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일 때와 선생일 때
개강한 지 2주가 지났군요. 매번 강의를 할 때마다 느끼는 게 있습니다.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네요.
지위가 사람을 만든다지요. 저는 거기 덧붙여 지위가 취미, 성향도 바꾼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갑자기 무슨 말이냐구요? 학생할 때랑 선생할 때랑 사람을 보는 취향이 너무 달라진다는 겁니다.
제가 학생일 때는, 늘 뒤나 구석 자리, 즉 선생님 눈에 잘 안띌 것 같은 자리(앞에 서 있으면 어차피 다 보인다는 걸 모르고)에 앉아서 선생님 말씀 듣다가 거기서 연상되는 딴생각, 이른 바 상념에 빠져들곤 하느라고 항상 이마가 펴질 틈이 없었지요. 제가 무슨 생각을 하면 미간에 힘이 들어간다고들 하거든요. 그런데 그거 선생님들 보시기에 얼마나 미웠을까요? 그냥 주의집중 하느라고 찡그리고 있는 건데, 앞에 서있는 선생님 입장에서는 그렇게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걸 선생을 하면서 날로 달로 절실히 느낍니다.
일단 무슨 말 하면 제깍 제깍 반응을 보이고, 그것도 방글방글 웃으며 고개도 끄떡이고 눈도 초롱초롱 빛내고 그런 학생들이 너무너무 고맙고 이쁜 반면, 자기 딴에는 무슨 심오한 생각하는 중이어서 그런 지 몰라도 잘 쳐다보지도 않고, 설사병 난 고양이처럼 인상을 팍 오그리고 있는 학생들은 무척 신경이 쓰이거든요. 내 말이 뭐 맘에 안드나? 싶어서 말이지요.
선생들도 사람인지라 남이 자기 말을 좋게 들어주면 좋고, 반응을 제때제때 안보이거나 삐딱하게 반응하면 기분이 나쁜 건 어쩔 수 없는 것인데... 어릴 땐 그런 것도 모르고 혼자 심각하기만 했으니... 그 때는 그것이 다 사르트르의 <<말>>에 나오듯 사회가 부여하는 역할에 대한 충실한 복종, 순응의 몸짓이라 생각해서 거부했던 거지요.
물론 저는 그정도는 아니었었지만, 강의를 하러 들어가면 떡 뒤로 버티고 앉아서 한번 얘기해 봐라 하는 식의 오연한 자세를 하고 있는 아이들도 있고, 뒤에 앉아서 지들끼리 계속해서 속닥거리는 아이들도 있고 별 사람이 다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 마음이 이상해서, 제 얘기를 열심히 재미있게 들어주는 경우보다 사실 그런 학생들한데 더 신경이 쓰이지요. 그런데 그런 친구들 반응에 자꾸 예민해지다보면, 오목 두다가 계속 막느라 정신 못차리고 결국은 공격은 하나 해보지도 못하는 꼴같이 됩니다. 이런 말을 해도 반응이 없으면 저런 말을 해보고 또 저런 말을 해도 안되는 듯하면 또 다른 말들로 에둘러보고...그런 식으로 하다가 그냥 지쳐버려서 이야기를 서둘러 끝내게 되더란 말입니다.
그러지 말아야겠어요. 뭔가 이해해보려 애쓰고 선생님 말에서 뭐 얻어갈 게 있나 긍정적으로 접근하는 학생들만 쳐다보면서 이야기 해야겠어요. 학생들이란 집단 또한 저마다 다른 개성들이 모여있는 집합이기에 어차피 모든 학생들한테 좋은 수업이란 있을 수 없는 것이니 선생으로서의 나를 분발해주는 학생들과 소규모로 이야기를 나눈다는 심정으로, 편안하게 하는 게 나을 것 같군요.
그나저나 이런 건 줄 알았으면, 학생일 때 선생님들한테 좀더 잘 웃어드릴 걸... 정작 학생일 때의 저자신은 고정관념에 대한 반항이랍시고 오히려 겉으론 성실해 보이게 행동하지도 않고 싹싹하지도 않았고 내 젊음의 고민들에 대한 의리로서 잘 웃지도 않았으니...
이렇게 글을 끝내며 입장을 바꿔보니, 내 수업시간에 그렇게 뚱하게 있는 치들도 다 저마다 젊음의 괴로움 속에 허우적거리느라 그럴 수도 있겠다 싶어지고, 조금은 여유를 갖게도 되는군요. 이래서 글쓰는 일이 역시 좋은 겁니다. 자기 입장에서 벗어나 좀 다른 각도에서 생각할 기회를 쓰는 동안 스르르 주니까.
강사 일기-못다한 이야기
<제107호> 인문학의 위기와 필요성
개강한 지 2주가 지났군요. 매번 강의를 할 때마다 느끼는 게 있습니다.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네요.
지위가 사람을 만든다지요. 저는 거기 덧붙여 지위가 취미, 성향도 바꾼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갑자기 무슨 말이냐구요? 학생할 때랑 선생할 때랑 사람을 보는 취향이 너무 달라진다는 겁니다.
제가 학생일 때는, 늘 뒤나 구석 자리, 즉 선생님 눈에 잘 안띌 것 같은 자리(앞에 서 있으면 어차피 다 보인다는 걸 모르고)에 앉아서 선생님 말씀 듣다가 거기서 연상되는 딴생각, 이른 바 상념에 빠져들곤 하느라고 항상 이마가 펴질 틈이 없었지요. 제가 무슨 생각을 하면 미간에 힘이 들어간다고들 하거든요. 그런데 그거 선생님들 보시기에 얼마나 미웠을까요? 그냥 주의집중 하느라고 찡그리고 있는 건데, 앞에 서있는 선생님 입장에서는 그렇게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걸 선생을 하면서 날로 달로 절실히 느낍니다.
일단 무슨 말 하면 제깍 제깍 반응을 보이고, 그것도 방글방글 웃으며 고개도 끄떡이고 눈도 초롱초롱 빛내고 그런 학생들이 너무너무 고맙고 이쁜 반면, 자기 딴에는 무슨 심오한 생각하는 중이어서 그런 지 몰라도 잘 쳐다보지도 않고, 설사병 난 고양이처럼 인상을 팍 오그리고 있는 학생들은 무척 신경이 쓰이거든요. 내 말이 뭐 맘에 안드나? 싶어서 말이지요.
선생들도 사람인지라 남이 자기 말을 좋게 들어주면 좋고, 반응을 제때제때 안보이거나 삐딱하게 반응하면 기분이 나쁜 건 어쩔 수 없는 것인데... 어릴 땐 그런 것도 모르고 혼자 심각하기만 했으니... 그 때는 그것이 다 사르트르의 <<말>>에 나오듯 사회가 부여하는 역할에 대한 충실한 복종, 순응의 몸짓이라 생각해서 거부했던 거지요.
물론 저는 그정도는 아니었었지만, 강의를 하러 들어가면 떡 뒤로 버티고 앉아서 한번 얘기해 봐라 하는 식의 오연한 자세를 하고 있는 아이들도 있고, 뒤에 앉아서 지들끼리 계속해서 속닥거리는 아이들도 있고 별 사람이 다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 마음이 이상해서, 제 얘기를 열심히 재미있게 들어주는 경우보다 사실 그런 학생들한데 더 신경이 쓰이지요. 그런데 그런 친구들 반응에 자꾸 예민해지다보면, 오목 두다가 계속 막느라 정신 못차리고 결국은 공격은 하나 해보지도 못하는 꼴같이 됩니다. 이런 말을 해도 반응이 없으면 저런 말을 해보고 또 저런 말을 해도 안되는 듯하면 또 다른 말들로 에둘러보고...그런 식으로 하다가 그냥 지쳐버려서 이야기를 서둘러 끝내게 되더란 말입니다.
그러지 말아야겠어요. 뭔가 이해해보려 애쓰고 선생님 말에서 뭐 얻어갈 게 있나 긍정적으로 접근하는 학생들만 쳐다보면서 이야기 해야겠어요. 학생들이란 집단 또한 저마다 다른 개성들이 모여있는 집합이기에 어차피 모든 학생들한테 좋은 수업이란 있을 수 없는 것이니 선생으로서의 나를 분발해주는 학생들과 소규모로 이야기를 나눈다는 심정으로, 편안하게 하는 게 나을 것 같군요.
그나저나 이런 건 줄 알았으면, 학생일 때 선생님들한테 좀더 잘 웃어드릴 걸... 정작 학생일 때의 저자신은 고정관념에 대한 반항이랍시고 오히려 겉으론 성실해 보이게 행동하지도 않고 싹싹하지도 않았고 내 젊음의 고민들에 대한 의리로서 잘 웃지도 않았으니...
이렇게 글을 끝내며 입장을 바꿔보니, 내 수업시간에 그렇게 뚱하게 있는 치들도 다 저마다 젊음의 괴로움 속에 허우적거리느라 그럴 수도 있겠다 싶어지고, 조금은 여유를 갖게도 되는군요. 이래서 글쓰는 일이 역시 좋은 겁니다. 자기 입장에서 벗어나 좀 다른 각도에서 생각할 기회를 쓰는 동안 스르르 주니까.
강사 일기-못다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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