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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irit/e—cr—life

by e-bluespirit 2011. 4. 20.

 

 

 

 

 

 

 

 

 

 

 

 

< 맘 >

맘은 씨알

꽃이 떨어져 여무는 씨의 알

모든 자람의 끝이면서

또 온갖 병상의 어머니.


-“맘” 함석헌전집 6권 16쪽 -

 

 

< 풀이 >

맘은 수 억 년 생명진화의 역사 끝에 맺힌 생명의 씨알이다. 꽃이 떨어짐으로 씨알이 여물듯이, 크고 화려한 생의 모습이 죽음으로 사라지고, 예쁘고 고운 얼굴이 시듦으로 맘이 씨알로 여물게 되었다. 생명의 씨알인 맘은 모든 자람의 끝에 있는 씨눈이면서 병든 사람을 보살피고 상처받은 사람을 어루만지는 어머니다. 맘은 자라는 생명의 맨 앞 끄트머리면서 모든 생명을 품어주는 어머니다.

-박재순-

 

 

 

 

< 나물 >


파릇파릇 얼굴 드는 연한 잎새를

산나물 맛 향기롭다 칼로 우겨다

끓는 가마 속에 툭 털어 넣을 때

바스스 손발 오그리며 울면서 하는 말

나도 인생이야, 우리도 인승기 타고난 거야!


-“나도 인생이야!” 함석헌전집 6권 57쪽 -

 

 

< 풀이 >

파릇파릇 돋아나는 연한 싹을 사람들은 향기로운 산나물이라며 칼로 잘라서 끓는 가마 속에 털어 넣는다. 나물도 스스로 살려는 생명체다. 나물도 생각이 있고 감정이 있다면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느낄까? 한번 산나물의 자리에서 산나물의 심정으로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만일 나물이 나라면 얼마나 억울할까?
나물을 먹을 때는 나물에게 고맙고 미안한 맘을 전해야 할 것이다. 인디언들은 나물에게 나물 뜯는 목적을 알리고 동의를 구한 다음에야 나물을 뜯는다고 한다. “네가 내 속에 들어와 내가 되게 하려고 너를 뜯어 먹는다.” 내가 나물이 되고 나물이 나로 되는 맘의 경지에 이를 때 나물을 먹을 자격이 있는 게 아닐까? 나물의 심정을 모르고는 푸른 풀과 나무와 더불어 살 수 없다.

-박재순-

 

 

 

 

< 힘을 다해서 생각한다 >

아침에 깨어 일어나면 생각하고
저녁에는 일체를 잊고 잔다. (覺日起想忘夜息)

생각하는 것이 생명이고
일하는 것이 죽음이다. (想是生命也 事則死也)

생각하는 것이 생명이니
힘을 다해서 마음을 다해서 생각한다. (想是生命也 盡心力以思焉)


- 다석일지 1956년 4월 17일 -

 

 

< 풀이 >

생각은 사변이 아니라 삶의 행위다. 생각은 생명의 자각(生覺)이다. 삶의 주체인 ‘나’는 ‘생각의 끝머리’, ‘생각의 불꽃’이다. 생각은 ‘정신의 불꽃’이고, 이 정신의 불꽃에서 ‘내’가 나온다. 생각은 삶을 생성하는 행위다. 생각에 따라 뇌의 회로도 새롭게 생성되고 의식과 습관과 생활이 형성된다.
그러므로 생각하는 것이 곧 생명이다. 일하는 것은 목숨을 바치는 것이고 자기를 죽이는 것이다. 목숨 바쳐 일하기 위해서는 힘을 다하고 마음을 다해서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생명이 힘 있게 살아 있어야 한다.

-박재순-

 

 

 

 

< 몸에서 캐내는 생각 >


몸에서 깨,
캐내는 생각으로
산 사람의 나라는
맘이 고맙고

하늘 머리 둔 사람
한 끗이나 두 눈 밝혀
먹이 꼭꼭 씹어먹고
누기 바로 눈 땅은 환.


- 다석일지 1956년 9월 28일 -

 

 

< 풀이 >

참 생각은 머리에서 짜내는 것도 아니고 가슴에서 부풀린 것도 아니다. 몸에서 깨어나 몸에서 캐내는 생각이 참 생각이다. 몸으로 깨닫고 체험한 삶과 정신에서 피어난 생각이 생명과 정신을 살린다. 이런 생각으로 사는 사람들의 나라는 나라에 대해서 그리고 사람에 대해서 고마운 마음을 갖게 한다. 고마운 나라요 고마운 사람들의 나라다.
하늘에 머리를 둔 사람은 목숨은 하나지만 두 눈을 밝게 떠서 밥을 꼭꼭 씹어 먹고 누는 일을 바로 해야 한다. 먹이는 다른 생명체의 목숨이고 알짬이니 고마운 마음으로 아껴서 꼭꼭 씹어 먹어야 한다. 밥 먹고 누는 것은 오줌, 똥만이 아니다. 몸과 마음에서 나오는 온갖 배설물과 쓰레기가 있다. 탐욕과 못된 감정, 근심과 걱정, 허영과 고집도 배설물이다. 이런 배설물들을 참된 생각으로 불태워서 깨끗이 처리하는 게 바로 누는 것이다. 제 욕심과 감정과 생각을 스스로 처리하는 사람들이 사는 땅은 환해진다.

-박재순-

 

 

 

 


 

< 파리 >


아침밥 맛난 냄새 바람결에 동해

저도 같이 먹자 청함만 여겨

상 옆에 내리 앉아 옷깃 고치고

공손한 걸음으로 살살 기어드는 파리를

삼대(三代) 원수나 만난 듯이 미운 생각에

채 들어 단번에 후려갈기면

앞뒷발 싹싹 비비고 죽으며 하는 말

나도 인생이야, 나도 살자고 생겨난 거야!


- “나도 인생이야!” 함석헌전집 6권 57쪽 -

 

 

< 풀이 >

함석헌의 글 가운데 가장 해학적인 글이다. 맛난 음식 냄새는 파리에게 초청장이나 마찬가지다. 음식은 먹자는 것 아닌가? 음식 냄새를 맡은 파리는 조심스럽고 공손하고 예의 바르게 밥상에 다가간다. 파리도 먹어야 살지 않겠는가? 파리가 먹어봤자 얼마나 먹겠는가! 그런데 사람은 큰 원수나 만난 듯 파리채로 파리를 후려갈긴다. 파리는 죽으면서도 앞발 뒷발 싹싹 비비며 죽는다. 파리는 억울하다. 파리도 살자고 생겨난 목숨 아닌가? 그런데 세상에는 파리처럼 학대 받으며 살다 억울하게 죽는 인생이 많다. 파리의 억울한 심정을 모르고는 자연 생명 세계도 인간 사회도 지켜갈 수 없다.

-박재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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