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은 방울방울.
한 때, 나도 학교 도서관을 전전하던 적이 있었다. 아무도 믿지 않겠지만. 사실, 기말고사 때문이 아니라 그림 때문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살 수 도 없는 비싼 화집(畵集)이 널려 있고, 하루종일 무겁고 커다란 화집을 책상 위에다가 어질어질 쌓아놔도 아무도 터치하는 사람이 없었던 도서관이 좋았다. 크고 무거운 그림책이 많은 도서관 2층은 수업이 없는 어정한 시간을 아깝지 않게 보낼 수 있었던 유일한 곳이었다. 또, 기말 시험이 다 끝나고 몸과 마음의 진이 다 빠진 것 같은 기분이 들 때, 한국말로 쓰여 있는데도 읽어도 알 수 없었던 어려운 철학시험문제들로 지친 내 눈을 즐겁게 해 주는 곳이었다. 클림트의 그림을 도서관에서 처음 봤는지, 아니면 수업 시간에 슬라이드로 봤었는지, 아니면 어디 길거리에서 봤었는지, 그 시작을 알 수는 없었다. 다만, 한 동안 그의 그림에 푹 빠져서 지냈던 적이 있었다. 도서관에 간다는 나를 똥그래진 눈으로 쳐다보던 친구들을 뒤로하고 한 동안 도서관 2층에서 클림트의 그림을 보며 혼자 좋아라 했던 것도 이젠 추억이 되어버렸다. 화려한 곡선과 더운 황금색, 한 때 춘화(春畵)라고 비난받았을 정도의 에로티시즘을 담아내고 있는 그의 그림이 이 불쾌지수 높고 후덥지근한 여름에도 생각나는 걸 보니, 내가 클림트의 그림을 좋아하긴 좋아하는 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 며칠은 색이 너무 좋았고, 한 며칠은 배경과 옷에 그려진 모양이 너무 좋아서 무거웠던 화집을 손에서 놓을 수 없게 만들었던 오스트리아의 화가, 쿠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 : 1862 - 1918)가 오늘 그림이야기의 주인공이다.
★에로티시즘, 그리고 아르누보(Art Nouveau)
클림트, 벌써 100년 전의 사람이었다. 그가 한 세기 전의 사람이었다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클림트의 그림은 cool하고 세련되었으며 다른 그림들이 갖고 있지 않은 매력을 잔뜩 지니고 있다. 한 번 보면 보는 이로 하여금 잊을 수 없게 만드는 그의 그림 속에만 녹아 있는 그림의 요소는 과연 무엇일까.
구스타프 클림트는 1862년 7월 14일, 오스트리아 바움가르텐에서 태어났다. 오스트리아라...심상치 않은 곳이다. 따져보니, 심리학자이자 철학자이자 정신과 의사였던 프로이드가 태어난 곳이다. 누구 말대로 그 곳 물 탓인지, 두 사람 모두 에로티시즘을 연구하고 표현해 내는데 에너지를 다 바친 사람들이었다. 철학자와 예술가는 시대적으로 볼 때 한 가지 공통점을 갖고 살아간다. 시대 정신을 몸과 마음으로 읽고 느낀다는 점. 예술가는 그 시대의 분위기를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았는데에도, 음악으로 그림으로 때로는 영화로 표현해 내는 신기한 사람들이다. 특히, 내 생각엔 미술가들이 제일 그렇다. 시대 정신과 분위기를 가시적인 선과 색의 조형언어로 표현해 내는, 우리 같이 직관이 더딘 범인(凡人)들은 흉내낼 수도 없는 엄청난 작업들을 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철학자들은 예술가들이 표현해 놓은 것들을 정리하고 이론화하는 사람들이다. 시대를 느끼고 읽어낸 것들을 언어로 옮겨 정리하고 이론화하는 철학자들 또한 만만한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이 앞서 느낀 시대적 분위기에 대한 이해는 아무 생각 없이 세 끼 밥만 먹으며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너무도 충격적일 때가 많았다. 특히, 세기말의 철학은 더더욱 그러했다. 19세기말의 충격적인 이론을 내 놓은 세 명의 철학자들, 막스가 그랬고, 니체가, 그리고 프로이드의 철학이 평범하게 살고 있던 전 세계 사람들의 생각을 흔들어 놓아, 세상은 잠시 사상적인 혼돈 속에 있었다. 프로이드와 클림트는 개인적이고 은밀한 것으로만 여겨졌던 전통적인 性개념을 겉으로 드러낸 사람들이었다. 프로이드와 클림트식 사고 방식은 시대를 너무 앞섰던지라 많은 사람들로부터 거센 비난과 조롱을 한 몸에 받았다. 얘기가 너무 먼길로 돌았다. 정신차리고, 사람들로부터 놀림받았던 클림트의 그림, 'The Kiss'를 살펴보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눈감고 있는 볼 빨간 여인의 얼굴과 잘 보이지 않는 남자의 머리다. 그리고 두꺼운 남자의 목덜미와 그 목을 채 다 못 편 손으로 감싸고 있는 여인의 손, 그리고 여인의 조막 만한 얼굴을 조심스레 감싸고 있는 커다란 남자의 손, 그 남자의 한 쪽 손을 부끄러운 듯 잡고 있는 여인의 가느다란 손과 여인의 드러난 어깨, 팔과 무릎꿇은 여인의 이쁜 다리와 발이 눈에 들어온다. 나만 그런가? 아니다. 이것들이 먼저 눈에 들어 올 수밖에 없는 이유가 이 그림에는 있다는 것이다. 이 그림 전체를 지배하는 것은 아르 누보(Art Nouveau: 불어로 새로운 미술이라는 뜻, 장식과 곡선을 특징으로 하는 경향)적인 장식적 곡선미(曲線美)다. 여인과 남자를 감싸고 있는 구불구불한 곡선의 아우트라인하며, 남자의 비잔틴식 황금색 옷 사이에서, 그리고 여인의 꽃무늬 옷 뒤에서 여인의 감정을 자극시키는 저 모양이 바로 아르누보 스타일이라는 것이다. 남자와 여인의 육체만이 이 그림에서 도드라져 보이는 이유는 그 아르누보 장식들의 평면성 때문이다. 명암도 입체감도 없는 배경과 남, 녀의 화려한 황금빛 옷은, 무늬가 다르지 않았던 들 어느 것이 남자 옷이고 여자의 것인지 모를 정도로 평면적이다. 옷이 아니라, 그저 장식으로 보인다. 또, 여자 옷 아래로 흘러 다리 아래로 떨어지고 있는 식물 줄기 같은 저 모양들은 어떤가. 알 수 없는 모양들의 순환과 화려한 색채, 평면적인 장식이 키스하려는 두 남녀의 숨막히고 에로틱한 감정을 극도로 유발해주고 있는 것이다. 현실감 없는 배경도 한 몫 한다. 현실과는 다른 시, 공간에 두 남녀를 떨어뜨려 놓은 듯한 배경은 키스하려는 찰나의 순간을 영원으로 몰고 가기에 충분하다.
★아가(雅歌), 노래 중의 노래.
...내게 입맞추기를 원하니 네 사랑이 포도주보다 나음이로구나.
아가서 1장 2절 말씀이다. 입맞춤이 사랑의 시작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지금 시작하는 두 남녀의 사람을 보고 있는 것이다. 포도주보다 더 나은 사랑을 하고 있는... 사랑, 그리고 키스라...직접 사랑을 하고 키스를 하는 기쁨이야 이 그림에 비길 수 있을까 만은, 클림트의 'The Kiss'를 보고 있으려니 훔쳐보는 사랑도 보는 이에게는 꽤나 기쁨이 되는 것이다. 100년 전의 그림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화가의 감각과 스타일이 느껴지는 아름다운 그림을 보고 있으려니, 감성 에너지 충만했던 대학 시절이 그립다. 정문에서부터 언덕을 지나고 작은 숲을 지나, 높은 계단을 올라서야 갈 수 있었던 내 친구 도서관도 그립고, 지금쯤, 클림트 그림에 푹 빠진 또 다른 이의 감성을 충만하게 채워 주고 있을 커다란 화집도 그립다. 오랜 시간 동안 찾아 헤맸던 이를 만나 사랑의 기쁨을 누리고 있는 그대에게, 나처럼, '보는 사랑'에도 흡족해 하며 스스로를 위로하고 사는 그대에게 'The Kiss'를 바친다. 몸이 뜨거운 여름에 마음까지 뜨거워지는 에로틱한 그림을 보이는 것 같아 미안하지만, 그래도 아이러니 하게 왠지 cool한 느낌이 드는 건 이 그림의 매력(魅力)인지 마력(魔力)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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