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irit/e—cr—life
나는 이제를 산다
by e-bluespirit
2010. 12. 24.
< 나는 이제를 산다 >
길이(長), 넓이(廣), 높이(高) 3차원계만이라면
운동의 세계(動界)도 생명의 세계(生界)도 생각의 세계(思界)도 아니겠지요.
시간의 축(時軸)이 있어야 이치(理)나 ‘이것’(是)이 있을 것이다. 시(詩)는 일어나는 짓거리이다. 『시경(詩經)』에 시(時)는 시(是)로 통한다.
하늘의 때는 늘 그때지만, 사는 때는 사는 ‘이’의 때, 이때, 제때, ‘이제’다. 이것이 목숨의 올(命理)이요, 살라는 말씀(生命)이다.
이 말씀을 듣고 짓이 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으며, 제로라고 일어나지 않을 이가 어찌 있으리까?
이러므로 인생은 시(詩), 시(時), 시(是), ‘이제’다. 이후는 죽은 이제(과거)와 못난 이제(미래)를 따지느라고 생(生) ‘이제’를 드릴 ‘이’는 없겠다. 이러므로 이는 이제 살았다.
-『제소리』 317~8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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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풀이 >
삼차원의 세계만 있다면 운동도 생명도 생각도 없을 것이다. 사차원을 이루는 시간의 축이 있으므로 변화하는 이치를 말할 수 있고 지금 여기의 이것이 있을 수 있다. 모든 생명은 언제나 지금 여기 이 순간에 산다. 이 순간은 이 순간을 사는 이의 때이다. 이 순간 ‘이제’는 이 순간을 사는 사람 자신의 때, 제 때이다.
제때인 이제를 사는 것이 목숨의 진리이며 생의 명령이다. 누구나 자신의 때를 살 수 있고 마땅히 살아야 한다. 제 때를 사는 사람은 흥겹고 신이 나서 춤이 저절로 나온다. 시간(時)은 언제나 지금 여기의 순간, ‘이제’(是)이며, ‘나’의 때인 이제는 흥겨운 시(詩)가 된다.
- 박재순 -
< 바위에서 꽃이 나오고 똥에서 과일이 나오는 기적 >
기적 기적 권능 권능하지만 흙에서 밥을 만들어내는 것이야 말로 권능 있는 기적 아닌가?
시라 그림이라 음악이라 하지만 바위에서 꽃이 나오고, 똥에서 과일이 나오는 이거야말로 정말 예술 아닌가?
지식 학문 하지만 아무리 발달했기로서 기초의 기초되는 밥과 옷 만들기를 잊어버린 지식이 무슨 지식일까?
-“씨알의 설움” 함석헌전집 4권 58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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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풀이 >
이 우주 안에서 놀라운 일이 무엇인가? 생명이다. 생명 자체가 기적이고 신비이며 힘이다. 흙에서 밥을 만들어내는 것이 생명의 놀라운 힘이고 기적이다. 시, 그림, 음악은 존재와 삶의 새로운 차원, 깊이를 드러내는 것이다. 바위에서 꽃이 나오고 똥에서 과일이 나오는 것이야말로 존재와 삶의 새롭고 깊은 차원을 드러내는 것이 아닌가? 존재와 삶의 새롭고 깊은 차원을 드러내는 생명 자체가 예술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예술을 자연의 모방이라고 했다. 모방이라면 밖에서 흉내 내는 것이다. 함석헌에게 예술은 자연에 참여하여 자연의 생명, 민중의 삶을 표현하는 것이다. 생명은 스스로 하는 것이므로 예술도 주체적이고 창조적이고 생명적인 것이다. 모든 생명은 스스로 하는 주체인 ‘나’를 가진 것이다. 생명의 주체인 ‘나’가 우주자연생명의 주체이며 본성이다. 참 예술은 인간 생명의 주체에서 나온 것이며 그 주체를 드러내고 일으켜 세우는 것이다. 삶을 잊은 학문과 지식은 뿌리를 잃은 것이다.
- 박재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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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술과 문학을 하는 자리 >
네 선 자리, 소설을 쓰는, 작곡을 하는 네 선 자리가 어딘 줄 아느냐?
하나님의 발가락, 곧 민중이 앉았는 곳이야!
민중과 한 가지 발 벗고 나서지 않은 학사, 문사 다 절도요 강도다.
우리 부족은 혼에 있다. 시는 상상력이 많아야 한다고 하더구나
상상력이 무엇이냐? 도덕적으로 말하면 동정심이지.
동정심이 무어냐? Sympathy지. 같이 아파하는 거지.
하나 됨, 우주정신의 바탈대로인 씨알의 마음으로 하나 됨이 없이 어떻게 노래를 부르고 그림을 그리겠느냐?
-“씨알의 설움” 함석헌전집 4권 62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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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풀이 >
역사와 사회의 무거운 짐을 지고 신음하는 민중을 외면한 인문학적 논의는 진정성을 잃은 것이다. 생명과 정신과 영혼의 주체를 생각하지 않는 예술과 문학은 공허한 장난이다. 우리 사회와 역사에서 생명과 정신과 영혼의 주체를 보고 느낄 수 있는 자리가 어디인가? 사회와 역사의 무거운 짐을 지고 생명과 정신과 영혼이 억눌려 있는 민중의 자리가 바로 그 자리다.
민중에게 억지로 무거운 짐과 책임을 지워놓고 민중을 외면하고 사치와 향락에 빠진 세상과 함께 인생을 즐기려는 학사, 문사는 절도요 강도다. 예술과 문학의 바탕이 되는 상상력은 민중의 고통에 대한 동정심에서 나오고 동정심은 같이 아파하는 맘에서 나온다. 혼이 살아 있으면 함께 아파하며 하나 됨을 느낄 수 있다. 생명과 영혼의 주체는 전체와 통하는 것이다. 주체와 전체가 살아서 통하지 않는 예술과 문학은 죽은 것이다.
- 박재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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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운데 바름 >
몸은 활이고 곧은 정신은 화살이다.
몸이란 활에다 정신이란 화살을 끼워 쏘아 가운데 바름(中正)을 얻을 수 있다.
- 다석일지 1956년 1월 19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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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풀이 >
가운데(中)는 뭇 사람이 하나로 되는 자리이고, 바름(正)은 뭇 사람이 함께 따르는 길이다. 어떻게 가운데 바름에 이를 수 있는가? 온 몸이 활처럼 굳세고 강하며, 정신은 화살처럼 곧고 날카로워야 한다. 온 몸으로 힘을 다해서 곧은 정신을 화살처럼 쏘아야 가운데 바름에 이를 수 있다. 몸이 성하고 켕겨 있으며, 곧은 정신이 힘차게 바르게 움직이는 이가 가운데 바름의 자리에 설 수 있다.
곧음으로만 하나 됨(하늘, 하나님)에 이른다. 몸이 곧으면 몸의 기관들이 잘 통하고, 마음이 곧으면 마음이 통일된다. 곧음으로써 서로 다른 것들이 두루 통하는 ‘동그라미’에 이른다. 동그라미와 곧음의 통합이 가운데의 바름(中正)이다. 곧은 사람만이 가운데서 바를 수 있다.
- 박재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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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망(坐忘) >
낮에는 잊고 앉아 숨 쉬고, (坐忘消息晝) 맡은 일 쉬지 않고 하여 본성을 회복한다. (復性不息課) 밤이면 안식에 들어가 은혜롭게 자고, (寢恩安息宵) 새벽이 되면 지성으로 말씀을 이룬다. (至誠成言曉)
- 다석일지 1955년 10월 28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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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풀이 >
세상 일 잊고 앉으면 하늘과 땅이 평화롭다. 앉은 자리가 하늘과 땅의 가운데이기 때문이다. 숨은 생명의 근본이니 숨을 깊이 쉬면 생명의 근원에로 들어간다. 날마다 할 일을 부지런히 하여 사람 구실을 하고 사람 구실함으로써 사람답게 된다. 밤에는 불면에 시달리거나 악몽을 꾸지 않고, 깊고 편안한 잠을 잔다. 새벽에는 지성으로 말씀을 생각하고 말씀을 깨닫는다. 이것이 사람의 하루살이다.
- 박재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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