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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irit/e—cr—life

하늘 머리 둔 사람

by e-bluespirit 2013. 2. 25.












< 하늘 머리 둔 사람 >  
                                                           
하늘 머리 둔 사람
한 끗이나 두 눈 밝혀
먹이 꼭꼭 씹어 먹고 
누기 바로 눈 땅은 환

(56, 9,28)


< 풀이 >
사람은 누구나 하늘에 머리를 두고 산다. 목숨은 하나지만 눈은 몸의 눈과 마음의 눈 둘이다. 몸의 눈과 마음의 눈을 밝혀서 하늘처럼 또렷또렷한 감정과 생각을 가지고 살고, 밥은 꼭꼭 씹어 먹고, 몸과 맘의 배설물은 아무데나 싸지르지 말고 눌 데 바로 누어야 한다. 오줌과 똥을 잘 가려야 어른이듯이, 감정과 생각의 배설물을 잘 가려서 쏟아내야 성숙한 세상이 된다. 욕심과 허영, 교만과 고집의 찌꺼기를 아무데나 흘리고 엉뚱한 사람에게 화풀이를 하면 세상은 어지럽고 깜깜해진다. 그러나 눌 것을 바로 눈 사람들이 사는 땅은 환하게 된다. -박재순  





 < 통일의 근본 >  

모든 통일의 근본이 되는 것은 믿음이다.

나와 하나님이 서로 믿게 되어 내가 나를 믿게 되고, 
내가 나를 믿으면 남이 나를 믿어주고 내가 또 남을 믿게 된다.

우리 사회에 물고 뜯고 의심하고 시기하는 싸움이 많은 것은 

자신 없는 사람, 따라서 
절대적인 주체가 되는 하나님을 믿는 맘이 없는 사람끼리 모이기 때문이다.

모든 힘은, 힘의 근본인 전능자가 곧 나의 바탈이요, 
내 속에 있음을 믿는 데서 나온다. 

민족통일의 종교 3권 187~188쪽.


< 풀이 >

나의 속의 속에 하나님이 있다. 하나님이 참 나이고 참 나인 하나님에게서 나와 너와 그가 하나로 된다. 나와 너와 그의 속의 속에서 하나님은 참 나가 된다. 내 속의 속에서 하나님을 믿으면 나의 참 나를 믿는 것이고 내가 나를 믿으면 남도 나를 믿게 된다. 참 나는 서로의 속에서‘한 나’이기 때문이다. 

서로 의심하고 시기하고 싸우는 것은 자신 없는 사람들이 모였기 때문이다. 자신이 없는 것은 서로‘나’를 믿지 못하기 때문이요, 서로‘나’를 믿지 못하는 것은 각자의 속에 절대적인 주체가 되는 하나님이 있음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나 되게 하는 모든 힘은 힘의 근본인 하나님이 나의 바탈(본성)이고 하나님이 내 속에 있음을 믿는 데서 나온다. 내 속에 하나님이 있음을 믿는 사람에게는 절망이나 체념이 없고 늘 새로운 힘이 솟아나온다. -박재순





씨알의 지천태(地天泰)와 화육(化肉)


씨알은 흙에 묻힘으로써 생명의 창조활동을 펼친다. 씨알의 생명활동은 하늘과 땅의 조화로운 교감, 교류이며 어울림, 공명이다. 사람의 몸과 마음, 육체와 영혼도 서로 울리고 통해야 한다. 씨알의 생명은 다른 생명과 어울림이며 서로 울림이다.

성경 창세기에 따르면 하나님은 흙으로 사람의 몸을 빚고 하나님의 생명기운(숨)을 코에 불어넣음으로써 인간을 창조했다. 하나님의 생명기운, 하늘의 기운을 흙으로 빚은 사람의 몸 속에 넣는다는 것은 하늘(天)이 흙(地) 속에 들어온 것을 뜻한다. 주역에서는 하늘이 겸손하게 땅 아래로 오면 태평해진다고 한다. 이것을 지천태(地天泰)라고 한다. 하늘이 땅 위에 높이 있으려 하면 위험하고 흉해진다.(天地否) 그러나 땅이 앞에, 위에 오고 하늘이 땅 뒤에 땅 아래 오면 태평해진다는 것이다. 

평화세계(하늘나라)를 이루기 위해 하나님(天)이 사람의 몸(地)을 입고 땅 바닥으로 내려왔다는 기독교의 화육설(化肉說: incarnation)은 주역의 지천태가 시사하는 생명·평화세계의 진리와 통한다. 숨은 흙으로 지은 몸으로 하늘 기운을 숨 쉬는 것이다. 몸으로 하늘 바람을 숨 쉬는 숨에는 기독교적 인간창조의 깊은 의미가 담겨 있고 주역에서 말하는 지천태의 신비가 숨겨 있다.

흙 속에 들어가 자신을 깨트림으로써 아름답고 풍성한 생명세계를 펼치는 씨알의 삶에는 지천태와 화육의 신비가 담겨 있다. 씨알은 낮춤으로써 높아지고 비움으로써 채워지는 생명·평화의 길을 간다. -박재순







<  내가 나라다  >

나는 나라.

나라는, 
나 나라는(나 낳으라는) 
나라이니라.

나 이승에 나면
이승에서 나라요, 

(이승)에서 죽어

하늘나라, 
빈탕한데 나라, 
한 나라이니라.


(56년 9월 22일)


< 풀이 >
민주적인 나라에서는 민이 나라의 토대와 주인과 주체다. 한 사람 한 사람의 민이 곧 나라다. 왕이 “내가 곧 나라다”고 하면 헛소리지만 민이 “내가 곧 나라다”고 하면 참 말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의 민이 내가 바로 나라의 주인인 ‘나’라고 나서는 나라가 참된 민주 나라다. 또 나라는 무엇인가? 나를 낳으라는 나라다. 나라의 참된 주인과 주체인 ‘나’를 낳을 과제와 사명을 지닌 것이 나라다. 내가 ‘나’라고 나서는 게 나라이고, 참된 나, 참된 씨알을 낳으라고 나라다.

내가 이승에서 나면 이승에서 나라를 이루어 산다. 이승에서 몸 나로 죽고 얼 나로 살면 하늘나라, 빈탕한데 나라에 들어가는데 이승의 나라와 하늘나라가 한 나라로 된다. 하늘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질 수 있다. -박재순





변기통을 닦으며 가르친 이승훈


이승훈은 어려서 부모, 조부모를 잃고 남의 집 사환으로 시작해서 큰 기업가가 되었다. 겸허하게 남을 섬기고 받드는 마음과 대쪽같이 곧고 바른 마음으로 그는 민족의 교사, 섬기는 지도자의 귀감이 되었다.
오산학교를 설립한 이사장으로서 그는 학교의 마당을 쓸고 변소 청소를 하는 것을 자신의 일로 알았다. 평안북도 정주군 오산은 추운 곳이었다. 겨울이면 변소의 똥 무더기가 얼어서 올라왔다. 치우는 사람이 없자 이승훈은 도끼를 가져다가 한 손으로 수염을 잡고서 얼음 똥을 까기 시작했다. 얼음 똥이 튀어서 입으로 들어가면 퉤퉤 뱉으며 도끼질을 했다. 후에 오산학교 학생들에게 “내가 학교에서 한 것은 똥 먹은 것밖에는 아무 것도 없다.”면서 그 일을 자랑하였다.
그는 105인 사건으로 지독한 고문을 받고 오랜 세월 옥고를 치렀으면서도 삼일독립운동에 앞장서라는 요청을 받자 죽을 자리 찾았다면서 기뻐하였다. 삼일독립운동을 일으키고는 감옥에 들어가서 사형언도가 예상되는 데도 죽을 자리 찾았다면서 어깨춤을 너울너울 췄다. 그리고는 감옥에 들어간 첫날 “이제부터 변기통 청소는 내가 한다.”고 선언하고 3년 반 동안 변기통 청소를 혼자 맡아서 하였다. 예전에는 감옥에 변소가 없어서 죄수들이 나무통에 오줌, 똥을 ‡럭?아침에 그것을 비우고 닦았다. 추운 겨울에 찬 물로 변기통을 청소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감방에서도 가장 힘없고 못난 사람이 하는 일이었다. 민족의 큰 지도자인 이승훈이 그런 일을 한다고 하니까 처음에는 사람들이 “아이고 선생님께서 어떻게 그런 일을 하십니까?”하면서 말렸는데 나중에는 당연히 이승훈이 하는 일로 알고 말리는 사람도 없었다고 한다. 남강 이승훈은 이렇게 험하고 궂은일을 몸소 함으로써 
민족을 깨워 일으키는 민족의 교사가 되었다.

함석헌은 20대 후반에 모교인 오산학교의 교사가 되어 말년의 이승훈을 2년 남짓 모실 수 있었다. 함석헌이 방과 후에 학생들과 성경공부를 하자 이승훈이 참석해서 듣고는 내용이 좋으니까 교사들과 학생들에게 “너희도 와서 들어라. 좋은 말은 함께 들어야지.” 하면서 권하였다. 그는 젊은 제자인 함석헌의 성경강의를 귀 기울여 듣고 격려하였다. 제자의 말을 귀 기울여 들음으로써 이승훈은 제자의 마음을 붙잡고 이끌어주었다. 함석헌은 이승훈의 뜻을 이어받아 그 뜻을 이루며 살려고 평생 민족사의 중심에서 몸과 마음을 다 바쳤다.  
소설가 황순원의 아버지는 삼일독립운동에 참여하여 1년 반 동안 옥고를 치렀다. 이승훈이 죽기 1년 전쯤 황순원은 오산학교에서 한 학기 동안 공부를 하였다. 황순원은 늙은 이승훈의 얼굴을 보고 “남자라는 것은 늙어서도 저렇게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이로구나.”하고 깊은 감동을 받았다. 황순원은 이승훈이 평생 자신의 마음 속에 별이 되었다고 하였다. 이승훈은 얼굴만으로도 황순원에게 큰 가르침을 주는 스승이 되었다. -박재순  









선과 악의 뿌리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먼저 좋은 사람을 만들어야 할까, 아니면 먼저 좋은 사회제도와 체제를 만들어야 할까? 사회가 온통 이기심과 불의한 관행으로 가득 차 있는데 개인에게 사랑과 정의를 요구하는 것은 허망해 보인다. 거대한 사회의 불의와 탐욕 앞에서 개인은 너무 무력해 보인다. 그렇다고 개인은 그대로 두고 사회제도와 체제를 잘 바꾸면 좋은 세상이 올 것 같지도 않다. 아무리 좋은 사회이론과 법, 제도와 기관을 잘 만들어도 이기심과 탐욕이 가득한 사람들이 모여 살면 그 좋은 이론과 법, 좋은 제도와 기관을 나쁘게 만들고 나쁘게 운영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약하고 못난 사람도 남에게 상처를 줄 기회와 지위를 가질 수 있다. 아무리 모자란 사람도 남을 모욕하고 미워할 수 있다. 서로 미워하고 모욕하는 사람들이 사는 세상이 좋은 세상일 수 없다. 그러므로 법과 제도만을 바꾸어서는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없다.


개인과 사회를 분리해서 생각하는 것 자체가 잘못이다. 개인들의 이기심과 탐욕이 사회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고 사회의 불의와 탐욕이 개인들의 심성과 생활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그러나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어디서부터 바꾸기 시작해야 할까? 변화의 주체는 사람이니까 사람을 바꾸는 일에서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다. 사회의 법과 제도를 바꾸기 위해서도 법과 제도를 옳게 바꾸는 사람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사람의 마음과 생각을 바꾸고 법과 제도와 체제를 바꾸는 일이 선순환을 이루며 되풀이 되어야 한다. 

인간과 사회를 바꿀 때 인간의 선과 악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지 않으면 끊임없는 시행착오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인간의 악의 뿌리가 선의 뿌리보다 깊다고 보면 인간의 생각과 삶을 바꾸는 일은 헛수고가 되기 쉽고 사회의 법과 제도를 바꾸는 일도 희망 없는 일이 되고 만다. 생명과 인간의 본성에는 악의 뿌리도 매우 깊이 박혀 있지만 선의 뿌리는 훨씬 더 깊이 박혀 있다. 악의 뿌리가 깊은 것을 생각하지 못하고 사회개혁만 하면 낙원이 온다고 생각하는 것은 천박한 낙관주의다. 생명과 인간의 본성에 깊이 박힌 선의 뿌리를 보지 못하면 인간과 사회에 대한 오만한 비관주의에 빠져 변화와 개혁을 거부하는 교조주의자와 독단주의자가 된다. 물질에서 생명이 나온 것은 얼마나 아름답고 선한 일이며 생명에서 인간의 정신과 영혼이 나온 것은 얼마나 놀랍고 거룩한 일인가! 사람도 바뀔 수 있고 사회도 바뀔 수 있다. -박재순  







후기











우리 2월이면 구경각길을 걷는다.  다석 유영모가 53세 되던 해1943년 설날인 2월5일, 그의 구경각체험을 공유하기위해서다. 그날 다석이 북악마루를 오른 것은 日蝕을 관찰하기 위해서였다. 다석은 "아버지가 크게 벌려 놓으신 우주" 천체에 대하여 관심이 많았다. 그러나 나중에 다석은 그 때 日蝕에 대한 기억은 없고 구경각의 황홀한 詩想만 떠올랐다고 술회했다.  

 

안국역에서 만나 북촌마을을 지나 삼청공원을 들머리로하여 북악산이라고도 하는 백악마루에 올랐다. 유난스럽던 올 겨울 추위도 이제 기력을 다했는지 요 며칠동안 푸근한 날씨가 계속되었다. 그리고 순례날 전까지 제법 많은 비가 내렸다. 다행히 일기예보는 순례날인 토요일만 비가 내리지 않는다고 한다. 다음날 일요일 오후부터 또 눈이나 비가 온다고 한다.  과연 일요일 밤 16cm의 많은 눈이 내려 서울거리는 온통 하얀 은세계가 되었다.

 

말바위통제소에서 4명의 회원이 주민등록을 지참하지 않아 길을 되돌아 섰다. 오늘은 어제보다 추웠다.  영하 2~3도  날씨, 약간 쌀쌀한 아침바람이 오히려 상쾌하다.  창의문으로 내려와 예쁘게 꾸며진 통인시장에서 순두부로 음식나눔을 하고 녹색버스 7016번을 타고 대흥동 예수회센타에  정양모신부의 로마서 특강"우리는 희망을 향해 구원 받았습니다" (오후  4시 주최:가톨릭뉴스 지금여기)를 청강하러 갔다.








<씨순길 "강화도길">

1. 모임안내

일시 : 3월2일(토) 오전 09:50 (10시 버스 승차합니다)

장소 : 2호선 신촌역 4번출구 250미터 이대입구 방향 

          "아트레온"극장(구. 신영극장) 앞


2.  진 행

강화터미널(12:30) -0.3Km- 남문 -3Km(점심 13:00~13:30)- 서문 -0.6Km-국화저수지 -3.5Km- 홍릉 -2Km- 고천리 고인돌군 -2.5Km- 오상리고인돌군 -0.5Km- 심도학사 (16:00~16:30) -0.5Km- 오상리고인돌군(17:00 귀경 버스승차)

* 점심:우리옥(전화 032-934-2427) 강화군 강화읍 신문리 184 
        강화도에서 아주 오래된 백반식당 남문과 서문 사이


3. 공부와 명상의 집 심도학사를 찾아서...

3월의 순례는 강화도 尋道學舍를 찾아 갑니다. 심도학사는 길희성 교수가 열어 이끌고 있는 공부와 명상의 집입니다. 지난 여름 씨알대회 때 강화도에서 많은 씨알 분들이 참석했습니다. 또한 씨순길을 처음 제안했던 재단의 운영위원 홍성환 님이 歸農한 곳이기도 합니다. 모두 귀하신 道伴들입니다. 우리 그 분들을 만나러 강화도에 갑니다.

강화도는 섬 전체가 우리의 선사시대부터 역사가 살아 숨 쉬는 역사박물관입니다. 곳곳에 고인돌이 서 있고 삼국시대 관미성이 있던 곳으로 백제 고구려 신라가 三韓의 패권을 다투던 곳이며 고려 때 항몽(抗蒙) 호국유적지가 즐비하며 조선 때 해양세력(西勢)을 막던 관문입니다.

그러나 강화도가 더욱 빛나는 것은 양명학 강화학파의 본산이기 때문입니다. 1709년 숙종 35년 정몽주의 후손 霞谷 정제두의 강화도 은거로 시작된 200년의 학맥은 일본 식민지시대 국학(國學)진흥에 힘썼던 위당 정인보 까지 이어지며 신채호(申采浩) 박은식(朴殷植) 김택영(金澤榮) 등 구한말과 일제시대 민족사상가에게도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강화학파는 양명학 경향을 띠나 주자학과도 절충하였으며 노장사상과 불교도 연구하여 유불선을 아울렀습니다. 강화학파는 실학 특히 북학파에 많은 영향을 주고 받았고 중국에 심취한 김정희의 추사체와 대조가 되는 원교체(圓嶠體)라는 매우 조선적인 서체(書體)를 창안하기도 했습니다(원교는 강화학파 이광사의 호). 강화학파는 조선역사와 훈민정음 연구에도 힘을 써 현대 한국학의 원류가 되었습니다.

심도의 한자어는 心到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깊은 곳에 닿는다는 뜻으로, 심오한 도리를 깨침을 이르는 말입니다. 심도학사의 尋道와 뜻이 상통하는 말입니다. 심도라는 말이 지난 2월 순례한 백악마루의 체험을 노래한 다석의 깨달음  心沈潛透地軸力(심심잠투지축력)을 되새기게 합니다.






<심도학사 / 강화성 / 강화나들길 /고인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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