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다석과 씨알의 탄신일에 즈음한 씨알다짐과 선언
다석과 씨알다짐
다석 유영모 선생님, 선생님은 뭇 사람들이 부국강병과 입신양명을 좇아 출세의 길로 몰려갈 때 홀로 그 길을 버리고 땀 흘려 일하고 어려운 이웃을 사랑으로 섬기는 삶의 길로 가셨습니다. 오늘 우리 사회는 남을 앞지르고 희생시켜 출세하려는 사람들만 가득차고 그런 사람들만 길러내고 있습니다.
오늘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폭력과 자살로 내몰리고 있습니다. 입시경쟁 교육, 출세교육에만 매달린 결과입니다. 사람 만들고 사람 되는 교육이 학교에서 사라진 지 오래입니다. 일찍이 선생님께서는 한국 교육을 주리 틀린 교육이라 꾸짖으셨지요. 교육의 정신과 이념이 잘못되었기 때문에 교육을 하면 할수록 주리가 틀려서 인격과 정신이 분열되고 파괴될 수밖에 없다는 말씀이지요. 그 말씀하신지 60년이 지났건만 고쳐지기는커녕 고치려 해도 고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교사도 학부모도 교육부장관도 아무 대책이 없습니다. 우리 사회 전체가 잘 먹고 잘 살자는 생각밖에 없는데 무슨 대책이 나오겠습니까? 참 사람이 없는데 무슨 교육이 되겠습니까?
학교 교육은 글을 가르치고 배우는 것인데 학교에서 무슨 글을 읽고 배우는지 모르겠습니다. 선생님은 ‘글’은 ‘그를’(그이를) ‘그리’워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글을 읽고 그이를 만나고 그이를 알고 그이가 되자고 하셨습니다. 그이는 누구나 인정하고 존중하는 참 사람이지요. 오늘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그이가 없습니다. 그이를 그리워하고 그이를 찾는 사람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선생님은 평생 글을 읽고 쓰면서 그이를 그리워하고 그이를 만나고 그이가 되셨습니다. 선생님은 오늘 누구나 우러르는 그이입니다. 오늘 우리도 글을 읽고 쓰면서 그이를 그리워하고 그이를 만나고 그이가 되겠습니다. 씨알은 참 사람, 그이의 씨알맹이를 품은 사람입니다. 씨알은 참 사람, 알 사람 그이입니다. 다석 유영모 선생님, 선생님을 따라서 우리도 그이를 그리워하고 그이가 되는 삶을 살겠습니다.
씨알과 씨알 선언
참 사람을 만나기 어렵고 사람다운 사람이 되기도 어렵고 사람답게 살기도 어려운 세상이 되었습니다. 씨알 함석헌 선생님, 선생님은 사람의 향기와 품격을 보여준 참 사람이셨습니다. 우러르고 우러러도 또 우러르고 싶은 어른이셨습니다. 선생님은 우리 모두가 우러르고 싶고 우러를 수 있는 참 사람 그이셨습니다.
누구나 우러를 수 있는 그이가 없는 세상에서 그이를 그리워하고 그이가 되어 그이로 사신 선생님, 선생님의 얼굴, 삶, 말씀이 그립습니다. 험난한 현대사를 온 몸으로 살면서 그이로 우뚝 서신 선생님, 선생님은 우리 모두의 그이가 되셨습니다. 큰 바다처럼 동서고금의 사상을 품어 통섭(通涉)하고 회통하셨습니다. 막힘도 거리낌도 없는 깨달음의 세계에서 살면서도 지극히 작은 사람에게 지극 정성을 다 하시고, 상처받은 풀벌레 한 마리에게서 무궁한 우주 대생명의 사랑과 힘을 보셨습니다.
사대주의와 당파싸움, 식민지배와 민족분단, 6·25전쟁과 군사독재 속에서 일그러지고 뒤틀린 한국 현대사는 폭력과 증오, 거짓과 위선, 편견과 독단으로 얼룩졌습니다. 우리사회는 옳고 그름, 정의와 불의를 가를 잣대를 잃어버렸습니다. 저마다 목소리만 크고 마음을 하나로 움직이는 말씀을 듣기 어렵습니다. 선생님의 삶과 말씀과 행위는 거울처럼 우리 역사와 사회를 비추어 줍니다. 선생님처럼 진실하고 뜨겁게 살았던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선생님처럼 깊고 깨끗하고 품위 있게 사신 어른이 어디 있습니까? 선생님은 우리 겨레가 나갈 길을 북두칠성처럼 밝게 비춰주고 있습니다.
그이, 그 사람을 그리워하고 그 사람이 되어 살았던 선생님은 그 사람을 향한 그리움과 다짐을 ‘그 사람을 가졌는가?’ 라는 시로 노래하셨습니다.
만 리길 나서는 길 처자를 내맡기며 맘 놓고 갈 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저 맘이야,' 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탔던 배 꺼지는 시간 구명대를 서로 사양하며 '너만은 제발 살아다오' 할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불의의 사형장에서 '다 죽어도 너의 세상 빛을 위해 저만은 살려 두거라' 일러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잊지 못할 이 세상 놓고 떠나려 할 때'저 하나 있으니' 하며 빙긋이 웃고 눈을 감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의 찬성보다 '아니'라고 가만히 머리 흔들 그 한 얼굴 생각에 알뜰한 유혹을 물리치게 되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씨알인 우리가 그 사람입니다. 우리가 서로 그 사람이 되어 세상을 따뜻하고 환하게 만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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