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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e/e—art—museum

[스크랩] 꿈과 이상에 대하여.. (까미유 끌로델)

by e-bluespirit 2004. 2. 2.

 

 

"le reve et le desir sont immortels."
- 이상과 바램은 불멸의 것이다.


밑의 사진은 제가 좋아하는 조각가 카미유 클로델의 20세때 모습입니다.

* CAMILLE CLAUDEL (1864 - 1943)

풍부한 재능과 감성을 타고났음에도 불구하고 예술가로서 또 한 인간으로서 결코 평탄치 못한 인생을 살다가 비참하게 생을 마감한 여인.

알려진 대로 카미유 클로델은 로댕의 제자인 동시에 연인이기도 하였으나, 평생 로댕의 그늘에 가려 여인으로서, 그리고 예술가로서도 로댕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진정으로 인정을 받지 못한 채 비극적인 생애를 마치게 된다. 조각가로서 많은 공통성과 예술적 동질성을 가지고 있는 두사람은 거의 같은 시기에 비슷한 작품을 남겼는 데 로댕의 <키스>, <가라테아>와 클로델의 <사쿤달라>, <밀단을 진 소녀>는 상당 부분 유사하여 로댕이 클로델의 작품을 표절한 것이 아니냐 하는 소문을 일어나기도 했다.

이유야 어쨌든간에 스승인 로댕에게 카미유 작품의 표절 의혹과 그녀와의 스캔들은 이미 상당한 사회적인 성공과 명예를 거머쥔 그에게 커다란 부담이었고, 결국 의혹을 산 클로델의 작품들을 전시회에 출품하지 못하게 압력을 가함으로써 결국 클로델과 로댕은 파국을 맞이하게 된다. 결국 클로델은 "로댕은 나의 재능을 두려워 해 나를 죽이려 한다"는 강박증에 사로잡혀 결국 평생을 정신병자로서 비참한 생을 마치게 된다.


<간단한 연보>

1864년 12월 8일 프랑스 북동부 에느 지방 페르 안 다르드노와에서 등기소 소장인 아버지 Louise-Prosper Claudel과 의사딸로 자란 어머니 Louise-Athenaise Cervaux 밑에서 1남2녀중 장녀로 태어난 그녀는 딸의 재능을 이해한 아버지의 도움으로 12세때 노장 조각가인 Alfred Boucher(1850-1934)에게서 정식적인 조각 기초수업을 시작하게 된다. 1882년 18세였던 그녀는 집에서 일을 도와 주는 하녀인 Helene을 모델로 를 제작, 살롱전에 첫 출품함과 동시에 계속해서 출품한다.

1883년 그녀의 스승이 당대의 유명한 조각가인 그의 친구 로댕에게 카미유 지도를 부탁.- 이때 비로소 로댕과 카미유와의 만남이 시작됨.(그 당시 카미유의 나이는 19세, 로댕의 나이는 43세였음). 1885년(21세) 로댕의 권유로 로댕의 작업실에서 제자겸 모델로 활동하기 시작하고 이후 대학가에 위치한 로댕의 작업실에서 정식으로 로댕의 조수로 일함. <칼레의 시민>, <지옥의 문> 등의 제작에 함께 참여함. 1888년(24세) 로 프랑스 예술인 살롱전(Salon des Artistes)에서 최고상 수상. 이 상을 수상 후 카미유는 작가로서 정식 인정을 받게 된다.

1889년 이후부터 카미유의 작가로서의 활약이 서서히 커지자 카미유와 로댕 사이에는 스승과 제자사이의 사랑과 갈등이 심화됨. 1892년 (28세) 로댕의 아내인 로즈 뵈레의 질투와 로댕의 유유부단한 성격으로 인하여 카미유는 로댕에 대한 배신감과 마음의 상처를 안고 로댕과 헤어지며 로댕의 작업실을 나옴.

1893년 (29세) 살롱전에 , 출품해 그 당시 평론가인 Octave Mirbeau와 Leon Daudet 등에게서 극찬을 받음. 1894년 (30세) 로댕의 부탁으로 벨기에 예술가협회의 전시회에 초대되어 작품 전시. 살롱전에 을 출품하여 세인들의 주목을 받음. 1897년 (33세) 옥으로 제작된 을 샹 드 마르스의 살롱전에 출품하여 커다란 성공을 거둠.

1899년 (35세) 살롱전에 자신의 역작인 대리석 작품 를 출품하였으나 전시회 중 작품을 도난 당함.-이 사건을 카미유는 로댕의 음모에 의한 것이라 하여 비난함과 동시에 영원히 로댕과 멀어짐.-이후 부르봉가 19번지로 거처를 옮김.(여기에서 카미유는 정신요양원에 입원하기까지 14년간 혼자 기거) 이후 , < The Implorer(애원하는 여인)>, 등 많은 작품 제작.

1905년 (41세) 으제니 블로의 주선으로 그의 화랑에서 카미유 작품 13점을 전시했으나 로댕과의 사이가 멀어짐으로서 세인들의 관심에서 멀어져 전시회는 실패로 돌아감 - 이 일로 정신적인 충격을 받은 카미유는 자신의 모든 작품들을 모두 닥치는데로 부숴버림.
이 후로 우울증과 로댕에 대한 피해의식 및 편집광적인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함.

1913년 (49세) 동생 Paul의 설득으로 빌 에브라르(Ville-Evard) 요양소에 입원.
1914년 (50세) 카미유는 앙김(Enghiem)의 몽드베르그(Montdevergues)수용소로 이송됨.
1943년 10월 19일 오후 2시 (79세) 앙김(Enghiem)의 몽드베르그(Montdevergues)수용소에서 약 30년간 수용소 생활을 하던 중 79세 일기로 쓸쓸하게 임종을 맞이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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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mille Claud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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