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보이지 않게 다스리며, 나타나지 않고 일이 되게 하신다. 우리가 뜻하고 받드는 대로 계신 분이 아니다. 마치 하나님을 본 것처럼, 하나님을 잘 아는 것처럼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 하나님을 머슴처럼, 심부름꾼처럼 부리려고 해서도 안 되고, 나와 우리를 편들어주는 존재로 끌어내려서도 안 되고, 나와 우리를 정당화하고 옳게 보이려는 장식품으로 여겨서도 안 된다. 하나님은 오직 머리 위에 받들고 섬길 분이다.
- 박재순 -
< 시비(是非)를 넘어서려면 >
시시비비(是是非非) 따지는 것은 내가 지은 망령이요, 시(是)도 아니고 비(非)도 아니다.
하나님을 믿고 만족하면 일체의 문제가 그치고 만다.
시비의 문제는 철인의 경지에 가야 끝이 나고 알고 모르고는 유일신(唯一神)에 가야 넘어서게 된다.
절대에 서야 상대는 끊어진다. 상대에 빠져 헤매지 말고 절대에 깨나야 한다.
아무리 상대지(相對知)가 많아도 절대지(絶對知)에 비하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니까 절대요 전체요 하나인 진리(하나님)를 깨치는 것이 가장 급선무이다.
- 다석어록 65쪽 -
< 풀이 >
시시비비 알고 모르고,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은 나 개인에게 집착하니까 일어나는 것이다. 전체의 자리에 서면 일체의 문제가 그친다. 옳고 그름의 문제는 철인의 경지에 이르러야 풀린다. 철인이 무엇인가? 전체의 자리에서 생각하는 사람이다. 개인과 집단의 이해관계를 넘어서 전체의 자리에 서면 이해관계에 얽힌 옳고 그름의 문제들이 끝이 난다. 상대적인 지식의 세계에서 나오는 알고 모름의 문제는 절대자 유일신에 가야 넘어서게 된다. 절대이며 전체 하나인 하나님의 진리를 깨달으면 알고 모름의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앎에서 모름을 보고 모름에서 앎을 본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 모든 지혜의 근본이다.
- 박재순 -
< 제 가슴 속에 꼬리치는 생명의 물고기 >
황해·동해·남해도 바다이려니와 우리 속에는 그보다 더한 바다가 있다. 더 넓고, 더 깊고, 더 신비로운 본성의 바다이다.
저 바다에도 고기가 많지만 이 바다 속에 있는 생명의 성어(聖魚)에 비하면 그 까짓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초대 기독교인들은 로마제국의 핍박 밑에서 믿노라고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 아들 구세주’란 다섯 말의 첫 자를 따서 합하면 고기라는 희랍말이 되기 때문에 그것으로 서로 암호를 삼았었고,
그래서 천주교에서는 지금도 성어숭배를 하고 있지만 그까짓 고기보다 이 민중의 본성의 바다에 있는 고기야말로 성어다.
정말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구주’다.
예수는 믿어도 구원을 못 얻을지 몰라도 이 성어는, 제 가슴 속에 꼬리치는 생명의 성어는 믿으면 틀림없다.
야, 예수가 뭐냐? 갈릴리 바다를 들여다보다가 제 가슴의 성어를 잡은 것이 예수 아닌가?
- 새 나라 꿈틀거림 함석헌전집2. 295쪽 -
< 풀이 >
박해 받던 초기 그리스도교 시대에 물고기 그림으로 그리스도인을 나타내는 암호를 삼았다. 함석헌은 그리스도인의 상징인 물고기를 살아있는 주체적 신앙으로 바꾸었다. 참 신앙, 참 구원은 내 몸과 맘의 생명 속에 있다. 내 본성의 바다, 몸과 맘의 생명 속에 살아 있는 물고기를 잡으면 구원을 얻고 참된 생명에 이른다. 내 가슴에 꼬리치는 생명의 거룩한 물고기를 잡으면 늘 새롭고 싱싱한 삶을 살 수 있다.
- 박재순 -
< 자를 곳은 한 곳뿐이다 >
자를 곳은 한 곳뿐이다. 이 ‘나’다.
천지간에 만물이 있어도 내 마음이 마음대로 할 있는 것은 이 나뿐이다.
죽으면 이 ‘나’가 죽어야지, 누구더러 죽으라 할 권리가 없다.
그것을 알고 전체를 놓아 살려 주기 위해
‘나’를 죽을 것으로 단정하고 자른 것이 예수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이 생명이다. 신비로운 것은 정신이다.
나를 자르면 거기서 새 싹이 돋는다.
- 새 나라 꿈틀거림 함석헌전집2. 299쪽 -
< 풀이 >
함석헌은 ‘나’의 철학자다. ‘나’에게 집중하고 ‘나’를 추구했다. 나를 부정하고 죽이면 나는 새롭게 살아난다. ‘나’는 무궁한 생명과 정신의 주체이다. ‘나’는 늘 그렇게 있는 존재가 아니라 끊임없이 부정하고 죽임으로써 늘 새롭게 태어나는 무궁한 존재이다. ‘나’는 땅에 묻힌 씨처럼 부정하고 깨지고 죽어야 산다. 나는 늘 죽고 새롭게 태어난다. 이 세상에서 ‘나’없이 되는 일은 없다. 어떤 이의 ‘나’가 있어서 일이 일어난 것이다. 또 ‘나’를 움직이는 것도 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