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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일회 一期一會 - 법정 스님 법문집-1

by e-bluespirit 2011. 4. 23.

 

 

 

 

 

 

 

 

 

 

 

 

일기일회一期一會, 모든 것은 생애 단 한 번!
법정 스님의 법문, 이 시대의 맑고 향기로운 삶의 화두

우리 시대의 영적 스승인 법정 스님의 법문은 종교를 초월하여 모든 이들에게 진정한 삶의 길을 제시해 왔다. 단순하고 청빈한 생활의 실천가이자 자유로운 정신의 표상인 법정 스님의 맑은 법문은 이 시대의 정신적 양식이자 영혼의 샘물이 되어 주고 있다. 쓸쓸히 잠든 이에게 이불을 끌어당겨 덮어 주고, 외로운 이의 마음속 뒷마당을 정갈하게 쓸어 주는 다정한 손길 같은 말씀. 그 한마디에 어떤 이는 잃었던 웃음을 되찾았고, 어떤 이는 함박눈처럼 펑펑 울고 나와 차꽃보다 맑은 영혼의 밭을 갈기로 마음먹었다. 어부의 그물에 갇힌 물고기처럼 어쩔 줄 몰라 하던 이들은 마음을 늦추고 낮추는 기쁨을 발견하였다.

법정 스님의 법문이 쥐고 있는 화두는 언제나 '삶'이다. 삶이란 무엇인가? 우리가 순간순간 살고 있는 이 삶은 무엇인가? 무엇을 위해 우리가 살아야 하는가? 나는 진정 인간답게 살고 있는가? 이런 근원적인 물음을 지녀야 한다고 스님은 말한다. 매 법문에서 스님은 일깨운다.

스님은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며 생의 무상함을 이야기하지만, 그 무상함이란 초월해야 할 허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스님은 그 무상함 속에 무궁무진한 삶의 묘미가 숨어 있다면서, “오늘 핀 꽃은 어제 핀 꽃이 아니다. 오늘의 나는 새로운 나이다. 묵은 시간에 갇혀 새로운 시간을 등지지 말라. 과거의 좁은 방에서 나와 내일이면 이 세상에 없을 것처럼 살라.”고 말한다. 일기일회. 모든 것은 단 한 번,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순간순간 새롭게 피어나는 삶을 살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스님의 법문을 아우르는 진리에 이르는 길, 행복의 길이다.

 

 

 

 

 



 

 

 

 

 

 

 

법정 스님의 법문을 책으로 펴내며


자신과 진리에 의지해 꽃을 피우라 2009년 4월 19일 봄 정기법회
법문 자리에 돈 얘기 들이지 말라 2009년 2월 9일 겨울안거 결제

 

 

추울 때는 추위가 되고 더울 때는 더위가 되라 2008년 11월 12일 겨울안거 결제

일기일회一期一會 2008년 10월 19일 가을 정기법회
중노릇하면서 빚만 많이 졌다 2008년 8월 15일 여름안거 해제
홀로 우뚝 자기 자리에 앉으라 2008년 5월 24일 여름안거 결제
하루 낮 하루 밤에 만 번 죽고 만 번 산다 2008년 5월 12일 부처님오신날
한 생각이 집을 짓고 한 생각이 집을 허문다 2008년 5월 4일 설법전 점안식
생명 자체가 하나의 기적 2008년 4월 20일 봄 정기법회

 

 


승복 입은 도둑들 2007년 10월 21일 가을 정기법회
이곳까지 몇 걸음에 왔는가 2007년 5월 31일 여름안거 결제
불타는 집에서 빨리 나오라 2007년 5월 24일 부처님오신날
접속하지 말고 접촉하라 2007년 4월 15일 봄 정기법회
지금 있는 바로 그 자리 2007년 3월 4일 겨울안거 해제

 

 


도량의 수호신들에게 드리는 기도 2006년 12월 10일 길상사 창건 9주년
나도 밭을 갈고 씨를 뿌린 다음에 먹는다 2006년 10월 15일 가을 정기법회
부처님 오신 날이 아니라 부처님 오시는 날 2006년 5월 5일 부처님오신날
추위가 뼈에 사무치지 않으면 매화 향기 어찌 얻으랴 2006년 2월 12일 겨울안거 해제

 

 


부자보다 잘 사는 사람이 되라 2005년 12월 11일 길상사 창건 8주년
자기를 배운다는 것은 자기를 잊어버림이다 2005년 11월 15일 겨울안거 결제
수행자는 늙지 않는다 - 운문 도량에 와서 2005년 10월 20일 운문사 초청법회
직선으로 가지 말고 곡선으로 돌아가라 2005년 10월 16일 가을 정기법회
날마다 좋은 날 2005년 8월 19일 여름안거 해제
‘너’는 ‘나’의 동의어반복 2005년 5월 22일 여름안거 결제
어디서 왔으며 무엇을 위해 왔는가 2005년 5월 15일 부처님오신날
비바람에 허물어지지 않는 집을 세우라 2005년 5월 8일 지장전 낙성식
부처님께 용돈 20만 원 2005년 4월 17일 봄 정기법회
물속의 물고기가 목마르다 한다 2005년 2월 23일 겨울안거 해제

 

 


문 없는 문의 빗장 2004년 11월 26일 겨울안거 결제
용서는 가장 큰 수행 2004년 10월 17일 가을 정기법회
행복은 살아 있음을 느끼는 것 2004년 8월 30일 여름안거 해제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종교는 친절 2004년 6월 2일 여름안거 결제
자신을 등불로 삼고 진리를 등불로 삼으라 2004년 5월 26일 부처님오신날
우리가 누군가를 용서하면 신도 우리를 용서한다 2004년 4월 18일 봄 정기법회
노파가 암자를 불태우다 2004년 2월 5일 겨울안거 해제

 

 


중생이 앓으면 나도 앓는다 2003년 12월 21일 길상사 창건 6주년
언젠가 세상에 없을 그대에게 2003년 11월 8일 겨울안거 결제
자기로부터의 자유 2003년 10월 19일 가을 정기법회
문명은 서서히 퍼지는 독 2003년 10월 4일 대구 맑고향기롭게 초청 특별강연
영혼의 밭을 가는 사람 2003년 9월 27일 광주 맑고향기롭게 초청 특별강연
마음은 채우는 것이 아니라 비우는 것 2003년 6월 15일 6월 정기법회
지금 이 자리에서 생사가 벌어지고 있다 2003년 5월 15일 여름안거 결제
부분적인 자기에서 전체적인 자기로 2003년 5월 8일 부처님오신날

 

 

 

 

 

 

 

 

[자료 1] 언젠가 세상에 없을 우리 모두를 위한 법정 스님의 메시지
삶에서 가장 기특하고 기억할 만한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지금 이 순간 우리가 이렇게 살아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놀라운 신비이고 가능성이다. 모든 것은 삶에서 시작되고 삶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우리가 살아 있기 때문에 행복도 불행도, 기쁨도 슬픔도 있다. 그렇지 않다면 그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행복은 살아 있음을 느끼는 것이다. --- p.56

앓으면서 생각했다. ‘그날그날을 즐겁게 살자.’ 내일은 기약할 수 없다. 오늘 우리가 만나서 이렇게 마주 앉아 오랜만에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지만 내일 일은 누구도 알 수 없다. 하루하루를 잘 살고, 후회 없이 살아야 한다. 우리는 영원히 사는 존재가 아니다. 언젠가는 이 세상과 작별할 것이다. --- p.84~85

살 만큼 살다가 세상과 작별하게 될 때 무엇이 남는가? 홀로 있는 자기 자신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렇다면 무엇을 가지고 가는가? 평소에 지은 업을 가지고 간다. 좋은 업이든 나쁜 업이든 평소에 지은 업만 그림자처럼 따라간다. 하루하루 어떤 마음을 가지고 어떤 말과 행위를 하는가가 곧 다음의 나를 형성한다. 누군가가 그렇게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다. 매 순간 스스로가 다음 생의 자신을 만들고 있다. --- p.173~174

언젠가 자기 차례가 오면 누구나 이 세상을 떠난다. 싫든 좋든 찾아오면 받아들여야 한다. 피할 수 없다. 모든 생명의 현상이다. 죽음을 나쁘게 생각하지 말라. 1막의 끝이다. 2막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무언가 맺어짐이 있어야 한다. 죽음을 어두운 것으로, 괴로운 것으로, 두려운 것으로 생각하지 말라.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 위해 매듭을 짓는 일이다. 영혼은 태어나거나 죽지 않는다. 본래 그렇게 있는 것이다. 늘 인연 따라 새로운 몸을 받았다가 버리고 또다시 받을 뿐이다. 죽음도 살아가는 모습으로 생각하라. 다음 생은 하나의 새로운 시작이다. 죽음을 두려워 말라. 대신 순간순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새롭게 챙기라. --- p.289~290

내일 죽게 된다면 마지막으로 무슨 말을 남기겠는가? 한번 정리해 보라. 당장 내일이 아닐지라도 언젠가는 반드시 그때가 온다. 저마다 섣달 그믐날이 온다. 우리가 하루하루 살아 있다는 것은 기적 같은 일이다. 이런 기적 같은 삶을 헛되이 보낸다면 후회할 때가 온다. 죽음을 어둡고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말라. 삶의 한 모습이다. 삶의 한 과정이다. 죽음이 없다면 삶은 무의미해진다. 죽음이 받쳐 주고 있기 때문에 삶이 빛날 수 있다. --- p.306

언제 어디서 자기 생의 섣달 그믐날을 맞이할지 알 수 없다는 자각을 잃지 않아야 한다. 모든 하루를 자기 생애 최후의 날인 것처럼 그렇게 살아야 한다. 미루면 후회가 남는다. 그날 할 일은 그날 하면서, 마치 내일이면 이 세상에 없을 것처럼 후회 없이 살라는 것이 앞서 간 모든 사람들의 교훈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한때를 아무렇게나 보내서는 안 된다. 그 한때는 두 번 다시 오지 않는다. --- p.313

 

 


[자료 2] 삶은 길고도 힘든, 그러나 가장 행복한 수행의 길
내 마음이고 내가 하는 생각이지만 삶을 통해 그 마음과 생각을 어떻게 갖는가가 중요하다. 생각을 밝게 가지면 내 삶이 밝아지고, 무언가에 휩쓸려 한순간 생각을 어둡게 가지면 삶이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어두워진다. 마음은 먼 데서 찾아지지 않는다. 내 안에 늘 깃들어 있다. 우리가 마음을 밖에서 찾고, 다른 대상에서 찾기 때문에 그 마음이 제대로 꽃을 피우지 못한다. 한 생각을 어떻게 먹는가에 따라 삶이 달라진다. --- p.77

바로 이 자리에서 마음속에 적멸보궁을 세우라. 지극히 고요하고 맑고 투명해서 보배로운 궁전을. 바깥에 있는 부처를 찾지 말라. 자신이 곧 부처다. 마음속에 적멸보궁을 세워 늘 지니고 있다면 험난한 세상에서도 크게 빗나가지 않는다. 마음에 중심이 없기 때문에 바깥의 현상들에 늘 흔들리는 것이다. --- p.79

하루하루 살아가는 이 삶이 학교이고 배움이다. 우리는 그 목적을 위해 이곳에 왔다. 어제 몰랐던 것을 오늘 배우게 된다. 그때 삶의 묘미를 스스로 터득하게 된다. 우리는 지금 이렇게 순간순간 살고 있다. 이 매 순간을 깨어서 활짝 열린 마음으로 살 수 있어야 한다. 또 사는 일 자체가 즐겁고 기뻐야 한다. 그런 과정을 통해 타인과의 관계도 매듭이 풀리고 더 깊어질 수 있다. --- p.87

기도하고 수행하는 도량이 따로 있지 않다. 우리가 처한 삶의 현장이 곧 도량이다. 우리가 몸담고 있는 가정이나 일터가 진정한 도량이 되어야 한다. 어수선하고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이 혼돈스러운 세상에서 분별과 집착을 떠나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곳이면 모두 도량이다. 이상적인 도량은 어디에 있는가? 지금 그대가 훀는 바로 그 자리! --- p.130

 


[자료 3] 소유의 의미와 진정한 부자 되는 법
모든 것을 소유하고자 하는 사람은 어떤 것도 소유하지 않아야 한다. 모든 것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어떤 것도 되지 않아야 한다. 모든 것을 가지려면 어떤 것도 필요로 함 없이 그것을 가져야 한다. 버렸더라도 버렸다는 관념에서조차 벗어나라. 선한 일을 했다고 해서 그 일에 묶여 있지 말라. 바람이 나뭇가지를 스치고 지나가듯 그렇게 지나가라. --- pp.63~64

세상은 우리의 필요를 위해서는 풍요롭지만 탐욕을 위해서는 궁핍한 곳이다. 자연은 우리가 필요한 만큼 공급하지만, 분수에 넘치는 탐욕 앞에서는 궁핍해진다. 어떤 물질의 더미 앞에서도 우리는 충만해질 수 없다. 마음이 안정되고 평화로워야 행복의 움이 튼다. 물질은 한때에 불과할 뿐 우리를 영원히 행복하게 해 줄 수는 없다. 행복은 조화로운 삶에 있다.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알맞은 상태, 자기 분수에 맞는 상태이다. --- p.116

우리에게는 그립고 아쉬운 삶의 여백이 필요하다. 무엇이든 가득 채우려고 하지 말라. 포만 상태는 곧 죽음이다.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불필요한 말을 쏟아 내고 있다. 이것들은 우리 영혼에 공해와 같다. 이 생각 저 생각 온갖 근심을 미리 가불해서 쓰느라 밤잠을 못 이루고 있다. 그 결과 왜소하고 무기력해져서 인간으로서의 기상을 지니지 못하게 되었다. 이런 때일수록 본질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 하찮은 생각을 제쳐 두고 삶의 본질에 눈을 돌려야 한다. 그래야 인간으로서 당당하게 살 수 있다. --- pp.122~124

 

 


[자료 4] 삶에 다가온 고난의 의미
불행도 행복도 피하려 하지 말고, 삶 자체가 되어 살아가라. 흔히 세상 밖 어딘가에 천국이 있을 거라 믿고 있지만, 바로 이 현실에서 천국을 이룰 수 있지 이곳을 떠나서는 그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번뇌 밖에 깨달음이 있지 않다. 일상의 삶을 떠나 열반이 있는 것이 아니다. --- p.34~35

때때로 자신의 삶을 바라보라. 자신이 겪고 있는 행복이나 불행을 남의 일처럼 객관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의 삶을 순간순간 맑은 정신으로 지켜보아야 한다. 그렇게 하면 행복과 불행에 휩쓸리지 않고 물들지 않는다. 이 세상은 참고 견뎌 나가야 하는 사바세계이다. 거기에 삶의 묘미가 있다. 모든 일이 우리 뜻대로 흘러간다면 좋을 것 같지만 오히려 결과는 좋지 않다. 그렇게 되면 어려움을 모르게 되고, 삶에서 영적인 깊이가 사라진다. --- p.39

어려운 일 없는 사람은 그 어디에도 없다. 어려운 일을 피하려 하지 말고 그대로 받아들이라. 피하려야 피할 수 없는 것이 이 삶이다. 모든 것에는 나름의 의미가 있다. 남들은 앓는데 나만 앓지 않는다면 더없이 오만해진다. 이 몸을 가지고 이 세상에 태어나면 언젠가는 다 병을 앓게 마련이다. 모든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겠다는 생각은 마음을 여유롭게 한다. --- p.86

 


[자료 5]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삶에 아름다움이 없으면 너무나 삭막하고 건조하다. 오늘 우리들은 돈과 관계된 것에만 눈을 파느라, 경제 생각만 하느라 삶의 가장 내밀한 영역인 아름다움을 등지고 산다. 아름다움이야말로 삶의 기쁨이고 행복에 이르는 길목이다. 아름다움을 만나지 못한다면, 우리들 삶이 아름다움으로 채워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다. 행복은 아름다움이 그 삶을 받쳐 주어야만 도달할 수 있는 영역이다. --- p.90

진정한 아름다움은 샘물과 같아서 아무리 퍼내도 다함이 없다. 그러나 가꾸지 않으면 솟아나지 않는다. 내 안의 샘에서 아름다움이 솟아나도록 하라. 남과 나누는 일을 통해 수시로 자신을 가꾸라. 나눔의 삶을 살아갈 때 내 안에 들어 있는 자비의 아름다움이 샘솟듯 생겨난다. 아름다움은 시들지 않는 영원한 기쁨이다. --- pp.95~96

그날이 그날인 것처럼 지내지 말라. 이 가을은 다시 만날 수 없는 일기일회, 생애 단 한 번뿐인 가을이다. 누구도 내일을 기약할 수 없다. 이 가을날, 그저 대상만 보고 즐길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도 샘솟는 아름다움이 있어야 한다. 아름다움은 남과 나누는 데서 움이 튼다. --- p.96

마음의 문을 열고 보면 어디에든 아름다움이 있다. 사소한 것이라도 둘레에 있는 아름다움을 찾아내 삶에서 꽃피어 나게 하라. 그래야 그 삶이 아름다워진다. 종교적인 생활의 꽃은 마치 모든 꽃이 지고 난 다음에 피는 차꽃 같은 것이다. 남들이 시시하게 여기고 돌아보지 않는 상황에서도 꽃을 피울 수 있어야 한다. --- pp.310~311

 

 


[자료 6] 우리는 어떤 존재인가, 본질적인 삶의 의미
병을 심하게 앓으면 모든 게 시들해진다. 내 몸조차도 주체스러울 때가 있다. 그 밖에 책이며 찻그릇이며 이것저것 챙겼던 모든 것들이 다 시시해진다. 평소에는 거기 얽매여 있으니까 소중하게 느껴졌는데, 이제 그것으로부터 벗어나 물음을 던지게 된다. 어떤 것이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인가? 어떤 것이 본질적인 것이고 어떤 것이 비본질적인 것인가? --- pp.64~65

우리가 살 만큼 살다 보면 언젠가는,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할 때가 반드시 찾아온다. 그때 가서 아까워하며 망설일 것 없이, 내려놓는 일을 미리부터 연습해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자유인이 될 수 있다. --- p.65

누구나 자기 삶에 개성이 있어야 한다. 일상의 삶은 무료하다. 무언가 변화가 있어야 한다. 자기 삶을 보다 심화시키기 위해 비본질적인 것과 불필요한 것으로부터 거듭거듭 털고 일어서야 한다. 그래야 자신의 진정한 내면이 활짝 꽃피어 날 수 있다. 사소한 인정에 얽매이지 말고 크게 생각하라. --- p.109

부처님은 어디서 왔는가? 이 꽃과 잎과 새들은 어디서 오는가? 이 나무와 공기와 구름은 어느 곳에서 오는가? 별과 모래와 행성들은 어느 곳에서 오는가? 그리고 우리는 어디서 오는가? 다시 한 번 묻는다. 부처님은 어디서 왔는가? 무엇을 위해 왔는가? 각자 자신의 일로 물으라. --- p.225

 


[자료 7] 나는 내 한 몸이 아니다, 공생과 나눔의 의미
공덕이라는 것은 물질적으로 베푼다는 의미만이 아니다. 말 한 마디, 눈빛 하나도 공덕이 되어야 한다. 물질이 없어도 맑은 눈빛, 다정한 얼굴, 부드러운 말을 나눌 수 있다. --- p.151

베푸는 것을 수직 관계로 생각하지 말라. 있는 사람이 없는 사람에게 무엇을 주는 것이 아니다. 그저 수평적으로 나누는 것이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많은 은혜를 입고 있다. 수많은 관계 속에서 눈에 보이고 보이지 않는 무수한 은혜를 입으며 살아간다. 그런 도리를 안다면 스스로 나눌 수 있어야 한다. 인간은 나이가 들수록 성숙해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순간순간 나누어 가질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이 이치에 맞게 살아가는 길이다. --- pp.153~154

살 만큼 살다가 작별할 때 한 생애에서 남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나도 가끔 스스로에게 묻는다. 그것은 본인에 의해서가 아니라 남은 사람들에 의해 평가된다. 생전에 그가 얼마나 많은 존재와 세상에 자비심을 베풀었는가, 선행을 했는가, 덕행을 쌓았는가가 결정한다. 결국 한 생애에서 남는 것은 얼마만큼 사랑했는가, 얼마만큼 나누었는가 뿐이다. 그 밖의 것은 다 허무하고 무상하다. 아무것도 가져갈 수 없다. --- pp.227~228

나는 내 한 몸이 아니다. 온 세상의 보이고 보이지 않는 많은 인연들이, 여러 조건과 상황들이 우리를 이루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잘못 생각을 하거나 함부로 행동하면 내 한 몸에 그치지 않고 세계 곳곳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한 사람이 잘 살면, 그 기운이 온 우주에 긍정적으로 퍼져 나간다. 그런데 한 사람이 잘못 살면, 그 사람을 위해 거들고 있는 온 우주에 나쁜 기운을 퍼트리게 된다. 이것이 이 세상의 구조다. 모든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홀로 독립된 존재는 어디에도 없다. --- p.244

 


[자료 8] 어제도 오늘도 없고 늘 지금이다, 지금 이 순간을 살라
진리는 과거나 미래에 있지 않다. 지금 이 순간, 지금 이 자리에 있다. 삶 역시 그렇다. 다음 순간의 일은 누구도 알 수 없다. 한 번 숨 들이쉬었다가 내쉬지 못하면 굳어지는 것이 육신이다. 공부하는 사람에게 내일은 없다. 어제도 없고 늘 지금이다. 지금 이 자리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 pp.179~180

삶은 과거나 미래에 있지 않다. 지금 이 순간이다. 바로 지금 이 순간을 살 줄 알아야 한다. 순간순간 그날그날 내가 어떤 마음으로 어떤 업을 익히면서 사는가에 따라 삶이 달라질 것이다. 개인의 삶만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나와 관계된 사람들의 삶도 달라진다. 누가 나를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나를 만들어 간다. --- p.209

진정한 행복은 먼 훗날에 이룰 목표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하는 것이다. 과거를 묻지 말라. 이미 지나가 버린 세월이다. 그것은 전생의 일이다.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 우리가 살아 있는 곳은 지금 이 순간, 이 자리이다. --- pp.269~270

언제 어디서 어떻게 살든 한순간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매 순간이 마음을 맑히는 일로 이어져야 한다. 한숨 내쉬고 들이쉴 때마다 마음을 맑히는 일이 되어야 한다. 그 한순간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 한순간이 바로 생과 사의 갈림길이다. --- p.317

 


[자료 9] 오늘은 어제의 연장이 아니다, 날마다 새로운 날
언제나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 오늘은 어제의 연장이 아니다. 내일 일은 아무도 모른다. 그날그날을 새날로 맞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새롭게 움틀 수 있다. --- p.74

하루하루 살아간다는 것은 날마다 새로운 날을 맞이하는 것이다. 오늘은 어제의 연장이 아니다. 새로운 날이다. 묵은 시간에 갇힌 채 새로운 시간을 등지지 말아야 한다. 내 마음이 활짝 열리면 닫혔던 세상의 문도 따라서 활짝 열리게 된다. 열린 세상에서 열고 살아가라. --- p.263

새잎이 펼쳐지는 이 눈부신 계절에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살아야 한다. 그래야 내 안에 잠재된 좋은 기운이 새잎처럼 펼쳐질 수 있다. 마음의 문이 열리지 않으면 설령 내 안에 아무리 좋은 잠재력의 가능성이 있다 하더라도 잠들어 버리고 만다. 무거운 짐을 부려 놓고 가볍게 살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그렇게 살라. --- p.291

 


[자료 10] 침묵과 자기 존재의 시간
지난여름, 내게 있어 가장 보람되고 즐거웠던 시간을 꼽으라면, 아침저녁으로 개울물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묵묵히 앉아 있던 그 시간이다. 책 읽고 밖에 나가 일하는 시간은 부수적인 것이다. 아무 생각 없이 묵묵히 개울물 소리에 귀를 맡기고 조용히 앉아 있을 때가 가장 기쁜 시간이다. 이때는 순수한 자기 존재의 시간, 자기 충전의 시간이다. 선의 기쁨으로 밥을 삼는 이 같은 자기 중심의 시간을 통해 이 험난한 세상을 무난히 헤쳐 나갈 수 있다.

 

 

 

 

 

 

 

법정 스님 최초의 법문집

서울 성북동의 작고 아름다운 절에서는 계절마다 사람들이 절마당을 가득 메운다. 멀리 강원도 산중 오두막에서 이른 새벽에 세상으로 나오는 법정 스님의 법문을 듣기 위해서이다. 봄에는 향기로운 꽃그늘 아래서, 여름에는 장맛비를 피해 천막을 치고서, 가을에는 마음까지 물들이는 단풍나무 아래서, 그리고 겨울에는 예고 없이 흩날리는 눈발 속에서 청중들은 스님의 말씀에 고요히 귀를 기울인다. 법문 장소는 때로 명동성당으로, 뉴욕 맨해튼으로, 세종문화회관으로, 청도 운문사와 원불교 대강당으로 옮겨졌고, 그때마다 멀리서 찾아온 청중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이 모임이 아름다운 것은 말씀의 행간에 침묵이 있고, 서로 귀 기울이며 존재의 기쁨을 함께 누리기 때문이다.

우리 시대의 영적 스승인 법정 스님의 법문은 종교를 초월하여 모든 이들에게 진정한 삶의 길을 제시해 왔다. 단순하고 청빈한 생활의 실천가이자 자유로운 정신의 표상인 법정 스님의 맑은 법문은 이 시대의 정신적 양식이자 영혼의 샘물이 되어 주고 있다. 쓸쓸히 잠든 이에게 이불을 끌어당겨 덮어 주고, 외로운 이의 마음속 뒷마당을 정갈하게 쓸어 주는 다정한 손길 같은 말씀. 그 한마디에 어떤 이는 잃었던 웃음을 되찾았고, 어떤 이는 함박눈처럼 펑펑 울고 나와 차꽃보다 맑은 영혼의 밭을 갈기로 마음먹었다. 어부의 그물에 갇힌 물고기처럼 어쩔 줄 몰라 하던 이들은 마음을 늦추고 낮추는 기쁨을 발견하였다.
세대와 종교, 사상과 가치관을 초월하여 우리 모두에게 깊은 영혼의 울림을 선사하는 법정 스님의 법문은 소중한 이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 시대의 맑고 향기로운 삶의 화두이다. 『일기일회』는 그동안 법정 스님이 법문한 말씀을 최초로 책으로 엮은 것이다.

 

 


법문은 법法의 길로 들어가는 문門, “우리들 마음 그대로가 법문이다”

“우리들 마음 그대로가 법문이다. 우주 자체가 법문을 들려주고 있으니 주위를 잘 살피라. 우리는 법문을 통해 우리가 서 있는 자리를 살피고, 바로 여기서 살 수 있어야 한다.”
형식과 절차보다 그 본연의 의미를 중요하게 여기는 스님은 우리가 법문을 듣는 이유는 저마다의 삶을 개선하기 위함이라고 말한다. 아무리 좋은 말이 넘쳐 나도 자신의 이야기로 듣지 못한다면 소용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법문의 한자는 法文이 아니다. 法門, 즉 ‘법으로 들어가는 문’이다. 법에 이르고 진리의 세계로 통하는 문이다. 결국 법문을 통해 우리 자신의 삶을 바꿀 수 있어야 한다.
주목받는 여러 법문들이 있지만, 법정 스님의 법문이 특히 더 많은 이들의 가슴과 영혼을 흔들어 깨우는 것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진솔한 질문과 답이 바로 오늘의 언어로 표현되어 있기 때문이다.
적잖은 사람들이 현재의 고통에 굴복해 자살을 시도할 때 스님은, 죽음은 결코 끝이 아니며 스스로를 해친 자해의 업을 짊어지고 다음 생으로 건너가게 된다는 사실을 일깨운다.(49~54쪽) 불황과 경제 위기로 모두가 불안해할 때는, 모든 일이 뜻대로 된다면 좋을 것 같지만 그 결과가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어서, 그렇게 되면 어려움을 모르게 되어 삶에서 영적인 깊이가 사라진다는 사실을 깨우쳐 준다. 또한 우리에게 닥친 불행도 다 한때이고 스스로 불러들인 삶의 매듭임을 일러 주며, 불행도 행복도 피하려 하지 말고, 삶 자체가 되어 살아가라고 이야기한다.(34~39쪽) 조류독감과 광우병 앞에서는 이 같은 불행이 생기게 된 근본 원인이 무엇인지 일깨우며,(68~69쪽) 삶의 터전인 지구가 몸살을 앓고 있는 현실에 대해서도 외면하지 않는다. 인터넷의 발달로 진정한 만남의 의미가 퇴색되어 가는 작금의 상황에 대해서는 “접속하지 말고 접촉하라.”고 조언하며 영혼의 메아리가 살아 있는 삶의 길에 대해 이야기한다.(119~120쪽)
청중들은 말씀의 교훈을 ‘지금 자신의 삶에 고스란히 비춰 보고 스스로에 대한 물음으로 여겨, 각자의 그릇에 따라 다양하게’(106~107쪽) 받아들인다. 삶으로써 그 의미를 해석하는 것이다. 오늘날 설해지는 법문의 상당수가 당나라를 비롯한 과거의 훌륭한 법문들을 재해석하거나 그것들의 원래 의미를 밝히는 데 그친다. 하지만 법정 스님은 “그 당시의 최선이 오늘의 최선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살아 있는 화두를 지녀야 합니다. 죽은 화두를 지니고 있으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가 이미 관념적으로 알고 있는 것은 살아 있는 화두가 아닙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그 상황에서는 살아 있는 화두의 역할을 했지만, 이 시대에 와서 우리가 그것을 관념화시키면 살아 있는 화두가 될 수 없습니다. 생명력을 잃어버립니다. 그렇다면 살아 있는 화두는 어디에 있는가? 진짜 살아 있는 화두는 사거리나 동네 길목 또는 아파트 엘리베이터 안에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 늘 있는 것입니다. 다른 곳에서 찾기 때문에 삶의 절실한 명제인 화두를 놓치는 것입니다. 순간순간 깨어 있는 사람은 바로 그때 그 자리에서 삶의 문제이자 과제인 화두와 맞닥뜨릴 수 있습니다. 이것이 살아 있는 화두입니다. (178쪽)

말씀 그대로 법정 스님의 법회와 법문은 지금 내 가슴에 남겨져 있는 상처를 나누는 시간이며, 내가 지고 온 짐을 부리는 방법을 찾는 공간이다. 어느 날 법문을 시작하기에 앞서 스님은 이런 바람을 이야기했다.

시원한 나무 그늘에 앉아 한 사람 한 사람 마주 바라보면서 묻고 대답하는 과정에서 삶의 이야기를 나누는 모임이 그립습니다. 진정 좋은 법회라면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서로 주고받아야 합니다. 삶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서로가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뜻있는 만남과 모임은 좋은 말을 많이 늘어놓는 데 있지 않습니다. 침묵 속에서 마주 바라보고, 서로 귀 기울이고, 같이 느끼면서 존재의 기쁨을 함께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343쪽)

추상적이고 의례적인 모임보다는 마음으로 대화를 주고받는 자리를 꿈꾸는 스님의 마음이 전해진다. 형식화되어 가는 법회에 대한 스님의 아쉬움도 읽을 수 있다. 2,500년 전 부처님과 그 제자들이 모여서 주고받은 이야기가 경전으로 결집되어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지만, 그들 경전 어디에도 부처님 혼자 설한 집회는 나오지 않는다. 항상 그곳에 모인 대중과 주고받으면서 이야기를 풀어 나갔던 것이다.
법정 스님의 법문을 보면, 비록 스님은 우리와 동떨어져 강원도 오두막에서 홀로 지내지만, 우리들 자신보다 현재 우리의 고민을 더 잘 알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오래될수록 편안한 벗처럼 늘 곁에 두고 있다가, 언제든 다시 꺼내 보고 싶은 것이 법정 스님의 말씀이다. 『일기일회』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삶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이 생길 때마다 펼쳐 들고 법정 스님과 깊은 내면의 대화를 나누는 기회를 제공한다.

 


언젠가 세상에 없을 우리 모두에게 전하는
법정 스님의 영혼을 흔들어 깨우는 메시지


법문 속에는 “몹시 춥거나 더울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묻는 제자가 있고, “추울 때는 추운 곳으로 가고, 더울 때는 더운 곳으로 가라.”고 일깨우는 스승이 있다. 그 스승의 입을 빌려 법정 스님은 말한다. “삶 자체가 되어 살아가라. 그것이 불행과 행복을 피하는 길이다.”(32~35쪽) 한 수행자가 어떤 것이 가장 대단한 일인가를 묻자, 스승은 홀로 우뚝 대웅붕에 앉으라고 설한다. 저마다 자신이 몸담아 사는 장소에서 홀로 우뚝 앉을 수 있다면, 우리는 진정 깨어 있는 존재인 것이다.(65~66쪽) 법정 스님은 산중의 깊은 침묵과 명상에서 길어 올린, 진리의 길과 행복의 길을 그때그때 그 자리에서 청중들이 필요로 하는 만큼 내어놓는다.

장소와 시간에 관계없이 법문의 일관된 주제는 바로 이것이다. 삶이란 무엇인가? 우리가 순간순간 살고 있는 이 삶은 무엇인가? 무엇을 위해 우리가 살아야 하는가? 나는 진정 인간답게 살고 있는가? 이런 근원적인 물음을 지녀야 한다고 스님은 말한다. 매 법문에서 스님은 일깨운다.
“죽은 화두를 가지고 헛되이 시간을 보내지 말라. 순간순간 깨어 바로 그 자리에서 살아 있는 화두를 가지고 정진하라. 나는 무엇이며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가.”
“언제 어디서 자기 생의 마지막 날을 맞이할지 알 수 없다는 자각을 잃지 않아야 한다. 언제 어디서 살든 한순간을 놓치지 말라. 그 순간이 생과 사의 갈림길이다.”
『일기일회』는 이러한 깨우침의 말씀들이 작은 절마당을 넘어 세상에 널리 가닿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수행자의 삶은 칼날 위에 서 있는 것과 같다.”는 것이 법정 스님의 변함없는 정신이다. 화장지를 절반으로 잘라서 쓰고, 종이 한 장도 허투루 버리지 않는 스님. 스님의 붓글씨를 선물로 받은 이들은 그것이 물건을 쌌던 포장지에 쓰인 것을 보고 놀란다. 여러 저서들에서 얻어진 인세 수입도 전부 어려운 이웃에게로 돌아갔다. 일정 금액이 모일 때마다 스님은 “이 돈은 수행자에게는 지나친 재산이다.”라며 필요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래서 정작 자신이 중병에 걸렸을 때는 치료비를 절에서 빌려 써야 할 정도였다.

어쩌면 법정 스님의 그 삶이야말로 더욱 가치 있는 법문일지도 모른다. 말은 행이 뒤따라야만 그 아름다움이 진정성을 갖는 까닭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 말한 자는 공허한 조언자이며 앵무새에 불과하게 된다. 말과 삶이 일치하는 이와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행복하다.
“살 만큼 살다가 세상과 작별할 때 생에서 남는 것은 무엇인가? 결국 홀로 있는 자신 외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스님은 거듭 이야기한다. “삶을 소유물로 여기기 때문에 우리는 소멸을 두려워한다. 삶은 소유가 아니라 순간순간의 있음이다.”
지난겨울, 폐렴으로 병원에 입원했을 때 스님은 찾아온 제자들에게 말했다.

내게 주어진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그런데 그 시간을 무가치한 것, 헛된 것, 무의미한 것에 쓰는 것은 남아 있는 시간들에 대한 모독이다. 또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긍정적이고 아름다운 것을 위해 써야겠다고 순간순간 마음먹게 된다. 이것은 나뿐 아니라 모두에게 해당되는 일이다. 우리 모두는 언젠가 이 세상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309쪽)

 


일기일회一期一會, 모든 것은 생애 단 한 번!
지금 이 순간은 생애 단 한 번의 시간이고, 지금 이 만남은 생애 단 한 번의 인연이다


우리는 지금 살아 있다는 사실에 참으로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 삶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모든 것이 일기일회, 한 번의 기회, 한 번의 만남입니다. 이 고마움을 세상과 함께 나누기 위해서 우리는 지금 이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54쪽)

어느 청명한 가을날, 법정 스님은 한때에 휩쓸려 목숨을 끊는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사는 일의 고마움과 두 번 다시 오지 않는 삶을 말했고, 그날 법문의 제목을 ‘일기일회一期一會’라 붙였다. ‘오늘 우리의 삶도 단 한 번이고, 지금 이 순간도 생애 단 한 번의 시간이며, 지금 이 만남 또한 생애 단 한 번의 인연이다.’라는 의미의 일기일회는 법정 스님이 이야기해 온 ‘순간의 신비’를 함축하고 있는 말이다.
다도茶道에서 기원한 말인 일기일회는, 이 만남은 일생에 두 번 다시 오지 않으므로 차를 대접하는 주인과 손님 모두 정성을 다해 그 자리에 임해야 한다는 뜻이며, 우려낸 차의 맛은 오직 그때 그 자리에서 단 한 번의 고유한 맛과 향과 빛깔을 지닌다는 의미도 품고 있다. 법정 스님의 삶에 있어 중요한 한 부분을 이루는 것 또한 차라는 인연도 있다. 이로부터 일기일회는 일생에 단 한 번뿐인 인연, 단 한 번뿐인 일을 의미하는 말로 쓰이게 되었으며, 매 순간의 삶에 충실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스님은 말한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살든 한순간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매 순간 마음을 맑히는 일로 이어져야 합니다. 한숨 내쉬고 들이쉴 때마다 마음을 맑히는 일이 되어야 합니다. 그 한순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 한순간이 바로 생과 사의 갈림길입니다. (317쪽)

스님은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며 생의 무상함을 이야기하지만, 그 무상함이란 초월해야 할 허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스님은 그 무상함 속에 무궁무진한 삶의 묘미가 숨어 있다면서, “오늘 핀 꽃은 어제 핀 꽃이 아니다. 오늘의 나는 새로운 나이다. 묵은 시간에 갇혀 새로운 시간을 등지지 말라. 과거의 좁은 방에서 나와 내일이면 이 세상에 없을 것처럼 살라.”고 말한다.
모든 것은 단 한 번,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순간순간 새롭게 피어나는 삶을 살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스님의 법문을 아우르는 진리에 이르는 길, 행복의 길이다. 순간 속에서 살고 순간 속에서 죽는 길, 자기답게 살고 자기답게 죽는 길이다.

 


법정 스님의 법문이 책으로 만들어지기까지

이 책은 그동안 법정 스님이 대중과 학인을 상대로 법문한 내용을 글로 옮긴 것이다. 서울 성북동 길상사에서 행한 정기법회 법문, 여름안거와 겨울안거의 결제 및 해제 법문, 부처님오신날 법문과 창건법회 법문 등이 근간을 이루고 있으며, 원불교 서울 청운회와 뉴욕 불광사 초청법회, 교보문고 및 맑고향기롭게 대구와 광주 초청 특별강연 법문 등이 포함되어 있다.

1권에는 2009년 4월 19일 봄 정기법회 법문부터 2003년 5월 8일 부처님오신날 법문까지 모두 마흔세 편이 수록되어 있다. 2003년 4월 20일 봄 정기법회 법문부터는 다음 권으로 이어진다. 1권에 싣지 못한 2009년 5월 2일 부처님오신날 법문, 2008년 12월 14일 길상사 창건 11주년 법문, 2007년 8월 27일 여름안거 해제 법문, 2006년 5월 12일 여름안거 결제 법문, 2006년 4월 16일 봄 정기법회 법문들은 다음 권에 담기게 된다.

일이 이루어진 과정은 다음과 같다. 먼저 법정 스님의 법문들을 가능한 한 전부 모았다. 여기에는 많은 분들의 도움이 있었다. 그들은 소중히 간직하고 있던 스님의 육성이 담긴 자료들을 기꺼이 빌려 주었다. 낡은 카세트테이프와 오래된 비디오테이프에서부터 최근의 고화질 영상과 엠피스리 파일까지 그 모양과 형식도 다양했다. 번호를 매겨 가며 날짜별로 수집한 뒤, 한 글자도 빠짐없이 글로 옮겨 적었다. 음질이 좋지 않은 자료는 여러 사람이 돌려 들으며 정확을 기했다. 우리가 받아 적은 내용은 최종적으로 스님이 직접 문장을 다듬고, 내용을 보완했으며, 일부 표현을 오늘에 맞게 정리했다. 스님은 병중임에도 불구하고 몇 차례에 걸쳐 두 권이나 되는 분량을 꼼꼼히 읽었다.

각 편의 제목은 스님의 의견과 법문 내용을 토대로 새로 붙였으며, 제목 아래에 법문이 이루어진 날짜와 법회명을 달았다. 또한 각 법문의 머리에는 그날의 풍경을 담았다. 계절의 추이와 날씨는 물론, 스님이 사석에서 한 말이나 법회 전후의 행적을 비롯해 그때그때 화제가 되었던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
각 권별로 가장 최근의 법문이 앞에 오도록 배치하였으며, 본문에 쓰인 용어 가운데 정확한 이해를 위해 간략한 설명이 필요한 경우에는 그 옆에 풀이를 달아 두었다. 또한 보다 깊이 있는 해설이 필요한 경전, 인물, 용어, 개념 등은 맨 뒤에 따로 모아 가나다순으로 수록하였다. 이 일의 중심에는 법정 스님의 제자인 덕인, 덕현, 덕진 세 명의 상좌스님과 류시화 시인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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