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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irit/e—cr—life

늘 삶

by e-bluespirit 2013. 3. 30.










  < 늘 삶 >

남부럽잖게 살다가도 
싫은 죽음 당하는 이 많고 많다오.
억울하게 살다가도 
옳게 죽음이 늘 살 길이라.

내 솟난 얼이 늘 살고 
뒤댈 씨알 낳아 살 테요.

(다석일지 1960년 5월 12일)


< 풀이 >

떵떵거리고 남부럽지 않게 살다가도 남부끄럽게 죽는 이들이 많다. 목사라면서 죽기 싫다고 죽는 게 무섭다고 몸부림치다가 죽는 사람도 있다. 죽음은 공평한 것이다. 누구나 한번 났으면 죽어야 한다. 태어나는 것은 내가 선택할 수 없지만 어떻게 죽을 것인지는 내가 준비하고 선택할 수 있다. 아무리 억울하고 힘겹게 살았어도 죽음만은 옳게 죽어야 늘 삶, 영원한 삶에 들어갈 수 있다. 

옳게 죽는 것은 어떻게 죽는 것인가? 몸은 죽는 것이고 얼은 죽지 않는 것임을 알고 몸 생명을 깨끗이 죽음에로 보내고 얼 생명은 영원한 생명에 들게 하는 것이다. 몸은 생명의 껍질이고 옷이다. 얼은 생명의 알맹이고 실체다. 몸 생명과 함께 몸에 속한 모든 것을 깨끗이 죽음에, 빔과 없음의 하늘에 던져버리고 생각과 말씀, 얼과 뜻으로 가득한 얼 생명은 빈탕한데의 하늘에 영원히 살게 해야 한다. 

늘 사는 길은 죽기 전에 삶 속에서 죽음을 이기고 사는 것이다. 몸 생명의 죽음을 넘어서 내 얼이 늘 솟아나게 하고 솟아난 내 얼이 늘 살아 있게 해야 한다. 그리고 솟아난 얼은  내 속에서 그리고 남의 속에서 뒤를 이어갈 씨알을 낳으며 산다. - 박재순




소리 보기(觀音)

우리말에서는 본다는 말이 이해하고 인식하는 일의 바탕을 이룬다. 먹어 보고, 들어 보고, 만져 보고, 읽어보고, 말해보고, 생각해 본다. 보는 것은 전체를 구체적으로 인식하고 이해하는 일이다. 눈으로만 보지 않고 마음으로 보고 몸으로 본다.

성서에서 "하나님을 보았다"거나 불교에서 "진리를 보았다"(見性)는 것은 몸으로 본 것을 뜻한다. 몸으로 본다는 것은 대상과 몸이 하나로 되는 경지에 이르는 것이고 대상을 일그러뜨리거나 한쪽만 보지 않고 온전하게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소리를 보는'(觀音) 보살이 있다. 소리를 본다는 것은 소리만 듣고도 그 사람이나 집안의 형편과 처지를 다 꿰뚫어 보는 것이다. 성서에서 하나님은 소리를 보는 분이다. 에집트에서 종살이하는 이스라엘 백성의 신음소리와 아우성에서 그들의 삶을 다 보는 분이다. 십자가에서 예수가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하고 외치는 소리를 듣고 하나님은 온 인류의 고통을 본다. 상처 입고 퍼덕거리는 작은 새의 비명소리를 통해 하나님은 온 우주 생명의 사랑하는 마음을 보여 주신다. -박재순, ‘삶의 씨앗’ 55쪽에서







< 새 시대로 건너뛰려면 >  

높은 원리를 붙잡아야 합니다...

이 시대의 극복은 비약으로만, 
날아 건너뜀으로만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건너뛰려면 이 언덕 저 언덕을
다 굽어볼 수 있는 자리까지 올라가야 하듯이

낡은 시대에서 새 시대로 건너가려면 그 둘을 
다 뛰어 넘은 제3의 자리에 가서만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은 근본원리를 찾는 태도로만 됩니다. 

“비약의 새해” 함석헌 전집 8권 34~5쪽.


< 풀이 >
오늘 우리는 낡은 국가주의 물질문명에서 세계평화 영성 문명에로 나아가는 과도기적 시대를 살고 있다. 낡은 시대서 새 시대로 나가는 일은 자연스럽게 저절로 되지 않는다. 낡은 시대의 낡은 세력은 결코 새 시대의 새 세력에게 쉽게 길을 내 주지 않는다. 돈과 권력과 향락으로 세상을 지배하는 낡은 문명은 생명과 정신, 사귐과 섬김으로 서로 살리는 새 문명을 허락하지 않는다. 낡은 시대와 새 시대의 충돌과 갈등 속에서 새 시대로 가는 길이 조금씩 열린다. 낡은 시대와 세력이 너무 강력해서 혼란과 무질서의 어둠이 더욱 짙어지기도 한다. 

함석헌은 낡은 시대와 새 시대를 대립적으로만 보아서는 새 시대로 넘어갈 수 없다고 본다. 낡은 시대를 부정하고 비판하는 것만으로는 새 시대로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낡은 시대와 새 시대를 절충하고 타협해서 새 시대로 들어갈 수도 없다.‘날아 건너뜀’으로만 낡은 시대를 넘어서 새 시대로 넘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날아 건너뛴다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인가? 낡은 시대와 새 시대를 아우르는 높은 원리, 생명과 역사를 관통하고 초월하는 높은 원리를 붙잡아야 한다. 낡은 시대와 새 시대를 함께 볼 수 있는 제3의 자리에 이르러야 낡은 시대를 아우르고 낡은 시대를 뛰어넘어 새 시대로 들어갈 수 있다. 

역사는 결코 단절되지 않는다. 생명을 가진 인간들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역사가 새롭게 앞으로 나가려면 끊어짐과 이어짐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역사는 결코 끊으려고만 해서는 앞으로 나갈 수 없다. 이으면서 끊고 끊으면서 이어야 한다. 끊을 것은 끊고 이을 것은 잇기 위해서는 생명과 역사의 근본원리와 근본 자리에 이르러야 한다. 생명과 역사의 근본원리는 두 가지다. 주체와 전체의 원리다. 주체 속에서 전체를 보고 전체 속에서 주체를 보는 씨알의 원리다. 씨알 한 알 속에 전체 생명이 깃들어 있고 전체 생명 속에 씨알이 맺혀 있다. 주체와 전체를 하나로 보는 것이 생명과 역사의 근본원리다. 

역사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주체들이 이루어가는 것이기 때문에 역사가 바른 길로 가려면 주체가 온전한 주체, 자유로운 참된‘나’가 되어야 한다. 참된 나는 사심이나 편견에서 벗어난 나, 욕심과 두려움에서 벗어난 나다. 이러한 참 나는 개인의 이기심과 집단적인 당파심에서 벗어나 역사 전체의 자리에 선다. 참된 나가 되어 역사 전체의 자리에 설 때 참된 씨알이 되어 선과 악의 대립을 넘어서 낡은 역사와 새 역사를 아우르며 새 시대로 날아 건너뛸 수 있다. 전체의 자리에 선 참된 나는 역사의 가장 깊고 높은 자리에서 역사 전체를 아우르며 새 역사를 창조할 수 있다. -박재순








2013년 씨알다짐과 선언


씨알 다짐

다석 유영모 선생님, 선생님은 평생 자신을 불살라 제사 지내는 심정으로 사셨습니다. 숨을 불태우고 밥을 불태우고 피를 불태우고 생각을 불태우고 뜻을 불태우셨습니다. 몸과 맘과 얼을 불태워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등불이 되셨습니다. 사나운 욕심과 거친 감정과 그른 생각을 남김없이 다 태우셔서 사랑과 진리, 정의와 평화의 길을 뚜렷이 밝히셨습니다. 못나고 못된 ‘나’를 불태워 제사 지내고 ‘큰 나’가 되어, 우리가 함께 서로 살리며 가야 할 길을 환히 비추는 하늘의 북극성이 되셨습니다. 

오늘 우리 주위를 돌아보면 선생님 가신 길로 가는 사람들이 너무 적습니다. 모두 제 욕심과 제 감정과 제 생각에 파묻혀 사는 것 같습니다. 학교에서는 돈벌이와 출세의 길을 가르칠 뿐 사람 되는 길은 가르치지 않습니다. 돈과 출세와 성공이 너무 중요해서 참과 사랑은 보이지 않고 정의와 평화는 사라졌습니다. 젊은이는 꿈을 잃고 늙은이는 보람을 잃었습니다. 폭력을 휘두르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어린 학생들이 저렇게 많은데 학교와 교사들은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노인들은 굶주림과 질병 속에서 외롭게 죽어가는 데 종교도 사회도 변할 줄을 모릅니다. 

세상이 온통 캄캄한 어둠에 빠졌습니다. 도시의 불빛은 저렇게 밝고 지식과 정보는 이렇게 넘쳐나는데, 세상은 갈수록 어두워지고 있습니다. 이제 남을 탓하고 있을 때는 지난 것 같습니다. 이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길은 부족하고 못난 우리가 우리 자신을 불살라 제사 지내는 길밖에 없습니다. 우리도 선생님처럼 우리 자신을 불사르며 하늘을 우러러 살겠습니다. 우리 욕심을 불사르고 거친 감정을 불태우고 생각과 뜻을 사름으로써 작은 등불을 켜겠습니다. 그리하여 다른 사람들도 저마다 속에서 작은 등불을 켜도록 깨우고 부르겠습니다.  


씨알선언

씨알 함석헌 선생님, 선생님은 평생 사심을 버리고 전체의 자리에서 뜨거운 불꽃으로 사셨습니다. 자신을 비우고 버렸기 때문에 두려움 없이 자유롭게 사셨습니다. 서슬이 퍼런 군사독재 권력 앞에서도 마치 권력과 총칼이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무섭게 꾸짖으셨습니다. 돈과 권세가 이 세상에 없는 것처럼 불의한 부자와 세도가들을 마음껏 야단 치셨습니다. 일제의 식민통치, 남북분단과 전쟁, 군사독재의 혹독한 고난과 시련을 온 몸으로 겪으면서도 바람처럼 자유롭게 참을 말하고 의롭게 행동하셨습니다. 

선생님은 민족의 참된 얼과 혼을 드러내고 민족과 인류 전체가 하나로 되는 길을 밝히셨습니다. 민족분단의 상처와 아픔을 보듬으며 이 나라를 화해와 평화와 통일의 길로 이끌려고 혼신을 다하셨습니다. 선생님께서 그렇게 정성스럽고 절절하게 몸과 맘을 녹여서 민족평화의 길을 가르치셨는데 남과 북은 불신과 갈등, 대립과 적대의 늪에 빠져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심 없이 참 나로 전체의 자리에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전체의 자리에서 참 나로 사는 선생님 같은 사람이 있다면 남북의 평화와 통일의 길이 열릴 것입니다. 

선생님은 전체의 자리에서 참 나로 사셨습니다. 선생님의 삶과 글을 보면 참 나가 되고 전체의 자리에 이르는 길이 환히 보입니다. 오늘 우리 사회에서 가장 절실히 필요하고 아쉬운 것은 ‘참 나’이고 전체의 자리입니다. 참 나가 빠진 행동과 말은 감동이 없고 전체의 자리를 잃은 생각과 주장은 갈등과 다툼을 일으킵니다. 전체의 자리에서 참 나로 사셨기 때문에 선생님은 누구보다 높은 자리에서 바람처럼 거침없이 자유롭게 말씀하셨고, 누구보다 낮은 자리에서 물처럼 겸허하고 부드럽게 작은 씨알로 사셨습니다.  

우리도 선생님처럼 사심 없이 참 나로 살기를 바랍니다. 전체의 자리에서 전체의 마음으로 살기를 원합니다. 참 나가 되기 위해서 나의 사나운 욕심과 거친 감정과 그릇된 생각을 참회하고, 전체의 자리에서 불의한 세력과 풍조를 준엄하게 꾸짖고 다른 씨알들에 대해서는 물처럼 겸허하고 낮아지겠습니다. 참 나로서 전체의 자리에 서면 우리가 서로 남이 아니고, 나와 무관한 일은 없습니다. 참과 사랑, 정의와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 우리가 서로 하나로 되는 길을 찾고 그 길로 가겠습니다. 나를 버리고 비워서 서로 살리고 더불어 사는 길로 가겠습니다. 남북의 불신과 대립을 넘어 평화와 통일의 길을 열겠습니다. -박재순




< 낡은 시대를 박차야 한다 >

박차야 합니다...

낡아가는 시대에 애착을 가지고 
역사적 민족이 되는 법 없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단번에 되지 않습니다. 
모든 혁명은 결침[波狀運動]으로야 됩니다. 

한번 나갔다가 한번 몰려오는 것 같지만 
그럴 때마다 가속도가 붙습니다. 

이것이 생명의 법칙입니다. 

다만 처음에 붙잡은 그 원리를 
죽어도 놓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실패를 거듭할수록 힘이 늘어갑니다.  

“비약의 새해” 함석헌 전집 8권 35쪽.


< 풀이 >
새 아기가 나오려면 어머니의 배를 박차고 나와야 하듯이 새 역사를 지으려면 낡은 시대를 박차야 한다. 어머니 뱃속에 머물러 있으면 새 아기가 태어날 수 없듯이 낡은 시대에 애착을 가지면 역사를 새롭게 지어가는 민족이 될 수 없다. 새 역사 새 문명을 낳는 일은 단번에 되지 않는다. 낡은 시대를 박차고 새 역사를 짓는 모든 혁명운동은 물결치듯이 되풀이 되는 운동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참된 혁명은 끊임없는 실패와 좌절을 통해서 진전된다. 거듭된 실패와 좌절에도 포기하지 않고 새롭게 새 역사를 향해 뛰어나갈 때 갈수록 더 큰 혁명의 물결운동이 일어난다. 

새 시대의 혁명운동은 한 개인이나 한 집단이 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곳에서 여러 사람 여러 집단이 스스로 열어가는 운동이다. 세계 곳곳에 있는 샘물들과 냇물들이 함께 만나 강물이 되고 강물들이 함께 만나 큰 바다를 이루듯이 새 역사 새 문명을 향해 꿈틀거리는 운동들이 함께 모여 새 역사 새 문명을 이루어간다. 산골짜기 작은 샘물은 작고 힘없이 흐르지만 큰 냇물과 큰 강물은 크고 힘차게 빨리 흐르듯이, 새 시대를 여는 혁명운동도 처음에는 작고 약하게 물결치지만 갈수록 크고 힘찬 운동이 된다. 흐르기를 멈춘 고인물이 썩듯이 낡은 시대를 박찰 줄 모르고 흐름을 멈춘 혁명운동은 썩고 만다. 돈과 권력의 단맛에 빠져 낡은 역사 속에 잠들고, 권위와 명예에 매여 역사의 흐름을 멈추면 반드시 부패하고 반드시 망한다. 돈과 권력, 권위와 명예의 유혹을 박차고 나가는 사람만이 새 역사의 흐름에 참여할 수 있다. -박재순




유영모의 삶과 사상

유영모는 70여 년 동안 날마다 냉수마찰을 했고 40 여 년 동안 하루 한 끼 먹으며 예수와 일치된 삶을 살고 하나님[전체 생명의 님]께 자신을 산 제물로 드리려 힘썼다. 새벽 3시에 일어나 널빤지에 무릎 꿇고 앉아 단전호흡을 하며 명상했다. 그는 결혼의 굴레를 깨트리고(解婚) 식욕과 색욕에서 벗어나 이웃을 사랑하고 이웃을 섬기려 했다. 그는 거짓된 껍데기 삶을 강요하는 식욕과 색욕에서 자유로워야 이웃을 사랑하고 섬기는 참된 삶을 살 수 있다고 보았다.

일본 동경에서 예과를 마친 유영모는 대학진학을 포기했다. 대학공부의 목적이 출세하여 힘든 일을 남에게 시키고 부귀영화를 누리며 편히 살자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대학 공부해서 출세의 길을 가지 않고 겸허하게 땀 흘려 일하면서 사랑으로 가난한 이웃을 섬기는 삶을 살려고 했다. 그것이 참된 씨알의 삶이고 더불어 길이 사는 삶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유영모는 남위에 서서 남을 부리며 놀고먹는 양반이 나라를 망쳤다고 보았다. 그는 대학을 버리고 농사짓고 살기로 하고 시골에 들어가 씨알로서 씨알의 삶을 살았다.

유영모는 몸과 맘을 곧게 했다. 32세 때 오산학교 교장으로 부임해서 맨 먼저 교장실 의자 등받이를 자르고 무릎 꿇고 곧게 앉아 공부하고 일했다. 중국의 정치문화에 대한 사대주의와 권력에 대한 굴종에서 벗어나 주체로서 곧게 서려 했다. 평생 널빤지에 무릎 꿇고 앉아서 하늘을 생각하며 하늘을 향해 곧게 솟아오르려 했다.

그는 예수를 믿을 뿐 아니라 예수의 삶을 살려고 했다. 예수만 십자가 짐을 지게 하지 않고 믿는 이도 함께 십자가 짐을 지고 예수의 일을 해야 한다고 보았다. 예수가 살과 피를 밥으로 주었으므로, 그도 밥을 먹고 세상을 살리는 밥이 되려고 하였다. 그는 40년 동안 하루 한 끼만 먹고 살았다. 아침은 하나님께 드리고 점심은 이웃에게 드리고 저녁만 제 몸을 위해 먹었다. 그는 밥 먹는 것이 예배(제사)드리는 것이라고 하였다. 밥 먹고 사는 것은 다른 생명체의 목숨을 불태워서 힘을 얻어 사는 것이다. 생명체의 목숨을 불태우는 것이 참된 예배다. 밥 한 그릇에 온 우주 생명의 정기와 활동이 압축되어 있고 농부와 상인과 밥 짓는 이의 수고와 땀이 들어 있다. 유영모는 밥값은 “밥의 가치의 몇 억 분의 일도 안 된다. (밥은) 순수하며 거저 받는 하나님의 선물이다”고 했다.  

그는 역사와 사회의 무거운 짐을 지고 고생하는 노동자 농민이 오늘의 희생양 예수라고 했다. 빨래하고 청소하는 여성들이 귀인(貴人), 한사(閑士)들의 속구주(贖垢主: 더러움을 씻어주는 구세주)라고 했다. 이것은 교회와 사회를 근본적으로 뒤집는 민주적이고 혁명적인 사상이다. 이 생각이 함석헌의 씨알사상, 70년대의 민중신학으로 발전되었다. -박재순








<4월의 순례 "남산길">

 

진 행

 

일시 : 4월6일 오전 9시50분

장소 : 3호선 둥대입구역  6번출구 장충공원입구 장충파출소 앞

 

출발(10:00) - 장충체육관(성곽길 시작점10:05) - 반얀트리호텔 골프연습장(10:30)

- 국립극장(10:40) - 목멱산방(11:50) -  안중근의사기념관 백범광장(12:20)

- 남대문시장(음식나눔 13:00)

 

음식나눔 : 은호식당 -  개업 70년 3대째 운영하는 음식점 

                롯데보험(주) 뒤 남대문시장 입구 남대문파출소 부근

                서울 중구 남창동 50-43   전화 02) 753-3263, 777-6480

                 

한식 다음 날인 4월의 첫토요일 6일이면  장충동 성곽길과 남산북부순환도로에 진달래 개나리 벚꽃이 화사하게 필 것입니다. 우리 그 길을 걷습니다. 3호선 동대입구역 5번출구에서 만나 옛 한양성곽을 따라 1.8Km 정도 오르면 국립극장에 도착합니다.

 

여기서 옛 성곽은 남산의 능선을 타고 이어지나 우리는 남산의 북부 순환도로로 발길을 돌립니다.  4Km 아름다운 4월의 꽃길을 걸어가면 안중근기념관과 백범광장이 나옵니다.

순례를 마친 후 1Km 더 걸어 씨알들의 치열한 삶터인 남대문시장에서 음식을 나눕니다.

 

백범광장과 안중근의기념관

 

이달 3월26일은 안중근의사가 여순에서 순국한 103주년 되는 기일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남산길을 걷는 4월에 우리가 기억해야 할 역사는 상해 대한민국정부 수립(1919.4.13)입니다.

 

3.1 씨알혁명 이후 국내외에는 많은 임시정부가 수립되었습니다. 그러나 상해, 러시아, 서울 등 세곳을 제외하고 대부분 선언적 수준에 불과할 뿐 실체는 없었습니다. 이 세곳의 임시정부는 1919년 9월15일 상해에 집결하여 통합정부를 구성하고 1945년 광복까지 독립운동을 전개했습니다.  대한민국의 정통성은  상해 임시정부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4월의 순례, 장충동 성곽길을 지나 우리가 걷는 남산길에는 안중근기념관과 백범광장이 있습니다. 그 곳은 일제시대 조선신궁있던 자리이며 초대 대통령 이승만의 동상이 서있던 자리입니다.

 

딸각발이의 마을 남산골은 일제시대 일본인들의 거주지가 되었었고 남산 중턱에는  조선신궁이 들어 서  조선총도부 건물과 함께 일본 식민통치의 양대 상징이였었습니다. 서울의 아름다운 남산 일대가  일제시대 왜인들의 집거지로 또 조선신궁으로 크게 오염되었었으나 광복 후 백범광장과 안중근기념관을 이 곳에 건립함으로써 비로서 정화된 것입니다.

 

백범은 탄신하신 해가 1876년, 안중근은 1879년이니 백범이 3년 위입니다.

 

백범과 안중근이 처음 만난 것은 1894년 백범이 동학 농민운동에 참여했다가 실패한 후 안중근의 아버지 안태훈의 황해도 청학동집에 의탁할 때였습니다. 동학운동 당시 백범은 동학 편에 안태훈은 동학군을 정벌하는 일에 참여하였었습니다.

 

백범은 안중근의 이토 히로부미 처단 후 그의 부인과 동생 등 유족을 돌보았으며 동생 안공근은 백범의 한인애국단과 한국독립당특무대 조직에 동참하였습니다.

 

대한의군 참모중장(大韓義軍 參謨中將) 안중근이 히로부미를 저격한 것은 1909년 10월26일, 체포되어 사형이 집행 된 것은 다음해 1910년 3월 26일 오전 10시 향년 32세 올해 순국 103년 되는 해입니다. 광복 후 백범은 1946년 효창공원에 윤봉길, 이봉창, 백정기 등 삼의사(三義士)의 유해를 안장하면서 안중근을 위해 유골 없는 가묘을 남겨 놓았습니다.

 

우리 씨순길은 작년 5월 안중근의 가묘를 찿아 옷깃을 여미며 헌화하였으며 올해 4월에 남산길을 걸어 안중근의사기념관과 백범광장을 순례합니다.

 

 

<성곽길>




<남산순환길>





<백범광장>



<안중근의사기념관>




<성곽복원>



<남대문 복원중>



<남산순환길에 벌써 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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