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하늘에 먼저 해야 할 것을 땅에 먼저 한다. 사는 목적을 하늘에 두지 않고 이 세상에 둔다.
이 세상에는 우리가 가질 목적이 없다. 이 땅에서 참이라고 한 것은 상대적 참이지 온전한 참이 아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머리를 하늘에 두고 몸뚱이를 곧게 하여 하늘에 가까우려고 애를 쓰는 것이다.
사람에겐 할 수 없는 일, 해서는 안 될 일이 여간 많지 않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일, 해야 할 일이란 머리를 하늘에 두고 다니는 일이다.
이것만이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요, 해야 할 일이다. 이것은 한아님을 사모하여 사상을 높이자는 것이다.
(씨알의 메아리 다석 어록. 120쪽)
< 풀이 >
사람이 할 수 있고 해야 할 일은 머리를 하늘에 두고 몸뚱이를 곧게 하여 하늘에 가까이 가려고 애를 쓰는 것이다. 이것은 누구나 할 수 있고 마땅히 할 일이다. 상대적인 물질세계에서 사람이 하는 일은 물 위에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것처럼 허망한 일이다. 나를 내가 되게 하고 나를 자라게 하는 것은 하늘을 향해 곧게 서서 하늘로 솟아오르는 일이다. 머리를 하늘에 두고 하나님을 사모하여 위로 올라가는 것이 생각과 정신을 높이는 일이고 생각과 정신이 높아지는 만큼 이 땅에 자유와 평등이 이루어진다.-박재순
숨과 사랑
내 피를 뜨겁게 하고 온 몸에 돌게 하는 것은 숨이다. 숨쉬지 않으면 피는 식고 멎을 것이다. 내 뼈다귀를 억세고 굳세게 유지하는 것도 숨이다. 숨쉬지 않으면 뼈는 흙처럼 부서질 것이다. 가늘고 여린 숨 바람이 몸의 생명과 힘의 원천이다.
내 인격과 영혼을 곧고 힘있게 세워주는 것은 사랑이다. 온갖 욕망과 노여움과 두려움에서 벗어난 사랑만이 나를 굳게 세운다. 물질적 조건이나 이해관계를 넘어선 사랑만이 흔들림 없는 '나'의 인격을 세운다. 착하고 어진 마음은 한없이 약하고 부드럽지만 바위보다 굳세고 강철보다 강하다.
잘난 얼굴, 빼어난 재주, 풍부한 지식도 사라지는 것이고, 친절하고 다정한 마음도 끝나는 것이다. 남녀 사이의 사랑도 벗들 사이의 우정도 아름답지만 영원한 것은 아니다. 뜨거운 열정도 벅찬 감정도 없지만 곧고 착한 사랑의 마음은 생명과 역사를 창조하는 근원이다. -박재순
< 눈과 이마 >
몸은 눈을 가져야 한다. 맘은 이마를 가져야 한다.
사물을 꿰뚫어보는 눈과 잘못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있는 이마를 가져야 한다.
책임지는 정신이 자유요, 꿰뚫어보는 눈이 평등이다.
만물을 꼭같이 꿰뚫어봄이다.
하늘을 뚫고 치솟는 산의 이마를 보라.
땅이 싣고 있는 시원한 바다의 눈동자를 보라.
이마의 산과 바다의 눈을 가진 하늘 땅은 오늘도 영원하고 무한하다.
(씨알의 메아리 다석 어록. 119쪽)
< 풀이 > 모든 사람의 사정과 형편을 꿰뚫어보는 눈이 있으면 평등에 이를 수 있다. 너의 속의 속에 그리고 나의 속의 속에 똑 같은 생명과 이성과 영성이 있음을 알면 너와 나의 평등에 이른다. 네 속에서 나를 보고 내 속에서 너를 보게 되면 너와 내가 하나임을 알게 된다. 사람의 얼굴을 대표하는 이마는 자신의 존재와 활동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이다. 자신의 잘못에 대해 책임을 지는 사람만이 자유로울 수 있다.
이마는 내 존재와 활동을 이고 하늘에 책임을 지는 것이다. 하늘을 뚫고 치솟는 산의 이마가 내 존재와 활동을 책임지는 마음의 이마를 깨워 일으킨다. 땅이 싣고 있는 시원한 바다의 눈동자는 하늘과 땅과 사람을 두루 꿰뚫어보도록 몸의 눈을 크고 깊게 열어준다. 이마의 산과 바다의 눈을 가진 하늘과 땅은 오늘도 우리를 자유와 평등의 영원한 길로 부른다. -박재순
기쁨과 고마움
기쁨, 기도, 고마움은 하나님이 창조한 생명의 본질이다. 생명은 상처받을 수 있는 것이지만 본래 기쁜 것이다. 새싹이 나면 기쁘고, 꽃피고 열매 열면 기쁘다. 어린 아기를 보면 기쁨이 묻어난다. 생명의 근원인 하나님(참)께 가까이 가면 기쁘다. 생명이 자라는 것을 보면 기쁘다. 내 속에서 내가 커지고 새로워지면 기쁘다.
내가 내 생명을 느낄 수만 있으면 기쁘다. 내 몸과 마음의 생명을 못 느끼니까 화가 나고 지겨운 것이다. 내 목숨이 살기 위해 숨쉬듯, 내 영혼이 살기 위해 숨쉬는 것이 기도다. 살려면 하나님과 이웃과 생명의 숨을 쉬어야 한다. 늘 기쁘고 힘있게 영의 숨을 쉬면 늘 고맙다. 늘 고마운 사람은 늘 이기는 사람이다. 지옥의 권세도 죽음의 세력도 그를 어쩌지 못한다.
12월의 순례는 임진란 때 왜군이 동대문을 통하여 한양성에 무혈 입성했던 역사를 돌이키며, 나라지킴의 소중함과 다석의 유교 이해를 묵상하며 걸었습니다.
유교의 이념으로 설계된 한양성의 사대문과 종루 보신각(普信閣)은 인간의 다섯 가지 도리 즉,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을 상징합니다. 이번 순례의 출발점이었던 동대문은 흥인지문(興仁之門)으로 인(仁)의 문입니다. 다른 대문과 달리 지(之)자를 넣어 넉자로 한 것은 한양성의 동쪽 지기(地氣)가 약하여 기운을 북돋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남대문(崇禮門)은 예(禮), 서대문(敦義門)은 의(義), 북대문(肅靖門)은 지(智)를 나타냅니다. 북대문의 원래 숙청문(肅淸門)인데 숙정문으로 바뀐 것은 1523년 중종18년입니다. 청(淸)의 글 뜻은 “맑다, 깨끗하다, 사념(邪念)이 없다, 탐욕이 없다...”로 맑고 깨끗함이 슬기(智)의 출발점입니다.
보신각은 시내 한복판에 있어 접근이 용이하나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씨순길에서는 아직 탐방하지 않았습니다. 2013년이 가기 전 보신각에서 만나 청계천을 따라 2.5킬로 약 40분 걸어 동대문 부근 음식점에서 송구영신의 시간을 가지면 어떻겠습니까? 나중에 상세한 안내 드리겠습니다.
순례길의 날머리 삼청동으로 접어드니 전투경찰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습니다. 오늘 오후 국정원 대선개입 규탄시위가 서울역과 시청앞 광장에서 있다고 합니다. 삼청동 일대는 총리공관, 감사원 등 정부기관이 있어 경비를 서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점심을 나누고 시내로 향하는 삼청동과 북촌마을길에는 국내외 많은 관광인파가 북적대며 넘쳐 흘러 흥겹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