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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순례 "남산길">
진 행
일시 : 4월6일 오전 9시50분 장소 : 3호선 둥대입구역 6번출구 장충공원입구 장충파출소 앞
출발(10:00) - 장충체육관(성곽길 시작점10:05) - 반얀트리호텔 골프연습장(10:30) - 국립극장(10:40) - 목멱산방(11:50) - 안중근의사기념관 백범광장(12:20) - 남대문시장(음식나눔 13:00)
음식나눔 : 은호식당 - 개업 70년 3대째 운영하는 음식점 롯데보험(주) 뒤 남대문시장 입구 남대문파출소 부근 서울 중구 남창동 50-43 전화 02) 753-3263, 777-6480
한식 다음 날인 4월의 첫토요일 6일이면 장충동 성곽길과 남산북부순환도로에 진달래 개나리 벚꽃이 화사하게 필 것입니다. 우리 그 길을 걷습니다. 3호선 동대입구역 5번출구에서 만나 옛 한양성곽을 따라 1.8Km 정도 오르면 국립극장에 도착합니다.
여기서 옛 성곽은 남산의 능선을 타고 이어지나 우리는 남산의 북부 순환도로로 발길을 돌립니다. 4Km 아름다운 4월의 꽃길을 걸어가면 안중근기념관과 백범광장이 나옵니다. 순례를 마친 후 1Km 더 걸어 씨알들의 치열한 삶터인 남대문시장에서 음식을 나눕니다.
백범광장과 안중근의기념관
이달 3월26일은 안중근의사가 여순에서 순국한 103주년 되는 기일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남산길을 걷는 4월에 우리가 기억해야 할 역사는 상해 대한민국정부 수립(1919.4.13)입니다.
3.1 씨알혁명 이후 국내외에는 많은 임시정부가 수립되었습니다. 그러나 상해, 러시아, 서울 등 세곳을 제외하고 대부분 선언적 수준에 불과할 뿐 실체는 없었습니다. 이 세곳의 임시정부는 1919년 9월15일 상해에 집결하여 통합정부를 구성하고 1945년 광복까지 독립운동을 전개했습니다. 대한민국의 정통성은 상해 임시정부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4월의 순례, 장충동 성곽길을 지나 우리가 걷는 남산길에는 안중근기념관과 백범광장이 있습니다. 그 곳은 일제시대 조선신궁있던 자리이며 초대 대통령 이승만의 동상이 서있던 자리입니다.
딸각발이의 마을 남산골은 일제시대 일본인들의 거주지가 되었었고 남산 중턱에는 조선신궁이 들어 서 조선총도부 건물과 함께 일본 식민통치의 양대 상징이였었습니다. 서울의 아름다운 남산 일대가 일제시대 왜인들의 집거지로 또 조선신궁으로 크게 오염되었었으나 광복 후 백범광장과 안중근기념관을 이 곳에 건립함으로써 비로서 정화된 것입니다.
백범은 탄신하신 해가 1876년, 안중근은 1879년이니 백범이 3년 위입니다.
백범과 안중근이 처음 만난 것은 1894년 백범이 동학 농민운동에 참여했다가 실패한 후 안중근의 아버지 안태훈의 황해도 청학동집에 의탁할 때였습니다. 동학운동 당시 백범은 동학 편에 안태훈은 동학군을 정벌하는 일에 참여하였었습니다.
백범은 안중근의 이토 히로부미 처단 후 그의 부인과 동생 등 유족을 돌보았으며 동생 안공근은 백범의 한인애국단과 한국독립당특무대 조직에 동참하였습니다.
대한의군 참모중장(大韓義軍 參謨中將) 안중근이 히로부미를 저격한 것은 1909년 10월26일, 체포되어 사형이 집행 된 것은 다음해 1910년 3월 26일 오전 10시 향년 32세 올해 순국 103년 되는 해입니다. 광복 후 백범은 1946년 효창공원에 윤봉길, 이봉창, 백정기 등 삼의사(三義士)의 유해를 안장하면서 안중근을 위해 유골 없는 가묘을 남겨 놓았습니다.
우리 씨순길은 작년 5월 안중근의 가묘를 찿아 옷깃을 여미며 헌화하였으며 올해 4월에 남산길을 걸어 안중근의사기념관과 백범광장을 순례합니다.
<성곽길> <남산순환길> <백범광장> <안중근의사기념관> <성곽복원> <남대문 복원중> <남산순환길에 벌써 꽃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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