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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irit/e—cr—life

빟[空]님을 보오

by e-bluespirit 2013. 3. 16.













< 빟[空]님을 보오 >


저녁마다 지는 해의 끼친 말은 별을 보라

밤만 되면 별과 별의 눈짓하듯 보인 뜻은

알맞이 돌아가올 손 빟여 빟여 빟님을 보오.


(다석일지 1961년 4월 14일.)


< 풀이 >


현대인은 도시의 밝은 불빛에 마음을 뺏겨 별을 보지 못하고 산지 오래다. 도시의 불빛은 사나운 욕심과 허영으로, 온갖 물건과 일로 우리의 마음과 삶을 꽉 채운다. 삶은 여유가 없고 마음은 빈틈이 없다. 다석은 저녁을 사랑하고 저녁에 뜨는 별 보기를 좋아했다. 별들에게서 영원한 생명의 소식을 들었다. 날마다 저녁이면 지는 해가 남기는 말은 제발 별을 좀 보라는 것이다. 밤만 되면 별과 별이 서로 눈짓하듯 보이는 뜻이 있다. 가운데로 돌아가 알맞게 살라는 것이다. 

가운데로 돌아가 알맞게 살려면 몸과 맘의 빔에 이르러야 한다. 몸과 맘이 비지 않으면 가운데를 찾을 수 없고 가운데를 모르면 알맞게 살 수 없다. 한없이 깊은 허공 속에서 깜박이는 별들은 우리에게 크고 깊은 허공을 보여준다. 우리 손에서 욕심을 비우고 일을 비우고 생각을 비워서 빔의 주인이신 빔의 님을 봐야 한다. 별들이 보여주는 빔의 세계를 봐야 가운데를 지키며 알맞은 삶을 살 수 있다. -박재순







< 악의로 포장된 길 >

지옥으로 가는 길이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면 
하나님에게로 나아가는 길은 악의로 포장이 되어 있다.

눈에 눈물이 어리면 그 렌즈를 통해 하늘나라가 보인다.

사람은 고난을 당해서만 까닭의 실꾸리를 감게 되고, 
그 실꾸리를 감아 가면 영원의 문간에 이르고 만다. 

뜻으로 본 한국역사 464쪽.


< 풀이 >


정신이 물질의 종살이를 하고 영이 육체의 노예가 되면 정신이 정신구실을 못하고 물질은 본성을 실현하지 못하며, 영은 영이 못 되고 육체는 저대로 살지 못한다. 그렇게 되면 인류사회는 반드시 타락하고 멸망한다. 그것은 정신이 물질의 단맛에 끌려 물질로 떨어지고 영이 육체의 유혹에 끌려 육체로 떨어지는 것이다. 떨어지기는 쉽고 올라가기는 어렵다. 인생은 물질에서 정신으로 육체에서 영으로 올라가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등산하는 것과 같다. 높은 절벽을 올라가는 것은 어렵고 절벽 아래로 뛰어내리는 것은 쉽다. 높은 산봉우리를 오르는 것이 어렵지만 오르고 나면 시원한 바람을 마시며 기쁨을 누릴 수 있다. 높은 산봉우리서 뛰어내리는 일은 쉽지만 떨어지면 몸이 깨지고 목숨을 잃는다.지옥으로 가는 길은 정신에서 물질로 영에서 육체로 떨어지는 길이다.

그 길은 많은 유혹과 꾐으로 포장되어 있다. 물질과 육체로 보면 좋게, 좋게 가는 길이다. 하나님께 가는 길은 물질에서 정신으로, 육체에서 영으로 가는 길이며 정신과 영을 넘어 절대초월과 전체 하나로 가는 길이다. 그것은 끊임없이 위로 올라가는 길이다. 물질과 육체의 자리에서 보면 그 길은 고통스럽고 손해 보는 길이다. 욕심을 버리고 자기를 죽이고 가는 길이다. 따라서 고난과 눈물 없이는 갈수 없는 길이다. 위로 오르다가 눈에 눈물이 어리면 그 눈물 렌즈를 통해 하늘나라가 보인다. 맨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상생과 공존의 무지개 세상이 눈물 속에서 드러난다. 

물질의 단물을 빨아먹으며 돈과 권력, 명예와 향락에 취해 살면 지옥으로 가는 길이 활짝 열린다. 지옥은 함께 멸망하는 곳이며 인간과 우주가 허무와 무의미에 빠지는 것이다. 천국은 영원히 함께 사는 곳이며 인간의 정신과 우주의 생명이 완성과 충만 속에 한없이 고양되는 것이다. 천국은 물질과 육체를 넘어 정신 속에서 열리는 영의 세계다. 물질에서정신으로 육체에서 영으로 천국을 향해 올라가는 사람은 삶의 바탕인 물질을 박차고 제 몸을 밟고 가기 때문에 고난을 피할 수 없다. 그러나 사람은 고난을 당해서만 삶과 역사의 까닭을 묻게 된다. 삶과 역사의 까닭을 캐물어 가다 보면 물질과 육체의 덧없는 삶을 넘어 영원의 문간에 이르게 된다. -박재순








잘못했다고 말하는 용기


더불어 사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어려서부터 “미안하다, 잘못했다”고 말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오늘날 고위 공직자 국회의원들이 땅 투기를 하고 부정부패를 하고도 부끄러워하기는커녕 아무 잘못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공심과 양심을 잃고 뻔뻔해졌기 때문이다. 어려서부터 잘못을 뉘우치는 사람으로 길러야 한다. 우리의 젊은이들이 “내가 잘못했다”는 말을 하는 인간적이고 통 큰 인물이 되게 하자. 

3.1운동의 실질적 지도자인 남강 이 승훈 선생과 다석 유 영모 선생은 26세 차이가 난다. 이 승훈 선생이 늙어서 다시 담배를 피고 새 장가를 갔다. 유 선생이 이 선생을 만나자 조용한 자리에서 “선생님께서 전에는 안 하시던 일을 하시니 나이가 드셔서 힘이 떨어져서 그러시는 것 아닙니까?”하고 따졌다. 지금도 젊은 사람이 어른에게 충고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이 말을 듣고 방바닥을 보며 한참 생각에 잠겼던 남강은 정색을 하고는 “그래 자네 말이 옳아” 했다는 것이다. 유교적 권위주의에 찌든 사회에서 어린 제자의 질책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남강의 넓은 마음은 오늘에도 감동을 준다.

나는 이 땅에 살면서 정치지도자들이나 종교지도자들이 진심으로 잘못을 뉘우치면서 용서를 비는 말을 들어 보지 못했다. 소위 지도자들이 아니라고 해도 나이 많은 남자 어른들, 지위와 체면을 지키려는 사람들은 “내가 잘못했다. 미안하다. 용서해라”고 말할 줄 모른다. 기독교는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고백하는 회개의 종교다. 공적으로 잘못 했다고 회개하는 기독교인들이 없다면 이 땅에 기독교 교회는 있으나 기독교 정신과 문화는 없는 것이다. 기독교인은 있으나 기독교적 삶은 없다. 

보수적인 기독교 지도자들 가운데 파렴치한 죄를 저지르고도 죄를 참회하고 부끄럽게 여기기는커녕 뻔뻔하게 큰 소리 치며 행세하는 이들이 많다. 많은 사람이 기독교신앙을 가졌다고 하면서도 신앙의 실천력은 없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하나님 앞에 죄인이라고 말하면서 자기의 잘못을 남 앞에서 인정할 줄 모른다.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 씨알이 되는 첫 걸음이고 하나님을 만나는 관문이다. -박재순









사람의 길, 뱀의 길

숲의 포식자이며 파괴자였던 파충류인 공룡의 끄트머리 자손이 뱀이다. 뱀은 먹고 살자는 생존본능과 목적에 충실하게 진화한 동물이다. 뱀은 먹고 살아남기 위해서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되는 몸의 모든 요소들을 없애버렸다. 팔과 다리, 눈과 귀와 코도 없애고 입만 크게 만들고 날카로운 이빨과 독을 품게 되었다. 먹이를 잡아먹고 몸을 잘 숨길 수 있도록 진화한 것이다. 뱀은 먹이를 찾고 몸을 숨기기 위해서 땅바닥을 구불구불 기어 다닌다. 

사람은 뱀과는 정반대의 길로 진화했다. 사람은 하늘을 향해 곧게 서서 사는 존재가 되었다. 하늘을 향해 곧게 서면 적에게서 쉽게 공격을 받을 수 있다. 생존의 위험을 무릅쓰고 하늘을 향해 곧게 일어섬으로써 사람은 팔과 다리를 섬세하게 발달시키고 눈과 귀와 코를 발달시켰다. 손톱과 발톱은 약하고 부드러워지고 이빨은 작고 뭉툭해졌다. 눈은 맑고 투명해지고 생각하고 말함으로써 속 마음을 표현하고 소통하고 사귀는 존재가 되었고 협력하고 협동하는 존재가 되었다. 사람은 상생과 평화, 사귐과 협동을 위해 준비된 동물이다.  

성경에서 아담과 하와가 뱀의 꼬임을 받아 선악과를 따먹고 타락했다는 이야기는 사람이 사람의 길로 가지 않고 뱀을 따라서 뱀의 길로 가게 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사람은 생존의 위험을 무릅쓰고 하늘에 머리를 두고 서로 소통하고 사귀는 삶을 살도록 진화된 존재다. 사람의 몸은 예술적 감성을 표현하도록 섬세하게 진화된 존재다. 생각하고 말하는 이성과 고귀한 영성을 지닌 사람은 서로 주체로서 사귀며 서로 살리고 협동하는 삶을 살도록 진화된 존재다. 뱀처럼 먹고 생존할 목적을 위해서만 진화된 존재가 아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고 서로 주체로서 상생과 평화의 사회를 이루려면 사람은 하늘을 향해 곧게 일어서야 한다. 사람의 몸이 하늘을 향해 곧게 서는 존재로 진화한 것은 몸과 마음을 곧게 해서 주체로 살도록 진화한 것이다. 사람이 머리를 숙이고 몸을 구부리는 것은 땅의 물질과 그 유혹에 굴복하는 것이다. 이성과 영성을 가진 인간이 물질과 물질의 힘에 굴복하는 것은 우상숭배다. 사람은 하늘에 머리를 두고 곧게 서서 살아야 한다. 

유영모는 사람을 ‘하늘을 향해 솟아올라 앞으로 나가는 존재’로 보았다. 사람은 땅을 딛고 솟아올라 앞으로 나아가는 존재다. 솟아올라 앞으로 나아감으로써 사람다운 사람이 되고 자유로운 주체가 되어 서로 사귀며 평화로운 사회를 이룰 수 있다. 함석헌도 사람이 하늘과 땅 사이에 곧게 서는 존재임을 강조했으며 “눕는 것보다는 앉는 것이 낫고 앉는 것보다는 일어서는 것이 낫다.”고 했다. 사람은 하늘을 향해 곧게 일어서야 감성과 이성과 영성을 실현하고 서로 주체로서 서로 돕고 살리는 공동체를 이룰 수 있다. -박재순









강화도길(3.2) 보고

 

 


 

<씨순길 "강화도길" 보고>

 

 3월2일 약간 쌀쌀하나 쾌청한 날씨. 예정된 시간계획에 따라 진행. 예상하지 못한 뜨거운 호응. 많은 회원이 참석하여 강화터미널 가는 텅 비었던 광역버스가 우리 도반들로 거의 만차 

 

매월 첫째 토요일 씨순길을 나설 때마다 가슴이 설렙니다. 소중한 분을 만나러 가기 때문입니다. 나의 가장 소중한 분은 바로 내 안에 계시는 하느님,  참나입니다. 나는  오늘 그 분을, 나 자신을 만나러 순례길을 나섰습니다.

 

강화터미널에서 심도학사까지 걸어서 10Km의 순례길, 또 그 곳에서 고려저수지 버스정거장 까지 2.5Km, 강화나들길 제5코스 20.2Km의  절반 넘게 걸은 셈입니다.

 

"얼줄, 강화의 역사"

 

강화도는 우리의 역사가 첩첩히 지층을 이루어 쌓여 있는 곳입니다.  가깝게 구한말 병인양요(1866 프랑스), 신미양요(1871 미국), 운양호사건(1875 일본)과 다음해 강화도조약이 있었습니다.

 

조선 때, 연산군과 광해군이 유배되기도 했던 강화도는 효종과 숙종 때 강화도를 요새화하여 해안선 전역에 지금의 돈대를 설치하였으며 프랑스군에게 약탈되었던 외규장각이 설치된 것은 정조 때입니다.

 

한국 양명학의 태두라 할 수 있는 하곡 정제두의 강화도 은거는 1709년 숙종 35년 때입니다. 그의 강화학파 학풍은  200년간 이어지며 구한말과 일제시대 민족사상가에게도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강화도라는 지명은 고려시대 부터입니다. 강화도는 심주(沁洲), 심도라고도 불렸으며  삼국시대에는 혈구라 하였습니다. 항몽(抗蒙) 기간 동안 팔만대장경이 여기서 만들어 졌으며 고려의 왕궁터와 성곽이 남아 있습니다. 삼국시대 관미성이 있던 곳으로 삼한의 패권에 따라 관할권이 백제 고구려 신라로 바뀌었습니다.

 

강화도에는 많은 고인돌이 북방식과 남방식으로 혼재하여 서 있습니다. 우리가 탐방한 오상리고인돌군은 북방식입니다. 고인돌 뿐 아니라 강화도에서는 빗살무늬토기 등 많은 신석기시대 유물이 발굴되고 있습니다.

 

마니산에는 상고시대 단군이 쌓은 제천(祭天) 하던 참성단(塹星壇)이 있습니다. 고려 원종 11년(1270) 조선 인조 17년(1639) 숙종 26년(1700)에 고쳐 쌓았다고 합니다. 마니산과 관련있는 재미나는 설화로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잘 알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옛날 나무꾼 셋이 나무하러 마니산에 올랐습니다. 중턱 숲속에서 범상치 않은 노인들이 바둑을 두고 있는데 재미있어 넋을 놓고 구경을 하였습니다. 노인들이 주는 술 까지 얻어 마시며 구경을 하다가 날이 저물어 집으로 돌아가려고 옆에 놓아 둔 도끼를 찾으니 도끼자루가 썩어 흔적조차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이상히 여기며 마을로 내려오니300년의 세월이 훌쩍 지났다는 이야기입니다.

 

강화성과 국화저수지를 지나 고려산 산길로 접어 들자 제법 등산하는 기분이 듭니다. 얼만큼 산속을 지나다 보니 크지도 않은 당나무에 붉은 치마가 걸려 있습니다. 이런 당나무 풍습은 우리만의 풍속이 아닙니다. 몽고나 히말라야 고산지대를 여행하다 보면 비슷한 풍경을 자주 만납니다.  일찍이 육당 최남선이 '불함문화론’을 통해 우리 민족의 시원지로 비이칼호수를 지칭하였는데 이런 풍속을 추적하다보면 그곳에 까지 이르게 됩니다.

 

"순례란 絶學損書 하는 것이다" 

 

귀로에 어느 도반과 나눈 이야기입니다.  장자 외편에 공자가 어슬렁거리며 돌아가 학문을 끊고 책을 버리니 제자들이 그 앞에서 더 이상 절을 하지 않았으나 그들간의 사랑은 더욱 두텁게 되었다고 합니다.

 

徐行翔佯 而歸 絶學損書 弟子 無揖於前 其愛益加進

 

 


 

 

<심도학사에서> 

<신촌역 출발>

<강화성 남문>

 

<국화저수지 제방길>

 

<국화저수지 나들길>

 

<고려산>

 

<심도학사 도서관>

 

<오상리 고인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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