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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 - 류시화 시집

by e-bluespirit 2010. 5. 15.

 

 

 

 

 

 

 

 

 

 

 

 

고요한 숲

곤충의 눈이

나를 바라본다

곤충의 눈 속에

내가 있다

나를 바라보는 곤충의 눈을 통해

내가 나 자신을 바라본다

그토록 크면서 그토록 작은 나

 

1996년 가을

류시화 

 

 

 

 

 

우리는 떠나게 되어 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도 많지 않다. 이 지구별에서는 우리가 얻은 어떤 물질도, 어떤 명성도 영원한 것일 수 없도록 규칙이 정해져 있다.또한 떠날 때는 그 모든 것을 놓고 빈손으로 가야 한다. 가혹한 규칙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규칙은 규칙이다. 그리고 이 우주의 더욱 가혹한 규칙은, 만일 우리가 여행의 목적을 잊어 버리고 여행지에 집착한다면 그 집착이 사라질 때까지 언제까지나 다시 그 장소에 태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똑같은 일을 되풀이해야 한다는 것이다.

 

 

 

 

 

 

책 속으로_

 

 

 

소금

 

소금이
바다의 상처라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소금이
바다의 아픔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세상의 모든 식탁위에서
흰 눈처럼
소금이 떨어져내릴 때
그것이 바다의 눈물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 눈물이 있어
이 세상 모든 것이
맛을 낸다는 것을

--- p.9

 

 

 

 

들 풀

들풀처럼 살라
마음 가득 바람이 부는
무한 허공의 세상
맨 몸으로 눕고
맨 몸으로 일어서라
함께 있되 홀로 존재하라
과거를 기억하지 말고
미래를 갈망하지 말고
오직 현재에 머물라
언제나 빈 마음으로 남으라
슬픔은 슬픔대로 오게 하고
기쁨은 기쁨대로 가게 하라
그리고는 침묵하라
다만 무언의 언어로
노래부르라
언제나 들풀처럼
무소유한 영혼으로 남으라

--- p.10

 

 

 

 

 

파도가 바다로부터 달아날 수 없는 것은
그 속에서 장난치는 어린 물고기 때문이다
바다가 육지로부터 달아날 수 없는 것은
모래에 고개를 묻고 한 치 앞의 생을 꿈꾸는
늙은 해오라기 때문이다

--- p.12 '나비' 중에서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

 

외눈박이 물고기처럼 살고싶다.
외눈박이 물고기처럼
사랑하고싶다.
두눈박이 물고기처럼 세상을 살기 위해
평생을 두 마리가 함께 붙어 다녔다는
외눈박이 물고기 비목처럼
사랑하고싶다

우리에게 시간은 충분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만큼 사랑하지 않았을 뿐
외눈박이 물고기처럼
그렇게 살고싶다.
그 혼자 있음이 금방 들켜버리는
외눈박이 물고기 비목처럼
목숨을 다해 사랑하고싶다.

--- p. 16

 

 

 

 

신비의 꽃을 나는 꺾었다

밝음의 한가운데로 나는 걸어갔다
그리고 빛에 눈부셔 하며
심비의 꽃을 꺾었다
그순간 나는 보았다 갑자기
화원전체가 빛을 잃고
폐허로 변하는 것을

둘레의 꽃들은 생기를 잃은채 쓰러지고
내손에 들려진 신비의 꽃은
아주 평범한
시든 꽃에 지나지 않았다

--- p.18-19

 

 

 

 

패랭이꽃

살아갈 날들보다
살아온 날이 더 힘들어
어떤 때는 자꾸만
패랭이꽃을 쳐다본다
한때는 많은 결심을 했었다
타인에 대해
또 나 자신에 대해
나를 힘들게 한 것은
바로 그런 결심들이었다
이상하지 않은가 삶이란 것은
자꾸만 눈에 밟히는
패랭이꽃
누군가에게 무엇으로 남길 바라지만
한편으론 잊혀지지 않는 게 두려워
자꾸만 쳐다보게 되는
패랭이꽃

--- p.23


 

 

 

 

얼마나 많은 날을 나는
내 안에서 방황했던가
8월의 해시계 아래서 나는
나 자신을 껴안고
질경이의 영토를 지나왔다
여름의 그토록 무덥고 긴 날에

--- p.27 '질경이' 중에서

 

 


 

 

물안개...

세월이 이따금 나에게 묻는다
사랑은 그 후 어떻게 되었느냐고
물안개처럼
몇 겁의 인연이라는 것도
아주 쉽게 부서지더라

--- p.37

 

 

 

 

넌 알겠지
인간으로 태어난 슬픔을
인간으로 태어나 인간을 사랑하는
무한 고독을
넌 알겠지
그냥 계속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는 것을
그것만이 유일한 진실이라는 것을

--- p.59

 

 

 


 

빈 둥지

고요한 숲
나뭇가지 위에 둥지가 하나 있다
어느 여름날 나는 그곳으로 다가갔다
발소리를 죽이고
가시나무에 찔리지 않게 조심하면서
한낮에 잎사귀가 넓은 식물들 곁을 지나
아무도 몰래 나무 밑으로 접근했다

새는 그때까지도
전혀 눈치채지 못하는 듯했다
언젠가 입은 상처로
나무둥치에 생긴 흉터자국에 한쪽 발을 걸치고
나는 나무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숨을 죽인 해
한낮의 고요 속에
마치 금지된 열매를 다려는 사람처럼
손을 뻗어 둥지 밑 나뭇가지를 붙잡았다

한쪽 발로는
몸의 균형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나는 나뭇가지를 붙잡은 손에 힘을 주어
둥지가 있는 곳까지 몸을 끌어당겼다
그리고는 고개를 빼고 재빨리
둥지 속을 들여다보았다
그것은 빈둥지였다

--- p.62-63


 

 

 

 

잔 없이 건네지는 술

세상의 어떤 술에도 나는 더 이상 취하지 않는다

당신이 부어 준 그 술에
나는 이미
취해 있기에
--- p.72

 


 

 

 

구름은 비를 데리고

1
바람은 물을 데리고 자꾸만
어디로 가고자 하는가

새는 벌레를 데리고 자꾸만
어디로 가고자하는가

구름은 또 비를 데리고 자꾸만
어디로 가고자 하는가

나는 삶을 데리고 자꾸만
어디로 가고 있는가

2
달팽이는 저의 집을 데리고 자꾸만
어디로 가고가 하는가

백조는 언 호수를 데리고
자꾸만 어디로 가고자 하는가

어린 바닷게는 또 바다를 데리고 자꾸만
어디로 가고자하는가

아, 나는 나를 데리고 자꾸만
어디로 가고 있는가

--- p.78-79

 

 

 

 

 

자살

 

눈을 깜빡이는 것마저
숨을 쉬는 것마저
힘들 때가 있었다.
때로 저무는 시간을 바라보고 앉아
자살을 꿈꾸곤 했다.
한 때는 내가 나를 버리는 것이
내가 남을 버리는 것보다
덜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무가 흙위에 쓰러지듯
그렇게 쓰러지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아직
당신 앞에
한 그루 나무처럼 서있다
----P. 87

 

 

 

 

 

하얀 것들

 

날개

물 위에 뜬 빛

어린시절의 기억

외로운 영혼

죽음 뒤에 나타나는 빛의 터널

자작나무의 흰 껍질

강의 마른 입술

오래된 상처

 

사막은 무슨 생각을 하며

하얗고 긴 생을 견디는 걸까

 

여기 하얀 것들이

내 곁에 있다

 

오래된 상처

강의 마른 입술

자작나무의 흰 껍질

죽음 뒤에 나타나는 빛의 터널

외로운 영혼

어린시절의 기억

물 위에 뜬 빛

날개

 

---p. 96-97

 

 

 

 

 

눈 물

슬픔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안이 환하다
누가 등불 한 점을 켜놓은듯
노오란 민들레 몇 점 피어 있는 듯
슬픔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민들레밭에
내가 두 팔 벌리고
누워 있다
눈썹 끝에
민들레 풀씨 같은
눈물을 매달고서
눈을 깜박이면 그냥
날아갈 것만 같은

--- p.98

 



 

 

 

 

출판사 리뷰_

 

 

시인이자 명상가, 번역가로 활동중인 류시화의 두번째 시집. 시인 이문재는 말한다. '류시화 시인은 일상 언어들을 사용해 신비한 세계를 빚어낸다. 낯익음 속에 감춰져 있는 낯설음의 세계를 발견해 내는 것이 시의 가장 큰 역할이 아닐까. 그의 시는 발명이 아니라 발견이다. 그의 시의 또 다른 미덕은 탁월한 낭송시라는 것이다. ……시가 노래라는 숙명을 거부한 시들의 생명력을 나는 길게 보지 않는다. 그의 시들은 소리내어 읽는 동안 독자의 온몸으로 스며든다…….'

이해인 수녀 역시 '막힘없이 쉽게 읽히면서도 결코 가볍지 않은 깊이로 읽는 이의 마음과 영혼을 끌어당기는 사랑과 자연의 노래들. 우리를 명상의 숲으로 초대하는 아름다운 노래들'이라고 말한다.

그의 시는 실로 노래이다. 그는 '무언의 언어로 노래부르라 언제나 들풀처럼 무소유한 영혼으로'('들풀') '남을 아파하더라도 나를 아파하진 말아야지 다만 무심해야'('짧은 노래') 한다고 말한다.

그는 또한 '소금'의 시인이고 '나그네' 시인이고 '나무' 시인이다. 소금은 '바다의 상처'이고 '바다의 아픔'이며 '바다의 눈물'('소금')이다. 그러나 그것을 아는 이, 세상에 드물다. 그래서 소금별에 사는 사람들은 눈물을 흘릴 수 없다. '눈물을 감추려고 자꾸만 눈을 깜박'('소금별')일 뿐이다. 소금은 슬픔으로 형상화되어 '슬픔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안이 환하다 누가 등불 한 점을 켜놓은 듯'('눈물') 환해졌다.

이제 그는 길 떠나는 나그네가 되었고, 나그네는 길 위에서 '사랑을 원하는 자와 사랑을 잃을까 염려하는 자'('길 가는 자의 노래')를 본다. '죽은 자보다 더 서둘러'('꽃등') 집을 나오는 문상객들을 보았으며 '영원의 틈새를 바라본 새'가 되어 '그대가 살아온 삶은 그대가 살지 않은 삶'('여행자를 위한 서시')이라는 깨달음에 도달한다.

먼 길을 돌아온 나그네는 '사과나무 아래 서 있고'('사과나무') 싶어한다. 그리고 '서로에게 다가가지 않기 위해', '서로의 앞에 흔들리지 않기 위해' 애를 쓰다가 '저 혼자 깊어지기 위해'('나무는') 애를 쓰는 나무가 되고 싶어한다. 누군가 한 사람을 지켜보는 일은 무척 흥미롭다. 특히 더욱 깊어지는 한 사람의 내면 세계를 가까이서 들여다보는 일은 더욱 그렇다. 첫번째 시집 이후 한층 깊어진 류시화의 시세계를 접하는 일은 그래서 감동적이다.

 

 

 

 

 

 

 

저자 소개

류시화 : 시인은 시집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와 산문집 <삶이 나에게 가르쳐준 것들>, <달새는 달만 생각한다>등으로 독특한 작품 세계를 인정받았다. 또한 번역서 <성자가 된 청소부>,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 <티벳 사자의 서> 등의 여러 명상 서적도 높이 평가받았다. 인도와 네팔을 주로 여행하며 사진을 찍고 글을 쓴다.

 

책 소개

시인이자, 명상가, 번역가로 활동중인 류시화의 두 번째 시집.  이해인 수녀는 류시화의 시세계에 대해 `막힘없이 쉽게 읽히면서도 결코 가볍지 않은 깊이로 읽는 이의 마음과 영혼을 끌어당기는 삶과 자연의 노래`라고 말한다.

추천의 글

류시화 시인은 일상 언어들을 사용해 신비한 세계를 빚어낸다. 바로 이 점이 그의 시의 중요한 미덕이다. 낯익음 속에 감춰져 있는 낯설음의 세계를 발견해 내는 것이 시의 가장 큰 역할이 아닐까. 그의 시는 발명이 아니라 발견이다. 그의 시의 또다른 미덕은 탁월한 낭송시라는 것이다. 나는 간혹 그가 전화로 읽어 주는 시를 들은 적이 있다. 그 '읽어준 시'에 반해 훗날 눈으로 읽었더니 그 감동이 반감돼 실망한 경우도 있었다. 소리내어 읽울 수 없는 시들이 양산되는 이즈음 그의 소리내어 읽을 수 있는 시들은 감동적이다. 시는 활자에 갇혀 있는 것을 싫어한다.

그의 시들은 소리내어 읽는 동안 독자의 온 몸으로 스며든다. 그의 시에 대한 설명은 오히려 불필요한 지도 모른다. 좋은 물에 대한 정의는 무색과 무취, 무미로도 충분하다. 나는 그의 시를 설명하는 대신에 '좋은 물 마시듯 이시들을 입에 넣고 중얼거려라'고 말한다.     

-이문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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