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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들의 웃음판 - 정민 김점선

by e-bluespirit 2011. 4. 24.

 

 

 

 

 

 

 

 

 

 

 

꽃들의 웃음판

 

한시로 읽는 사계절의 시정

 

높이 솟아 반짝이던 황금빛 기와는 이제 빈터로만 남았다.

소중한 사랑의 기억도 잡초 속에 됭군다.

그렇다고 그 사랑을 어이 덧없다 하랴.

아니 만남만 못했다 하랴.

 

 

 

 

 

 

 

 

봄 꽃
매화 창가에서 / 봄날 / 아기 새의 날갯짓 / 부끄러워 말 못하고 /

무덤의 봄빛 / 깊은 산 속 집 / 오는 봄 가는 봄 / 손끝에 남은 향기 /

님이 심은 버들 / 한식 / 무정한 사람 / 꽃들의 웃음판 / 게으름에 대하여

 

 

 

 

 

 

 

 

 

여름 숲
초록의 연못 / 연꽃 / 뒤뜰의 딸 아이 / 비를 피하다가 / 개 두 마리가 있는 풍경 /

또한 통쾌하지 아니한가 / 여름날 풍경 / 허공에 박힌 글자 /

손님에게 / 반달 / / 무더위 / 이런 맛을 아는가 / 연꽃 방죽

 

 

 

 

 

 

 

 

 

가을 잎
사물과의 합주 / 돌길의 지팡이 소리 / 밤중에 앉아 / 물새의 근심 / 난간에 기댄 그리움 /

창밖의 오동잎 / 차 달이는 연기 / 벗에게 / 그림 속 / 파산의 밤비 소리 /

달빛 / 옛 님 생각 / 가을 새벽 / 낙엽 지는 소리 / 부끄러운 아비 노릇

 

 

 

 

 

 

 

 

 

 

겨울 산
날 밝자 제가끔 / 눈 위에 쓴 편지 / 눈 온 아침 / 나무로 새긴 닭 /

밤새 내린 눈 / 눈 위의 발자국 / 손녀를 묻고 / 눈물이 뚝뚝 /

눈 오는 밤 / 세상 일 / 천왕봉 / 새 누리의 첫 빛

 

 

 

 

 

 

 

 

 

 

 

 

연꽃이 가장 무성한 곳 아래 배를 묶는다. 연밥을 따기 위해서가 아니다. 임과 물가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임과의 밀회 장면을 다른 사람들이 보아서는 곤란하겠기에, 무성한 연잎 속에 숨어 임이 오시기만을 기다린다. 마침내 저쪽에서 임은 좌우를 두리번거리며 나 있는 물가 쪽으로 걸어온다. 물가에 멈춰 선다. 나를 찾지 못하는 그가 안타깝다. 그래서 연밥 하나를 따서 불쑥 임의 발치에 던졌다. `저 여기 있어요.`라고 말도 못하고 말이다. 그리고는 혹시 그 모습을 누가 보았을까봐 반나절 동안이나 두 볼에서 붉은 빛이 가시지 않았다고 했다.
그녀가 던진 것이 ‘연자(蓮子)’ 즉 연밥인 것은 또 다른 의미가 있다. ‘연자(蓮子)’는 ‘연자(憐子)’, 즉 ‘그대를 사랑한다’는 말과 발음이 같다. 따라서 그녀가 임의 발치에 던진 것은 단순히 ‘저 여기 있어요’가 아니라 사실은 ‘당신을 사랑해요’의 의미를 띤다. 이런 것을 한시에서는 쌍관의(雙關義)라고 한다. 그녀가 반나절 동안이나 양볼의 홍조가 가시지 않았던 것도 따지고 보면 이런 사정 때문이었다.
--- p.29

 

 

 

 

까마귀에도 종류가 있다. ‘오(烏)’는 몸통이 온통 검고 자라서는 늙은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다 먹인다. 그래서 ‘반포조(反哺鳥)’라고도 하고 ‘자오(慈烏)’라고도 불리는 효성스런 새이다. 2구의 ‘아(鴉)’는 갈까마귀 또는 큰부리까마귀로 부르는데, 덩치가 까마귀보다 조금 작고 배 아래 부분이 희다. 성질이 고약하여 제 어미를 먹일 줄 모른다.
제사를 마치고 자리를 정돈하는데, 갈까마귀가 제사 음식을 탐해 뒤뚱뒤뚱 다가오다 푸드득 제 풀에 놀라 달아난다. 사는 일이 참 덧없다. 사랑하시던 어버이는 어느새 흙속에 누워 계시고, 살아 올바로 봉양치 못했던 지난날이 회한이 되어 가슴을 친다. 우는 갈까마귀에서 시인은 생전에 효도하지 못한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 p.51

 

 

 

금강산 일만하고 이천 봉우리 / 높고 낮기 제가끔 같지 않다네. / 보았나 둥근 해 솟아오르면 / 높은 곳이 가장 먼저 붉어지는 걸. 一萬二千峰 高低自不同 / 君看日輪上 高處最先紅 -성석린(成石?, 1338~1423), 〈풍악(楓嶽)〉
옛사람들은 이 시를, 떠오르는 햇살을 받아 제 모습을 드러내는 묏부리를 통해, 깨달음을 얻어 본체의 성령(性靈)이 환히 빛나는 것에 비유한 작품으로 읽었다. 가장 높은 봉우리는 바다 위 붉은 빛으로 제 몸을 밝히지만, 아래쪽의 낮은 봉우리들은 해가 다 떠오르도록 그 빛에 제 몸을 쏘이지 못한다. 같은 가르침의 말씀을 듣고도 단번에 한소식을 깨치는 사람이 있고, 아무리 되풀이해 일깨워 주고 야단을 해도 쇠귀에 경을 읽는 듯 종내 담벼락을 마주하고 선 것 같은 용렬한 사람도 있다.
이렇게 읽을 때, 새 누리의 첫 빛을 받아 제 몸을 환하게 드러내는 최고봉은 우리 정신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지점을 말하고 있는 셈이다. 범접할 수 없는 우뚝한 높이, 깜깜한 암흑의 대지를 가르고 드러나는 첫 모습, 닦아 놓은 거울처럼 투명하고 투철한 정신
--- p.234


 

 

 

 

 

 

 

 

 

봄 꽃, 여름 숲, 가을 잎, 겨울 산의 사계절로 나눠 한시를 읽었다.

사람 사는 세상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같다.

사계절과 생로병사의 주기가 변함없듯이.

한시 속 이야기는 남의 나라 먼 조상의 이야기가 아니다.

나와 내 가족, 내 이웃의 이야기다.

헤어져 그립고, 만나서 반갑다.

봄 꽃에 마음 설레고, 가을 잎에 가슴 에인다.

어려워 보여도 한 겹만 걷으면 못 알아들을 말이 하나도 없다.

 

- 글쓴이의 말 중에서

 

 

 

 

 

 

 

 

 

 

120여 편의 아름다운 한시를 예민한 감수성으로 풀어내다


우리 고전문학의 소롯길을 따라가다 보면 그 어느 길목에 한시가 있다. 절제된 자수와, 노래 부르듯 읊으면 묘한 즐거움을 주는 압운. 한 글자 한 글자에 응축되어 있다가 어느새 머리속에 환히 그려지는 이미지들의 향연. 그 모든 것이 어우러져 시인의 마음이 내 마음에 와 닿는다. 그러나 어디 한시 읽기가 쉬운가. 한자라는 특수한 매체로 씌어진 한시는 점점 빛이 바래고 우리들의 기억 저편으로 사라져 간다.


일찍이 한시의 아름다움에 매혹되었고, 한시가 잊혀져 가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줄곧 손에서 놓지 않고 연구해 오던 저자는 이 책에서 한시의 미학, 그리고 그 속에 담긴 삶의 깊이와 진정 소중한 가치들을 세심하게 길어 올려, 이 디지털 세상에서 다시 살아 숨쉬게 만들었다. 정민 교수가 공들여 읽고 우리말로 옮겨 다듬고 다듬어 우리 앞에 내놓은 한시들을 보면, 한시가 풍기는 고루함은 눈 녹듯 사라지고 그 안에 담긴 정서와 뜻이 오롯이 남아 오늘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일으킨다.


저자는 번역에 정확성을 기하면서도 우리말의 운율마저 집요하게 살려냈다. 5언시는 7.5조로, 7언시는 3.4조로. 한시가 본래 가지고 있던 정형미는 우리말로 옮긴 뒤에도 그대로 드러난다. 이렇게 매만져 수록한 한시가 여기 120여 편에 달한다. 게다가 저자는 그 행간에 숨은 이야기들을, 마치 눈앞에서 보고 손끝으로 만지는 양 예민한 감수성으로 훤히 풀어낸다. 접근하기 어렵고 상징으로 가득차 난해한 듯 여겨지던 한시는 저자의 손을 거쳐 쉬운 문체로 새로 태어난다. 그래서 한자 한문을 잘 모르는 사람도 그 맛에 저절로 빠져들게 된다.

 

 

 

 

 

 

 

 

 


선조들의 빼어난 감각과 고결한 정신세계가 오늘과 맞닿다


이 책을 통해 독자는 님을 그리는 여인의 마음으로 봄꽃을 보고, 어느 가을날 밤중에 깨어 앉은 스님의 귀로 사물의 섭리를 들으며, 기상이 충천한 선비의 눈으로 눈 덮인 산을 보게 된다. 그래서 늘상 되풀이되는 같은 계절일지라도, 빼어난 옛 시인들이 순간을 놓치지 않고 아로새겨 놓아 언제라도 빛을 발하는 보석 같은 영롱함을 시 속에서 발견하게 된다.


저자의 말 대로 ‘한시 속 이야기는 남의 나라 먼 조상의 이야기가 아니다. 나와 내 가족, 내 이웃의 이야기다.’ 님을 그리는 마음이 매한가지이고, 한식날이면 돌아가신 어버이 생각하는 마음도 예나 지금이나 같다. 고향을 떠난 나그넷길에 흥겨운 단오를 맞아, 두고 온 딸아이를 생각하는 아비의 마음도 지금의 어버이 맘과 같다. 그래서 저자는 한시를 읽다가 미당의 시집을 꺼내 읽기도 하고 조운, 한용운, 황지우의 시를 떠올리기도 한다. 예와 지금을 종횡무진 하지만 시를 읽는 마음, 고결하고 아름다운 마음과 정신을 추구하는 마음은 한결같다.

 


한시의 세계와 서양화가 김점선의 그림이 어우러지다


한국을 대표하는 중견 서양화가 김점선은 수년 전부터 디지털 그림으로 새로운 시도를 해왔다. 이 책에서 그는 디지털 사진에 선과 색채를 가하는 독특한 기법으로 화폭을 누빈다. 과연 디지털 그림이 한시와 어울릴까? 기묘하게도 수백 년 전의 한시를 21세기에 풀어놓은 저자의 글과 시공을 초월하여 색채와 형태를 자유로이 구사한 화가의 터치가 참 잘 어울린다. 한시가 오늘 우리들 얘기가 될 수 있는 것처럼 그의 그림 또한 예스럽기도 하고 현대적이기도 하다. 한시에 담긴 정조를 그림으로 해석해 낸 그의 작품 세계를 보는 맛이 새롭다.

 

 

 

 

 

 

 

 

 

 

 

 

정민 교수의 계절 따라 한시 읽기. 120여 편의 아름다운 한시를 예민한 감수성으로 풀어내고, 김점선 작가의 화사한 그림을 담았다. 한시의 아름다움에 매혹되었고, 한시가 잊혀져 가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줄곧 손에서 놓지 않고 연구해 오던 저자는 이 책에서 한시의 미학, 그리고 그 속에 담긴 삶의 깊이와 진정 소중한 가치들을 세심하게 길어 올려, 이 디지털 세상에서 다시 살아 숨쉬게 만들었다. 정민 교수가 공들여 읽고 우리말로 옮겨 다듬고 다듬어 우리 앞에 내놓은 한시들을 보면, 한시가 풍기는 고루함은 눈 녹듯 사라지고 그 안에 담긴 정서와 뜻이 오롯이 남아 오늘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일으킨다.


저자는 번역에 정확성을 기하면서도 우리말의 운율마저 집요하게 살려냈다. 5언시는 7.5조로, 7언시는 3.4조로. 한시가 본래 가지고 있던 정형미는 우리말로 옮긴 뒤에도 그대로 드러난다. 이렇게 매만져 수록한 한시가 여기 120여 편에 달한다. 게다가 저자는 그 행간에 숨은 이야기들을, 마치 눈앞에서 보고 손끝으로 만지는 양 예민한 감수성으로 훤히 풀어낸다. 접근하기 어렵고 상징으로 가득차 난해한 듯 여겨지던 한시는 저자의 손을 거쳐 쉬운 문체로 새로 태어난다. 그래서 한자 한문을 잘 모르는 사람도 그 맛에 저절로 빠져들게 된다.

 

 

 

 

 

 

 

정 민

1960년 충북 영동에서 태어났다. 한양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현재 모교 국문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한시 미학 산책』과 『정민 선생님이 들려주는 한시 이야기』, 『한시 속의 새, 그림 속의 새』(2책) 등 한시의 아름다움과 그 속에 담긴 콘텐츠의 유용성을 알리는 데 노력해 왔다. 이 밖에 『미쳐야 미친다』, 『비슷한 것은 가짜다』, 『초월의 상상』, 『책 읽는 소리』등 여러 책을 펴냈다.

 

 

김점선

1946년 개성에서 태어났다. 1972년 홍익대학교 대학원에 들어가 그해 여름 처음 열린 앙데팡당 전에 출품해서 화려하게 등단했다. 1983년 첫 전시회를 시작으로 해마다 작품전을 열었다. 시간과 공간, 그리고 기존 관념을 초월한 자유롭고 파격적인 그림으로 독특한 자기 세계를 구축하고 있으며, 간결하고 강렬한 문체로 자기 생애를 담은 글들을 내놓기도 했다. 저서로『나, 김점선』,『10cm 예술』,『나는 성인용이야』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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