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신앙에는 성불(成佛)하겠다는 의지가 있다. 성불하기를 바라면 그 길을 단단히 붙잡아야 한다. 이것이 진리파지(眞理把持)다.
영원한 생명인 얼나를 깨달아 성불(成佛)하는 이치를 알았으면 그것을 기어이 깨닫고야 말겠다는 염원(念願)이 염불이다. 염불한다는 것은 붓다(Buddha)의 이름만 부르는 것은 아니다.
만일 영원한 생명(얼나)을 깨닫는 이치가 있으면 꼭 붙잡고 그 이치의 자리까지 가는 것이 염불이며 신앙이다.
영원한 생명인 얼나를 깨닫는데는 바르게 생각하는 길뿐이다.
석가의 팔정도(八正道)는 곧 바르게 생각해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 다석 어록 82~83쪽 -
< 풀이 > 성불한다는 것은 진리를 이룬다는 것이다. 진리는 ‘내가 나가 되는’ 주체의 진리밖에 없다. 어떻게 흔들림 없고 변함없는 ‘참 나’에 이를 것인가? 염불은 내가 참나가 되기 위해 하는 것이다. 석가든 붓다든 남의 이름을 아무리 불러도 참 나가 될 수는 없다. 성불하여 참 나를 찾으려면 바르게 생각해야 한다. 석가의 팔정도는 나에 대해서 바르게 생각하는 여덟 가지 길이다. 나를 파고들어 깊이 바로 생각해야 ‘참나’에 이르러 성불할 수 있다. -박재순
주리 틀린 교육
다석은 한국교육을 주리 틀린 교육이라고 했다. 옛날에 죄인을 고문할 때 다리를 묶고 다리 사이에 막대를 어긋나게 꽂고 비틀면 살이 찢어지고 다리뼈가 부스러지곤 했다. 교육의 정신과 목적, 이념과 철학이 잘못되었기 때문에 교육을 하면 할수록 인격과 정신이 분열되고 부스러진다는 것이다. 오늘 한국 교육을 보면 주리 틀린 교육이라는 말이 실감이 난다.
다석은 20대 초반에 일본 동경에 유학을 가서 대학 입학자격을 얻어놓고는 깊은 고민 끝에 대학입학을 포기했다. 당시 일본 대학의 교육 이념은 부국강병과 입신양명이었다. 출세하여 나라를 부강하게 하는 것이 대학 교육의 목표였다. 출세한다는 것은 힘든 일을 남에게 시키고 편하게 부귀영화를 누린다는 것이다. 이것은 다석 유영모가 배운 인생과 종교의 진리에 어긋나는 것이었다. 땀 흘려 일해서 먹고 남은 것을 가지고 사랑으로 어려운 이웃을 돌보고 섬기는 것이 진실한 삶이 아닌가!
다석은 참된 삶을 살기 위해서 대학입학을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출세하는 길을 포기하고 농사지어 먹고 남는 것으로 이웃을 섬기는 삶을 살려고 했다. 그는 자녀들까지 대학을 보내지 않았다. 대학공부를 하여 출세하면 하나님과 민중의 미움을 살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일제 식민통치시대, 군사독재시대, 산업자본시대를 거치면서 우리나라는 교육의 정신과 이념을 바로 잡지 못했다. 그 동안 교육이념과 정신을 밝히는 문구를 이리 저리 고쳤는지 모르나 교육의 정신과 목표는 잘 먹고 잘 살자는 것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교육부장관이나 교장이 무어라고 하든지 학생들은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학교에 와서 공부하고 있다. 오늘의 중고등학교에서 인성교육이 이뤄지지 못하고 오로지 입시경쟁교육에만 매달리는 것은 일제 때의 교육 이념인 부국강병과 입신양명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을 말해 준다.
오늘의 학교 교육은 참 교육이 아니다. 참 교육은 참 사람교육이다. 교육은 참 사람을 길러서 참된 삶을 살게 하는 것이다. 참 사람이란 저 자신에 충실하면서 남에게 이롭고 도움이 되는 사람이다. 참 사람은 제 속에 깃들어 있는 무궁한 생명력과 고귀한 정신을 살리고 키워서 꽃 피고 열매 맺게 하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참교육은 씨알교육이다. 저마다 씨알임을 깨달아 씨알이 되어 씨알로 살게 하는 교육을 해야 한다. 사람은 생명진화와 인류역사의 씨알맹이다. 수 십 억 년 생명진화의 역사와 2 백 만 년 인류 역사를 통해 길러온 생명력과 가치가 사람의 몸과 맘 속에 깃들어 있다. 참 교육은 사람마다 속에 품고 있는 생명과 정신의 씨알맹이를 싹 트고 꽃 피게 하는 것이다. 씨알이 서로 만나 나는 나답게 되고 너는 너답게 되어 저마다 값지고 보람 있는 생명을 꽃 피우고 열매 맺게 하는 것이 참 교육이다. -박재순
2012년 3월3일 토요일 아침 10시, 20명의 순례자가 당산역을 출발하여 아직 개조공사가 진행 중인 양화대교를 건너 양화나루에 접어들었습니다. 여기서 마포나루를 지나 원효로4가 70번지, 새 주소로는 효창원12길 12호의 함석헌 선생님 자택지까지 오늘 걸어갑니다.
양화나루에는 한강 제일의 절경이라고 하였던 잠두봉(蠶頭峰)이 있습니다. 누에의 머리와 같은 형태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름다운 옛 이름보다는 끔직스런 절두산으로 더 많이 불리고 있습니다. 1866년 병인년 프랑스함대가 한강을 거슬러 이곳 양화진 까지 진격해 왔습니다. 이에 흥선대원군은 "양이(洋夷)로 더럽혀진 한강의 물을 서학(西學) 무리들의 피로 씻어야 한다"며 심문과정 없이 선참후계(先斬後啓)하여 1만 명가량의 순교자를 이곳에서 목을 잘라 처형했습니다. 그 후 100년이 지난 1966년, 잠두봉 정상에는 당시 형구(刑具) 칼을 형상화한 기념성당이 세워졌고 ‘절두산순교성지‘로 조성되어 있습니다.
절두산순교성지 옆에는 외국선교사묘지공원이 있습니다. 1890년 알렌과 함께 광혜원(廣蕙院)에서 의료사업을 하던 선교사 J.W. 헤론이 7월 26일 급환으로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당시 법으로 왕궁 30리 안쪽에는 외국인을 묻을 수 없었고 민간인들도 외국인을 가까이 묻으면 재앙이 내린다고 믿고 있어 부득이 조정과 긴밀한 관계를 갖고 있던 알렌이 급하게 주선하여 양화진 내에 안치하였는데 이후 이곳은 외국인 전용묘지로 되어 현재 약 1만 3200㎡ 넓이에 570여 영령이 잠들어 있습니다. 1985년 한국기독교 선교100주년기념관이 건립되었고 1999년 언더우드 박사의 유해가 83년 만에 ’嚮【 이장되었으며 헐버트 박사의 추모비도 건립되었습니다.
순례길 위에서 우리는 씨알의 제소리를 나누었습니다. 진리가 우리 가운데 있습니다. 평화가 자유가 우리 가운데 있습니다. 하늘나라가, 니르바나가, 빈탕한데가, 님의 나라가 우리 가운데 있습니다. 우리의 만남, 우리의 관계, 우리의 눈뜸, 우리의 일어섬 속에 있습니다.
씨알운동에는 삯군 아닌 선한 목자가 필요합니다. 우리 안에 들지 않은 양(씨알)들도 데려와야 하기 때문입니다. 씨순길을 걷는 뜻은 진리를 체험하고자 함입니다.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합니다. 성불(成佛)하려는 나의 속알이, 영생(永生)하려는 나의 속알이 씨순길을 걷게 합니다.
우리가 걷는 한강공원길이 잘 정비되어 있습니다. 강 건너 밤섬이며 국회의사당과 고층 건물이 즐비한 여의도의 풍광이 아름답습니다. 민주화와 산업화를 함께 이룩한 우리 민족이 자랑스럽습니다. 민주화에 비하여 산업화에 대한 우리의 평가는 좀 인색한 면이 있습니다.
국사광복(國史光復)을 이룩하여 민족사관을 재정립하고 제세이화 홍익인간의 단군정신을 살려 민족정기를 세워야 합니다. 마포는 본래 '삼개'라 불리던 곳인데 일제 때 한자 지명으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민족정기를 억누르려고 아니면 식민통치 행정편의를 위하여 지어진 일제강점기 때의 지명이 아직껏 남아있는 곳이 많습니다.
- 걸으며 묵상하며 나눈 이야기와 노래의 내용을 정리했습니다 -
3시간 걸어 오후 한시, 원효로4가 70번지, 새 주소로는 효창원로12길 12번지 함석헌 선생이 26년간 사셨던 자택지에 도착했습니다. 지금은 낮선 다세대 주택이 한 채 서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순례자들은 자택지에 도착하자 직접 선생님을 뵙기나 한 듯 잠시 깊은 감회에 젖었습니다.
| 다음 순례 |
4월7일 토요일 4.19 길, 정릉에서 시작하여 솔샘길 흰구름길 순례길을 걸어 419국립묘지 까지 약 6K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