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번 씨순길에는...>
- 셋 -
[詩] 숲에 가면
이시영
숲에 가면 좋은 일이 있을 듯하다
덤풀 속에 아직 온기 남은 작은 멧새알 하나,
바위 모서리를 뚫고 샘솟는 뜨거운 석간수(石間水) 한모금,
숲에 가면 오래 잊은 좋은 일이 있을 듯하다
동광원에 가면 좋은 일이 있을 듯합니다. 계명산계곡에 가면 좋은 일이 있을 듯합니다. 씨알의 숨결이 느껴지는 흔적의 작은 멧새알이 그곳에 있을 듯합니다. 씨알의 향기가 녹아 흐르는 석간수 한모금이 있을 듯합니다. ************ 9월의 씨순길은 일본의 관동대지진 조선인학살의 현장으로 갑니다. 씨순길의 첫 해외순례라 준비할 것도 많습니다. 7~8월은 여름휴가기간이라 그 준비를 서둘러야합니다. 1973년 함석헌의 글(아래 생각 -둘-)을 읽으니 관동대지진학살 희생자를 위한 위령순례는 선생님께서 41년전 우리에게 당부한 일처럼 느껴집니다.
일본은 관동대지진의 만행을 은폐하고 축소했습니다. 선생님의 글에는 희생자가 많지 않은 4~5천명이라 했으나 나중에 밝혀지기를 공식적으로 6천명가량, 실제로는 2~3만으로 추정됩니다. 이 때, 조선인뿐만 아니라, 중국인, 류큐인, 외자 성(姓)과 사투리 발음 때문에 조선인으로 오인 받은 도호쿠지방과 아마미의 일본인, 그리고 사회주의자, 아나키스트, 인권운동가, 반정부인사 등도 함께 희생되었습니다.
우리는 종족말살, 대량학살(genocide)의 희생자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잊지 않는 것이 과거와 같은 국가와 오도(誤導)된 대중의 광기(狂氣)에 의한 집단적 폭력의 재현을 막는 길입니다. 선생님의 당부를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관동대진재의 제단에서 피를 한데 섞은 일본의 씨알과 한국의 씨알은 이 역사의 원흉(국가주의)의 잔당을 잡아 새 시대를 여는 데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 둘 -
義士 안중근이 1909년 11월6일 쓴 <대한인 안응칠 소회>의 일부입니다. 아래 글에서 '이토 히로부미' 대신 '아베 신조'를 대입해 봅니다.
...이제 동양 대세를 말하면 비정상의 일들이 발생하여 참으로 기록하기 어렵다. 이른바 '이토 히로부미'는 천하의 이치를 깊이 헤아려 알지 못하고, 함부로 잔혹한 정책을 써서 동양 전체가 장차 어려움을 면하지 못하게 되었다. 슬프다! 천하대세를 걱정하는 청년들이 어찌 팔짱만 끼고 아무런 방책도 없이 앉아서 죽기를 기다리는 것이 옳을까 보냐.... * * * 7월과 8월, 여름의 정점을 지나면 9월입니다. 지금부터 90여년전 1923년 9월1일 오전11시58분, 그때까지 일본인이 경험하지 못했던 대재앙이 발생했습니다. 당시 동양 제일을 자랑하던 일본의 수도 동경은 땅이 갈라지고 집이 무너지고 불바다가 되어 도시의 4분의3이 잿더미가 되었습니다. 민심이 흉흉해지자 일본은 재일 조선인을 희생양으로 삼아 "조선인이 폭동과 방화, 강간, 강도, 우물에 독을 넣는다"는 등 유어비어를 퍼뜨리며 관(官)과 민(民,자경단)이 재일 조선인에 대한 무자비한 학살을 감행했습니다.
다음은 함석헌의 글 <내가 겪은 관동대진재,1973년 씨알의 소리> 일부입니다.
"...관동대진재의 원흉은 누구냐? 지진 화재가 아닙니다. 그 핵심은 조선인 학살에 있습니다. 수로야 얼마 아니 되지만 그 죽음은 지진 화재에 죽은 것과 의미가 다릅니다. 실지로는 4,5천이지만 그 뜻을 말하면 조센징이기 때문에 죽이는 것이니깐, 결국 조선이 학살된 것입니다.......문제는 국가주의입니다. 그것이 동양평화란 이름으로 전쟁을 일으켰고, 한국을 먹었고 혁명을 막기 위해 조센징을 제물로 잡았습니다.......관동대진재의 제단에서 피를 한데 섞은 일본의 씨알과 한국의 씨알은 이 역사의 원흉(국가주의)의 잔당을 잡아 새 시대를 여는 데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 하 나 -
동광원 벽제분원은 우리나라 참 영성인들이 모이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오늘 30일 월요일 오후 2시부터 2박3일 동안 가톨릭 프란치스코수도원, 떼제공동체, 감신대, 그밖에 목회 영성인들이 참여하는 관상기도와 영성훈련 프로그램을 진행합니다. 7월5일 우리의 순례길에는 유영모 직제자 김흥호의 제자되시는 심중식님께서 다석과 동광원 그리고 김흥호, 우리가 자주 접해지 못했던 김흥호목사의 사상과 영성을 설명해 주십니다. 우리는 김흥호목사, 그를 통하여 유영모의 다른 면모를 보게 될 것입니다.
7월 무더운 여름이 시작됩니다. 물 맑고 그늘이 시원한 계명산계곡에서 씨알도담(道談)과 동광원의 영성을 나누도록 합니다. 몸성히 여름 맞기를 빕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