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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irit/e—cr—life

북악마루를 다시 오르며

by e-bluespirit 2016. 2. 6.










< 북악마루 안 내 >


만남: 2016년 2월 6일 (토) 10:00

장소 : 3호선 안국역 3번 출구( 현대그룹 사옥 방향)


안국역(10:00)-북촌문화센타-중앙고(10:15)-감사원-삼청공원(10:30)-말바위안내소(11:00)-숙정문(11:30)-북악산(12:30)-창의문(13:-00) / 약 6킬로


점심: 부암식당(02-391-1215) 창의문에서 약 800미터




< 북악마루를 다시 오르며...4 >


어제 2월4일 입춘입니다. 24절기 중 첫 절기입니다. 마지막 절기 대한(大寒)이 지난달 1월21일이었으니 15일만입니다. 24절기가 보름 간격으로 정해진 것을 보면 그 정도되어야 계절의 변화를 체감할 수 있을 듯 합니다.  황도(黃道)는 태양이 하늘(天球)을 도는 궤도입니다. 천문학에서는 춘분을 기준점으로 하여 360도까지 하늘(天球)을 측정합니다. 그러면 춘분일 때 황경(黃經) 0도, 입춘일 때 315도가 됩니다. 올해 우리나라의 황경(黃經) 315도가 되는 정확한 입춘시각(立春時刻)은 어제 2월4일 오후 6시46분이라합니다. 


첫 절기인 만큼 한 해 동안 액(厄)을 면하고 복(福)을 구하는 옛부터의 풍속이 있는데 하나가 적선공덕(積善功德)을 행하는 것이며 또 다른 하나는 입춘축첩(祝帖)을 붙이는 일입니다. 적선공덕(積善功德) 풍습을 말하자면 전통 장례의 상여소리에도 "입춘날 절기 좋은 철에 헐벗은 이 옷을 주어 구난공덕하였는가?" 하는 귀절이 있습니다. 입춘날 적선공덕은 밤 중에 징검다리를 놓거나 웅덩이나 돌길을 고르게 하거나 걸인 움막에 밥 한 솥 지어 갖다 놓는 것들을 말하는데 드러내지 않고 밤에 남 몰래 해야만 했습니다. 


입춘첩은 대부분 한자로 되어있어 양반계급에서 비롯된 세습인듯 하나 일부 지방 평민들도 "잡귀야 달아나라" 등 한글로 써붙이기도 했습니다. 아래 많이 사용되던 입춘첩을 모아 보았습니다. 


용(龍) 호(虎) 마름모 한지에..

수여산(壽如山) 부여해(富如海)

거천재(去千災) 래백복(來百福)

만복함지(萬福咸至) 입춘대길(立春大吉)

국태민안(國泰民安) 가급인족(家給人足)

우순풍조(雨順風調) 시화풍년(時和豊年)

요지일월(堯之日月) 순지건곤(舜之乾坤)

소지황금출(掃地黃金出) 개문백복래(開門百福來)

일춘화기만문미(一春和氣滿門媚)


입춘은 매해 양력 2월4, 5일경입니다. 그러니 매해 2월 씨순길은 입춘절기에 걷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 씨순길 회원들은 면액하거나 구복하기 위해 세속에 매일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우리는 다석이 구경각을 얻은 백악마루를 오를 뿐입니다. 내일 씨순길날 우리는 백악마루 정상에 올라 봄이 기지개 켜는 모습을 바라보며 그 오ㅣ는 소리를 들을 것입니다. 그러면 세상 어떤 복보다도 큰 말씀의 복, 진리의 복, 생명의 복을 얻게 될 것입니다. 


또한 이번 2월의 씨순길은 설날 연휴의 하루 전의 행사이기도 합니다. 새해를 맞아 씨순길 회원 모두, 몸의 건강과 맘의 평화과 뜻의 성취를 두손 모아 빕니다.  




< 북악마루를 다시 오르며...3 >

" 세기가 바뀜에 따라 인류가 차차 '대동'으로 눈뜨는 것이 확연히 보입니다. 온 세상이 뚜렷하게 '대동'으로 움직이려고 합니다. 이것을 우리 인류가 그대로 따라 '대동'의 참뜻을 받들면 이 땅 위에 '대동'의 세계를 한번 보이고 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이것을 거역하면 멸망만 돌아 올것입니다." - 온통 하나가 되는 지혜,  다석강의 109쪽  -

온통 하나 됨, 대동(大同)은 (禮記)에 나오는 말로, 정의가 행하여져, 가족주의를 극복하고, 신의와 화목이 넘쳐, 공평해지는 사회를 뜻합니다. 젊은이들은 취업걱정과 연애 결혼 출산의 삼포(三抛)를 하지않고, 누구나 고아나 병든 노인 등 사회약자를 보살피고, 난적(亂敵)과 도둑이 없어져 문을 닫지 않는 사회를 말합니다. 

대동(大同)은 고대 동양의 이상사회로 현대 복지국가개념과 매우 흡사합니다.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에서 묘사된 이상향은 비정한 15~16세기 영국 인클로져운동을 시대적 배경으로 하였고 현대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원형이란 점에서 동양의 '대동(大同)'의 개념과는 사뭇 다르다 할 것입니다. 다석은 "온통 하나 되는" 대동(大同)의 물결이 뚜렷하게 움직이는 전조(前兆)를 보았고 또 인류가 이 물결을 거역할 경우 멸망하리라는 경고도 잊지 않았습니다.





e소식 씨알』을 창간합니다. 『소식지 씨알』을 계승하여 씨알의 소식을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첫 발행일은 2월5일 금요일로 합니다. 그날은 다석이 52세 되는 1942년 북악산 마루에서 천지인 합일경험을 한 날입니다.


이후『e소식 씨알』은  매주 일요일과 수요일 2회 이메일로 발송합니다. 앞으로 많은 씨알님들의 투고와 애독을 바랍니다. 『e소식 씨알』의 시작은 작고 조용합니다. 그러나 씨알사상의 향기를 세상에 널리 전하는 메신저가 되겠습니다. 커지고 터져 시대의 예언자로 피어나겠습니다.<


편집방향은 준비 중인 창간사의 일부로 대신하겠습니다.


“누군가 분열과 갈등의 제삼지대(第三地帶)에 서서 중재해야합니다. 높고 먼 하느님의 자리에서 문제점을 헤아려야 합니다. 그것이 너무 높고 멀다면 적어도 분열과 갈등의 중립지대, 경계역(境界域)에 서서 공정하게 두루 보고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다원주의적인 관용과 지혜가 필요합니다. 생각이나 의견이나 이념이나 말씀의 다양성이 담보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수평주의 원칙이 지켜져야 합니다. 수직으로 매이고 종속되어서는 참 소리가 나 올 수 없습니다. <e소식지 씨알>이 기꺼이 분열과 갈등의 제삼지대(第三地帶)에 서겠습니다."




<북악마루를 다시 오르며...2>

다석의 "첨철천 잠투지(瞻徹天 潛透地)"의  깨달음이 구름 위에만 머물러 있고 지층 암반 밑에만 꼭꼭 숨겨져 있다면 그 무슨 소용인가하는 생각해 봅니다.

우리의 몸이 하늘로 솟구쳐 올라 하늘천정(乾元)을 뚫었으면 다시 세상으로 내려와야 하고 마음이 땅 깊은 곳을 파고들어 바닥끝(坤軸)에 다달았으면 다시 세상으로 올라와야 한다고 생각해 봅니다.  하늘 정수리의 기운(乾元氣)과 땅 끝 굴대의 힘(坤軸力)을 가지고 세상에 나와 삶의 현장, 구체적인 일상으로 돌아와야할 것입니다.

"생활이 좀 나아졌습니까?" 오래 전 어느 정치인이 대통령선거 때 한 말입니다. "얼숨이 좀 편해졌습니까?" 요새 가끔 저 자신에게 묻습니다. 얼숨이 편해지면 내면의 평화와 자유를 느끼게 됩니다.  그 평화와 자유가 조금 싹 트는 것이  지금 엄동설한 구차한 삶 속에서도 느껴집니다. 다석은 이런 느낌을 "옆에 있는 사람도 모를 정도로 조금씩 싹이 트는 척 하여도 이렇게 편하고 좋은데..."하며 자랑했습니다.(다석강의 110쪽)

다석의 가르침이 세상의 부귀(富貴)나 공리(功利)를 가져다 주지는 않습니다.그러나 세상을 이기는 내면의 힘을 줍니다. 험한 세파(世波)를 헤쳐나가는 힘과 행여 입게 될 상처를 치유해 줍니다. 이제 많은 일반생활인이 다석의 '말씀잔치'에 참석했으면 좋겠습니다. 그의 지혜에 귀 기울였으면 좋겠습니다.  특히 인생항로의 출발 포구(浦口)에 서있는 젊은이들이 다석의 사상으로 무장을 하고 대양으로 진격해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북악마루를 다시 오르며...>


북악마루는 유영모가 천지인합일을 체험한 구경각 성지입니다. 유영모는 1943년 2월5일 이른 아침 일식을 관찰하러 북악마루에 올랐습니다. 정상에 오르자 발 아래 운해(雲海)가 펼처져 운평선(雲平線) 멀리 관악산이 아득하고 작은 섬처럼 떠 있는 장관을 맞았습니다. 동녘 새해의 붉은 해가 솟아 오르자 운해는 자주빛에서 곧 황금빛 바다로 변했습니다. 유영모는 이때의 감격을 "첨철천 잠투지(瞻徹天 潛透地)"의 오도송으로 남겼습니다. 거의 매년 이만 때 우리는 북악마루에 올랐습니다. 우연히도 병신년 올해는 하루상관의 6일 북악마루를 향해 한양성곽길을 걷습니다. 그의 시를 박영호 옮김으로 아래 올립니다.


瞻徹天 潛透地(첨철천 잠투지)


申身瞻徹極乾元氣(신신첨철극건원기)

沈心潛透止坤軸力(침심참투지곤축력)


뚫어 뵈오니 하느님 뚫어 잠겨 땅 가운데


몸이 하늘 까짓 것 솟구쳐 올라 뵈오니 하느님 아버지 얼님이시오

맘이 사뭇 내리 꽂히어 잠기니 땅굴대 중력(重力) 점에 멈춘다






관재대학살 추도모임 안내 >


일시: 2016.2.13. 오후 4시
장소: 씨알재단 계동사무실(약도 아래)

관재대학살 추도모임(준비위원장 함인숙)




발기문 (發起文)


1923년 일본 관동지방에서 대지진이 발생한 직후에 6천명이 넘는 우리 동포들이 무참하게 학살당한 사실을 아시나요?  


당시는 한반도가 이미 일본 제국주의에게 국권을 강탈당하여 식민지로 전락한 상태였고, 일본은 제1차 세계대전의 승전국의 일원이 되어 우쭐해 있었던 때입니다. 1923년 9월1일 정오경에 일본의 도쿄와 요코하마 등 수도권을 중심으로 초대형(리히터 규모 8 정도)의 지진이 발생하여 막대한 인적 물적의 피해가 일어났는데, 그 직후에 인근에 거주하던 한인들을 잔인하게 학살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그 원인은 지진 피해지역에서 “조선인이 방화, 폭동을 일삼고 우물에 독을 던진다”라는 전혀 근거 없는 유언비어가 퍼졌고, 질서유지 명목으로 동원된 일본의 군경 및 민간 자경단들이 그 유언비어를 광신하였기 때문입니다. 


조국 독립 이후, 당시 학살을 유발한 유언비어의 발신 주체가 일본의 경찰과 군대였으며, 학살 가해자들에 대한 사법적 조치는 매우 경미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질서 유지와 주민의 안전에 만전을 기해야 할 경찰이나 군대가 대지진으로 극도로 피폐해진 일본 민심을 돌리기 위해 재일 한인을 희생양으로 삼았던 것입니다. 이 관동대지진 시의 한인 대학살을 통해서 당시 일본 제국주의 체제가 얼마나 비인도적이며 야만적인 것이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일본 정부는 1923년 9월에 발생한 한인 대학살 사건에 대해 일체 함구하고 있으며, 관련 기록 또한 은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 민족의 국가는 ‘국민 보호’라는 기본적인 의무를 다하였을까요? 1923년 9월 당시 중국 상해에 망명해 있던 한국 임시정부는 대학살 사건이 발생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일본 수상에게 항의서를 송부하여 재일 동포의 보호와 학살 범인에 대한 엄중 처벌을 요구하였습니다. 국권을 강탈당해 어려운 지경에 처해있던 임시정부로서는 할 수 있는 일을 했습니다. 하지만, 광복 이후 수립된 대한민국 정부는 이와 같은 과거 자국민의 대량학살 피해에 대해 진상규명을 시도한 적도, 일본정부에게 항의를 한 적도 없습니다. 국민의 생명 및 자산 보호라는 근대 국가의 원칙도,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는 헌법의 기본정신도 지키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심각하게 인식해야 합니다.


한국의 일반 시민들은 그 이국에서 억울하게 학살당한 6천여 명 한인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있을까요? 답은 긍정적이라 할 수 없습니다. 한민족이 근대의 암울한 시기에 입은 불합리한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게 하려면, 후손들에게 그 기억이 계승되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국내의 공적인 장소에서 1923년 9월 일본에서 학살당한 동포들의 원한을 달래주고 기억하고자 하는 추도식이 개최된 적이 없습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먼저 이 문제 해결에 공감하는 한국의 시민들이 정성을 모아서 관동대지진 한인 학살희생자들을 기리는 추도식을 정기적으로 개최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국에서 학살 피해자들에 대한 추도식을 실행한다는 것은, 당사자들의 억울한 죽음을 후세에서 기억하여 그들의 명예를 회복하게 할 뿐만 아니라, 다시는 그와 같은 참혹한 사건이 재발하면 안 된다는 조국의 절실한 다짐이기 때문입니다.


2016년 1월 길일

관동대지진 한인 대학살 희생자 추도회 준비모임 
김 광열 기초  

   * 金  廣 烈 (KIM GwangYol)  光云大學校 敎授
    (서울 蘆原區 光云路 20. 光云大學 1F 國際學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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