다. 전에 우이령을 가볍게 넘었던 기억으로 우이령길의 거리가 3.5Km 정도 밖에 안될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6.5Km의 먼 거리였읍니다. 본의 아니게 회원들에게 잘못된 정보를 알려 줬습니다. 폭염과 소나기 우중에 모두들 수고하셨습니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즐거운 마음으로 함께 걸은 모든 회원들께 감사드립니다. 

- 8월 씨순길 진행 -

일시 : 8월 8일(토) 아침 10시
쌍문역(10:00) - 함석헌기념관(10:40) - 우이암매표소(12:00) - 교현리(14:20) - 점심

점심(오후 2:20) : "풍년고을" 031-855-7859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교현리 265-2




함석헌기념관 개관식 안내 


일시 : 9월 3일(목) 아침 10시 

장소: 함석헌기념관 (서울 도봉구 도봉로123길 33-6(쌍문동 81-78) * 쌍문역 4번출구 


"안녕하세요. 함석헌기념관이 9월 3일에 개관합니다. 함석헌 선생이 마지막 여생을 보내셨던 쌍문동 가옥을 리모델링하여 함석헌기념관을 조성하였습니다. 2015년 9월 3일 10:00, 함석헌기념관 앞에서 개관식을 진행하오니 많은 관심과 참여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 도봉구청 홈페이지 함석헌기념관 안내문 중에서




< 8월의 씨순길은....2>


『 이 동발목의 말로는 무엇일까 하고 남 잠자는 밤에 혼자 앉은 때도 많습니다. 동발목의 신세야 뻔하지 않습니까? 집을 지을 때는 그것없이 아니되는 것 같아 중요시 되는 것 같지만 집이 다 되면 사정없이 뜯어 내동댕이 치는 것이고 상처나면 나중엔 그것도 못하고 어느 아궁이로 들어갈 것 밖에 없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며 한산(寒山)의 시를 읊조려 봅니다.

天生百尺樹 천생백척수
剪作長條木 전작장조목
可惜棟樑材 가석동량재
抛之在幽谷 포지재유곡
年多心尙勁 년다심상경
日久皮漸禿 일구피점독
識者取將來 식자취장래
猶堪柱馬屋 유감주마옥 』   - 함석헌 저작집 7, 하느님의 발길에 채여 -

동발목은 갱목(坑木)의 북한말입니다. 집을 지을 때나 탄광에서 천정이 무너지지 않게 지탱하는 역할을 합니다. 집을 다 짓고 나면 제거하게 됩니다. 함선생님은 우리 시대의 거목(百尺樹)이며 대들보(棟樑材)이십니다. 외양간 기둥(柱馬屋)은 당치 않습니다. 그러나 선생님 스스로는 외양간 기둥(柱馬屋) 보다도 낮게 평가되는 동발목을 자처하셨습니다. 사실 동발목은 매우 중요합니다.동발목이 있어야 대들보를 올릴 수 있습니다. 함선생님께서 1982년 원효로에서 이사하여 깊은 생각을 하며 드나들던 쌍문동 골목길을 이번에 걷습니다. 

- 김승주 글(씨알순례길 운영자, 씨알재단 이사)

< 8월의 씨순길은....>

『 근래 나는 거리의 골목길을 드나들면서 이 골목에서 내 그림자가 슬쩍 사라져버리는 날이 멀지 않지 하는 생각을 하는 때가 많습니다. 나도 내 인생에 마무름을 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에서 나오는 말입니다. 사람의 삶은 한정이 있습니다. ‘일생’입니다. 그 일생을 어떻게 잘 쓰느냐가 문제인데 내 생각으로는 될수록 잘게 토막을 쳐서 살아야 한다고 합니다. 철저히 하려면 석가의 가르침같이 “인생은 한 호흡 사이에 있다”해야 할 것이지만, 한 호흡마다는 몰라도 날마다는 잘라서 사는 것이 옳다고 합니다. 하루하루를 날마다 마무름을 하도록 말입니다. 기도로 시작해서 기도로 끝맺는단 말입니다. 잘됐건 잘못됐건 마무름은 짓도록 하잔 말입니다. 그러나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 하루하루를 아무리 야무지게 마무름을 했다 하더라도 그 하루하루가 서로 떨어진 것이어서는 소용이 없습니다. 그것을 하나로 꿰는 큰 마무름이 또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전체의 의미입니다. 믿음입니다.』 -함석헌저작집 7.하나님의 발길에 채여서 89쪽-

함석헌의 하루살이는 '일생'을 될수록 하루하루 토막을 쳐서 사는 것입니다. 하루하루를 날마다 마무리(마무름)하는 일입니다. 기도로 시작해서 기도로 끝맺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하루하루는 영롱한 빛을 내는 보석이 됩니다. 함석헌은 여든 여덟해를 사시고  다석은 아흔 한해를 사셨으니 두 분은 삼만 2~3 천개 씩 보석을 가지셨고 우리는 우리 나름 각각의 보석을 가졌습니다. 함석헌은 말씀하십니다. 그렇다하더라도 그 보석들이 서로 떨어져서는 별 소용이 없으며, 그 보석들을 믿음으로 전체의 의미로 꿰는 큰 마무름 인생의 마무름이 있어야 한다고... 

- 김승주 글(씨알순례길 운영자, 씨알재단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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