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에서 근대화는 서구사회의 선진적인 과학기술과 민주적인 정치제도를 받아들임으로써 중세 봉건사회에서 벗어나 자주적이고 현대적인 나라를 세우는 것으로 이해된다. 근대화는 국민이 나라의 주체와 토대로서 자각해가는 과정이면서 자연친화적인 농업중심 사회에서 도시산업 기술사회로 바뀌어가는 과정이다. 근대화는 서구의 산업기술과 민주정치를 주체적으로 수용하는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근대화는 문명사적으로 말하면 동서문명이 주체적이고 창조적으로 만나는 과정이고 정신사적으로 말하면 국가의 주체로서 민중이 자각해 가는 과정이다.
한국의 근현대사는 근대화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서구의 과학기술과 문화를 받아들여 조선왕조를 개혁하려 했던 실학은 낡은 왕조체제에 갇혀 새로운 근대사회를 열지 못했다. 실학자들의 개혁이 실패하자 그들의 후예인 급진 개화파는 일본군에 기대어 정변을 일으켜 근대화를 힘으로 이룩하려 했다. 그러나 수구세력의 저항과 청나라의 개입으로 개화파마저 실패하고 말았다. 이로써 조선왕조 후기 지식인들의 근대화 시도는 실패하고 말았다. 실학파와 개화파의 근대화 시도는 민중과 유리된 지식인들의 노력에 지나지 않았다.
수운 최제우는 가난과 질병에 시달리는 민중의 삶과 마음을 끌어안고 고민하다가 하늘의 마음을 깨달았다. 모든 생명과 모든 인간을 먹이고 살리고 키우려는 하늘의 마음이 모든 사람 속에 깃들어 있음을 깨닫고 동학을 창도하였다. 하늘을 품은 사람은 모두 자유롭고 평등한 존재였다. 민중을 주체로 깨워 일으켜 자유와 평등의 세상을 열려고 했다. 그러나 동학은 부적과 주문을 사용함으로써 민중의 맑은 이성을 깨우치는데 한계가 있었다. 동학은 새 나라의 현실적이고 분명한 미래상을 가지지 못하고 외세에 대해 지나치게 배타적이었다. 동학에서 촉발된 갑오농민전쟁은 특권적 귀족과 외세에 저항하면서 정의롭고 평등한 세상을 꿈꾸었으나 민중이 주체가 되는 새로운 나라를 열지는 못했다.
지식인들의 근대화 노력과 동학 민중의 혁명운동이 실패한 다음에 나온 것이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 운동이었다. 독립협회는 순 한글 신문인 독립신문을 창간하여 민중을 주체로 깨워 일으키는데 힘썼고, 만민공동회를 열어 민중이 역사와 사회의 주체로 나서게 하였다. 민중을 깨워 주체로 일으키고 민중을 역사와 사회변혁에 앞장서게 한 것은 실학자 지식인들과 동학민중의 근대화 실패를 딛고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이다. 그러나 민중을 크게 각성시켰던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도 조선왕조의 탄압으로 좌절을 겪게 되었다.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도 역사의 시련과 도전을 이겨내고 새 나라를 열만한 깊은 철학과 조직 역량을 갖지 못했던 것이다.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의 좌절로 조선민족의 근대화 노력은 실패로 끝나고 나라를 잃게 되었다.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에서 가장 두드러진 활동을 했던 인물은 당시 20대 초반의 안창호였다. 나라가 망하고 일제의 식민지가 되는 절박한 상황에서 안창호는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의 실패를 딛고 신민회를 조직하여 민중교육입국운동을 일으켰다. 안창호와 이승훈은 높은 도덕정신과 깊은 신앙을 바탕으로 민중 한 사람 한 사람을 깨워 일으키는 교육운동을 펼쳤다. 민중의 덕과 슬기와 힘을 깨워 일으킴으로써 나라의 주인이고 토대인 민중이 주체로 일어서서 주인 노릇을 하게 하였다.
민중교육입국운동을 시작하고 나서 12년 후에 삼일독립운동이 일어났다. 이승훈이 기독교 대표들을 조직하여 삼일독립운동을 이끌었다. 삼일독립운동은 민중을 주체로 깨워 일으켜, 나라를 되찾고 바로 세우는 신민회와 교육입국운동의 귀결이고 연장선에 있었다. 삼일독립운동에서는 전국의 민중이 떨쳐 일어나 나라의 주인으로서 자주독립을 선언하였다. 삼일독립운동이 일어나자 임시정부가 수립되었다. 헌법전문에서 밝힌 대로 삼일독립운동과 임시정부는 대한민국의 역사적 뿌리이며 정신적 토대다.
식민지배와 착취를 추구한 제국주의 전쟁으로 식민지가 되어 고난을 겪은 한민족은 삼일독립운동을 통해 높은 도덕과 깊은 정신을 바탕으로 민주와 민족 자주독립과 세계평화의 원칙과 철학을 밝히 선언하였다. 삼일독립운동은 근대화의 이념 목적을 뚜렷이 드러냈다. 삼일독립운동의 정신과 철학은 대한민국의 이념과 철학을 밝힌 것이며 더 나아가서 새로운 세계평화시대의 길과 방향을 제시한 것이다.- 박재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