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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irit/e—cr—life

끝내고 시작하는 삶

by e-bluespirit 2014. 1. 20.








<끝내고 시작하는 삶>

시작해서 끝나는 것은 몸의 세계다. 
그러나 상대를 끝맺고 시작하는 것은 얼의 세계다. 
나서 죽는 것이 몸 나이다. 
몸 나가 죽어서 사는 것이 얼 나이다. 
얼 나는 제나(自我)가 죽고서 사는 삶이다. 
말하자면 형이하(形而下)의 생명으로 죽고 
형이상(形而上)의 생명으로 사는 것이다. 
몸 나로 죽을 때 얼 나가 드러난다. 
그러므로 몸 나의 인생을 단단히 결산을 하고 
다시 얼 나의 새 삶을 시작한다. 
몸 삶을 끝내고 시작한 얼 삶에는 끝이 없다. 
그래서 얼 나는 영원한 생명이다. 

다석 유영모 어록 95쪽.

< 풀이 >

육체의 생명은 시작해서 끝나는데 정신의 생명은 끝내고서 시작한다. 육체적 생명은 나서 죽는데 정신적 생명은 육체적 생명을 극복하고 초월하고서 시작하는 생명이다. 몸 생명이 죽어야 얼 생명이 산다. 생명진화의 역사는 초월과 극복의 역사다. 물질을 초월하여 생명이 나왔고 생명을 초월하여 마음이 나오고 마음을 초월하여 지성이 나오고 지성을 초월하여 영성이 나왔다. 
생명은 자기를 극복하고 초월하는 것이다. 생명진화는 몸 생명에서 얼 생명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물질은 생성하고 소멸하는 것이다. 물질에 매인 몸 생명은 나서 죽는 것이고 물질을 극복하고 초월한 얼 생명은 물질을 넘어서 영원히 사는 것이다. 몸 살림을 끝내고 시작한 얼 생명은 끝없는 영원한 생명이다. 

-박재순



어야 산다

몸은 한번 죽지만 정신은 자기부정과 죽음을 통해서만 산다. 
자기의 죽음을 경험한 사람은 자기와 타자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자기의 죽음을 경험한 사람은 
작은 이해관계나 사회관계에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 
자기의 죽음을 경험한 사람만이 
훌륭한 대통령, 장관, 기업체의 사장, 교회 목사, 학교 교사가 될 수 있다. 

자기로부터 자유로워야 자기를 바로 보고 남을 바로 보며, 
바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다. 
자기에게 매인 인간이 어떻게 자유롭게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나? 
자기에게서 자유롭지 못한 인간이 어떻게 남을 이끌고 남 앞에 설 수 있나? 
한번 확실히 죽는 사람, 
예수님과 함께 죽고 다시 사는 사람이 남을 이끌고 일을 바로 할 수 있다. 

-박재순






<말씀의 표현 아닌 것이 없다>

“태초에 말씀이 있으니···말씀으로 만물이 지은 바 되었다.” 이대로 진리다. 
이 우주는 말씀을 가진 우주다. 역사는 법칙의 나타남이 아니다. 
기계의 움직임이 아니다. 물질의 변천과정이 아니다. 
산 말씀의 나타남이요, 그 말씀에 돌아감이요, 말씀하고 있음이다. 
요한은 또 이 말씀의 본질을 설명하여 사랑(아가페)이라 하였다. 
우리의 역사는 아가페의 역사다. 역사현상의 뒤에 서는 인격자는 아가페다. 

우주의 모든 현상은 이 사랑의 말씀을 발하는 음성이다. 
히말라야의 높은 봉도 미시시피의 긴 흐름도, 
태평양의 큰 물결도 이 사랑의 말씀을 표하는 부호다. 
설선(雪線) 위에 웃는 천자만홍(千紫萬紅), 
숲 속에 우는 가지각색 새와 벌레, 
비치는 흐름에 꼬리치는 은린(銀鱗), 
깎아 세운 바위에 떨어지는 폭포, 
물결 위에 부서지는 달빛, 
구름 뒤에 깜작이는 별들, 
모든 것이 이 말씀의 표현 아닌 것이 없다.


『성서적 입장에서 본 세계역사』함석헌전집 9. 15쪽.

< 풀이 >

우주를 겉에서 부분으로 보면 죽은 것 같고 법칙에 따라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깊이에서 전체로 보면 우주는 산 것이고 ‘나’와 산 관계 속에서 함께 숨 쉬고 함께 울리고 있다. 나는 우주의 일부지만 속에 우주를 품고 있다. 나 안에서 우주는 자기 자신을 자각하고 실현하고 완성한다. 내가 깊어지는 만큼 우주의 깊이가 드러나고 내가 높아지는 만큼 우주의 높이가 드러난다. 사랑 안에서 나도 우주도 더 깊고 높아진다. 나와 우주를 깊고 높은 데로 이끌고 나와 우주를 하나 됨에로 이끄는 것은 사랑이다. 사랑이 나와 우주를 실현하고 완성하고 하나 되게 한다. 

사랑은 우주대생명의 근원이고 본성이며 목적이다. 우주대생명은 사랑에서 나왔고 사랑으로 자라고 사랑을 실현하고 완성한다. 사랑은 뜻을 가진 것이고 뜻은 말씀으로 표현되는 것이다. 우주만물은 사랑에서 나온 것이므로 뜻을 가진 것이고 말씀을 나타내는 것이다. 내 속에 사랑이 있고 생명이 있고 뜻이 있고 말씀이 있기 때문에 우주의 모든 현상에서 말씀을 보고 들을 수 있다.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나와 우주가 함께 울린다. 사랑으로 보면 모래알 하나, 물방울 하나도 우주의 깊이와 아름다움을 드러낸다. 

-박재순





씨알정신을 구현한 채현국 선생

이제까지 나는 채현국 선생을 몰랐다. 한겨레신문에서 채선생의 대담기사를 보고 마음에 큰 울림을 얻고 기뻐했다. 채선생의 삶과 정신이 씨알사상과 정신을 그대로 구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이가 서울대 철학과를 나와서 평생 민주정신에 사무쳐 살았으니까 함석헌 선생의 ‘뜻으로 본 한국역사’를 한번쯤은 읽지 않았을까?  ‘뜻으로 본 한국역사’의 생각과 정신이 채선생의 삶과 정신과 행동 속에 그대로 녹아 있는 것처럼 여겨졌다. 그가 ‘쓴 맛이 사는 맛’이라고 한 것은 한국역사를 고난의 역사로 풀이하면서 함 선생이 시련과 고난이 우리를 깨우고 살리며, 실패와 패배를 딛고 이김에 이른다고 말한 것과 다르지 않다.

그이가 광산업으로 큰 돈을 벌었으나 광부의 피가 묻은 돈이라면서 광부들에게 나누어주고 해직기자들에게 집을 사주고 ‘창작과 비평’사와 민주운동단체들에 돈을 대주었다. 그러나 그이는 한사코 남을 도운 사람으로 알려지는 것을 거부했다. 남을 도운 것이 아니라 내 일을 내가 한 것뿐이라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씨알정신이다. 

꽃과 열매와 씨를 맺어서 뭇 생명을 먹여 살리는 씨알이 언제 그것을 내세우거나 자랑한 적이 있던가! 꽃을 피우고 열매와 씨를 맺는 것은 씨알이 제 일을 한 것일 뿐이다. 만일 씨알이 제 할 일을 하고 남에게 생색을 낸다면 참으로 우스운 일이 아닌가? 말은 쉽지만 그렇게 씨알로 살기는 어렵다. 안창호, 이승훈, 유영모, 함석헌 그리고 채현국은 씨알로 살았다. 효암학원이사장이면서 허름한 옷을 입고 정원 일을 하는 그이는 오산학교 이사장이었던 이승훈 선생이 마당 쓸고 변소 청소하던 것과 꼭 닮았다. 

채선생이 ‘산파적 인간’으로 내세운 “시시한 사람들, 월급 적게 받고 이웃하고 행복하게 살려는 사람들”은 씨알사상에서 말하는 씨알과 꼭 같다. 씨알사상이 얼과 신(神)을 말하는 것이 채선생의 생각과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씨알사상과 정신으로 사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채현국 선생처럼 사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박재순






<사랑과 고난의 역사>

나라는 나라와 갈라지고 계급은 계급과 대립하여 학문의 정예, 과학의 오묘를 다 들어 동류상잔(同類相殘)하는 데 쓰는 쓰라린 일이 있다고 하여 이 세상은 약육강식의 수라장이라고 말하지 말라. 모든 것은 다 변형되고 뒤집힌 사랑의 말씀이다. 어머니가 노하였다 하여서 친자는 대적이라 할 것인가? 어린 천사가 죽었다 해서 인생은 허무한 것이라 할까? 애인은 죽어서 영원의 사랑을 가슴 속에 심는 것이요, 의인은 희생으로 되어서 불변의 의(義)를 역사 안에 살리는 것이다. 
죽음이 없다면 어찌 죄를 알았으랴. 전쟁이 아니면 누가 정의의 귀한 줄을 가르쳤으랴. 가시 없이 장미는 있을 수 없고, ‘쓰라림’ 없이 ‘사랑’은 있을 수 없다. 그렇다. 우리의 역사는 아가페의 역사이므로 고난의 역사다. 아가페란 죽음에 의하여 사는 자다. 

『성서적 입장에서 본 세계역사』함석헌전집 9. 15~6쪽.

< 풀이 >

인생과 역사를 겉으로 보고 부분으로 보면 약육강식이 지배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깊이에서 전체로 보면 사랑이 인생과 역사의 동인이고 목적인 것을 알 수 있다. 갈등과 분열, 대립과 다툼도 사랑 때문에 일어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사랑 때문에 서로 갈라지고 맞서고 다투는 것이다. 사랑을 붙잡은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사랑으로 귀결되고, 생명을 살리는 일이 된다. 
어린 아기가 죽었기 때문에 생명에 대한 사랑은 더욱 깊어진다. 애인이 죽었기 때문에 사랑은 가슴 속에서 절절하고 사무치며 아름답고 영원하다. 의인이 불의하게 희생을 당했기 때문에 불변의 의가 살아난다. 죽음이 있기 때문에 생명을 해치는 것이 죄임을 알게 된다. 불의한 전쟁을 통해서 억울한 고난과 죽음을 겪었기 때문에 정의가 귀중한 것을 알 수 있다. 사랑은 생명을 고난과 죽음에 내맡기는 모험이다. 사랑에는 고난과 희생이 뒤따른다. 사랑의 고난과 희생은 절망을 이기고 죽음을 삼킨다.

-박재순





발송 2014-1-17(보고와 안내)

순례일 2014-01-04 & 02-08(토)



<1월7일 씨순길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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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모 자택지 출발(10:00) - 형제봉매표소(11:30) - 정룽매표소(13:30) - 김교신자택지(14:00

<2013년 씨순길 보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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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서대문형무소역사관과 안산길
2월 백악마루와 통인시장
3월 강화도 심도학사, 
4월 남산 안중근 기념관,
5월 두물머리 다산유적지
6월 강서습지공원과 행주산성, 
7월 초월스님의 진관사,
8월 호명호수, 
9월 사가정-망우길, 
10월 화석정과 임진강길,
11월 인왕산과 경교장, 
12월 낙산성곽길과 성균관






< 2014년2월 갑오년 두번째 순례, 북악마루길 / 안내 >


올해 설날은 양력으로 1월31일 입니다. 전날 30일부터 2월2일까지 나흘간 설날연휴입니다. 2월의 첫 토요일이 설날 다음 날입니다.

 따라서 2월 씨순길은 2째 토요일 2월8일 북악마루길(구경각길)을 걷습니다.


이번에는 한성대학입구역(삼선교) - 혜화문 - 경신고등학교 - 와룡공원 - 숙정문 - 북악마루로 오르려고 합니다. 창의문이나 삼청공원에서 오르는 것 보다 한결 편한 길입니다. 답사 후 상세한 안내글을 보내겠습니다. 

2월 순례에는 다석이 2년간 수학한 경신학교를 지납니다. 젊은 시절 그의 연보를 살피면,

1907년 17세 경신학교 입학 2년 수료
1909년 19세 경기도 양평학교 교사로 재직
1910년 20세 이승훈의 초빙으로 평북 정주 오산학교 교사로 2년 재직 후
           10년간 일본 유학, 결혼,기고(寄稿) 등등 활동
1921년 31세 고당 조만식의 후임으로 오산학교 교장에 취임 함석헌은 만나다

맘 놓아 죽을 수 있다면, 몸 벗어 살 수 있다면 사람은 그때 비로소 자유인이 됩니다. 자유인은 세상에 부러운 것이 없고 무서울 것이 없고 이루지 못할 일이 없습니다. 다석은 그런 분이었습니다. 2월에 그의 한시 " 瞻徹天潛透地 우러러 하늘 트고 잠겨서 땅 뚫었네" 현장에 갑니다.

3월과 4월에는 씨순길은 함석헌을 찾아 갑니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날 3월의 한강 강바람을 맞으며 원효로 자택지에 걸어가며 씨알혁명의 계절 4월에는 4.19국립묘지와 이어 쌍문동집에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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