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영모.함석헌 묘소참배 >
출발 : 3월5일 8시 2호선 교대역 2번출구
유영모 묘소 : 강원도 평창군 방림면 계촌리 1091
함석헌 묘소 : 대전 국립현충원 애국지사 3묘역 392번
진행 :
교대역2번출구(08:00) - 영동고속도로 둔내IC - 둔내면사무소 - 웰리할리CC -계촌초등학교 - 계촌3리경로당 - 계촌초등학교 대미분교(폐교) - 다석묘소 - 점심(새말 IC) - 대전 국립현충원 - 강남역(18:30)
< 3월의 씨순길을 다녀와서...>
3월5일 유영모.함석헌 묘소참배를 다녀왔습니다. 아침 8시 교대역에서 출발하여 평창 대미산 자락의 유영모 묘소, 대전 현충원의 함석헌 묘소 그리고 다시 서울 강남역으로 돌아오는 520Km의 대장정이었습니다.
올해는 유영모 탄신 126주년 함석헌 탄신 115주년을 맞는 해입니다. 매해 묘소참배하며 우리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 있습니다. 지금 여기 나에게 또 우리에게 왜 유영모와 함석헌인가? 세기전 "신은 죽었다(니체)"라며 서구문명이 타살한 하느님을 유영모 함석헌이 지금 여기 한국 땅에서 "없이 계시는 하느님"으로 되살리셨습니다. 두분은 그렇게 인류가 다시 신성(神聖)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관문이 되셨습니다.
지금 세계가 어렵습니다. 핵위협, 전쟁과 테러, 경제양극화, 사회분열 등으로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의 증대하고 있습니다. 씨알재단은 유영모 함석헌에게서 인류의 희망을 찾고자 묘소참배를 다녀왔습니다.
<3월의 씨순길...2>
평창의 다석 유선생님의 묘소에 참배갑니다. 다석의 묘소를 평창으로 이장한 후 이번이 두번째 참배입니다. 유선생님의 묘소가 위치한 '강원도 평창군 방림면 계촌리 1091'의 땅은 둘째 아드님 유자상이 1960년 41살의 나이로 만혼(晩婚)하고 젖양 2마리 벌꿀 15통을 가지고 들어가 농사짓던 곳입니다. 대미산 자락으로 횡성군 쪽으로는 백덕산이 마주한 곳입니다. 유선생님은 강원도 아드님 자상이 두메산골에 농사지러 들어간 일을 매우 기뻐했습니다. 유선생님은 45세에 농사지러 구기리에 들어갔던 일과 같이 생각하셨던 것입니다.
3.1혁명이 없었다면 유영모와 함석헌의 사제의 연(緣)은 맺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함석헌은 1919년 평양고등보통학교 3학년에 재학 중 3.1혁명을 맞아 적극 참여하여 퇴학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반성문을 쓰면 복학시켜준다는 일본인 교장의 회유를 단호히 뿌리치고 학교를 그만 두었였습니다. 1921년 사촌형 함석규의 권유로 평북 정주에 있는 이승훈의 오산학교에 편입하여 그 곳에서 평생의 스승 유영모를 만납니다.
유영모는 고당(古堂) 조만식의 후임으로 오산학교 교장에 취임한 때가 1921년9월 31세 때입니다. 그는 11년 전 21세 때에도 오산학교 교단에 선 바 있습니다. 일제는 유영모의 교장취임을 인가할 수 없다는 통보를 해옴에 따라 그는 일년 만에 다시 서울로 가게 됩니다. 그 짧은 기간 이립(而立) 31세 유영모와 약관(弱冠) 20세 함석헌의 만남은 평생의 사제(師第)관계로 이어졌습니다.
< 3월의 씨순길...>
3월의 씨순길은 예년과 같이 유영모 함석헌 묘소참배를 갑니다. 두 분 스승의 말씀을 생각하며 “ 하늘을 우러러 하늘 정수리를 찌르고, 땅을 파들어 땅 굴대를 뚫으러” 갑니다. (瞻撤天 潛透地)
5년 전인 2011년 3월11일 유영모.함석헌 묘소참배를 마치고 사당역 부근 식당에서 저녁을 나누고 있었을 때 TV 뉴스로 일본 도호쿠 대지진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어진 후쿠시마 원자력사고, 아베정권의 등장과 일본의 우경화, 2008년 리먼브라더스 사태 이후 계속되는 세계 경제위기,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한국정부의 개성공단 중단선언.... 지금 우리는 역사의 변곡점에 서 있는 듯합니다.
다석 유영모 선생님(1890)과 함석헌 선생님(1901)의 탄신일은 3월13일로 같은 날, 서거일은 하루 차이인 2월3일(유영모 1981)과 2월4일(함석헌 1989)입니다. 함 선생님은 서울대병원에서 선종하셨는데 의학적 생명연장이 없었다면 같은 날 세상을 떠나셨을 것입니다.
압민(壓民) 독재시대에 함 선생님의 사자후는 저항의 복음이었고 씨알의 위로였습니다. 벌써 두 분을 잃은 지 35년과 27년이 되었습니다. 세상은 바뀌고 또 바뀌었습니다. 과거 우리가 옳다고 여겼던 삶의 위치와 방법이 바뀌었습니다. 이미 우리는 배(새로운 패러다임)를 탔고 이제 닻과 돛을 올리고 힘차게 넓은 바다로 나아가야 합니다.
生死
古.仲尼.論語. 不知生. 焉知死 [急先務生]
今.多夕.獨言. 無終問當死. 未始知平生.
恐 不爲亢龍有悔 而終不至 知存而不知亡者乎.
急莫急於終死實.務莫務之平生事
生順死安成事實 人間始終一大事
生死一如最急務 先後相随完成事
(1957.10.26.)
注) 항룡유회(亢龍有悔)라는 말은 《주역(周易)》 건괘(乾卦)의 육효(六爻)의 뜻을 설명한 〈효사(爻辭)〉에 나오는 말이다. 욕심에 한계가 없으면 반드시 후회하게 됨을 비유, 《주역》의 건괘는 용이 승천하는 기세로 왕성한 기운이 넘치는 남성적인 기상을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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