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18. The LORD God said, "It is not good for the man to be alone. I will make a helper suitable for him."
하나님의 가정설계 창세기 2:18
한 문명에 대한 최종 평가는 그 문명이 어떤 유형의 남편과 아내, 아버지와 어머니를 만들어 내었느냐에 좌우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따라서 가정의 회복이야말로 허물어져가는 사회를 다시 회복할 수 있는 참으로 중요한 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오늘부터 저와 여러분은 특별 새벽기도회를 통해 우리의 가정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새롭게 세워가기를 원합니다.
오늘 읽은 본문 앞에서 하나님은 자신이 지으신 세계를 보시고 “보시기에 좋았더라” 1:31에서는“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 보니 난데 없이 “좋지 못하니”라고 말씀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금방 말씀을 뒤집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좋지 못하다”고 말씀하신 것은 그 안에 어떤 의도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바로 이 하나님의 의도 즉 하나님의 계획을 알게 되면 우리는 행복한 가정의 문을 열 수 있을 것입니다.
첫째, “좋지 못하다”고 하신 것은 사람이 홀로 거하는 것이 좋지 못하다는 마씀 이었습니다. 하나님은 홀로 있는 것을 아름답게 보시지 않으셨습니다. 시편 68:6절에 보면 “하나님이 고독한 자들은 가족과 함께 살게 하시며 갇힌 자들은 이끌어 내사 형통하게 하시느니라” 라고 했습니다. 즉 하나님은 사람이 홀로 고독하게 사는 것을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태초부터 남자와 여자가 함께 사는 것을 원하셨습니다. 그러니까 결혼은 하나님의 계획이었던 것입니다. 결혼은 사람이 만들어낸 제도가 아닙니다. 창조시 부터 있었던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가정 속에 치유가 있고 회복이 있습니다. 잠언 19:14 입니다. “아내를 얻는 자는 복을 얻고 여호와께 은총을 받는 자니라”뿐만 아닙니다. 잠언 19:14절에 보면 “집과 재물은 조상에게서 상속하거니와 슬기로운 아내는 여호와께로서 말미암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이 홀로 거하는 것을 하나님은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둘째, “좋지 못함”대한 하나님의 처방은 놀랍게도 “한 아내”였습니다. 아담이 외로울 때 여러명의 친구를 만들어 주시지 않고 단 한명의 아내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분명히 친구가 아니라 아내였습니다. 매우 중요한 뜻이 담겨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자신의 아내에게 만족을 얻지 못하는 남자는 세상 어디에서도 만족을 얻을 수 없게 됩니다.
성경은 일부일처 입니다. 처음부터 그랬습니다. 성경은 교회의 직분자들을 이야기 할 때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므로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딤전 3:2), “집사들은 한 아내의 남편이 되어”(12절). 그러므로 가정에 충실한 것이 지도력의 기본입니다. 이제 말씀을 마무리 하려 합니다. 결혼은 하나님이 만드셨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더구나 그 핵심은 “한 아내”, “한 남편”입니다. 예외가 있을 수 없고 양보가 있을 수 없습니다. 가정을 생각하실 때마다 이 말씀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유대의 랍비들을 결혼하는 젊은이들에게 들려주는 교훈 가운데 “남자는 그 옆구리로부터 나온 갈빗대를 갖지 못하는 동안은 휴식할 수 없고 여자는 그녀가 나온 남자의 옆구리 곁에 있지 않으면 쉼을 얻지 못한다”라는 교훈이 있다고 합니다. 아까 잠언 19:14절 말씀에 슬기로운 아내는 여호와께로서 말미암는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고백하는 남편들은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야 하고 아내들은 나의 모든 행위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이름이 드러나야 하는 것입니다.
목표를 가진 가정 전도서 9:9
그리 멀지 않은 코스타메사에 있는 새들백교회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교회입니다.그 교회의 담임이신 릭 워렌 목사님이 지으신 “새들백교회이야기”라는 책은 미국식 교회성장학의 바이블이라 불리우기도 합니다. 거기에 중요한 개념이 등장하는데 다름아닌 “목적이 이끌어 가는 교회”라는 개념입니다. 릭 워렌은 이 책에서 교회를 몇가지로 분류했습니다.
전통이 이끄는 교회, ‘우리는 이런 식으로 오랫동안 해왔다’는 것입니다. 과거의 전통을 매우 중시하는 교회입니다.
인물이 이끄는 교회, ‘지도자가 무엇을 원하는가?’이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모든 교회의 일들이 지도자를 중심으로 이루어 집니다.
재정이 이끄는 교회, ‘비용이 얼마나 들까?’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프로그램이 이끄는 교회, 계속 프로그램이 나와야 하고 지속되는데 교회의 에너지를 다 사용합니다.
건물이 이끄는 교회도 있습니다. 모든 에너지가 교회 건물을 구입하고, 유지하는데 다 쓰이는 교회 입니다.
가장 바람직한 교회는 ‘하나님의 목적에 의해 움직이는 교회’라고 했습니다. 릭 워렌은 “어떤 계획, 프로그램, 사람, 건물도 영원하지 못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목적은 영원히 지속될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그런데 우리 가정들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해 볼 수 있습니다.
전통이 이끄는 가정, 족보가 중요합니다. 과거의 역사가 훈장입니다. 조상들이 어떤 일을 했었느냐 그것을 자랑합니다.
인물이 이끄는 가정, 가정 안에 절대적인 존재가 있어 가정의 분위기를 좌우합니다. 그 한 사람을 위해 다른 가족들이 존재합니다. 이런 가정에서는 눈치밖에 남지 않습니다. 비정상적인 모습을 드러내는 역기능 가정이 대게 여기서 나옵니다.
재정이 이끄는 가정, 돈이 제일인 가정입니다. 뭐든지 다 돈입니다. 이게 얼마짜리인줄 아냐, 온 식구가 소유에 관심이 다 가있습니다.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도 ‘존재’보다는 ‘소유’즉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느냐에 따릅니다.
프로그램이 이끄는 가정, 집안의 대소사가 매우 중요합니다. 가족이 집안 행사를 중심으로 몰려 다닙니다. 종가집 며느리들은 제사 준비하다가 평생을 다 보내기도 합니다.
건물이 이끄는 가정도 있습니다. 어느 동네, 몇 평에 사느냐가 중요합니다. 큰 집과 좋은 집이 곧 행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집을 꾸미는 일 때문에 많은 것을 희생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행복하더냐 입니다. 아닙니다. 행복하질 못합니다.
이제 우리 가정들도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위에 세워져야 합니다. 고전 1:10 “한 마음을 품고 생각과 목적에 있어서 하나가 되십시요”
목적이 이끌어가는 가정이 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 생각해보십시다.
첫째, 가정의 구체적인 목적을 세워야 합니다. 찰리 브라운이 백야드에서 활쏘기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표적도 없는 나무담장을 향해 무조건 화살을 쏜 다음 화살이 꽂힌 곳 주위에 표적을 그려넣곤 했습니다. 루시가 왜 그렇게 하느냐고 물었더니 찰리의 대답이 걸작입니다. ‘이렇게 하면 절대로 빗나가는 일이 없다’오늘날 우리 각 가정에 목표가 없습니다. 어디로 가는지를 모르는 것입니다.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평범과 비범의 차이는 삶의 동기에 있다고 했습니다. 목적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부부가 서로 동의하며, 자녀들도 이해할 수 있는 숭고한 가정의 목적을 세워야 합니다.
둘째, 목적을 세우되 하나님의 목적을 바라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가정에 대한 목적은 무엇일까요? 오늘 성경 본문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네 헛된 평생의 모든 날 곧 하나님이 해 아래에서 네게 주신 모든 헛된 날에 네가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살지어다 그것이 네가 평생에 해 아래에서 수고하고 얻은 네 몫이니라” 가만히 보면 세상의 모든 것들은 헛되기 지나갑니다. 명예도, 재물도, 부귀영화도 그러나 다른 것 다 양보하고 빼앗겨도 배우자와 즐겁게 사는 것만은 빼앗기면 안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목적이고, 명령이고,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가정은 천국의 모형입니다. 가정 안에서 즐거움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은 세상 어디서도 그 기쁨을 누릴 수 없습니다. 기억할 것은 가정을 즐거워하고 기뻐하다가 가정을 허락하신 하나님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선물을 좋아하다가 선물을 준 사람을 잊어서는 안되는 것과 같습니다. 지난 주일 아침 아내와 동네를 걷다가 자동차 넘버 케이스에 이런 글귀를 보았습니다. Worship the creator not the creation. 짧은 글이었지만 큰 울림이 있었습니다.하나님을 알고 하나님 중심의 가정설계를 갖는 가정이 건강한 가정이요, 복된 가정인줄로 믿습니다.
엘리자베스 스튜어트 펠프슨 이런 말을 했습니다. ‘삶을 지배하는 거대한 힘 가운데 하나는 뚜렷한 목적을 갖는 것이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삶을 살아갈 때 목소리도, 태도도, 자세도, 옷차림도 동작 하나 하나도 다 변화한다’ 우리 가정의 목표가 무엇인가? 목표가 있는가? 하나님이 주시는 목표가 이끌어 가는 가정이 되게 하여 주세요. 함께 기도하길 원합니다
24. |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
25. |
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
|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방법을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
1. “부모를 떠나라”는 것입니다.
이는 분리의 원칙을 말합니다. 시편을 보면 '떠나다'와 '버리다'라는 단어가 같은 뜻으로 쓰여지고 있습니다. 남녀가 결혼하면 새로운 출발점에 서는 것입니다. 더 이상 부모의 통제아래 있는 것이 아니라 독립적을 서로에게 집중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어떤 목사님은 결혼 주례때 먼저 부모들의 서약을 받는다고 합니다. “양가 부모들은 자녀들을 결혼시킴에 있어 더 이상 이들을 통제하지 않기로 작정하십니까? 이들을 온전히 떠나보내시겠습니까? 라고 말입니다. 우리 모두는 독립해야 합니다. 사람이나 그 무엇에게도 조종받지 않고 영향받지 않는 행복한 가정을 만들어 가야 합니다. 그것이 가정에 대한 하나님의 설계였습니다.
2. “그 아내와 연합하는 것” 입니다.
연합은 단순한 결합이 아니라 조화를 의미합니다. 조화는 상대에게 100% 헌신하는 것입니다. 서로의 단점을 있는 그대로 용납하고 보완하여 온전함을 향해 함께 가는 것이 연합입니다. 영어성경(KJV)은 이 구절을 번역하면서 “Cleave”란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뜻은“들러붙다, 고착시키다, 가까이 지내다, 그대로 지속되다”는 의미입니다. 살이 뼈에 붙어있는 것, 물고기 비늘이 몸에 붙어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부부란 어떤 경우에도 분리되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죽음이 둘 사이를 갈라 놓을 때까지 붙어 있어야 합니다.
3.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입니다.
결혼은 아주 독특한 공식에서 이루어 집니다. 산수에서 1+1=2 입니다. 그런데 결혼의 공식은 하나 더하기 하나는 하나 입니다. 여기에 결혼의 신비가 있습니다. 불완전한 하나가 드디어 결혼을 통해 온전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부부는 같은 가치관을 가져야 합니다. 삶의 목적이 달라서도 안됩니다. 그리고 육체의 연합까지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분방은 성경적이 아닙니다. 기도하기 위해 합의하에 분방은 가능하지만 그 외에는 아닙니다. 부부는 하나여야 합니다. 늘 같은 생각, 같은 마음, 같은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4.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 아니하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친밀성의 원리로 결혼생활에서 어떤 허물이나 약점이 결코 문제가 되지 않음을 의미합니다. 서로에게 완전히 열려 있어야 하고 오히려 약점들 때문에 서로를 도울 수 있어야 합니다. 부부는 아무리 깊은 상처도 치유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 치유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가장 연약한 부분을 다 드러내고도 전혀 부끄럽지 않을 수 있는 대상은 이 세상에 오직 하나님과 배우자 뿐”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말씀을 정리합시다. 본문은 네가지 중요한 원리를 말씀하셨습니다. 건강한 부부라면 하나도 소홀할 수 없습니다. 나에게, 우리 가정에 잘하는 부분이 있다면 더 잘 합시다. 그리고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이시간 하나님께 도움을 구합시다. '하나님 도와주세요', '주님께서 채워주세요', 기도할 때 채워주실 줄 믿습니다. 옆에 남편이나 아내가 계시면 함께 손을 잡읍시다. 혹시 홀로 나오신 분이 계시면 배우자를 생각하며 기도 드립시다.
가장의 권위를 세워가는 가정 창세기 2:23, 3:20
우리는 오늘 새벽도 뭔가 가정의 행복을 꿈꾸며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여러분이 진정 행복을 원하신다면 오늘 꼭 명심하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 아내들은 어떤 경우에도 남편을 하늘처럼 받들면 안됩니다. 남편은 하늘같은 존재가 아닙니다. 무턱대고 하늘처럼 받들려하니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가정의 기초를 잘 놓으시려면 이 말을 명심하셔야 합니다. 정말로 아내들은 남편을 하늘처럼 받들어서는 안됩니다. 남편은 하늘처럼 받들어야 할 존재가 아니라 하늘 이상으로 받들어야 합니다. 남편을 가리키는 지아비 “부”자가 어떻게 생겼는지 아시지요? 하늘 천(天)자 위에 점에 하나 더 있는 것이 지아비 부(夫)자 입니다. 그러니 하늘 보다 더 높은 존재입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신학적으로 헤드십(HEADSHIP)이라고 부릅니다. 남자의 머리됨은 성경도 인정하고 있습니다. 즉 여자가 남자에게 이름을 지어준 것이 아니라 남자가 여자에게 이름을 지어 주었기 때문입니다. 아담이 하와에게 이름을 지어줄 때 하와는 이를 받아들였습니다. 남녀간의 차별은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 역할은 차이가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하나님께서 남자를 머리로 세우셨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입니다. 사탄은 바로 이 남자의 헤드쉽을 계속 공경해 왔습니다. 사탄은 이 남편의 헤드십을 공격함으로 가정 파괴를 시작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요즘 아빠들의 권위는 없다고 보면 맞습니다. 애들을 깨울때 보면 요즘 아빠들이 얼마나 별볼일 없는지 알 수 있습니다. 아버지가 제방에 오셔서 일어나라 그러면 저는 벌떡 일어나야 했습니다. 밍기적 거리다가는 혼쭐이 나곤 했습니다. 요즘 애들을 깨우는 아빠들은 애처롭습니다. 하다 하다 안되면 이렇게 말합니다. “야 엄마가 빨리 일어나래” 그러면 애들이 벌떡 일어납니다.
가정의 헤드십을 찾아 바로 세워야 합니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 합니다. 이유는 밟으니까 요즘 대세는 ‘안죽어서’ 입니다. 왜 여자들이 남자들에게 대듭니까? ‘안 죽어서’ 그렇습니다. 그러니 여자들은 확실히 밟아야 합니다. 이렇게 말하는 남자들은 무식하고 철없는 남자들 입니다. 헤드십은 그런것이 아닙니다. 헤드십은 생명의 근원입니다. 영적인 권위를 상징합니다. 어거스틴은 이런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여자가 남자를 지배하기를 원하셨다면 여자를 남자의 머리에서 뭔가를 취하여 만드셨을 것이다. 또 남자의 노예를 원하셨다면 발바닥에서 뭔가를 취해 만드셨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자를 남자와 동등하며 돕는 자로 만드셨기 때문에 남자의 옆구리에서 취하셨다”.
어떻게 추락해 버린 가장의 권위를 회복할 수 있을까요?
첫째, 남자들은 가정에서 영적 제사장이 되어야 합니다.
가장이라니 말은 가정에서의 제사장 이란 말을 줄인말 이라고 합니다. 과장, 부장, 사장, 회장보다 더 좋은 말이 가장입니다. 따라서 남자가 가정의 머리가 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돌보셨던 것처럼 가정을 돌보아야 합니다. 목동이 양을 치듯 가장은 가정을 돌보아야 합니다. 남자를 가장으로 세우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므로 가장은 믿음안에서 먼저 바로서야 합니다. 바른 가치관, 바른 삶의 자세를 든든히 세워야 합니다. 가정에서 참으로 아름다운 삶의 모범을 보여야 합니다. 아내나 자녀들에게 부끄럽지 않아야 합니다. 기도하는 모습, 말씀을 가까이 하는 모습을 억지 춘향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둘째, 아내들의 도움이 있어야 합니다.
사탄은 아담을 제치고 하와와 상대를 했습니다. 바로 가정 파괴의 시작이 남편의 헤드십이 공격당한 직후 였던 것입니다. 가장 사랑스런 아내가 사탄의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하와가 걸려 넘어진 것은 다름 아닌 남편을 앞지른 것입니다. 가장 사랑스러워야 할 아내가 사탄의 도구가 될 수 있는 무서운 경고입니다. 돕는 배필이 아니라 방해하는 배필이 되었습니다. 아내는 남편을 앞지르지 말아야 합니다. 남편의 조언을 구하고 남편의 의견을 먼저 묻는 부인이 현명한 부인입니다. 아내는 순종함으로 남편에게 명령한다는 말이있습니다. 아내는 남편의 머리가 아니라 목이 되어야 합니다. 머리를 세워주고, 자신은 머리를 지탱하고 움직이는 목이 되면 많은 문제가 해결됩니다. 목을 좌우로 돌려 보세요. 머리는 목이 움직이는 대로 따라 옵니다. 바로 이것이 성경의 원리입니다.
말씀을 정리합시다. 아내는 남편의 헤드십이 무엇인지 이해해야 합니다. 그리고 아내는 그런 남편의 역할을 도울 수 있어야 합니다. 남편을 존중하지 못하는 일은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고 사탄의 도구가 되는 행위가 됩니다.
아내에게 존중받지 못하는 남편은 세상 사람 누구도 존중하지 않습니다. 남에게 존중받는 남편을 원하신다면 아내된 나부터 남편을 존중하는데서 그 소원이 이루어지는 시작점이 되는 것입니다. 남편이 살아야 가정이 삽니다. 이 일를 위해 기도합시다.
우리 가운데 혹시 싸우지 않으시는 부부가 있으시면 손을 들어 보시길 바랍니다.저희도 싸웁니다. 왜 싸우는가 하면 아담과 하와도 싸웠기 때문입니다. 남자와 여자는 그때부터 싸웠습니다. 그 원인이 창세기 3:16절에 나옵니다.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여기서 남편을 원한다는 말은 남편을 그리워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남편을 주장하고 조종하고 싶어하는 욕구를 나타냅니다. 죄가 들어오면서 생긴 겁니다. 돕는 배필로 아무 문제가 없었는데 죄가 들어오면서 남편의 헤드쉽을 인정하려 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아내가 남편을 주장하려는 모습이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아내들이 남편을 주장하려 해도 결국 남편이 아내들을 다스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가정의 비극이 시작된 것입니다.
창세기 4:7절을 보면 자기 동생을 살해하기 전 가인에게 하신 말씀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같은 문장입니다. “너는 남편을 원하고” “desire to control you”. 즉 여자가 남편을 주장하기를 원하는 모습은 죄가 가인을 강하게 주장하려고 했던 것과 마찬가지라는 뜻입니다. 남편과 아내의 힘겨루기는 결국 죄의 문제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1:8-9 입니다.
8. |
9. |
디모데전서에가면 순서까지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2장 13,14절 입니다.
14. |
아담이 속은 것이 아니고 여자가 속아 죄에 빠졌음이라 |
여자분들은 속이 좀 상하시지요? 야베스의 기도로 유명한 부르스 윌킨스의 아내 달랜도 아주 기분이 못마땅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녀가 성경을 읽어가다가 놀라운 이치를 발견했습니다. 돕는 배필이란 단어의 뜻이었습니다. 돕는 배필이란 “필요한 것을 것이나 부족한 것을 공급한다는 의미입니다. 킹 제임스 는 help meet 여기서 meet는 적절한, 비슷한, 상통하는 등등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도와주는 동반자, 비슷한 적절한 사람이라는 뜻이 됩니다. 리빙 바이블은 proper helper 라고 했습니다. 즉 적절하게 돕는자라는 뜻입니다. 히브리어를 보면 더 깊은 의미가 나옵니다. <에셀 케네그도>, 에셀=도움, 돕는자라는 뜻인데 놀랍게도 이 단어는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도와주신다는 것을 표현할 때 사용되는 단어였습니다.
예를 들면 시편 121:1-2 |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에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에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여호와를 의지하라 그는 너희 도움(에셀)이시요 너희 방패시로다 (시 115:9)
바로 이 에셀입니다. 이 에셀은 “구원자”의 이미도 담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13:6 “주는 나를 돕는 자시니”라고 했습니다. 그분이 우리를 돕는 분 이십니다. 그분의 도움이 없이는 우리의 삶이 완성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아내들이 돕는 배필이 될 때, 여자분들은 하나님의 성품에 가장 가까이 간 것입니다. 돕는 배필이 된다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이런 아내의 도움 없이 남편들은 절대로 온전해 질 수 없습니다. 이것이 아내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은사입니다. 돕는 배필이 되었다고해서 손해본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기뻐하고 기뻐해야 할 일입니다.
어떤 철없는 남편이 가만히 보니 아내가 하는 일이 별로 없는 것 같더랍니다. 매일 집에서 노는 것 같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했답니다. 제가 아내가 되고, 아내가 남편이 되게해 주세요. 우리 아내가 밖에 나가서 내가 얼마나 고생하는지 알게 해 주세요. 정말 그 기도를 들으시고 역할을 바꾸어 주셨답니다. 아내가 된 남편이 아침부터 종종거리는 데 일이 얼마나 많은지 점점 힘이 들어지는 데 어느날 힘들어 파김치가 된 마당인데 남편의 잠자리 요구까지 들어 주어야 했답니다. 더 이상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 다음날 새벽 하나님께 그랬답니다. 더 이상은 못하겠으니 다시 바꾸어 주십시요.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앞으로 열달 동안은 나도 못바꾼다 왜냐하면 너 어제밤에 임신했다” 그러시더랍니다.
아내된 여러분, 큰 일을 하고 계십니다. 복된 일을 하고 계십니다.
말씀을 마칩시다. 돕는 배필의 역할을 묵상해 보겠습니다.
a. 나는 내 남편을 위한 온전한 돕는 배필로서, 하나님이 그를 위하여 세상의 모든 여자들 중 특별히 나를 택하셨다는 것을 믿는다.
b. 나는 그의 희망과 꿈을 함께 나누며 그의 실망을 함께 짊어질 것이다.
c. 나는 매일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의 보좌 앞에 그를 내어놓을 것이다.
d. 나는 중요한 순간마다 그를 격려하고 위로하는데 최선을 다할 것이다.
e. 나는 조건없이 그를 사랑할 것이다.
f. 나는 하나님이 그에게서 바라시는 모든 것을 실현할 수 있도록 도와주며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하도록 그를 도울 것이다.
'Spirit > e—Bible—study'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정을 세우는 두 기둥 II (0) | 2011.01.17 |
---|---|
가정을 세우는 두 기둥 I (0) | 2010.12.26 |
요한계시록 Revelation 11 - 14 (0) | 2010.12.18 |
요한계시록 Revelation 7 - 9 (0) | 2010.12.11 |
요한계시록 Revelation 1 - 3 (0) | 2010.12.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