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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irit/e—cr—life

일없어야 일 한다

by e-bluespirit 2013. 11. 4.












일없어야 일 한다


늘 일에 빠져 사는 이, 새 일을 할 수 없다.
주어진 틀에 갇혀 주어진 일로 바쁘게
맴돌다 보면 새날은 오지 않는다. 

일없이 한가하면 일이 되고 일이 난다.
일없는 사람이 남을 품을 수 있고
남을 도울 수 있다. 일없는 이만이 일을 
완성하고 새 일에 몰두하고 신바람이 날 것이다. -박재순









< 나 자신을 불살라 제사 드린다 >   

세상 사람들의 마음을 보니 
진리를 따르는 이는 없고 
다 가짜 문명이라는 빛에 홀려 
정신이 나간 것 같다.

모든 인류가 한아님의 은혜로 
다 마음속의 진리의 한 점(참 나)을 깨치고 
나오기를 빌 뿐이다. 

그래서 참으로 진실한 한 점 마음으로 
한아님께 제사 드리고 싶다. 

그것을 위해서 하루 한 끼를 먹으면서 
언제나 한아님께 나 자신을 불사른다. 

(씨알의 메아리 다석 어록. 132쪽)  





< 풀이 >
물질과 기계의 힘으로 번쩍거리는 가짜 문명의 빛에 홀려 정신을 잃고 많은 사람이 물질과 기계의 종노릇을 하면서 산다. 사람은 세상의 주인으로 물질과 기계를 부리러 온 존재지 물질과 기계의 종노릇 하러 세상에 온 것이 아니다. 그런데 물질의 빛에 홀려 물질의 종노릇을 하고 돈의 힘에 눌려 돈의 노예가 되고 약물과 기계에 중독되어 사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정신질환에 걸린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너무 쉽게 자살하고 너무 쉽게 살인을 저지른다. 왜 이렇게 되었나? 물질에 대한 욕망과 집착에 빠져 참 나를 잃고 물질의 종이 되었기 때문이다. 

물질의 종살이에서 벗어나는 길은 물질에 매이지 않는 참 나를 찾는 것이다. 참 나는 무엇인가? 물질에 대한 모든 욕망과 허영과 집착을 끊어버리고 없음과 빔의 세계에서 한 점이 되는 것이다. 마음속 진리의 한 점이 물질의 욕망과 집착에서 벗어난 참 나다.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마음속 진리의 한 점을 깨닫고 참 나가 되어 물질의 종노릇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자기해방은 남이 해 줄 수 없고 스스로 하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스스로 깨닫도록 하기 위해서 다석은 자신이 먼저 마음속 진리의 한 점이 되어 자신을 불사르며 하나님께 제사 드린다. 하루 한 끼 먹으며 자신의 몸과 맘을 한 점으로 만들어 그 한 점을 불태움으로써 칠흑같이 어두운 세상을 밝힌다. -박재순





  

이승만의 거짓말


국사편찬위원장으로 내정된 유영익이 “왕족 출신이라 품격이 높은 지도자가 되었다”면서 이승만을 추켜세우고, 한국민족은 “짐승처럼 저열”하고 “도덕적 수준이 낮다”고 깎아내렸다. 민주시대에 이런 말을 하는 인간이 국사편찬위원장으로 내정될 수 있다는 사실이 이해되지도 않고 받아들이기도 어렵다. 국사를 바로 잡아야 할 국사편찬위원장이 국사를 왜곡할까 두렵다.

이승만이 어떤 인간인지를 몇 해 전에 돌아가신 조향록 목사로부터 들었다. 조목사는 기독교 장로교단의 원로 목사이고 한신대 학장을 지냈다. 말년에 그는 쿠데타를 일으킨 전두환이 통치기구로 만든 국보위에 위원으로 참여했고 그 후 전두환 정권에 협력했다. 조목사의 이런 행적이 아쉽지만 내게는 고마운 분이라서 조목사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잊지 않고 있다.

여러 해 전에 조목사를 만났을 때 이승만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해방 후 강원용과 조향록을 비롯한 기독청년 10명이 이화장으로 이승만을 찾아갔다. 방에서 한 동안 기다리게 하더니 조그만 노인의 모습으로 이승만이 나타나서는 기독청년들의 손을 하나씩 잡으면서 “자네들은 다 내 아들 같은 사람들이야”하고 다정하게 말했다. 아주 은밀한 표정으로 청년들을 가까이 모아놓고는 서랍 속에서 상자 하나를 조심스레 꺼내더니 “이건 아주 귀한 것이라서 내가 자네들한테만 주는 걸세” 하면서 갱엿을 깨트려 한 조각씩 나누어주었다. 엿을 먹으라면서 “자네들은 내 아들 같은 사람들이니 나와 함께 일하세.” 하고 말했다. 그리고는 “내가 일본 놈들한테 고문을 심하게 당해서 밤에는 잠도 못 자고 낮에도 아파서 견딜 수가 없네.”라고 말하면서 얼굴을 찡그렸다. 

이승만에게 이런 친밀한 대접을 받고 일본경찰의 고문을 받고 괴로워하는 이승만의 모습을 보고는 나라를 위한 순수한 열정에 사무쳤던 청년들 가운데는 “선생님을 위해서 이 한 목숨 바치겠습니다.”하고 충성 맹세를 하기도 했다. 그런데 조목사가 나중에 알아보니 이승만이 젊은 사람들한테는 누구나 아들 같다면서 친밀하게 대하고 엿도 나누어주고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승만은 일제 식민통치기간에 경찰에 잡힌 일이 없기 때문에 일본사람에게 고문당했다는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었다는 것이다. 조목사는 이승만이 필요하면 얼마든지 거짓말을 하는 인물이라고 했다.

대한민국이 불의와 거짓말이 가득한 나라가 된 것은 이승만이 세운 나라이기 때문인 것 같다. 절대정직을 말하면서 꿈에서라도 거짓말은 하지 말라고 했던 도산 안창호, 어려울수록 대줄기처럼 곧게 뻗어나가야 한다면서 죽더라도 거짓말은 하지 말라고 가르친 남강 이승훈은 이승만과 얼마나 다른가! 우리 겨레의 스승은 이승훈과 안창호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박재순











 
< 11월 씨순길, 인왕산과 경교장길 >


일시 : 2013년 11월2일(토) 10:00 경복궁역 3번출구(1차집합) 또는 
                                10:20 윤동주문학관/창의문 버스정거장(2차집합) 
                                     * 시내 -> 세검정 방향 정거장

윤동주문학관 출발(11:00) - 인왕산 정상(12:00) - 경교장(강북삼성병원 13:00) - 
음식나눔(13:30 정동 진국곰탕/경향신문사앞



주변 둘러보기

이번 순례는 저항시인 윤동주문학관에서 시작합니다. 일제 암흑기 부끄럼의 시대를 살면서 윤동주 처럼 부끄럼에 대한 강박을 가지고 살았던 시인은 없었습니다. 지난번 윤동주문학관을 목적지로 정하고 순례한 적이 있습니다. 이번에는 윤동주문학관을 출발지로 한양도성의 동쪽 보루 인왕산에 오릅니다.  오늘은 진행계획에 따라 문학관 관람은 하지 않습니다. 

창의문은 지나면서 또 기억해야 할 일제말 작가가 있습니다. "백조(白潮)" 동인이며 "운수 좋은 날"의 저자 빙허 현진건, 그는 염상섭(廉想涉)과 함께 사실주의(寫實主義)를 개척한 작가이며 김동인(金東仁)과 더불어 한국 근대 단편소설의 선구자로 사실주의를 바탕으로 일제치하 조선의 고통을 그려낸 작가입니다. 

현진건의 생가터가 여기서 300m 거리 부암동주민센터 부근에 있습니다. "현진건의 집을 문화재로 지정해야한다. 기념관을 만들자" 하는 방송과 신문의 보도가 있자 집주인은 재산권 행사가 제한 받을 것을 걱정하여 건물을 헐어버렸습니다.

땅주인은 빌라를 세울 계획이었지만 2층이상 건축허가가 나지 않는 지역이라 현재 표지석만 서있는 그냥 빈터로 남아 있습니다. 동아일보사에 근무했던 현진건이 손기정의 일장기 말소 사건을 모의한 장소가 또한 여기입니다.  

세종의 세째아들 안평대군이 꿈에 보고 안견으로 하여금 그리게한 몽유도원도의 무릉도원을 찾은 곳이 바로 현진건의 집터 위입니다. 그곳에 안평이 지은 무계정사(武溪精舍)가 있습니다. 또한 흥선대원군의 별장이었던 석파정도 윤동주문학관에서 500m 거리에 있습니다.

이 모든 곳을 진행계획상 이번에는 탐방하지 않습니다.
나중에 개별적으로 찾아보기 바랍니다.









십일월의 씨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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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성은 한나라의 심장이며 얼굴입니다. 한양도성은 곧 조선의 역사이며 자존심이었습니다. 일제 강점기 동안 조선의 심장, 조선의 얼굴, 조선의 역사, 조선의 자존심은 심하게 훼손되었습니다. 

일제는 도성의 성벽을 헐어 잡석으로 길에 깔았고 서대문인 돈의문은 쌀 17가마에 땔감으로 팔려 철거되기도 했습니다. 광복 후 우리 자신도 전쟁과 가난으로 무관심하다가 1970년대 부터서야 도성복원에 힘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한양도성은 태조5년(1396) 초축 이후 세종4년(1422)과 숙종36년(1710)에 대규모 개축되었으며 북악산, 인왕산, 남산, 낙산의 능선을 따라 정상을 잇는 총 18,6km의 규모입니다. 

우리 씨순길은 북악산과 남산은 이미 순례했으나. 인왕산과 낙산은 아직 걷지 못했습니다. 이번에 인왕산을 걷고 다음에 낙산을 걷겠습니다.

인왕산줄기 따라 내려오면 광복 후 백범 김구와 상해임정요원이 거주하던 경교장이 있습니다. 경교장은 현재 삼성재단의 소유로 강북삼성병원 본관으로 쓰이다가 김구와 임정요원이 사용하던 광복 당시의 모습으로 복원되어 올해 3월부터 시민에게 개방하고 있습니다. 

낙산에는 초대 대통령 이승만이 거주하던 이화장이 있습니다.




사진설명 - 도성성벽, 북악산, 북한산, 남산, 한강, 인왕산 정상, 인왕산 스카이라인, 성벽길, 경교장

경교장내 사진중 회중시계는 윤봉길의사가 상하이 홍커우공원(지금 루신공원) 의거 전 백범에게 맡긴 것입니다.
































www.crlif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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