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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irit/e—cr—life

나는 여기서 산다

by e-bluespirit 2010. 12. 9.

 

 

 

 

 

 

 

 

 

 

 

 

 

 

<  나는 여기서 산다  >

높고 높고 높고 구름보다 높고,
산들보다 높고, 눈보다 높고,
3억5천6백만 리, 해보다 높고,

넓고 넓고 넓고
우리 해와 백만 동무 해가 한데 어울려
뛰어 돌아가는 그 직경으로
2만 광년 되는 태양 성단(星團)보다 넓고,

성단은 성단대로
약 1만 개 뭉치어 돌아가는
직경 20만년 되는
은하계 성무(星霧)보다 넓고

우리 성무와 어깨를 마주대고 돌아가는 1천조 성무로 짠
클럽 직경 1천 8백억 광년인 우리 우주보다 넓고
하늘(太空)의 하늘(太元)보다 높고
하늘을 먹음은 맘보다 높은 한 자리 이런 곳에 산다.

 -『제소리』 315쪽 -

 

 

 

< 풀이 >

우주 바깥에서 산다. 하늘을 머금은 맘은 우주보다 넓고 하늘보다 높다. 맘속에 하늘이 들어 있고 우주 전체가 들어 있다. 사는 자리는 우주 꼭대기요 하늘 위다. 거기는 삶과 죽음이 없고 높고 낮음도 없어서 누구와 비교되거나 시비를 따질 일이 없다. 그저 자유롭고 넉넉하고 평안하다.

- 박재순 -

 

 

 

 

< 38선 >


38선이란 대체 뭔가?

아무리 흥정조로 하는 외교라 하더라도
남의 나라의 허리를 자르는 법이 어디 있느냐?

나라는 결코 물건이 아니요,
한 개 생명체다. 한 인격이다.

나라 땅과 국민과 주권은
서로 떨어진 것이 아니요 하나다.

우리 나라 땅을 절반으로 자른 것은
우리 3천만의 허리를 개개이 자른 것이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심장과 골을
반씩 자른 것이다.


-“38선을 넘나들어” 함석헌 전집 4권 39쪽 -

 

 

 

< 풀이 >

씨알철학은 생명철학이다. 함석헌은 역사도 나라도 하나의 생명체, 하나의 인격으로 보았다. 나라와 민족은 서로 통하는 생명체이고 존엄한 품격을 지닌 인격체다. 그러므로 나라 땅과 국민과 주권은 뗄 수 없이 하나로 결합된 것이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은 개체이면서 민족과 나라 전체의 차원에서 하나로 결합되어 있다. 외세의 힘에 의해서 또는 정치경제적 이념과 명분에 의해서 억지로 나라 땅을 절반으로 자른 38선과 휴전선은 땅만 가른 것이 아니라 나라와 민족의 구성원 하나하나의 허리, 심장과 골을 반씩 자른 것이다.  

수 천 년 동안 함께 살아온 남한과 북한은 한 몸이고 한 인격체다. 남과 북 사이에 사귐이 없고 생각과 맘과 뜻이 통하지 않는 것은 몸이 갈라지고 인격이 분열된 것과 같다. 이 땅에 사는 사람의 몸과 맘이 편할 리 없고, 사회가 건강할 수 없다. 북한 사회의 고통과 신음이 어떤 형태로든 남한 사회에 느껴지기 마련이고 남한 사회의 갈등과 심정이 북한 사회에 전해지기 마련이다. 북한 사람들이야 망하든 굶어죽든 우리만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망상이다. 우리의 맘과 정신의 깊은 곳에서는 북한사회와 남한사회가 하나로 이어져 있다. 맘과 정신과 영혼은 본래 하나이다.

- 박재순 -

 

 

 

< 하늘이 열린 날 >


개천절이 뭐냐?
하늘이 열린 날이다.

하늘을 누가 여나?
맘이 열린 사람, 혼이 열린 사람이 아니고는 아니 된다.

개천절이라니
저 때 아닌 가을비 쏟는 푸르뎅뎅한 하늘인 줄 아느냐?

아니다.
사람의 마음이다.

할아버지께서 하늘을 여셨다는 것은
무지와 죄에 막힌 백성의 마음을 열었단 말이야.

어이(어버이) 마음 거룩하게 여니
새끼 마음이 정성되게 저절로 열리지.

-“38선을 넘나들어” 함석헌 전집 4권 37쪽 -



 

 

< 풀이 >

나라 세운 날을 기념하는 개천절(開天節)은 말 그대로 하늘이 열린 날이다. 단군신화에 따르면 환웅(桓雄)이 하늘에서 내려와 고조선을 시작했다. 하늘은 밝음을 나타내고 환웅은 밝은 사나이를 뜻한다. 사람들의 맘과 삶이 어둡고 캄캄하여 서로 부딪치고 싸우면서 혼란에 빠졌을 때, 참과 사랑의 밝은 세계를 열어서 새 나라를 시작했다는 것이다. 몸은 땅에 속한 것이고 맘은 몸 속에 하늘이 열린 것이다. 몸의 욕망과 집착에 빠져 맘이 어두울 때 맘을 열어 참과 사랑의 하늘 빛이 비치게 한 것이다. 몸에 갇히고 닫힌 맘을 열면 맘 속에 하늘이 있다. 사람들이 제 욕심, 제 생각, 제 감정, 제 주장에 사로 잡혀 맘을 닫고 산다. 서로 맘을 닫으면 캄캄하고 차가운 밤 세상이다. 맘을 여는 이가 하늘을 여는 이다. 누가 먼저 맘을 여나? 맘 속에 하늘을 품고 하늘을 깨달은 이가 어른이고 어버이다. 어른 어버이가 먼저 맘을 열면 어리고 어리석은 이도 따라서 맘을 연다.

하늘이 열리면 밝은 세상이 열린다.

- 박재순 -

 

 

 

 < 참 사람(眞人) >


햇빛에 그은 농부의 얼굴이
화광동진(和光同塵)이다.


* (和光同塵, 빛을 부드럽게 하고 티끌과 같아짐)


-『진리의 사람 다석 유영모』(上). 42쪽 -



 

 

< 풀이 >

부자들이 입는 옷을 입고는 나다니지 못하고 노동복이나 허름한 옷을 입고야 나다닐 수 있었던 다석은 삶의 씨알맹이, 정신의 속알맹이만을 소중하게 여겼다. 약한 사람들을 희생시키고 출세하는 것을 죄로 알고 부끄럽게 여긴 다석은 농민으로 살기를 소원했고 40대 중반에 농민의 삶을 시작했다. 자신뿐 아니라 손자들 세대까지 적어도 삼대는 농사를 지어야 농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다석은 햇빛에 그을린 농부의 얼굴이 노자가 말한 진인(眞人)의 모습인 화광동진이라고 했다. 농부가 햇빛에 얼굴을 그을리면서 농사를 짓는 것은 저 혼자 먹고 살자는 것이 아니다. 자신과 가족이 먹을 양식은 농사지은 곡식의 십분의 일, 백분의 일밖에 안 된다. 남을 먹여 살리기 위해 얼굴을 햇빛에 그을린 농부의 얼굴은 하늘의 빛과 마음을 드러내면서도 티끌처럼 겸허하다. 하늘 마음으로 사는 농부는 흙 묻은 하늘 사람이다. 농부의 얼굴에서 삶의 진실을 볼 수 있는 사람만이 진리를 논할 수 있지 않을까?

- 박재순 -

 

 

 

< 빙[空]님을 보오 >


저녁마다 지는 해의 끼친 말은 별을 보라

밤만 되면
별과 별의 눈짓하듯 보인 뜻은

알맞이 돌아가올 손
빟여 빟여 빟님을 보오.


- 다석일지 1961년 4월 14일 -

 

 

 

< 풀이 >

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지는 해가 남기는 말은 별을 보라는 것이다. 해가 지면 어둠 속에서 하늘 가득 한 별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캄캄한 밤하늘에서 깜빡거리는 별들을 보면 나의 생명과 정신의 깊은 속에서 깜빡거리는 영혼의 소리가 들린다.

해 아래서 부풀려진 욕심과 허영, 잡초처럼 자라난 노여움과 미움을 비워내고 하늘처럼 비고 비인 맘 속에서 알맞게 사는 길이 드러난다. 맘이 비어 있을 때 알맞음(中庸)의 지혜가 드러난다. 빔은 알맞은 삶의 길로 이끄는 님이다. 맘을 비고 비워서 빔을 삶의 님으로 우러르고 찬양하라.

- 박재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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