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Spirit/e—cr—life

'나’ 라고 하는 순간 이미 나는 아니다

by e-bluespirit 2014. 3. 10.













<'나’ 라고 하는 순간 이미 나는 아니다>

참 나는 없이 있는 하나의 긋(점)이요, 찰나다. ‘나’라고 하는 순간 이미 나는 아니다. 참나는 없이 있는 나다. 그런 나만이 참 나라고 할 수 있다. 빛보다 빠른 나만이 참나다. 날마다 새롭고 새로운 나만이 참 나다. 참 나는 말씀의 나요 성령의 나다. 

다석 유영모 어록 97쪽.

< 풀이 >

참 나는 내 속에 있는 영원한 생명의 끄트머리다. 영원한 생명은 몸 생명이 아니기 때문에 물질이나 물건처럼 있다고 할 수 없다. 물질세계에서는 인과관계가 성립하는데 생명의 주체인 ‘나’는 인과관계를 넘어선 것이다. 인과관계는 밖에서 원인과 결과를 찾는 것이다. ‘나’는 스스로 하는 생명의 주체이므로 원인과 결과를 밖에서 찾지 않고 내 속에서 찾는다. 내 존재와 활동의 원인과 결과는 내 속에 있다. 내가 나 자신의 원인이고 결과이다. 
인과관계를 초월해서 존재하는 ‘나’는 찰나적으로 존재할 뿐 늘 그렇게 있는 것이 아니다. ‘나’라고 하는 순간 이미 내가 아니다. 나는 늘 새롭게 태어나는 존재이고 새롭게 되는 존재이지 물건처럼 있는 존재가 아니다. 시간과 공간, 물건에 매인 나는 더 이상 나가 아니다. 그러므로 참 나는 ‘없이 있는 나’다. 날마다 순간마다 새롭게 태어나는 나만이 참 나라고 할 수 있다. 말씀을 통해 하나님과의 연락을 통해 늘 새롭게 태어나는 ‘나’만이 참 나다. 그러므로 나를 자랑하거나 고집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박재순





고디 곧게

저마다 제게 굽으러지고 우리는 늘 우리에게로 굽으러진다. 
밝고 환한 햇빛도 굽으러지고 크고 넓은 우주공간도 안으로 
굽는다. 위선의 껍질은 두터워지고 세상의 어둠과 혼란은 
깊어진다.

거짓과 어둠을 몰아내고 혼란을 막으려면 전태일처럼 제 몸
에 불을 지르는 수밖에 없다. 제 몸을 불사르는 이만이 남
을 곧게 할 수 있다. 고디 곧게 서려면 예수처럼 십자가에 
달리는 수밖에 없다. 모든 명예와 욕심을 버리고 손과 발을 
못 박고 벌거벗고 하늘 아래 서는 이만이 곧을 수 있다. 

-박재순






<생명은 만들어낼 수 없다>

과학이 발달하면 유기물은 만들어낼 것이다. 그러나 생명은 안 된다. 생명은 개성을 가지는 것이요, 개성은 역사를 짓는 것이다. 생명현상을 만들어내는 것은 가능한 일이다. 역사를 만들어낼 수는 없다. 무생물에서 진화하여 생물이 나왔다는 진화론은 다 사실이다.

성서적 입장에서 본 세계역사』함석헌전집 9. 40~41쪽

< 풀이 >

생명은 개성을 가진 주체이고 개성을 가진 주체는 역사를 짓는 것이다. 생명은 역사를 가진 것이고 역사 속에서 형성된 것이다. 과학이 개성을 가진 주체, 혼을 만들 수는 없고 역사를 만들 수도 없다. 무생물에서 생물이 나왔다는 진화론은 생명의 주체적인 역사를 전제한 것이다. 흔히 과학에서 인조생명을 만든다고 하는 것은 기초적인 생명을 조작하고 변경하고 첨가하여 생명활동과 현상이 진행되게 한 것이다. 

-박재순





맘 하나

아무리 높고 두터운 성벽을 세워도 맘 하나 무너
지면 다 무너지고, 아무리 빛나고 위대한 문명을
이룩했어도 맘 하나 꺼지면 다 물거품이다. 맘이
죽으면 몸은 고기 덩어리에 지나지 않는다. 살을 
맞대고 사는 부부도 맘이 없으면 남보다 못하다.

내 속에 뜨거운 맘이 없으면 우주만물이 공허하고 
사회. 역사가 허망하다. 내 속에 믿음의 불씨가 
꺼지면 저 많은 교회들 다 무너진다. 오늘 하루도 
내 맘이 꼿꼿이 서고 맘에 불이 붙어야 몸에 힘이
나고 일을 신나게 할 수 있다. 내 맘에 불씨가
꺼지지 않도록 기도한다. 

-박재순







<학문의 시작은 참 나의 자각에서부터>

학문의 시작은 자각(自覺)부터다. 자각이 없는 사람은 아무리 학문이 많다고 해도 그것은 노예에 불과하다. 우선 남을 보기 전에 나를 보아야 한다. 거울을 들고 나를 보아야 한다. 옛날부터 내려오는 말씀이 거울이다. 경(鏡)이 경(經)이다. 이 거울 속에 참나(얼 나)가 있다. 말씀이 바로 참나이다. 말씀을 풀어보는 동안에 붙잡히는 것이 진리인 이치요 참나인 정신이다. 
우리가 할 것은 가온찍기밖에 없다. 점을 찍는 것은 생각 속에 말씀이 나타나는 것이다. 하나님의 생명인 얼 나가 나타나는 것이다. 이 세상에 많은 사람이 참 나를 무시한 채로 살아가고 있다. 참으로 기막히는 일이다. 이 세상에서 참 나처럼 값비싼 것이 없는데 이를 무시하고 덧없이 살고 있다. 

다석 유영모 어록 96쪽.

< 풀이 >


참 나를 자각하지 못한 사람은 아무리 공부를 열심히 해서 지식을 많이 쌓는다고 해도 그 지식은 남의 지식이고 바깥일과 대상에 대한 지식일 뿐이다. 그런 지식은 많으면 많을수록 남에게 매이고 대상에 흔들린다. 그런 학자는 지식의 노예일 뿐 자유인이 될 수 없다. 그러므로 공부하는 사람은 먼저 자신을 찾고 자신을 깨닫는 공부부터 해야 한다. 나를 모르고는 남을 알 수 없다. 나를 모르면서 물건과 일에 대한 지식을 많이 아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나를 비춰주는 거울이 경전이다. 예부터 내려오는 말씀인 경전은 참 나에 대한 글이고 참 나를 찾고 참 나를 만난 경험에 대한 기록이다. 경전을 보면 참 나를 볼 수 있다. 그러나 경전을 본다고 해서 누구나 참 나를 찾는 것은 아니다. 경전의 글자에서 참 나를 읽어내지 못하면 경전은 옛날에 쓴 죽은 글자일 뿐이다. 경전의 글자에서 참 나를 읽으려면 읽는 내 눈이 물질에 대한 욕심과 집착에서 벗어나야 한다. 욕심과 집착, 편견과 사나운 감정으로 가득 찬 눈으로는 경전의 글자에서 참 나를 읽을 수 없다. 먼저 사나운 욕심과 감정으로 부푼 나의 맘을 한 점으로 줄여서 찍어버리는 가온찍기를 해서 내 맘과 눈이 맑아지고 비워져서 경전의 글자에서 참 나를 볼 수 있어야 한다. 경전을 읽으며 생각한다는 것은 마음에 점을 찍는 것이고 점을 찍다 보면 생각 속에서 말씀이 떠오르고 말씀이 떠오르면 영원한 생명의 얼 나인 참 나가 나타난다. 참나보다 귀한 것은 없다. 

-박재순





숨과 희망

라틴 속담에 "내가 숨쉬는 동안 나는 희망한다."(Dum 
spiro, spero.)는 말이 있다. 숨에는 삶을 향한 의지와 그
리움이 담겨 있다. 숨은 살려는 행위이며, 삶의 몸짓이다. 
내가 지금 쉬는 숨은 태초에 생명이 생겨났을 때부터 이어
온 숨결이다. 숨이 붙어 있는 한 삶은 이어지고, 살아 있는 
한 살 길은 있다. 숨이 곧 희망이다.

숨을 깊고 고르게 쉬기가 쉽지 않다. 피곤하고 지쳐도 숨이 
고르지 않고 맘이 불안하거나 미움과 노여움에 사로 잡혀도
깊은 숨을 쉴 수 없다. 숨을 고르고 깊게 쉬는 사람은 몸도 
맘도 편하고 세상을 편하게 하는 이다. 나의 숨이 우주와 
이어지고 하나님의 생명기운과 닿아 있다. 이 숨 줄을 타고
하늘나라가 오기를 기다린다.

-박재순






동자동 쪽방촌의 씨알사상 이야기

1월 22일 저녁에 동자동 쪽방촌 공제조합 사무실에서 5~6명이 둘러앉아 씨알사상을 강의했다. 사람은 37억년 생명진화를 거쳐 형성된 존재이며 사람의 몸과 맘에는 위대한 생명력이 깃들어 있고 몸과 맘은 섬세함과 아름다움을 품고 있다. 김연아가 피겨스케이팅을 통해 보여주는 섬세한 아름다움은 우리 몸과 맘에 품고 있는 섬세함과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강의했다.

갑자기 술 취한 사람이 들어오더니 “무슨 헛소리냐? 김연아나 류현진이 1초 움직일 때마다 1조원씩 돈이 올라간다. 다 돈 때문에 하는 짓이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헛소리를 한다.”고 소리를 질렀다. 40대 중반의 남자인데 소매치기로 17년 감옥살이를 했다고 한다. 그래서 내가 김연아가 피겨스케이트를 하는 동기와 목적은 돈일지 모르고 우리 사회가 돈이 지배하고 빈부격차가 커지는 몹쓸 사회가 되고 있다면서 그의 말에 공감을 표시한 다음에, 그래도 김연아의 아름다운 몸놀림은 사람의 몸과 맘이 섬세하고 아름다운 것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쫓겨났던 그가 다시 와서는 자기는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했다면서 “안다는 게 거짓말이다. 알기는 무엇을 안단 말인가? 나를 아는가? 동자동 쪽방촌을 아는가? 박사여, 바가지여? 알기는 뭘 알아?”하고 소리 지르며 강의를 못하게 한다. 그래서 내가 이렇게 대답했다. “당신 말이 옳아. 내가 나를 모르는데 너를 어떻게 알겠어. 나도 너를 모르고 너도 나를 모르지. 여기 있는 물건도 모르고 살아 있는 것은 더욱 모르지. 씨알사상은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는데서 시작된다. 모르는 것을 알아야 진실에 가까워진다. 학교 공부를 못한 여러분들이 삶의 진실에 훨씬 가깝다. 안다는 사람은 사실은 모르는 사람이다. 씨알사상은 모름을 지키며 살자는 것이다.”

다시 쫓겨났던 그가 또 와서는 ‘입장 바꿔 생각해봐’라는 노래를 부르면서 “입장 바꿔 생각해봤어? 한번 입장 바꿔 생각해보라!”고 한다. 그래서 내가 말했다. “공자, 노자, 석가, 예수, 소크라테스와 같은 모든 성현의 가르침을 한 마디로 줄이면 입장 바꿔 생각하라는 것이다. 윤리와 도덕의 시작도 꼭대기도 입장 바꿔 생각하는 것이다. 아무리 높은 윤리 도덕도 입장 바꿔 생각하는 것보다 더 높을 수 없고 아무리 낮은 윤리 도덕도 그 아래로 내려갈 수 없다. 당신이 진리를 말한 것이다.” 이 말을 듣고 그이가 조금 다소곳해져서 “어떻게 해야 부부관계를 잘 유지할 수 있습니까?”하고 묻는다. 내가 말했다. “당신이 말한 대로 하면 된다. 입장을 바꿔서 진지하게 아내의 입장과 처지에서 생각해보라. 그러면 부부관계를 잘 유지할 수 있다.”

준비해간 강의는 다 못했지만 현장의 울분이 담긴 소리를 듣고 대화를 나눈 것이 보람 있었다. 밖으로 나올 때 어떤 사람이 내가 신발 신는 것을 도와주려고 하자 그이가 쫓아와서 “박사님 신발은 내가 신겨드린다.”면서 내 신발을 신겨주었다. 나는 거기를 떠나왔지만 동자동 쪽방촌의 아픔과 절망은 내 마음의 어둠과 모름 속에 남아 있다. 

-박재순








<함석헌 원효로 자택지와 절두산 양화진 >

출발 : 3월1일 아침 09:50 효창공원역 3번출구

효창공원역 3번출구 - 1km -  원효로 자택지(원효로4가 70번지) - 1km -한강공원길 - 3.5km - 절두산 성지 - 0.3km - 0.4km - 합정역 7번출구

점심 : 오후 1:00 합정역 부근 식당 "합정 전집" Black telephone 02-3142-8896


< 이번 3월 씨순길은...>

3월1일 삼일절의 씨순길, 2년 만에 함석헌의 옛 자택 터를 다시 찾아갑니다. 자택 터 원효로4가 70번지(효창원12길 12호)에는 지금 선생의 체취를 찾을 길 없고 낮선 다세대 주택 한 채가 허름하게 들어서 있습니다. 

올 3.1혁명 95주년 되는 해입니다. 5년만 지나면 한 세기 100년이 됩니다. 박은식의 《한국독립운동지혈사》에 의하면, 3.1혁명의 규모는 참가자 200여만명, 사망자 7,509명, 부상 15,850명, 체포 45,306명, 불탄 민가 715호, 교회 47개소, 학교 2개소였습니다. 반면 조선총독부의 공식 집계로는 참가자 106만명, 사망자 553명, 체포 12,000명입니다.

3.1혁명은 함석헌과 유영모의 사제지연을 맺게 해준 사건이기도 합니다. 3.1혁명이 없었다면 함석헌과 유영모의 만남도 없었을 것이며 이 시대의 스승이며 빼어난 민주투사요 인권운동가요 민주투사인 함석헌도 다른 모습이었을 것입니다.

3.1혁명 당시 함석헌은 열아홉의 평양고보 학생이었습니다. 유관순(1902년생) 보다 한 살 위였습니다. 함석헌은 평양경찰서 앞에서 독립선언서를 뿌리며 만세시위에 가담하였으며 일본인 학교장이 요구하는 반성문 쓰기를 거부 학교를 자퇴하고 2년 뒤 1921년 오산학교에 들어갑니다. 

3.1혁명 당시 유영모의 나이는 서른으로 이광수 최남선 등과 교우(交友)하며 잡지 “청춘”, “농우(農友)” 등에 여러 편의 글을 기고하였습니다. 유영모가 이광수를 만난 것은 20세 되던 오산학교 과학교사로 재직할 때 였으며 그를 통해 최남선도 알게 되었습니다.

함석헌이 오산학교에 입학했던 같은 해 유영모는 조만식의 후임으로 오산학교 교장으로 취임하게 되어 두 씨알스승의 만남은 이루어집니다. 유영모의 교장 재직기간은 단 1년이었습니다. 

함석헌은 말합니다.

“ 일본에 가기 전 오산학교에 있을 무렵부터 나는 사물을 생각하는 눈이 뜨이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류영모 선생의 영향입니다. 선생은 깊이 사색하는 분입니다. 선생의 대표적인 말씀은 ‘진실’입니다만 생명을 강조하여 그 이야기를 많이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나도 늦게나마 ‘나’를 들여다보게 되었습니다.” ― 13장 ‘스승과 제자’445~446쪽 함석헌의 말에서

이번 씨순길의 종착지에는 천주교 절두산성지와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이 서로 이어져 있습니다.

천주교 절두산성지는 1866년 병인박해 당시 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순교한 곳입니다. 프랑스 군함3척은 같은 해 9월과 10월 천주교 탄압을 응징한다는 명분으로 이 곳 양화진까지 올라 왔었습니다. 

양화진은 1884년 갑신정변(1884년) 김옥균이 10년 뒤 능지처참되어 효시되었던 곳이며 지금은 고종황제의 외교고문으로 한국인보다 더 한국을 사랑?던 헐버트,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한 베델 등등이 묻힌 선교사의 묘역입니다.

<정정합니다>
************

지난 2월14일자 "씨순길보고(2월)20140214"의 아래 내용

" 오르면서 오행(五行) 상 북쪽은 흙(土)이며 지(智)를 나타내야 하는데 왜 한양도서의 북대문 이름이 "숙정문(肅靖門)"인가 하는 물음이 있었습니다." 중

"북쪽은 흙(土)이며"를 "북쪽은 물(水)이며"로 정정합니다.



원효로 남이장군사당 - 한강공원길 - 절두산성지 -기독교100주년 기념관 - 양화진터

















www.crlife.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